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문태성은
1958년 개띠 강원도 영월 토박이로 연당초등, 영월중, 영월고(1회)를 모두 고향에서 마치고 동국대, 고려대 정치외교과, 고려대 정책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전공 졸업했다.
청년시절인 30여년전 시를 좋아하는 글벗들과 문학동인회 영맥[寧脈]을 창립하여 동인으로 활동한 바 있고 2001년 문학공간(최광호 시인 주간)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ROTC 19기로 전방에서 육군 포대장으로 군복무를 마치고(육군 대위) 생명보험에서 노조활동을 했으며,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14 15 16대 국회의원 입법보좌관으로 정치수업을 쌓았다.
건국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한국통일과 주변4국의 이중적 태도를 연구하여 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고, 현재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을 거쳐 평화통일시민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강원인재육성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동강문학회, 시섬 등에서 문인들과 동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노랫말로 만든 곡 겨울산(진 우 작곡, 노래), 멋진 여자(김성봉 작곡, 노래) 등이 있다.
문 태 성 제 2시집
검정고무신
책머리에
플라톤의 말처럼 영혼을 노래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모름지기 영혼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못하는 시인은 시인도 아니다.
그럼 나는 시인인가? 세칭 시인이 된지 6년이 지났다. 그러나 영혼을 부를 수 없음은 어인 일인가? 아직 시인이 덜 된 것이다. 무늬만 시인이고 진짜배기가 아니다. 얼간이다. 난 얼치기다.
시인에게도 대장간이 필요하다. 시인에게도 디딜방앗간이 필요하다. 화로와 절구에 넣고 부시고 찧어야 한다. 지금의 시대에 어딜 가야 이를 빻고 고칠까?
우리는 어디에서 났는가?
글머리를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 동리는 내게 시의 밭이다. 고향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인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자. 영혼을 찾아보자. 그리하려면 돌아가야 한다.
되돌아보자. 일면, 돌아보는 것은 바보짓이다. 되돌아보는 것은 퇴보이다. 그런데도 그 것은 곧 진전이다. 한편, 구린 추억이다. 추억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미래를 붙든다. 갈등이자 모순이다. 그러나 자꾸 시선이 고향에 멈추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마치 바람난 사춘기의 청소년처럼 욕망을 따라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온지 어언 30년인데도 그 시절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포근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리고 어디 가야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꼬깃꼬깃 할머니 쌈짓돈처럼 소중하게 모아두었던 글을 펼쳐본다. 한 권의 책이다.
모든 이들이 고향으로 쉽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고향은 생각만 하여도 냄새가 폴폴 솟아난다. 고향이야기만 들어도 얼른 귀가 열린다. 그 고향은 분명 시의 고향이자 우리들의 안식처다.
누군가는 노래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간직할 것이다. 어느 시인인가는 읊을 것이다. 시의 고향 아닌 곳 어디 있으랴. 그렇다. 산이며, 들이 다 시의 고향이다.
요사이 흔하지 않은 소재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다. 마치 고물장수처럼 마루밑도 뒤지고, 광도 열어 보고, 헛간도 기웃거리고, 정지간도 둘러보고, 마실도 가 보았다. 그 더미에서 이 시집은 탄생하였다.
이 시집 한 권 때문에 우리네 삶이,
메마른 우리네 삶이 더 소담스럽고 정겨울 수가 있다면,
고향을 두고 온 이들에게 벗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다시 어릴 적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로 돌아갈 수가 있다면,
그리고 사라져가는 풍습들이 멈출 수 있다면,
점차 골동품으로 변하는 고물(古物)들이 소장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조용히 눈 감으면 되살아나는 고향,
딱딱해 보이는 시제(詩題)도 구부리면 굽혀지는 곳,
아무리 먼 곳의 시상(詩想)도 부르면 달려오는 곳,
그 글밭에 푹 파묻혀 하늘 향해 눕고 싶다.
2007년 뜨거운 여름을 기다리며
저자 문 태 성
문 태 성 제 2시집
검·정·고·무·신
차례
제1부 : 산에서 난 시
겨울
꽃상여
낙엽이 주는 꿈
겨울 나목
산촌(山村)의 봄 소리
새싹(new leaves)
공동무지
숲
새 봄의 향연
장작 낭구
동행(同行) 김삿갓
김삿갓 계곡
나뭇꾼
겨울산
새터 고라데이
오솔길
여전히
장대비는 내리고
도랑물 소리가
콸콸 들리면
돌 구르는 소리와 함께
꿈도 떠내려갔었다.
