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 정책연구소 부소장인 채만수씨가 쓴 글입니다. 희망연대 자료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노동이론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써 의사, 시민단체, 보건관련 노조등현안과 관련된 각 세력의 문제점등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이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내용을 간략히 메모형식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약간 긴 글이지만 일독 권합니다.
의사파업, 배경·성격과 대응
(토론을 위한 메모)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1. 경과
<생략>
2. 의사파업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
* "국민(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
* 정부·언론·시민운동단체는 물론 의사사회 내부의 '진보적 분파'나 노동자·민중운동 진
영도 거의 같은 논리 하에 대응.
3. 정부가 이른바 '의약분업'을 강행하게 된 배경
*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계기는 이른바 '의약분업'의 강행과 그에 따른 '수입감소'에 대
한 의사들의 반발 -- 바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의 근거.
* 특히 정부·언론·시민운동단체 등의 선전활동에 의해서 '의약분업'에 절대적 필요성과 정
당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획득.
* 그러나 정부나 언론, 시민운동단체 등이 정말 의약분업의 의학적·약리학적 필요성과 정당
성 때문에 현재와 같은 정치적 무리를 유발하고 감수하고 있는지, 즉 그들이 표방하는 것
이 정말로 무리를 감행하는 진짜 이유인지는 의심해 봐야.
* 더구나 일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마치 그 자체로서 자명한 것처럼 '의약
분업', '의약분업'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의약분업이 무엇'인지 혹은 '어떠한 의약분업'인지
조차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 일반적으로 '의약분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어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불분명하고, 실제로 여러 형태와 내용을 가질 수 있는 것.
** 실제로 의사와 약사간의, 그리고 의사와 건강보험공단간의 이해를 둘러산 분쟁의 상당
부분은 이와 관련된 것.
***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말하면, '아스피린'이라는 약이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판매가
가능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느냐, 아니면 약사가 임의로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
품'으로 분류되느냐는 의사와 약사, 그리고 건강보험공단간에, 그리고 사실은 그 약의
소비자인 환자간에 경제적 이해관계가 엇갈릴 뿐만 아니라, '의약분업'의 형태와 내용
이 달라지는 것.
*** '임의조제'니, '대체조제'니, 일반의약품의 포장단위니 하는 것들을 둘러산 갈등이
모두 이에 해당.
* 수많은 종류의 감기약 등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복용 회수·복용량이 가장 많은 약들이
대부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고, 이것들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는 사실은 의사·약사간의 이해관계도 이해관계지만, '의약분업'을 내세우는 정부의 진실
한 의도를 의심해 볼 충분한 근거.
* 나아가 이른바 약물의 오·남용을 문제삼아서 '의약분업'을 얘기하지만, 사회의 한 켠에서
는 경제적인 이유,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 때문에 약물의 부족이 문제로 되어 있고, 또
한 약물의 오·남용도 상당 부분은 그와 관련된 것이나, 정부나 시민운동단체 등은 이 점
에 대해서는 침묵.
4. 이른바 '국민부담 증대'의 원인에 대한 오해·곡해에 대해서
* 시민운동단체나 '진보적 의료단체들'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적 투쟁'에 따른 의료보험료
인상 등 '국민부담의 증대'를 문제삼지만, 처방료 등 수가나 그에 따른 보험료의 인상이
없더라도 현재 형태의 '의약분업'은 그 자체가 과거 보험공단이 부담하던 약값의 일부를
소비자로서의 환자에게 전가하는 것.
* 그리고 사실은 이미 '의약분업' 실시 이전에 보험료 등을 인상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
는 것처럼, 선전과 달리 '국민부담의 증대'를 전제하고, 또 그것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의
약분업'을 실시하는 것.
** 정부나 보험공단은 이미 현재와 같거나 유사한 의사들의 저항이 있을 것을 미리 계산
하고, 한편에서는 그러한 사태를 빌미로 의사들에게 정치적·도덕적 부담을 지우면서
보험료 등을 인상하려던 것이었고, 또 한편에서는 의사들의 저항 그 자체는, 파업 초기
매스컴을 동원한 호들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에 대한 사회적 패닉을 증폭시킴으
로써 일정한 수준에 묶어두려 했던 것. -- 정부의 예상에서 벗어났고 따라서 정부를
난처하게 하고 있는 것은 의사들의 저항 자체가 아니라 그 강도·완강함뿐. -- '의료
공백'을 말하지만, 예외적으로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파업기간 중의 의료체계는 평상
시의 일과후 시간이나 공휴일의 수준을 사실상 벗어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도
적으로 패닉상태를 조장.
