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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고객’ VIP 대접 ‘일편단심 민들레’
공짜지만 늘 흑자 비결은 ‘보이지 않는 손’
민들레국수집 |
지난해 연말 25일 인천시 화수1동 민들레국수집을 찾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참 특이한 식당입니다. 주요 고객은 노숙인과 가난한 이웃들이고 밥값은 무료입니다.
식당 주인은 서영남 베드로. 한때 가톨릭 사제가 되고자 했으나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이 땅의 가장 작은 자 곁에서 그들을 섬기기 위해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이곳에서 국수가 제공되지는 않습니다. 처음 국수를 제공했지만 ‘고객’인 노숙인들이 밥을 원해서 메뉴를 바꿨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둔 것은 세상이 밝고 따뜻해져 이곳을 찾는 가난한 분들도 모두 행복해져서 별미처럼 국수를 먹고 싶다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공짜지만 이곳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진수성찬입니다. 김과 계란프라이는 기본이고 밑반찬만 예닐곱 가지가 됩니다. 이날 식탁에는 돼지고기 볶음이 올랐습니다. 하루에 150~300명이 이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서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주방쪽 벽에는 화이트보드에 VIP손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이곳을 자주 찾는 이들입니다. 서씨는 이 분들의 이름은 물론 살아온 내력과 식성까지 꿰고 있습니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분들이 슬쩍슬쩍…밑반찬만 예닐곱 가지
돈 한 푼 받지 않지만 민들레국수집은 늘 흑자입니다. 서씨가 부자여서도 아닙니다. 서씨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세 가지를 않겠다는 ‘3무 정책’을 세웠습니다. 후원자 조직을 두지 않고, 정부 지원을 받지 않으며, 재정 마련을 위해 여러 재단이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공모사업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들레국수집의 가장 중요한 경영노하우는 믿음인 셈입니다.
서씨의 믿음은 하느님으로부터 크게 응답받고 있었습니다. 이날도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분들이 식당을 찾아 식재료를 주고 갔습니다. 12시쯤 한 아주머니가 큰 비닐봉투 두 개에 닭발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 1시간쯤 뒤에 또 다른 아주머니가 딸, 사위, 손주와 함께 찾아와 쌀, 라면, 부식거리 등을 주고 갔습니다. 집배원 한 분은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체험하고자 월요일 점심을 거르고 매주 계란 2판을 사서 식당에 주고 갑니다. 돈이 생길 때마다 이곳으로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수백 명의 가난한 이웃에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지만 민들레국수집은 늘 풍족합니다. 차고 넘칩니다. 남는 쌀은 식당이 자리한 동네의 가난한 이웃 50명을 도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남아 근처의 복지시설에도 조금씩 지원을 합니다.
자원봉사자도 수없이 많습니다. 크리스마스임에도 식당은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로 붐볐습니다. 시외버스 운전기사 한 분은 다달이 3만원씩 식당에 보내는 외에 틈날 때면 이곳을 찾아 설거지를 합니다. 만난지 100일을 기념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젊은 커플도 있습니다. 매일 두 세 명에서 많게는 1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10번, 100번도 다시 받아들여 주며 자립 뒷바라지
민들레국수집 |
서영남씨는 노숙인들의 자립에도 힘을 씁니다. “아주 쬐끔만 도와주면 혼자 설 수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서씨는 노숙인이 자립 의지를 보이면 방을 얻어 보통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민들레국수집의 첫 손님이었던 박대성(52)씨입니다. 박씨는 지금 식당 매니저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자리가 비면 식당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부릅니다. 박씨는 몇 년 전만해도 술에 빠져 지내던 분입니다. 서씨의 안내로 10번 정도 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유혹에 빠졌고 술을 못 먹을 정도로 몸이 망가지면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3년 전 마음을 잡고 정수장 청소를 하며 일하다 다시 술에 빠져 노숙 생활을 했던 그가 “이곳에서 봉사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10년 노숙 경험의 베테랑 노숙인 김선호씨는 2년 전부터 식당 부근에서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을 하지는 않고 식당 주변을 맴돌기만 합니다. 서씨는 그런 김씨도 박씨처럼 언젠가 홀로 설 날이 있으리라 믿고 그저 기도하고 있습니다.