장마철
비가 개이기를 기다리며
다가올 세상을 물끄레하게
비안개 보이듯
찾아보았었지.
돌담
어디에서
뭣하러 모였소?
옹기종기 모인 솜씨
갖은 전설에
빚어진 군상들이
밀담을 나눈다.
담장 너머
이랑이 긴
보리밭 가장자리에도
들꽃이 모여
정담(情談)을 나누고 있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을
훈풍이 나르네.
눈길 주지 마오
스치는 바람 앞에서도
훼방을 막아서는
돌담벼락.
술래잡기
달빛에
그림자도 숨던 밤
무궁화 꽃이 필 때면.
밤이 이슥해지고
찬 이슬
내려오도록
우리는 별을 찾는 애들이였었지.
은하수 별들이
쭈욱 쏘다니다가도
유성을 떨어뜨리면
내가 먼저 보았다고 맡았었지.
지금은
동심(童心) 감추니
모든 이가 숨은 이들 뿐
저 별은 쏟아지는데
술래가 그립다.
타작마당
와롱 와롱~
한 단은 굴리면서
또 한단은 돌리면서
공중을 나는 듯이
천당을 밟는 듯이.
흐르는 땀방울
흩어진 가을 햇살
주워 담고
서녘 노을길 따라
불러오던 포만감.
논두렁 밭두렁
개울 건너
누나는 맨날
꽃피는 봄을
기다렸었지.
밭고랑 사이로
다가오는 봄을
손꼽아 기다렸었지.
논두렁 길 따라
가다보면 만나는
눈 먼 아지랑이
밭두렁에 드러누워
오갈 줄 몰랐었지.
봄은
님을 오래도록 기다리다
또 한해를 보내며
아쉬워했었지.
장독대
산들바람이 모여
언덕을 오르는 때에는
가슴도 열렸어라.
천둥 번개 때려도
쨍한 햇볕에도
뜨겁던 열기를 담아냈어라.
어느 날
하늘에서 문득 낙엽이 내려와
추억을 항아리에 담궜어라.
함박눈 머리에 얹고서
매서운 칼바람에도
장맛은 폴폴 솟구쳤어라.
윷놀이
정월 대보름날
만월(滿月) 볼라면
윷을 던져야 혀.
우뜩하냐구?
한 웅큼 움케 쥐고서는
앉졌다가 응대이를 높이 들민서
윷가락을 높이 던져삐래.
하늘에서 떨어지는
복을 잡으민 고만이여
저 말을 잡아뿌러
이 말은 업었뿌러
그래가지구선 요 말을 앞질렀뿌러.
새해 신수가 뭐 별기여?
말 달리다 잽히면
또 나서면 되제
낙판(落板)도 있지만
도서부터 모까정 다 있능기여
잘 골라 잡으면
복(福)은 워데서나 나오는기여.
널뛰기
너른 무대 위를
너도 뛰고
나도 뛰고
함께 뛴다.
오르면 내려야 하고
내리면 오르는 것
세게 누르면 세게 오르고
작게 누르면 작게 오르는 것.
흔들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균형 잡을 것.
구름처럼 솟았다가
신선처럼 밟아라
곧 떠나야 할
있던 그 좁은 자리.
회다지
한 번가는 인생인데
어디 한 번 놀아보세
에호우 달구야.
회다지고 또 다지면
가던 길손 오실건가
에호오오 달구야.
혼을 불러 놀자하니
혼이 먼저 히죽 웃네
에호우 달구야.
살았을 적 가진 욕심
죽고 나니 후회 되네
어이영차 다례.
고운님들 남겨두고
염체 없이 먼저 가네
어이영차 다례.
알콩달콩 오손 도손
사이좋게 살다 오게
어이영차 다례.
호박꽃
여름 장마 다가와
간지럽혀도 헤벌레.
벌들이 들락거려도
나비가 호젓하게 앉아도
웃는 소박데기.
뜨거운 태양빛이 쪼이면
너무 부끄러워.
호박꽃도 꽃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무이 자궁 같은 꽃.
빨래터
마을 한가운데 난 냇가
그 곳에는 숨소리도 작았어라.
빨래방망이 내리칠 때도
그 소리는 얇았어라.
