◑ 미국의 장례제도 ◑ 토착 인디안을 제외하고는 외국으로부터의 이민과 그 자손들로도 형성된 미합중국은 자유로운 신천지에서 각각의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전통을 가지고 이질 문화와 경합해 가면서 독자적인 새로운 생활양식을 이루어 가고 있다. 지금은 이민의 문이 좁아져 정착기에 들어선 미국 사회이기는 하나 새로운 시대에 적응키 위한 "다이나믹"한 신진대사가 전개되기는 쉽지 않게 되어 있다. 특히 풍부한 자원과 부의 축척, 고도의 고학기술을 자랑하며 항상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미래지향의 국민성을 가진 미국인들이 옛날의 전통을 어떻게 유지하고 변형시켜 갈 것인가 그 귀추에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그 판도는 태평양 연안지방으로 확대되어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여러곳의 국지전쟁을 거쳤음에도 인구의 급증과 도시중심의 공업화로 국내 인구의 유동이 심화되고 있어서 이런 것들은 필연적으로 종래의 인종. 종교, 사회계층에 의한 폐쇄적인 방향으로 자연 붕괴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생활 수준의 향상에 따라 장례관습도 호화, 사치 방향으로 급변하여 장의산업이 급성장되어 장의사의 증·개축 붐이 계속 되어가고 있으며 특징은 종래의 암울한 장례나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보다 근대적이고 밝은 업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이미지 쇄신의 일환으로 장의점을 장의회사로 염사는 장례전문사, 시체를 유체, 관상(棺廂)을 구함(柩函), 그리고 묘지를 기념공원으로 우선 용어부터 고쳐나갔다. 근대적인 설비와 서비스가 그 효력에 기여한 바가 컸다. 1880년대에는 미국 전체에 5천여개의 장의업소가 있었으나, 1960년도에는 2만2천여개로 급증, 약 5만여명의 장례전문사가 근무해 온 것으로 되었었다. 장례전문사의 대부분은 장의 전문대학 졸업자인 장의학사로서 직업적·경제적으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사회로부터도 성직자와 같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들은 유체 정형보존기술(엠바밍)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 기술 면허는 근무지의 주 공중위생국으로부터 교부되는 기술 면허가 필수적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장의업의 존재가 고도화 되다보니 장례의 방법도 많이 바뀌어 정신적인 부분에까지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급한 연락을 받은 장의전문자는 사망장소로부터 유체를 장의사 안에 있는 처치실로 옮겨 정형보존술을 가하고(엠바밍) 호화스러운 관에 입관(뚜껑을 닫지 않고), 업소안에 있는 유체대면실에 안치(조문객들이 깨끗이 화장 까지 한 유체를 대면할 수 있도록)한다. 장의업소에 따라서는 사망진단서, 매. 화장허가서의 교부업무는 물론 매장업무,사제사 또는 장례위원회의 수배, 보험의 대행수속, 상속에서부터 인생상담까지를 다하는곳도 있다.그리고 종전까지 상가 혹은 교회등에서 이루어지던 장례행사가 전날에 행하여지기 때문에 조문객들에세 시간이 편리 할 뿐아니라 유족이나 유체와 개인적으로 대면하기 쉬움으로 장례식장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화장을 주장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독일계 이민이나 기독교의 목사 혹은 의사들이었으나 그 수는 점차 늘어 1900년대에 와서는 각처에 화장협회가 설립되었다. 그 협회의 많은 화장주의자들은 "그 숭고한 목적의 전도자가 되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다 위생적으로 또한 아름답게 처리하는 복음을 여러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화장이 국한되어 있는 듯하다. 영국의 인류학자 고던 칠트 박사는 "5천년의 인류 역사상 사회가 고정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을 때에는 장례관습이나 매.화장 의례가 간소화되나 이것이 불안정할 때에는 거꾸로의 경향에 이르러 묘비가 당당하게 건립되더라." 라고 말한 것을 뒷받침 할 정도로 미국에서도 내란이나 세계대전 직후에는 호화스러운 장례는 물론 멋스러운 묘비가 세워지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는 전반대의 현상이 아닌가 싶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이상적 미래지향의 많은 미국인들은 미증유의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다. 건국이래의 미국 신화의 상징적 권위가 실추되고 교회의 영향력은 점차 쇠퇴되어 가고 동시에 교회로부터 거리가 멀어져 가는 과정에서 장례관습의 형태는 점차 진보적으로 발전되고 급성장을 이룬 장의산업에 대한 비판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즉 장의업소에 지불하는 비용은 물가상승에 비례하여 높아가고 있으나 유체정형보존의 정도(전신이냐 반신이냐 혹은 얼굴만이냐)나 관등의 물품가격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일게되었다. 지금까지는 장례비용이 일괄방식에의거 청구되어 상세한 명세가 제시되지 않았던 관계로 명료치 못한 경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져 미국의회의 자문기관인 연방무역취급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방치해두지 않게 되었다. 결국 1982년에 와서는 장의사에대하여 경비의 명세 견적을 사전 제시하여 내용의 선택권을 수요자에 위임할 것을 의무화 시킨 결의안을 채택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화장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문제 뿐만이 아니고 공중위생과, 인구유동에 따라 먼거리인 묘지까지의 운구난, 그리고 묘지의 취득난 등이 심각해진 때문이기도 하다. 1964년 1년간의 화장건수는 11만9천224명으로 전체사망자의 6.2%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많은 것은 일본계 사람이 살고 있는 태평양 연안이나 하외이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점차 서부로부터 전미국지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현재 약 200여개의 화장장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으나 대부분이 사설이고 보통 유족과 조문객의 대기실, 유체대면실, 화장장,화장고, 사무실,유골함 진열실, 납골당등으로 설비되어 있다. 