* '국민부담' 문제를 거론하려면, 이번의 사태에 따른 보험료 등의 인상이 아니라 현재의 상
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 현재 형태의 이른바 '국민건강보험' 제도 하에서의 엄청난 '본인부
담금'을 문제삼아야.
**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나 노동자·민중운동이 엄청난 부담인 '본인부담금'을 문제삼는
대신에, 혹은 문제삼는 척만 하면서, 의사파업에 따른 '국민부담 증대' 운운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는 것.
** 시민운동단체나 노동자·민중운동측의 이러한 태도는,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자 8
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제도언론'이 한국사회의 의료보험제도를 포함한 의료제도 일반
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검토를 시작하고 현 제도를 '감기 치료 보험'이니 '진료비 할인
제'니 하고 규정하는 것과도 대비되는 극히 천박한 견해.
* 정부는 이번의 사태를 겪으면서 인상한 수가를 반영하더라도 보험수가는 '원가'의 80%밖에
안된다고 인정하면서 점차로 수가를 현실화하겠다고, 즉 앞으로 따라서 보험료도 더욱 올
리겠다고 주장하지만, 그리고 이에 대해서 시민운동단체나 노동자·민중운동이 '국민부담
증대'라며 비판·반발하고 있지만, 총의료비 중 의료보험공단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지출
부담률이 1997년 기준 45.5%밖에 안된다고 하는 사실은,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병원
등의 폭리'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보험수가가 얼마나 낮으며, 따라서 환자들의 부담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말하는 것. -- 이 문제야말로 '국민부담'의 핵심인데도 이른바 '국민부
담 증대'를 규탄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즉 이러한 이유로 인한 환자의 부담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
* 이러한 사실들은 "의료비 인상의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을 반대"(보건의료산업노조
의 광고)하는 문제가 단지 의료수가나 보험료 문제가 아니라 가장 협소하게 잡아도 의료
보험제도 및 조세제도 등의 전반적 변혁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의료수가나 현재의 형태하에서의 보험료의 인상 여부의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선동일 뿐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
* 의사들이 '생명을 볼모로 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즉, 정말로 생명을 볼모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상업주의'!
5. 의사파업의 배경
*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서 의사파업을 규탄하는 데에는 의사들은 '노동자·민중'이 아니
며, "의사들의 생존권은 노동자·농민 등 서민의 생존권과는 다[르다]"(보건의료산업 노조
광고)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 그들의 파업은 "강자의 협박"이고, '기득권자들의 집단이기
주의'라는 것.
* 그러나 수만 명의 의사, 의과대학생, 의과대학 교수가 의사로서의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
는 것이 과연 그러한 성격의 것인지, 지금 의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지하
고 허심탄회하게 검토해 볼 일.
* 주지하듯이 현재 한국에는 약 68,000명의 의사가 있고, 그 중 약 18,000명이 개원의, 약
50,000명이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 봉직의 등등의 명의의 '월급쟁이' 의사.
* 그 중 일반적으로 '기득권층'이라는 관념에 어울리는 사람의 수는, 정확한 통계나 조사는
없지만, 사실상 소수에 불과하고, 절대 다수의 의사들, 수련의(전공의)나 전임의들, 그리고
다수의 개원의들의 노동조건이나 임금·수입은 극히 열악. 특히 전공의 등의 노동시간은
주당 80에서 심지어 백수십 시간에 이르러 살인적인데다, 임금은 극히 열악 -- 이미 수년
전부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폐업·전업·이민하는 의사들도 상당수(이는 그들 의사의
의사로서의 기술·의료 수준과는 별개로 벌어지는 일).
* 따라서 의사들의 투쟁을 가리켜서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니 '강자들의 협박'이니 하는
것은 근거없는 매도에 불과. --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서, 병원의 독과점화의 강화와는 별
도로, 소수 '기득권층적인' 의사들의 상황·조건조차 대부분 열악해질 것임은 당연한 것. -
- 비유해서 말하자면, '의사층 분해'가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가속화될 것
이며, 이러한 사정이 의사들을 극한적인 투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
* 앞으로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 의사들의 사회계급적 처지는 대략
'소수의 부르주아지(고수입 봉직의 및 개원의) - 다수의 고임금 전문직 노동자 - 절대 다수
의 저임금 전문직 노동자 - 다수의 전문직 자영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고, 현재
투쟁의 동력은 그러한 전문직 노동자와 자영업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임. -- 이는 물론 의
사들의 자기인식과는 많이 다를 수 있고, 또 의사들을 그렇게 '노동자'로서 규정하는 데에
는 현재 의사들의 투쟁에 비판적인 노동자·민중운동뿐만 아니라 의사들 자신도 저항감을
느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인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님.