바람이 지나다 들려도
반길 줄도 몰랐어라.
마주 본 얼굴들은
고달픈 삶도 잊었어라.
하루해가 저물녘에야
잔치마당은 파했어라.
바가지
박바가지를 찬찬히 들여다 봐
겉은 번지르해도
속은 주름에 얽히고 섥힌 얼굴
꼭 사람 닮았쟎아?
맞어!
잘난 박, 못생긴 박,
쪼그랑박, 된박 팔자 만났으나
내 던지지 못하고
타령만 하다보면
세월 다 가는거지.
똥바가지 쓰고서
히죽 웃는 이들과는 이방인이지
채 뒤집어쓰고
쪽바가지 들고서
소금 동냥하던 때
빈 바가지 미웠어도
원망도 못했지.
잘 못 다루다
덩그렁 깨졌어도
다시 꿰메 썼는데
지금 그 박
고향집 지붕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까?
문태성 제 2시집
검정고무신
제3부 : 삶에서 묻어난 시
어머니· 1
“어머니!”
나지막하게 불러봅니다
어머니는 어디에 계시지요?
진지는 때맞춰 잘 드셔요?
잠자리는 편안하시구요?
건강은 좋으셔요?
친구들도 많으셔요?
굽이도는 서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각한치 입구 강 언덕 칠공구 마을에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
머리네 이고 계시던
물동이를 쳐다보던 기억이 전부인
어머니!
그 때가 이별일 줄 알았더라면
얼굴을 잘 익혀 둘걸 그랬지요?
천생연분 인연은 왜 그리 짧던가요?
딱 한 장 남은 사진 속
화분 옆에 앉으신 온화한 어머니는
분명 저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어릴 적 많이 울던가요?
아니면 칭얼대던가요?
젖 달라고 어머니 가슴팍에 파고들던가요?
괜히 보채던가요?
40 여 년 전
세 살 때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꼭 뵈어야 해요
그리운 어머니!
어디가야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언제 다시 뵈올 수 있을까요?
바람이 동무인 세월
휑하니 가는 부러운 나그네!
어이 여보시게 과인
어딜 바삐 가시는고?
으잉?
바람이 동무요?
같이 가는 까닭이라도 있는가 보슈
어디서 오라며 누가 반깁디까?
자고 나면 바뀐다는 세상에
여로가 긴 것 뭐 없습디까?
있죠
진담이요?
그래 오늘밤은 여기서
달 빛 받으며 홑적삼하고
같이 툇마루에 누웁시다 그려.
하하!
세상은 너릅디다
그러나 누구도 승리를 훔치지는 못합니다
거참 누가 보는가요?
하루 종일 애만 썼지요
그랬군요 그런 걸 쯧쯧.
허나 괜찮소
날 이기는 이는 없습디다
그랬구려
이 다음에 채비를 갖추어 행차하면
구경꺼리 한 꾸러미 챙겨들고
웃음보따리도 둥쳐 메고
쉬엄쉬엄 가시구려
내도 따라가 볼라요
그냥 갔으면
못 볼 뻔 했구려
그런데..., 지금이 꿈이요?
사랑
까까머리 중3
열 다섯 살 때
보고 싶은 여학생이 있었지
정말이었어
콩닥거리는 가슴에서는
사랑이 자라고 있었어
니가 미치도록 좋은데...
열 아홉 살 적
대학생 청년이 되었을 때
사랑은 눈을 떴어
길에서 마주치는 이성은
사랑의 대상이었어
만나고 싶어 죽겠었어
푹 사랑에 빠지고 싶었거든
내 손 좀 잡아줄래?
어제 만났는데
오늘 또 보고 싶어서
타오른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우린 스물 아홉, 스물 여섯에
사랑을 맺었어
한라산 신혼여행에서
겨울꽃 한 송이 담아왔지
달콤하였지
꿀맛이었어
사람이 다시 나누지 못한다는
둘의 결합
그러나 나누면 커질 사랑!
당신만을 사랑하다
불혹을 넘긴 세월
사랑의 씨앗들이 잘 자라나
다시 사랑을 이어받기 시작하네
열병에 빠져 든
중 2 작은 딸에게서
사랑을 다시 배우기 시작하네
사랑이 식지 않도록
사랑을 달구어야지
그래, 사랑해 당신
우린 스무살이야.