화장장을 갖지 못한 채 유체정형보존이나 관의 판매가 주수입원인 장의사는 유족이 특별히 화장을 희망하지 않는한 권장이나 거부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확실히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유체의 정형보존을 관습화하고 있는 곳은 적으며 미국에서도 반드시 의무적인 적은 아니다. 사후 24시간이 경과한 유체를 먼거리로 이송할 경우에만 의무화하고 전염병사자나 민간항공기로 이송하는 경우에는 엄중하게 밀폐된 관으로 해야하도록 정해져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65년도에 육지로부터 3마일 이상 떨어진 공해상의 공중에서 비행기로 유회를 살포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였는데, 그 후 샌프란시스코의 "그레이"라는 장의사에서만 1972년 1년간에 사전에 공중위생국의 허가를 득한 공중살포를 4천건이나 취급했다 한다. 장례에 있어서 상가측으로부터 조화를 사양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장례가 끝나면 경찰차의 선도로 영구차나 참례자의 차량이 묘지를 향하게 되며 이때 영구차가 지나가는 연도에있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그 영구차에실린 유체에 대하여 가슴에 손을 얹어 마지막가는 조의를 표하는 예를 갖기도 한다. 묘지는 백인, 일본계, 중국계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전후에 신설한 기념공원묘지에서는 인종의 차별없이 상가측의 예산대로 분양형식의 묘지나 납골당의 한쪽을 구입하고 있다. 미국에 있어서 장의실정에 특히 유념 할 것은 종전에는 장의나 묘지의 운영주체가 교회나 사찰의 점유영역이었던 것이 전후에는 장의사나 기념공원 기업체가 이를 대행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종교단체의 경영적 기반이 침식되어 교회나 사찰에서는 추도식이나 년회법요(우리나라의 49재 혹은 백일재와 같음).결혼식장으로 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합중국인 미국은 각 주정부에 따라 법규가 다르고 다양한 인종에 따른 이질점이 있기는 하나 그곳의 장의 관습은 수많은 곡절을 거쳐 지역, 인종, 소속 종파,신앙, 경제적.사회적 지위, 개인의 취미등이 반영되어 여러형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에는 표층부분의 다른점은 있으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생활양식, 사생관도 서서히 획일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고도로 문명화된 미국사회에서도 죽음의 비참한 현실을 기피함은 물론 죽음의 원인이 병사이든 변사이든 불운한 것으로 알고 있는 모든 인간과 같은 생각이겠으나 이를 아름답고 밝게 해주는 장의가 영위되고 풍광명미한 공원묘지에 안장되는 것으로 자위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근대사회는 전통과 근대사회의 균형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미국인들이 앞으로 그들이 이룩해 놓은 그러한 균형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특히 거기에 장례습관에 대한 변천의 귀추가 우리들의 생활 양식에도 얼마나 영항을 미칠 것인가를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장묘제도> 미국의 장묘관행은 몇 가지 점에서 다른 나라와 다른 특색을 보인다. 서구 선진산업국가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시신을 방부제처리하여 조문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여러민족이 혼합된 국가에서 장묘관행만은 민족 혹은 종교의 차이에 관계없이 일부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동일한 의식절차를 따른다는 점이다. 또한 장례에 있어서의 장의사의 역할 및 사회적 영향력이 다른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도 크다는 점 또한 미국 장의서비스 산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장의사는 資格試驗을 통과한 전문 직업집단으로서의 장의사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 혹은 단과대학이 있다. 영결식은 목사가 執典하는 경우가 많으나 장의사가 주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에서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장례예식장을 중심으로 장묘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은 금 세기에 들어와서 보편화된 관행이며, 영결식만을 교회에서 치루고 교회부속의 묘지에 매장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장례예식장의 확대를 가져온 요인으로는 도시화의 결과 주거지역에서의 장례수행이 부적절하게 되었다는 점과 시체의 防腐處理를 위하여는 장의사의 점포에 시신을 일정 기간 두어야 한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인구에 비해 넓은 國土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화장보다는 주로 매장을 하는 관습이 있다. 묘지는 주로 교회와 연계시켜 입지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잔디와 울창한 수목 등 자연경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전원, 잔디, 아파트형 묘지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봉분을 만들지 않고 관의 크기만큼 땅을 파서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주변경관도 훼손하지 않고 1기당 묘지면적도 작게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