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나는 기억하고 싶어요
엘리자베스 앨릭잰더(Elizabeth Alexander)
<세상의 빛: 회고록(The Light of the World: A Memoir)>(2015)
엘리자베스 앨릭잰더는 이 잊을 수 없는 회고록에서 사랑과 상실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남편 피크레 거브러여수스(에리트레아 계 미국인 화가)가 죽은 후 송두리째 뒤흔들린 감정의 여파를 그리면서 두 아들 솔로몬, 사이먼과 함께 어떻게 서로 위로하고 이끌어가며 슬픔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 빛 속으로 빠져나왔는지 이야기한다.
어느 날 밤, 열세 살 난 사이먼이 잠자리에 들어 자기와 함께 천국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가고 싶으냐고 물은 일을 앨리잰더를 회상한다.
“응.” 나는 이렇게 말하고 아이의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먼저 눈을 감으세요.” 아이가 말한다. “그리고 투명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세요. 자, 올라가요.”
“뭐가 보이니?”
“신이 문 앞에 앚아 있네요.”
“신이 어떻게 생겼는데?”
“신처럼요. 이제 우린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예요.”
“아빠 방은 두 개예요.” 아이가 말한다. “한 방에는 일인용 침대와 책들이 있고, 아빠는 다른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방은 아주 넓어요. 아빠는 원하는 창문을 내다보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떠날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온다.
“엄마는 언제는 나하고 같이 거기에 갈 수 있어요.” 사이먼이 엄마에게 말한다.
수상 경력이 있는 시인이자 전직 예일 대학교 교수이면서 현재는 앤드루 멜런 재단의 이사장인 앨릭잰더는 남편을 잃고 15년 동안 겪은 날것의 슬픔을 전한다. 이 책은 사실상 남편에게 보내는 연서로서,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예술가인 거브러여수스의 잊을 수 없는 초상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앨릭잰더는 거브러여수스의 훌륭한 채색화들을 페이지에 생생히 담아내면서 남편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져, 함께 요리하고, 공유하는 노트에 아이쿠를 쓰면서, “돌 다 찬사를 보내던 천재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인 아마드 저말, 베티 카터, 애비 링컨, 랜디 웨스턴, 돈 풀린의 음악을 들었는지 떠올린다.
앨릭잰더의 시집 <미국의 숭고함(American Sublime)>, <호텐토드족 비너스(The Venus Hottentot)>, <전쟁 전의 해몽서(Antebellum Dream Book)>가 현재와 과거의 연관성 그리고 정체성의 복잡성을 탐구하듯, 이 회고록은 두 사람을 한데 묶는 이상하게 뒤얽힌 운명을 기념하다. 알고 보니, 앨릭잰더와 그브러여수스는 서로 두 달 간격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다. 앨릭잰더는 뉴욕 맨해튼의 할렘에서, 거브러여수스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에리트레아에서. 거브러여수스는 열여섯 살 때 그 나라에서 도망쳐 나와 수단, 이탈리아, 독일을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앨릭잰더는 남편이 죽은 이후 집 안이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낀다. “남편이 돌아오길 영원히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실의 불을, 거리에 면해 있는 불을 계속 켜두”려 한다. 남편이 희한하게도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돌아오는 꿈을 꾼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지만 남편은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앨릭잰더는 자신이 디지털 영상 장치 작동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이나 자신이나 그 작동법을 배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남편의 문자메시지를 잃고 싶지 않아 남편이 죽은 후 1년 반이 지나도록 계속 휴대전화 요금을 낸다. 역사나 미술이나 원예 분야에서 남편을 보는 상상을 하게 되는 까닭에 서점을 피한다.
두 사람은 뉴헤이븐에서 만나 이곳과 인근의 햄든에서 두 아들을 키웠다. 앨릭잰더는 시인이자 이 지역의 오랜 주민으로서 뉴잉글랜드의 숲과 산업폐기물이 뒤섞여 어떤 은유차람 읽히는 뉴헤이븐의 풍경뿐 아니라 이곳의 뜻밖에 훌륭한 음식 그리고 대학 생활과 도시 생활이 섞여 만들어내는 리듬을 완벽하게 담아낸다.
이 책은 앨릭잰더가 두 아들을 데리고 뉴헤이븐을 떠나 뉴욕으로 가면서 끝난다. 그로브 가에 있는 공동묘지에 들러 남편과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 했으나, 의사와의 약속 때문에 시간이 늦어 공동묘지 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하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아들 사이먼이 이렇게 말한다.
“무덤을 보면 아빠의 죽음이 떠오르지만, 난 아빠의 삶을 기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