*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설령 정부의 강압적 조치에 의해서든, 의료수가 인상 등 회유책에
의해서든, 시민운동단체나 노동자·민중운동 측의 압력에 의해서든(?), 지금 당장 의사들이
파업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들이 분해과정에 들어간 의사들을 구제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의사들이 유사한 집단행동을 하거나 의사직 포기, 해외 이민 등등으
로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거나 하는 것을 저지하지는 못할 것. -- 따라서 노동자·민중운
동 진영의 대응·비판은 이러한 사실과 전망을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함.
6. 의사들의 파업투쟁의 성격 및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응과 관련하여
* 의사들의 파업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곧 의사들의 파업투쟁
이나 그들이 파업중에 주장하는 요구사항이 모두 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
그들은 그렇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 따라서 그러한 조건
에 기초해서 대응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임.
* 한편, 그들의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파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러
한 '촉구'에 응해서 파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도, 따라서 그러한 매도·촉구가 (사태를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사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명백해져 있음
(사실은 애초부터 명백한 것이었지만).
* 의사들의 이번 투쟁은, 한편에서는 기존의 보건의료체계가 사실은 파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다른 한편에서는 이 투쟁을 계기로 의사들이 기왕의 즉자적 존재로부터 대자적 존
재로 전화되고 있다는 것, 즉 정치의식화되고 사회의식화된 집단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것
을 의미.
* 이러한 과정의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허위의식과 오류가 포함될 수밖에 없고, 나
아가 그들이 어떤 색깔, 어떤 노선의 사회의식·정치의식을 갖게 될 것인가는 사회 일반
의 객관적인 조건이나 의사사회 내부의 선진 활동가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민중
운동의 대응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 민중의료연합의 한 동지는, {현장에서 미래를} 7월호의 나의 글([기만적 처방이 빚은
대형의료사고])에 대한 비판에서,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에 있어서의 칠레의사
협회의 반동적 파업을 예로 들었는데, 그 파업과 지금 한국의 의사들의 파업은 성격이
엄연히 다른 것. -- 그 예는 의사집단이 (친)파시즘적으로 정치의식화·세력화했을 경
우의 위험을 예시하는 것으로서, 바로 그 때문에도 지금 의사들의 파업에 대한 노동
자·민중운동 진영의 신중한 대응은 절실히 요구되는 것.
* 지금 의사들의 요구사항에는, 애초의 동기 및 조건이 그랬던 것처럼, '밥그릇 싸움' 성격적
인 것들이 많이 있음. 그 이해는 일견 약사의 그것과 대립되고, 보험공단의 그것과 대립되
고, '국민'의 그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고, 의사들의 의식 속에서도 사실 많은 부분 그
렇게 인식되고 있을 것임. -- 이는 '주어져 있는 틀 내'에서 타산할 때 어쩔 수 없는 것이
고, 자본주의적 관계,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를 전제로 할 경우 누구에게도 이를 비난하
거나 매도할 권리가 없는 것임. 그 '틀'을 전제하는 한, 남는 것은 오직 서로와 서로간의
끝없는 '밥그릇 싸움'일 뿐이기 때문에.
* 따라서 책임있는 비판자, 책임있는 노동자·민중운동이라면, 그들을 그렇게 매도하는 대신
에 그 틀이 이미 낡아서 파탄에 직면한 것임을 보여주고, 그 틀을 넘어서서 나아가는 길
을 제시해야 할 것임. -- 의사들의 운동·투쟁의 내부에서 스스로 인식할 수 없거나 그것
을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을 역사의 영도계급, 혹은 영도
계급이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인식으로 일깨우고 제시해야 할 것임.
* 그런데, 이번 의사파업에 대한 최근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대응은 철저하게 오도된
것이었음.
** 첫째로는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이 이른바 시민운동 단체들의 기만적 진보 이데올
로기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에 의함. -- 1989∼90년의 이른바 '토지공개념' 소동을 통
해서 경실련 등 시민운동단체가 노동자·민중운동과 대립적으로 자신을 정립시킨 이래
PCS범대위 소동, 재벌 개혁 투쟁, 소액주주운동, 그리고 최근의 낙천·낙선운동, 송자
교육부 장관 퇴임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사회·정치문제의 핵심을 왜곡하
고, 자본의 합리화에 노동자·민중을 동원해왔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할 필
요가 있음.