어머니. 2
달빛도 없던
동짓달 캄캄한 그믐밤
성탄절을 꼭 나흘 앞두고,
어머니는 싸늘한 주검이 되셨습니다.
도대체 세상살이는 왜 이런가요?
어머니!
저희 자식들의 탓입니다
저희들의 불효는
용서를 아무리 구해도
다시 씻을 수 없어요.
아무것도 가르곤침*이 없고,
욕심도 없고
악의도 없이
善(선)하셨던 어머니
마냥 순박하셨던 어무이!
애미 없는 놈 저를
사십 년이나 돌보아 주셨던
어머니!
너무 힘드셨죠?
올해 초 설 명절 뒤
쓰러지셨을 때부터,
더욱 고달프고 힘들게 사셨죠?
장례식 날
아침나절 하늘도 울었습니다
슬픈 빗방울이 눈꽃송이로 바뀌더니,
하관을 할 때는
포근함을 날라다 준
따스한 햇살이
일부러 장지까지 와 주었지요?
고마우신 어머니!
무거운 짐을 벗으셔요
고달픈 짐을 내려 놓으셔요
이제 그만 쉬셔요
평온을 가지세요
새 세상에서는 좋은 꿈을 꾸셔요.
(2000. 12. 24)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가르곤침 : 성가심의 사투리.
아버지 팔벼게
네살은 넘었을까?
하늘에서 유리비가 내리고
천둥치던 여름날 밤
강가가 내려다보이던
팔괴리집 툇마루에서
아버지는 팔벼개로
아들을 누이고는
천장을 올려다보셨다.
아버진 아무 말도 안하셨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하신 말씀이 있었을 터인데
너무 어렸을 적이어서
기억해 내질 못하겠다
'에미 없는 눔, 불쌍한 눔
얼마나 힘든 세상살이가 닥칠는지 몰라
아들아 제발 잘 헤쳐가 다고'
아버지는 꼭 안아주셨다
번갯불이 번뜩이는 밤에
두려움이 아버지 품으로 같이 숨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정담이 밤을 감쌌다.
겨울이 먼 그 밤에
우리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때 이르게 들려오던 문풍지 소리
지금도 산을 넘어 다가온다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이 그립다
아버지 되고 보니
더 그리운 아버지.
보릿고개
그 때는 몰랐었네
지나보니 버릿*고개
들어본지 오래되었어라.
누렇게 여름 달구던 황금빛 보리밭
그 보릿대궁으로 만들던 여치집
여름방학 숙제는 보리밭 가에서
끝내줬었지.
맨날** 먹어나 보았는가?
박 바가지 둘러 앉아
큰 숫갈 뭉청*** 퍼서
한 입에 구겨 넣던 깡보리밥
쌀 몇알 온데 간데 모르고
맛은 별로 없었지만
방귀는 지독했어라.
배고파 보았는가?
허기진 배
산나물에 고추장
차가운 보리쌀알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어도
감자를 위안 삼아
물 한 사발 들이키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라.
어릴 적이나
풍요로운 지금 이 시대나
보리밥이 귀하다
우리 어머니
솥단지에서 부글부글 끓이시어
모정(母情)을 담아내던 그 맛
어딜 가야 맛볼까나?
(강원도 사투리)
*버리 : 보리
**맨날 : 매일
***뭉청 : 가득
순이(順伊)
뻐꾸기가 부르는 봄 따라
열 다섯 순이,
댕기머리 나풀거리면
내 영혼도 따라 나섰지.
유월,
따스한 빛이 부서져 내릴 때
달아오른 앵두처럼
순이는 이뻤어.
천둥치던 여름,
수수밭의 시샘도
옥수수 대궁사이로 떨구던 빗줄기도
가름막이는 못 되었었지.
뽀얀 얼굴,
살포시 보조개
미소 짓는 날에는
하늘의 별들이 다 내려와
안기는 것이었지
콩닥거리던 가슴이 멈추었었지.
행복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기쁘게 노래하자
그 것이 행복
이 것이 인생.
꼭 성공을 해야만
성공한 인생인가?
승리를 해야만 행복인가?
행복은 내가 만들고
남이 갖는 것이다.
인생은 행복을 몰고 가는 것이다.
황진이 치마
정말
황진이는
이뻤을까?
황진이는
언제나 웃었을까?
황진이는
긴 치맛자락을
어떻게 말았을까?
황진이는
노랫가락을
우트케 넘겼을까?
