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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마음공부는 내가 내 주인을 찾는 일입니다. 내가 내 주인을 찾으면 이 땅의 주인도 찾고, 저 하늘의 주인도 찾고, 우주 만법의 주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몸에도 자유롭고, 땅에도 자유롭고, 저 하늘에도 자유롭고, 우주 만법에도 자유롭습니다. 주인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주인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면 종으로 살든지 꿈속에서 살든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힘이 들고 헛된 일이겠습니까. 이 몸의 주인을 찾고, 이 땅의 주인을 찾고, 저 하늘의 주인을 찾아서, 우주 만법의 주인으로 살면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마음공부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중생은 공부하기 힘듭니다.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지금 해야 합니다. 자꾸 미루면 안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더 늙으면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는데, 같은 인생이라도 50대, 60대, 70대, 80대, 90대, 100대 인생이 다 틀립니다. 똑같이 보면 안 됩니다.
60대에 할 수 있는 일이 70대가 되면 못할 수도 있고, 70대에 할 수 있는 일도 80대가 되면 못하는 것이 많아요. 마음공부도 사람으로 태어난 금생에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어영부영하다가 이 목숨 버리고 나면 할 수 없습니다. 미루었다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루지 않고 당장 마음공부 하는 방법이 '마음공부의 일상정진'이라는 내용입니다.
一切佛法 일체불법
自心本有 자심본유
將心外求 장심외구
捨父逃走 사부도주
일체 만법이
자신의 마음속에 본래 있으니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구하는 것은
부모를 버리고 도망해 달아나는 것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되어 있는 홍인弘忍601~674 선사의 법문입니다. 밖으로 구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데서 찾든지, 귀에 들리는 데서 찾든지, 손에 만져지는 데서 찾는 등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버리고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마치 좋은 바다를 놓아두고 낚싯밥을 무는 고기와 같습니다. 고기가 낚싯밥을 물면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시지요? 이처럼 마음을 밖으로 구하는 것은 물고기가 낚싯밥 무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왜 그러냐면 모든 고통은 구하는 데서 옵니다. 유구개고有求皆苦,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입니다. 무구개락無求皆樂, 구함이 없으면 다 즐겁습니다.
사람이 구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지 의아할 수 있겠으나, 해는 구해서 항상 뜨겁나요? 물은 구해서 항상 흐르나요? 그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기만 하고 구하지 않는 것이에요. 모두 구하는 것에서 고통이 옵니다. 구하면 종이 됩니다. 누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벌써 종이 되어 그 사람이 시키는대로 하게 됩니다.
물이 구하는 것 없이 계속 흐르듯이,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하기만 하고 구하지는 않습니다. 구하는 데서 고통이 오기 때문에 구하지 않고 계속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공부입니다. 다시 예를 들면, 정원에 나무를 키우는데 그 나무에게 구하지 않고 계속 가꾸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워도 키우기만 하지 뭘 바라지 말아야 해요. 바라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스님은 자식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없는 사람도 알기는 압니다. 자식도 저 정원의 나무를 가꾸듯이 오직 가꿀 뿐 바라지 마십시오. 그러면 편안해요. 그러니까 밖으로 구하면 어린아이가 부모 버리고 도망해 달아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앞의 게송에서 일체 불법이란 무엇인가? 삼신사지三身四智입니다.
삼신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고, 사지는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成智. 대원경지大圓鏡智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 몸을 열 가지로 보이고, 지혜에도 열 가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일체 불법인데 이 일체 불법이 자기 마음에 본래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비유로 말하면, 아주 큰 과일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서 과일이 주렁주렁 엄청나게 열립니다. 그런데 그 과일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저 해에서 나왔는가? 공기에서 나왔는가? 흙에서 나왔는가? 물에서 나왔는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과일나무의 조그만한 씨앗 하나에서 나온 것입니다.
해마다 엄청나게 열리는 그 과일이 조그마한 씨앗 하나에서 다 나온 것이에요.
그 씨앗 하나를 버리고 과일을 찾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씨앗이 인因이고, 햇빛이라든지 흙이라든지 물이라든지 공기 등 다른 것은 전부 연緣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나 보살이나 일체 선지식은 다 연이고, 우리 한마음이 종자입니다. 이 종자를 잘 가꾸면 거기에서 삼신사지, 십신십지十信十地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법문을 아무리 들어도 닦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법문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무리 햇빛이 있고, 좋은 밭이 있고, 물이 있고, 공기가 있어도 종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이, 아무리 법문을 들어도 내가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서 닦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연緣'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인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 마음 낸 것이 중요합니다. 무진장한 부처님의 불법이 전부 그 마음 하나에서 다 나왔는데, 많은 선지식들이 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닦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법문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심지법문心地法門';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心外無法 심외무법
何有不心 하유불심
諦看諦看 제간제간
快活快活 쾌활쾌활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마음 아닌 것이 있겠는가.
