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노동자들] ① “밥은 언제 먹어요?” 쉴틈 없는 중노동
패스트 푸드점'McJob' 미성년 노동자들
패스트푸드점 ‘알바’(아르바이트 직원의 줄임말)는
“밥은 언제 먹어요?”이런 말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오후 2시30분.
매니저(상급 정규직원) 1명과 아르바이트 직원 4명(고교생 1명 포함) 등
5명이 100명 가량 손님을 치렀지만 점심을 먹으라는 지시가 없었다.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경험 많은 고3 직원 C(18)군의 충고 그대로였다. 매니저는
“교대할 사람이 와야”라고 했다.
“언제 오느냐”고 묻자
“3, 4시쯤 돼야 오겠지?”라고 답했다.
“애들(미성년 직원)은 지시가 없으면 안 먹는 날도 있어요.
아니면 일 끝나고(오후 4시 이후) 먹거나.”
C군의 설명이었다.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인 이 점포는 점장을 포함한 전체 25명 직원 중
정규직원 3명을 제외한 22명이 시급(時給)을 받는 아르바이트 직원.
그 중 17명(전체 직원의 68%)이 미성년 고교생이다.
우리는 점장이나 매니저 허락이 있어야
재활용품·비품을 쌓아둔 창고에서 15분 동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5분)을 빼면 실제론 10분.
식사 도중 “언니, 시간 지났어요”란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들은 “몇 번 체하고 나니 빨라졌다”고 경험담을 얘기했다.
근로기준법은 휴식시간을 30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은 오전 9시30분 시작됐다.
하지만 급료 산정이 시작되는 공식 출근 시각은 오전 10시.
패스트푸드점에선 늦어도 15분 전(9시45분)까지 나오는 것이 불문율이다.
식사시간 대신 출근 전에 15분 더 일하라는 뜻이리라.
라운드(또는 플로어:손님 식사 공간)를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로 닦고,
160개에 달하는 의자를 닦고 화장실 정리를 끝내는 시각은 오전 11시30분.
점장의 지시로 가로 50㎝ 정도의 음식을 담은 상자 2개를 C군과 나눠 들고
인근 학교 정문까지 걸어서 배달을 갔다.
돌아오자 이번엔 매니저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음식 한 개가 빠졌으니 3학년 11반 교실까지 배달하라”는 것이다.
다시 전등갓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컵과 컵뚜껑, 빙수 컵, 커피 컵, 음식물 박스, 샐러드통 등을
분리수거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을 닦자 곧장
“언니 뭐하는 거예요?”란 질책이 날아왔다.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다.
내가 청소만 하듯 다른 직원도 일이 정해져 있다.
고2 J(17)양은 종일 계산대에 서서 주문을 받는다.
고3 C군은 종일 치킨을 튀기거나 비스켓을 만든다.
J양은 “내내 서 있으니 다리가 붓고 너무 아파서,
처음엔 자다가 쥐가 나서 잠을 깬 적도 있다”고 말했다.
J양이 종일 반복하는 말은 이렇다.
“손님 주문하신 내용은 ○○입니다. 맞으세요?…
제휴카드나 할인카드 있으세요?…
드시고 가실거예요?… 가지고 가시면 컵 보증금 100원을 더 내셔야 합니다.”
‘시작조’(組·낮 근무자) 일을 마치는 시각은 오후 4시.
교대자가 나오지 않을 때는 이런 상태로 밤 12시까지 일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의 실태를 좀더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치킨점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오후 6시에
‘마감조’(組·밤 근무자) 근무가 시작되는 햄버거 체인점에 가서 일했다.
근무시간은 밤 12시까지 6시간.
15분 일찍 출근해야 하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곳 역시 전체 직원 16명(점장 2명, 매니저 1명) 중
13명이 아르바이트 직원.
이 중 9명(전체직원의 56.3%)이 미성년 고교생이다.
식사시간은 역시 15분.
햄버거(또는 치킨), 디저트, 음료수 하나씩 선택을 하면 무료로 지급됐다.
다만 가장 비싼 햄버거(5000원)는 선택 금지다.
종종 ‘오늘 급식은 ○○○’란 메모가 계산대 위에 붙으면
그나마 선택권도 사라졌다.
안 팔려 유통기한이 다 돼가는 품목이
아르바이트 직원의 식사로 제공되는 것이다.
처음엔 햄버거 종류를 바꾸어가며 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일주일도 안돼 속이 안좋았다. 고2 P(17)군에게 물었다.
“햄버거나 치킨 말고 딴 건 못먹니? 느끼한데….”
답은 이랬다.
“그럼 굶어야죠.”
마감조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았다.
밤 9시부터 반복되는 ‘다운(down) 작업(하루 일을 정리하는 것)’ 때문.
튀김 식기를 닦고 정리하는 일에서 설거지, 쓰레기통 정리, 화장실 청소….
일반 손님은 밤 11시까지,
포장을 해가는 손님은 밤 11시30분까지 받았다.
프렌치 프라이 튀김 기름에서 불순물을 걸러낼 때는
섭씨 160도가 넘는 기름이 튀었다.
고1 P(16)군의 팔뚝엔 직경 2㎝ 정도의 타원형 화상 자국이 3개 있었다.
P군은 “눈물나게 아팠지만 점장님은 ‘괜찮으냐’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며
“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얼음을 대고 있었던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곳의 고교생들은 밤 12시까지 하루 평균 5~6명씩 일했다.
‘시작조’보다 ‘마감조’에 미성년자가 많은 것은,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야(보통 오후 4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고 1학년 L(16)양은 나에게
“언니 오기 전까지 100개가 넘는 의자를 밤 12시까지 닦았어요.
몸이 피곤해서 낮엔 학교에서 잠만 자요”라고 말했다.
미성년자를 당사자 동의와 노동부 인가 없이
밤 10시 이후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고교생 동료들은
“야간 근무 동의를 요구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점포 내 출퇴근 기록계에는 이들의 근무시간이 형식상
밤 10시에 종료되는 걸로 찍혀있었다.
신은진기자 momof@chosun.com
입력 : 2004.09.15 18:31 12'
***** 청소년 실업률 15%… 식당 ‘알바’ 29% *****
청소년(15~19세) 실업률은 구조적으로 높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7월 청소년 실업률은 15%를 기록,
전체 실업률 3.5%의 4.3배에 달했다.
청소년 노동력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지른다는 뜻이며,
이는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패스트푸드산업에 고용된 미성년자 역시 같은 환경에 노출돼 있다.
노동부가 작년 5월 실시한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과거에) 경험한’ 중·고생 80만9000명 중
9.9%(약 8만명)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음식점(19.5%)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또 패스트푸드점 전체 직원의 30~40%가 중·고생 미성년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 기사에 등장하는 2개 점포의 경우,
미성년자 비율이 이보다 훨씬 높은 56%와 68%였다.
입력 : 2004.09.15 18:29 43'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