황진이는
불타는 살을
어드렇게 섞었을까?
구름과 달과 인생
구름 타고 왔소이다
인생길
구름타고 다니다가
그름처럼 갈래요
구름 나그네.
달도 함께 왔소이다
동행길
달처럼 다니다가
달처럼 비출래요
달 빛 나그네.
구름 몰고 떠다니다
걷으면 달
닫으면 해
쉬어가는 인생
그래도 가는 인생길.
마실
하루해 넘기고
보따리도 웁시
마실을 간다.
누렁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나선다.
우떤 날은
달빛에 재도 넘고
도랑도 건네보지만
무섭지가 않다.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
인기 많았지
만나며 사는 인생
이제나 그제나
있어야 할 마실.
까까머리
들이대라
아무렇게나 길을 낸다.
빡빡 밀어라
뚝 뚝 떨어지는
머리털은
연륜을 쌓는다.
인물났네
제멋대로 생긴 몰골
댕기머리 소녀가
잡아 끌을라.
까까머리에 얹어보아라
고사리 손
더듬는 머리카락
움켜잡은 건 꿈.
바지 치마 저고리
애시당초
색(色)은 필요 없었어라.
명주 비단이 아니어도
때깔은 빛났어라.
광목으로 지은
흰바지 치마 저고리에
투박한 실오라기
이어진 사이마다
숨결은 정다웠어라.
백의민족(白衣民族)이었기에
심성(心性)도 하얳어라
골 마다 모인
순전(純全)한 토종들이
한반도를 맑게
물 들였어라.
털양말
어릴 적
어무이가 실을 모아
짜주신 털양말.
자세히 보면
어무이가 보인다.
꼭 신지 안아도
사랑이 디뎌진다.
털 실오라기 하나마다
묻은 한없는 숨결.
따뜻함
그리고 포근함.
촌티
자슥아야
대가리를 낮춰라
신작로 내뿔으게*.
아야앗!
살살 좀 밀어줘요
기계가 찝어요
아프걸랑요
민도**는 안해줘요?
뚝뚝
떨어지는 머리털에
같이 묻혀진 반항
못 버린 촌티.
만져 보니
밤톨 민둥산
허전한 마음을
맨손으로 달랬었지
그래 내보다
잘난 시키*** 나와 봐!
(강원도 사투리)
*내뿔으게 : 내버리게
**민도 : 면도
***시키 : 새끼
그리움
그리움!
그랬던 적이 있었었습니다
지금은 식었나 봅니다
그래도 가끔
그 열정이 생각납니다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동행할 것 같습니다.
풋사랑
보름달 닮은 아랫마을 점순이
늦가을 서리를 맞은 뒤부터
눈 내리는 밤을 쫒아 다녔지.
제 딴에는 아직도 이른 새봄이
미리 달려와 저를 껴안아 줄거라며 감추인 가슴을 콩닥거렸었지.
지난 여름밤, 윗마을 삼돌이가 작대기로 휘둘러 따 준 풋밤맛은
쌉쓰름 하기도 하고, 달짝찌근 하기도 했었지.
무심코 잡힌 손목, 이끌리어 떠나고 싶어했다만
빼면 뺄수록 빠져드는 사랑, 지금은 익었을까?
멧돌
뭐든지 돌려다오
뭐든지 넣어다오
손잽이를 바로 잡고
느긋하게 공들여 돌려 보세
슬슬 이어차 어영차.
빙글 빙그르르르
돌리고 도는 순간
영욕들이 굴러 간다
이 것이 해탈이다
욕망을 토해낸다.
꽁당보리밥
굵은 보리쌀 알
왜 못 생기기도 하쟎어
푹 퍼질 때까지 삶아야 하므로
꼬들밥 하기도 힘들었어.
아무리 먹어 봐도
금방 헛기가 느껴졌어
함지박에 퍼 담아서
입안에 오물대다
넘긴 보리알들은
허기진 배를 쓸어내렸지.
겨울나절 점심 때
차가운 얼음덩이 한술을 뜨면서도
왜 우리는
보리밥만 먹어야하냐고
물어 볼 필요조차 없었거든.
무시로 나오는 방귀?
나만이 아니었어
쌀밥은 제삿날 음식과 어른 것
꽁당보리밥은 애들밥인 줄 알았지.
다시 못 넘길 것 같은
그 때 그 시절
울퉁불퉁 꽁당보리밥.