** 앞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의약분업'이라는 추상적 주문(呪文)에 사로잡혀서 그것의 구
체적 형태와 관련하여 벌어질 수밖에 없는 '밥그릇 싸움'(구태여 말하자면, 의사와 약
사, 기타 이해당사자간의 '이기주의'에 기초에 싸움)을 현실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극
히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서로 같은 것을
두고 다투는 일방의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자가당착적인 것으로 되었음.
** 예컨대 민주노총의 태도는 시민운동단체 말고도 보건의료산업노조 등의 태도가 상당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태도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려운 얘기지
만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혹시, 냉정한 과학적·객관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업무상
의 특수관계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 앙금이 짙게 투영된 결과가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할
것임(컴퓨터 통신에 올라오고 있는, "우리가 파업할 땐 어쩌더니," "우리가 파업할 땐
응급실엔 인원을 배치했는데" 운운하면서 의사들의 파업을 비난하는 글들은 명백히 그
러한 감정의 발산임). -- 의사들과 현재의 보건의료산업노조 조직대상의 직종간에는
갈등과 대립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때로는 '적대적인' 것 같은 형태를 띠고 나
타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해야 할 관계에 있음.
그리고 그 갈등과 대립이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
식해야 할 것임. -- 나아가 이러한 인식 위에서, 이번의 일련의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등장할 의사집단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가야 할 것임.
** 마찬가지로, 진보적 보건의료단체의 태도들에도 혹시, 윤리적·도덕적으로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결코 과학적이지는 않은, 대속의식(代贖意識), 노동자·민중주의가 작용하고
있지 않나 되돌아 볼 일임.
** 특히 말하고 싶은 것인데, 지난 6월의 제1차 의료파업 직후 김대중 정부는 롯데호텔
노조 및 사회보험노조의 투쟁을 살인적 폭력으로 유린했던 바, 실제로 의사들의 파업
에 폭력으로 대응하지 못한 '공권력의 권위'를 이들 노동자 투쟁에 대한 폭력으로 회
복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 거기에 대해서 민주노총이나 기타 노동자·민중운동이 취
해야 태도는 김대중 정권의 파쇼적 폭력성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이어야지, "의사들
한테는 그렇게 못하더니 왜 우리한테만 폭력이냐?!"는 식의 대응은, 역사에 책임있는
노동자계급이라면 절대 금물. 그러한 대응에는 명백히 '의사들의 파업도 폭력으로 유
린하라'는 요구가, 따라서 파시즘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데 민주노총을 위시하며 수많은 노동자·민중운동 단체들이 태연히, 그리고 그래야 한
다는 듯이 그러한 금기를 범한 것-- 아직까지도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예컨대> 9월 5일자 보건의료산업노조의 광고문의 주요한 구호 하나도 "강자인 의사
에게는 무릅꿇고 노동자·농민 등 약자는 짓밟는 게 '국민의 정부'입니까?"임.
*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주류적 대응은 철저히 잘못된 것. -- 이
제부터라도 문제의 본질이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 그 사회화만
이 문제의 현실적·근본적 해결의 길임을 명백히 해나가야!
** 예컨대, 보건의료산업노조의 광고에서처럼 (현재의 보건의료체계 및 보험체계의 근간
을 유지한 채) "정부는 '국민의 추가부담 없는 의약분업 실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는 요구는, 이른바 '의약분업'이 직접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사실은 바로
그것을 정부나 보험공단이 노렸던, 환자의 부담증대를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
따라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일 뿐.
** 마찬가지로 그 광고에서 요구하는 보험혜택 확대, 공공의료의 확충 및 공공성 강화,
50% 재정 지원 법제화, 등등의 주장도 현재의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의 틀을 그대
로 유지하는 것으로서, 결국 파탄이 불가피.
