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에세이>-문학도시 2022ㄴ녀 10월호
노년의 행복
강 인 수
흔히들 인생을 뜬구름에, 산야를 달리는 바람에, 또 어떤 시인은 소풍하러 나온 것에 비유했습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일흔다섯을 넘어서면, 앉아서 일어날 때 또는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조금은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팔순이 되면 왕노인이 되어 축 늘어진 어깨를 앞으로 수그리고 뒷짐을 하여 걸을 것입니다.. 걸음걸이는 나이와 건강의 바로미터입니다. 느릿느릿 제법 점잖게 걷다가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비틀비틀 걷다가 쪼작쪼작 걷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걷지 못해 집 안에서 생활하게 되고, 끝에는 누워 지내게 됩니다. 이게 자연의 순리인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칠순이 되기 전에 대개의 사람들은 치아가 몇 개 결손되어 임플란트나 틀니를 하게 됩니다. 이빨이 조금 망가지고 나면 다음에는 시력이 약해져 신문 볼 때 돋보기를 찾게 됩니다. 그러면 백내장 수술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엔 청력이 떨어져 남의 말 듣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자연적으로 보청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다음엔 음성도 퍼석해집니다. 이게 자연의 순리인 것을 어찌 하리오? "이젠 주변 정리를 해야겠어. 내 나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며 혼자서 중얼거리게 됩니다.
현재 한국인 평균기대수명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83.3세로 남자 만 81세 여자 87세라 합니다. 팔순을 넘게 되면 건강한 사람도 내 육신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고 묘지 유언 같은 것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70세에 임종하면서 유언으로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고 하였고, 영국의 소설가요 비평가인 버너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하였고, 우리나라의 걸레스님 중광은 “에이 십헐 것 괜히 왔다가는 개비여.”라고 하였습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은 임종(1996.11.28.) 한 달 전 소설가 윤정규 이규정(두 분 소설가는 나보다 2년 연상이었는데 두분 다 작고했음) 나 세 사람이 동아대병원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 “너거 왔나?” 조금 후 “너거 아파 우째 죽을래?” 하였습니다.
노인일수록 젊은 세대와 어울리는 게 좋다고 합니다. 입은 닫고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합니다. 젊은 세대와 호흡하려면 스마트폰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손자에게 초중고생에게 배워야 합니다. 문자 써 보내고 사진 찍어 보내고 인터넷으로 날씨 보고 뉴스 보고. 게임을 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손가락 동작이 둔해지고 터치해도 꾹꾹 눌러도 글자가 잘 떠오르지 않고 다른 글자가 뜨기도 합니다. 원인은 지문이 반쯤 망가져 있기 때문입니다. 침을 발라 문지르면 조금 났습니다. 그러므로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다섯 가지 복을-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끝마무리 곧 죽음의 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나이 들면 자기가 하는 말은 괜찮고 남(특히 아내)이 하는 잔소리는 아주 싫어하게 됩니다. 생리학적으로 여자는 나이 들면 남자보다 말을 4배 정도 많이 한다는 통계가 있듯이 아내의 잔소리는 나의 수명을 연장하는 보약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가끔 오랜만에 옛 친구가 전화로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잔소리 많은 늙은 아내와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고 있소.”라고 답합니다. 영감들은 매일 늙은 아내로부터 보약인 잔소리를 많이 받아먹어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취미생활로 바둑이나 골프 독서 등을 즐기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능력에 알맞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 선생께서 「심서(心書)」란 책에 언급한 것을 귀담아 들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뜻이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런 것은 매사에 조신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아주 긍정적인 사고에서 울어난 말씀입니다.
중년과 초로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은, 노년을 품격에 맞게 즐길 수 있어 오히려 노년이 행복합니다. 나이 많다고 한탄만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과학자 에디슨은 92세에도 발명에 몰두했고,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86세에 수필집 <인연>을 출간했고 그 다음해엔 <내가 사랑하는 시>을 출간했으며,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100세를 넘었지만 시대에 걸맞은 칼럼을 발표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특별한 경우이지만. 가족을 돌보느라 돈을 버느라 아니면 출세를 하느라 고생했는데, 노년에 이르러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되고 자식 걱정 덜게 되고 자기가 소망했던 일을 하게 되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 앞에 놓인 많은 시간들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또한 시간이 없어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할 수 없지 않았습니까? 타고난 재주를 늦게나마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이시형 박사는 노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년에 나의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지적인 자극 지적인 쾌감을 나름대로 얻기 위한 노력을 하면 인지장애 곧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고상한 취미 활동 예컨대 바둑 독서 연구 활동 등을 계속하면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현역처럼 살려고 노력하면 젊어지고 건강해진다.” 특히 문인들은 자기가 좋아 택한 문학을 죽을 때까지 실행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비록 세월 탓으로 문인의 연령이 노령화 되고 문학의 인기가 좀 약해졌다 해도, 내 작품을 남이 잘 알아주지 아니할지라도, 내 능력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학은 모든 예술의 근본이며 작품 활동은 아주 훌륭한 창작활동입니다. 문학을 과소평가할지라도 고상한 취미활동이므로 그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물론 노년에 문학을 즐기려면 중년 초로시절에 열심히 살아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와 건강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은 많은데 시간 죽이는 방법을 찾지 못해 멍한 바보처럼 무료히 보내는 사람에 비한다면, 노년을 맞이한 문인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천천히 여유있게 그런대로 괜찮은 작품 몇 편이라도 쓴다면 청말 유익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남을 칭찬할 줄 알고 작은 선심을 베풀며 감사한 마음으로 미소짓는 문학을 즐기는 노인은 정말 행복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 (월간 <문학도시> 2022년 10월 호 게재) --------------------------------------------- *강인수(姜仁秀): 1979년 단편 「밀물」<월간문학>로 등단. 수상: 부산광역시문화상(2000.) 한국해양문학상대상.(2008). 대표저서: 『최보따리』(1994 서울 풀빛) 『(어부의 노래』(2008 세종) 『작가와 작품을 찾아서』(2003. 서울 푸룬사상) 부경대명예교수. 제13대 부산문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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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정말 맘에 와 닿습니다/ 바둑과 독서는 어느정도 되는대, 골프는 지껏해야 스크린 골프정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