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물
그늘진 텃밭이 있어서 나무를 베내긴 뭣해 어찌할까 하다가 습하고 풀숲에도 잘 자라는 미나리를 심었다. 진해구 대장동 불모산 아래 도랑에서 캤다. 여긴 큰 바위에 귀한 돌나물도 있어서 뜯다가 일부는 걷어 같이 심었다. 첫해는 되나마나 반은 시들시들 죽고 마지못해 살아난다.
낙동강과 어울리는 바닷가여서 강수와 해수가 섞인 기수를 퍼 주었더니 그런 것 같다. 꽝을 만들지 않고 땅바닥에 심었다. 그 옆엔 밀양 박 시인이 보내준 참나물 씨를 묻었다. 씨앗 가게를 지나다가 곰이 먹는다는 곰치와 울릉도에서 많이 나는 술 취한 사람 같다 해서 곤드레나물 씨도 사 뿌렸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싹 틀 줄 모른다. 혹시나 하고 들여다봐도 소식이 없다. 이게 왜 이리 안 나오나. 아직 봄날 추운가 싶어 풀을 베 덮어줬다. 곰치와 곤드레나물도 돋을 생각이 없나 보다. 종자 집의 것은 봉지에 들어있은 지 오래되어 그런가. 날짜는 요즘이던데. 미나리는 비 온 뒤 옆으로 지렁이 기어가듯 뻗어나간다.
초등학교 하교 때면 지게를 지고 오전 골짝으로 우 몰려간다. 아침에 어머니가 생달 골과 쑥밭 골짝으로 오라 했기 때문이다. 나물을 한 보따리 이고 신작로를 타박타박 걸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뛰어간다. 받아 짊어지고 내달리면 ‘엎어질라 조심해래이’ 하고 뒤에서 소리친다. 저녁에 이 나물 저 잎사귀를 삶아 내면 보리밥을 넣어 쌈도 싸고 비벼 잔뜩 배불리 먹는다. 겨우내 파먹어 알곡이 달린 요즘 지천인 산나물로 때운다.
한 이파리 주며 먹으라 하는데 통 비린내가 고약하게 난다. 빈대에서 풍기는 냄새다. 아버지는 그게 향기롭다며 고추장에 찍어 든다. 산을 헤매다 허기질 때 싸간 된장에 찍어 밥 대신 먹는단다. 깊은 산속 참나무 아래에 난다. 흔하지 않고 드물게 나타난다며 귀하단다. 미나리처럼 생겨서 향긋한 냄새가 좋다는데 비위에 거슬린다.
미나릿과에 속하는 다년생 숙근초로 반디나물, 거린당이, 머내지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토종과 일본 개량종이 있는데 개량은 한 해에 여러 번 베어먹는다. 파드득나물과 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렵다. 세 잎의 가녀린 채소로 흔하면 맛이 덜할 텐데 드무니 이상한 향을 맛있다며 즐겨 먹는다.
몇 번 비를 맞고 이불처럼 덮어준 풀은 죽어 납작한 데 그사이를 비집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게 보인다. 갓 난 풀은 비슷해서 무엇일까 했는데 점점 더 벌어지는 떡잎이 참나물이다. 애태우더니 이제야 기어 나오나. 거름과 비료를 주위에 넣어주고 ‘잘 커라’ 했다. 처음이어서 그러는가 자라는 게 시답잖다.
더디기만 하다. 햇볕이 뜨겁다. 비바람을 얻어맞아서 아프단다. 온갖 핑계를 대며 더듬거리고 가물거린다. 미나리도 덩달아 쑥쑥 자라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아내는 이 엉큼한 곳에 뭐가 되겠냐며 서쪽 밭으로 오는 발길이 뜸하다. 나 혼자만 기를 쓰고 가꾸는데 이것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
좀 크더니 미나리처럼 반짝여야 할 잎이 꺼칠꺼칠하다. 가끔 뜯어서 ‘무슨 참나물이 이래’ 하며 삶아 무쳐 먹는다. 맛있는 나물을 그렇게도 몰라주나. 밀물 때 가끔 넘쳐 잠기고 태풍으로 싹쓸이 누웠다 여러 날 뒤에 일어난다. 죽겠다 싶었는데 겨우 살아난다. 심은 해는 비실거려 걷어 먹을 수 없었다.
겨울이 오자 가뭇없이 사라져 맨땅이다. 저것들이 죽었나 싶다. 일년생인가. 미나리는 여러 해 자라는 것 같은데 종적이 없다. 배추와 상추, 무, 파는 서리가 내리지 않아서인가 그대로 웅크리고 있다. 양달 진 개울가 미나리는 파릇한데 여긴 바닷가이고 그늘져서 차가운지 일찌감치 갔다.
소금물을 줘서 죽은 건 아닌지 궁금하다. 별나게 고추와 들깨, 열무는 바닷물에 약하다. 잘 크던 고추가 털썩 쓰러져 죽는다. 주렁주렁 풋고추를 안고서. 여러 번 심은 들깨는 모조리 죽었다. 토마토도 그만 주저앉았다. 산딸기 나뭇가지가 말랐다. 거기서 열매가 달리는데 저렇게 깡마르면 어쩌나.
바닷물이 썰물로 낮아지면 개천이 강물이거니 하면서 퍼줬다. 가뭄에 목말라 타들어 가니 참을 수 없었다. 소금이 섞였나 보다. 실컷 일하고 아내한테 한 소리 들어야 했다. 혀를 대보면 약간 간간한 느낌이 들어도 별 탈 없겠지 했다가 일을 그르쳤다. 열무는 잎이 타들어 가듯 하얗게 말랐다.
감나무와 복숭아, 살구나무엔 양동이로 잘 살아라 들이부었다. 다 죽고 매화나무만 한 그루 살았다. 안 되겠다 싶어 염도계를 사서 재었다. 3% 전후 바닷물인데 여긴 훨씬 못 미치는 십 분지 일이다. 그게 그리 대단한지 작물을 못 살게 할까. 거듭 주니 쌓였는가. 봄이 오니 살아나오려나 기다려진다.
소금물을 덮어쓴 돌나물이 가운데는 다 죽고 가장자리에서 파릇파릇 돋아난다. 미나리도 쫑긋쫑긋 솟구치더니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삐죽거린다. 응달에서 용케 살아났다. 뭣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참나물도 올라온다. 거름을 주고 비료도 물에 타서 뿌려줬다. 분주히 다니며 발자국 소릴 냈다.
제법 자란 미나리와 돌나물, 달래를 걷었다. 작년 그리 어설프던 게 올해는 기가 살아 팔팔하다. 윤기가 반들거리는 참나물도 한 줌 솎았다. 동쪽 밭머리의 김장 배추와 무는 청둥오리가 다 갉아먹었다. 얼금얼금 검은 그물을 쳐 두었는데도 사이사이로 뜯어먹어 그만 싹이 노랗다. 씨 받으려 했는데 되통스러운 철새로 헛일이 됐다.
데친 미나리와 상큼한 돌나물을 넣고 위에 참나물도 듬성듬성 썰어서 달래 파간장으로 섞어 비볐다. 짙게 끓인 된장까지 넣으니 맛이 일품이다. 아들이 빈대는 무슨, 왜 이리 맛있느냐며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뚝딱해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