** 결국 이러한 주장은 극히 불철저하고 민중주의적인 것으로서, 오로지 문제의 핵심 본
질을 은폐·왜곡하는 데에만 기여할 뿐. --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이 그러한 '대안'을
선호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
7. 보건의료체계의 사회화와 관련하여
* '당장의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 있음. -- 물론 당장의 현실성이 있을 수는 없음. 그러나
거기에 비춰보아야 우선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과, 지향해야 할 방향·침로가 명
확해짐. -- 일반적으로 '사회화' 주장에 대해서 '현실성' 여부를 말하지만, 사실은 모든 '대
안'이 당장의 현실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고 형성해가는 것임,
* 사회주의적 노선에 대한 일반적 악선전·왜곡선전에 의해서 의사사회 내부에 보건의료체
계의 사회화 혹은 사회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이해는 극도로 왜곡되어 있고, 일반적
으로 악의적으로 이해되고 있음. -- 심지어 현재의 왜곡된, 엉터리 의료보험제조차 '사회
주의적'인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사회주의적 보건의료체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을 정도임. -- 따라서 보건의료체계의 사회화를 그 풍부한 내용과 함께 강하게 일상적
으로 제기할 필요는 더욱 절실함.
* 당연히 이러한 문제제기는 현재의 의사사회의 분위기에서는 필시 '배격'되고 성토되겠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제기함으로써만 한 구석에서 그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차
츰 확대되어 갈 것이고, 특히 앞으로 전개될 '의사층의 분해',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위기의
심화는 그에 대한 관심과 지향을 확대시킬 것임. 즉, 그를 통해서만 앞으로 전개될 '의사
층의 분해'는 자신들이 현재 선호하는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가 결코 자신들을 구제하
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변혁을 통해서, 잠정적으로
도 조세제도 등 주요 경제제도의 변혁을 통해서만, 그리고 노동자·민중과 함께 함으로써
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임.
** '의사층의 분해'는 의사사회가 '노동자·민중적으로', 아니면 '파시즘적으로' 정치세력
화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할 것임.
** 보건의료체계의 사회화 주장은 또한 의사사회의 정치·사회의식의 형성·발전에만 중
요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노동자·민중 일반의 그것에도 중요함. -- 이러한 문제제기
가 없다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부르주아적 허위의식의 포로가 될 것이고,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서만 방향을 찾을 것임.
* 사회화된 보건의료체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는 앞으로 연구와 투쟁을
통해서 형성해 나아가야 할 것임. 다만 확실한 것은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기 때문에
누구나 '돈이 없어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는, 그러한 의료체계여야 할 것
임.
*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이 의사들의 파업에 올바르게 대응하는 대신에 그것을 '집단이기주
의'라고 매도하면서 사실상 정부로 하여금 그것을 폭력으로 억압할 것을 요구한 영향은
의사들의 파업과 요구에도 사실상 투영되고 있음.
** 예컨대, 보건의료산업노조의 광고는 이렇게 규탄하고 있음. 즉,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
회에는 노동자·농민·시민대표는 단 한명도 없고 22명 위원중 10명이 의사[인]…데도
폐업주도 의사들은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 과반수 이상 참가와 … 각종위원회에 의
사를 50% 포함시키라고 합니다. / 이는 … 이기주의와 권위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
습니다." 운운. -- 사방을 둘러봐도 적의에 찬 시선 뿐 고립무원으로 자신들밖에 믿을
데가 없을 때 그렇게 자구책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 의사들의 투쟁은 사실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고, 이는 부르
주아 언론도 인정하고 있는 바인데, 처방은 어느 것이나 현 체계를 유지하는 속에서
미봉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심지어 '의사선택권'·'진료선택권'이라는 부르주
아적 '선택권'을 내세우면서 사보험 등 신자유주의적인 처방도 난무.
** 일부에서 "의료계 내부에 만연해 있는 온갖 비리와 의사사회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
을 개혁하려는 내부 자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보건의료산업노조 광고)라는 식으
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전혀 엉뚱한 데로 끌고 가서 문제의 본질·
핵심을 흐리는 것.
** 의사들의 '전문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비판에 부분적으로 타당성이 있으나,
*** 그 전문가주의 자체가, 앞서 말한 대로, 의사들의 고립무원으로 강화되고 있고,
*** 예컨대 (그 기구 자체에 대한 의사들이 반대를 잠시 논외로 한다면) 이른바 '상용
처방약을 선정하는' '지역협력위원회'에 노동자·농민·시민 등의 대표를 배제하고, 의
사와 약사만이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판의 여지가 없는 정당한 주장. -- 일반적이
고 정책적인 사항을 논의·결정하는 기구에 '전문가만의' 참가를 주장한다면 비판받아
야 할 '전문가주의'지만, 전문적 식견을 요구하는 사항을 논의·결정하는 기구에 비전
문가의 참가를 요구하는 것도 명백히 비판받아야 할 민중주의이자 대중에 대한 아부.
** 혹시 의사들을 배제하고도 보건의료정책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좌
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