자세히 보고 자세히 보아서
즐겁게 살고 즐겁게 살자.
이런 법문을 듣고 바로 보면 곧 깨닫는 것입니다. '마음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다.' '마음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아,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이렇게 알고 이렇게 믿는 것을 수순隨順이라고 합니다. 따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으니 입문入門입니다. 입문하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모르면 수순할 수 없고, 수순하지 못하면 입문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공부를 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는 법문이 있습니다.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백년 삼만육 천일에
반복하는 것이 원래 바로 이것이다.
백년을 살면 삼만육천일인데, 그 아침마다 계속 일어나고 잠자고 일어나고 잠자고 반복하는 것이 원래 바로 이놈이라는 법문입니다. 마음 떠나서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잘 때도 이놈이고, 꿈꿀 때도 이놈이고, 올 때도 이놈이고, 갈 때도 이놈입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해 매일 쓰면서도 이놈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바로 내가 내 주인을 찾는 것이고, 내 주인을 찾다 보면 땅의 주인도 찾고 하늘의 주인도 찾고 일체 만물의 주인을 다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백년삼만육천조' 게송은 五祖法演 ?~1104 선사의 영정影幀 찬讚에 있습니다. 이것을 ㅂ고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가 견성을 했어요.
이 게송을 바로 보는 순간에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왜 깨닫지도 못했는데 이 말을 하는가? 이런 말씀을 들어놓으면 이것이 연이 되어서 어느 날 덜커덕 깨닫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자꾸 들어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잠을 잘 때도 이 생각이 딱 떠오르면서 그냥 몸이 뚝 떨어지고 깨닫는 수가 있어요. 밥 먹을 때에도 이런 법문이 생각나면서 깨닫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깨닫거나 못 깨닫거나 이런 법문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전부 햇빛과 같고 물과 같고 흙과 같아서 그 종자 하나를 다 도와서 열매를 맺게 하는 연이 됩니다. 이것이 법연法緣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마음 공부를 어떻게 하는가? 저번에도 한 번 해보셨지요. 또 저를 따라서 한번 해 보세요.
무엇인가.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인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무엇인가!
이것뿐입니다. 형식도 없고 다른 절차도 없습니다. 갈 때나, 올 때나,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챙기기만 하면 돼요. 다른 것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눈을 감아도 되고 안 감아도 됩니다. 말을 하거나 안 하거나 그냥 이렇게 챙기기만 하면 되는 이것이 일상 정진입니다. 옛 어른들도 다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달마達磨 ?~528? 대사를 혜가慧可 487~593 스님이 찾아갔을 때의 그 유명한 법문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옵니다.
曰 왈
諸佛法印 可得聞乎 제불법인 가득문호
師曰 사왈
諸佛法印 非從人得 제불법인 비종인득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님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겠느냐고 묻는 혜가 스님에게 달마 대사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달마 대사의 가르침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혀 얻지 않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은 연이 되는 것입니다. 종자가 나오려면 흙이 있고 햇빛이 있어야 하듯이 사람은 연이 됩니다. 여기에서 인은 발심수행입니다.
매일 스승 자랑만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스승은 연일 뿐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자가 구도자이지 스승 자랑만 하고 돌아다니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스승이 밥을 먹으면 자신도 배가 부릅니까? 그것이 아니잖아요.
몸소 그 가르침의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워서 열매를 내 몸에서 맺게 하는 그것이 해야 할 도리입니다. 역대로 훌륭한 사람들은 다 스승 없이 깨달았어요. 훌륭한 사람들은 그 부모보다 다 잘 되었지 부모 시킨대로 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부모가 되면 자식들에게 부모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식을 망쳐요. 역사에서 한번 보십시오.
훌륭한 제자들이 스승 시킨대로 뒤따라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스승, 저 스승 찾아다녔지만, 어느 스승의 법도 따르지 않고 당신이 직접 깨달아서 중생에게 길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혜가 스님과 달마 스님의 다음 문답이 이어집니다.
曰왈 ㅡ 我心未寧 乞師與安 아심미령 걸사여안
師曰사왈 ㅡ 將心來 與汝安 장심래 여여안
曰왈 ㅡ 覓心了不可得 멱심료불가득
師曰사왈 ㅡ 我與汝安心竟 아여여안심경
(혜가)왈 ㅡ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달마)사왈 ㅡ 마음을 가져와라, 너를 편안하게 해주리라.
(혜가)왈 ㅡ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달마)사왈 ㅡ 내가 너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마쳤느니라.
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에게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에 대한 달마 대사의 법문이 무엇인지 다들 아시지요?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 대사는 혜가 스님에게 '마음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꽉 있는데, 그 마음을 가져오면 너를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하니 그 마음을 얼마나 꼴똘히 찾았겠습니까? 그런데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달마 대사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마쳤느니라." 이것이 마음법문입니다. 찾아보면 알아요. 거기에는 말이 붙을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이 안경에 아무런 생각을 붙이지 말고 한번 보십시오, '안경이다,' '물건이다.' '유리다', 이런 것은 전부 생각입니다. 일체 새ㅐㅇ각을 붙이지 말고 이것을 한번 보세요.