윤기성(28)씨는 식당을 출입한 지 4년 만에 도움을 요청해 온 사람입니다. 와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병역을 기피하고 도망중인 사람라고 해 자수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중졸의 학력을 가져 군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윤씨는 지금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활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면 서영남씨의 소개로 고양시 일산구의 한 물류회사에 취직을 할 계획입니다. 양성욱(38)씨는 방을 얻어줬으나 방값을 들고 3번이나 도망을 갔던 사람입니다. 게임중독에 빠져 8년 넘게 노숙을 했습니다. 서영남씨는 “10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다시 받아줄 수 있습니다. 어려울 게 무엇입니까”라고 합니다.
‘부전여전’ 딸 아롱이도 ‘돈 안되는 일’에 특별한 ‘재능’
민들레국수집 |
노숙부자도 있었습니다. 13살짜리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노숙을 하던 부자에게 방을 구해주자 아들은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를 쳐서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해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9명을 포함해 20명이 집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3명은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곳에는 노숙 강아지도 한 마리 있습니다. 이름은 민들레입니다. 피부병에 걸려 털이 다 빠졌는데 이곳에 와서 돌봄을 받으며 거듭나 예쁘고 귀여운 본래모습을 찾았습니다.
서씨의 식당에는 딸 아롱(24)이가 큰 도움이 됩니다. 아버지를 본받아 자신도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합니다. 서씨는 딸이 교도소 사역에 특히 ‘재능’이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아롱이는 재소자들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에 모두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연다고 합니다. 가족을 위한 돈벌이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아버지에 대해 아롱이는 “1명만 돈을 벌면 되지요”라고 합니다. 서씨의 부인은 부근 지하상가에서 옷장사를 해서 가계를 꾸려 나가고 식당을 돕습니다.
<한겨레> 소개 뒤 <인간극장> 방송…‘큰 도움’ 제안 봇물 모두 거절
기자의 민들레국수집 취재는 두 번째입니다. 처음 <한겨레>에서 이곳을 소개한 뒤 민들레국수집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큰 일은 이곳이 KBS의 <인간극장>에 5부작으로 소개된 것입니다.
“방송사에서 취재한다고 했을 때 특별히 알릴 게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나중에는 PD가 오시더니 다른 아이템이 펑크가 났다고 내일부터 찍지 않으면 큰일나게 됐다고 하셔서 그럼 도와드린다는 생각에 촬영을 했습니다.”
방송 뒤의 변화가 궁금했습니다. 서씨는 “수도원을 나오면서 버린 것이 명예, 권력, 돈입니다. 방송에 한 번 나갔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방송 뒤 민들레국수집에 여러 가지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큰 집을 사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처럼 민들레국수집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습니다. 식당 공간이 조금 늘어 예전에는 한 번에 4~5명밖에 앉지 못했던 데서 한꺼번에 10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게 됐고 주방 한쪽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판에 적힌 VIP손님들의 이름이 두 배 가량 늘었다는 게 달라진 점이었습니다.
식당처럼 서영남씨도 여전했습니다. 식당 앞에 다소곳이 서서 오는 ‘손님’들을 웃는 낯으로 맞고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지겹지 않도록 담배를 권하며 말을 겁니다. 식당 벽에 걸린 소박한 십자가도 그대로였습니다.
서씨와 부인, 아롱이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꾸려가는 민들레국수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당입니다. 4년 동안의 ‘식당 운영’에 대한 서씨의 ‘평가’가 궁금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게 왜 행복한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권복기 한겨레 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