모든 생각을 다 거두어내고 딱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고, 하늘의 주인이고, 땅의 주인입니다. 아무 생각도 붙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공적영지空寂靈知입니다.
공적하고도 신령스럽게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보다 먼저 생겼고, 땅보다도 뒤에 있고,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고 듣는 데 항상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것입니다. '그 마음을 가져오라.'는 말씀에 찾았을 때 딱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달마 대사가 헤가 스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공부의 전통입니다.
후에 혜가 대사가 삼조三祖 승찬僧璨 ?~606 스님을 만났는데 승찬 스님이 말하기를 "제자의 몸에 풍병이 가득합니다. 화상께서는 죄를 참회해주시기를 청하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죄를 참회하는 것이 참죄懺罪입니다. 병은 죄에서 오니까 참죄하면 낫는다고 참죄해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혜가 대사가 "죄를 가져오라. 너에게 참죄를 해주리라[將罪來與汝懺]." 라고 했습니다. 그 죄가 마음이고 병이 마음이에요. 죄는 자성이 없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罪無自性從心起]. 그러니까 승찬 스님이 조금 있다가 "죄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覓罪不可得]."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혜가 대사가 "너에게 죄를 참회해 주어 마쳤느니라[與汝懺罪竟]." 라고 했습니다. 똑같아요. 찾을 수 없는 그 마음이 나의 주인입니다.
찾을 수 없는 그 마음과 딱 만나는 것이 역대로 내려오는 마음공부의 전통입니다.
사람들이 불안할 때 그 불안한 마음을 떠나서 밖으로 편안함을 찾으려는 것은 '장심외구將心外求'입니다. 그런데 '불안한 이 마음이 무엇인가. 무엇인가.'하고 찾으면 본래 마음과 딱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흔히 누군가 미우면 그 사람과 막 싸운다든지,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벽에 붙여놓고 막 때린다든지, 아니면 뒤에서 막 욕을 한다든지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속에서 열이 나서 속병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해결이 안 되는 방법이에요.
미울 때 '미워하는 ㄴ이 마음이 무엇인가. 이 마음이 무엇인가. 무엇인가.'하고 찾으면 환하게 밝아집니다. 고함을 지를 필요도 없고 스트레스를 달리 해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 하나면 다 됩니다. 그것이 마음공부의 일상정진입니다.
마음은 자기가 일으켜놓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는데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깨끗할 정淨', '마음 심心', 정심淨心입니다. 이 생각도 올바른 생각이 아니고 저 생각도 올바른 생각이 아니고, 무엇이든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마음은 걸레로 닦아 청소하듯이 깨끗해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맑히는 정심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화엄경』「여래출현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若有欲知佛境界 약유욕지불경계
當淨其意如虛空 당정기의여허공
遠離妄想及諸取 원리망상급제취
令心所向皆無礙 영심소향개무애
만약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그 생각을 깨끗이 해서 허공과 같게 하라.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어서,
마음이 향하는 곳마다 걸림이 없게 하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정심淨心이면 됩니다. 생각을 맑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생각을 맑히려면 '이념離念'을 해야 돼요. 생각을 여의어야 합니다. 이념이 입문入門입니다. 생각을 여의어야 문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란 게 그리 쉽게 없어지나요? 생각으로 인정받으려고 막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을 여의는 것이 공부인데 여전히 생각으로 '내 생각이 옳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이 따위로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했다며 스승을 찾아갈 때마다 몽둥이만 날아옵니다. 정심은 이념이니, 생각을 여의면 청정합니다. 일체 망념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그것이 청정심淸淨心이라는 말씀입니다.
망념을 여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마음공부 수행법을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합시다.
不取外相 불취외상
攝心內照 섭심내조
常自擧覺 상자거각
只管提撕 지관제시
밖으로 취하지 말고
마음을 거두어서 안으로 보라.
항상 스스로 들어서 챙기고 살피라.
오직 챙길 뿐이다.
마음공부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언가 밖의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는 등, 자꾸 밖의 것만을 구하는 것이 마음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밖의 것을 구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기는 하되 구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유구개고有求皆苦입니다.
구하는 바가 있으면 괴롭습니다. 밖으로 취하지 말고 마음을 거두어서 안으로 보아야 합니다. '상자거각'의 거각은 각찰覺察이라는 말입니다. 챙겨서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관제시는 오직 챙길 뿐이라는 말입니다. 오직 챙기면 됩니다.
이것이 마음공부 하는 핵심이고 일상정진하는 방법입니다.
무엇인가.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인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 무엇인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도사 아미타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밖으로 취하지 말고
마음을 거두어서 안으로 보라.
항상 스스로 들어서 챙기고 살피라.
오직 챙길 뿐이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여래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