부뚜막
솥단지 걸고 살림 차렸네
양식이라곤 보릿쌀 한 됫박, 감자 한 양재기
식구들이 많으니 죽이라도 쑤어야 할 판이네.
새댁은 행주치마 두르고 싸릿가지에 불을 지펴본다.
엄동설한에
얼어붙은 양동이 얼음물을 깨어 솥을 씻어내니
문지방을 넘어 드는 칼바람에 손이 시리다.
이 그릇 저 그릇 덜그럭 거리며 만져보지만
빈 그릇 소리에 마음도 춥다.
어느새 따듯해진 부뚜막에 손을 얹으니
떠나 온 친정집 어머니 손이 그리워진다.
마중
초등학교 때
불어난 도랑물을
업어 건네주시던 아버지
읍내로 중학교에 간 아들이
오지 않으면 밤이 맞도록
내다보시던 아버지
서울로 공부 간 아들
밤 기차 타고 내릴 때까지
먼 길을 오시어
기차역을 서성대시던 아버지
군대 간 아들
휴가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아버지
지금 다시없는
아버지의 마중.
대청마루
뙤약볕 따라
쫒기며 옮기던 낮잠을
실바람이 깨웠었다.
처마 밑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내 별을 찾았었다
댓돌 위에 놓여진
신발들이 말을 걸었었다
단아한 마루가 깔아 준
허공을 향해 찾아보던
소년의 꿈동산.
문태성 제 2시집
검정고무신
제4부 : 꼬깃꼬깃 꼬불치는 시
화롯불
하얀 겨울
백설이 연달아 내리던 저울겐*
무져* 놓은 낭기* 떨어지면
뒷산 솔버댕이*라도 잡아야했다.
아궁지에 굼불 지필 때
청솔가지 오들 떨며
안 타려는 낭구*와
치내부는 굴뚝 바람에
부지깨이*는 나와 함께
연기에 매워했었다.
무진 애*를 써서 불씨를 붙이고
억지로 얼르고 말려가며
낭구등걸*을 태우고 남긴
부삽으로 담아 낸 화롯불.
방구들에 그 불 껴 앉고
둘러앉은 가족들은
문지방 너머에서 분
저울 바람에 떨리던 문풍지 소리가
무신* 소리냐 했었다.
*(강원도 사투리)
저울겐 : 겨울엔
무져 놓은 : 미리 준비하여 쌓아 둔
낭기: 나무가
솔버댕이 : 소나무를 밑둥까지 통채로 자르는 것
낭구: 나무
부지깨이 : 부지깽이
무진 애 : 많은 애
낭구등걸 : 두꺼운 토막 나무
무신 : 무슨
비비대며 : 비벼대며
었다 : 어디다
부젓갈 ; 불을 다루는 긴 젓가락
디딜방앗간
깻가루, 콩가루 냄새 풍기는
용택이네 디딜방아가
마을 사람들을 지달리고* 있다.
넣는다
오늘은 우리 아들
생일떡하러 수꾸쌀
한 됫박.
밟아라
자근자근하게
동굴동굴 수꾸*가 분가루가 되도록,
방앗간 손잡이를 밀면서
미끄럼을 타듯
힘껏 내리 눌러라
그 새 재빠른 손놀림으로
뒤집어야 한다.
하늘을 오르는 듯
엉덩이를 치올리며
사뿐 놓아라
철커덕 맞닿는 방아공이에
마주치는 母情(모정),
머리에 흰 수건 둘러쓰고
앉으셔서 이렇게 웃으셨지.
들어라 방아머리,
곱게 빻아 채에 친 떡쌀
팥고물에 굴려 만든
아프지말고 오래 살라던
수꾸무싱기*
그리운 어무이* 손맛.
*(강원도 사투리)
지달리고 : 기다리고
수꾸 : 수수
수꾸무싱기 : 수수쌀을 빻아 경단을 만들어 팥고물에 무친 생일에 먹는 떡
어무이 : 어머니
검정 고무신
미리 큰 걸로 사 왔던
까막 고무신
무지 질겼어
밑바닥이 다 닿도록
한 겨울에도 동무였지.
꽁꽁 언발을 녹이려다
불에 양말이 타들어 갔어도
훤히 보였지
친구의 마음
부저*로 지진 구멍.
초등학교 운동회날
맨발로 달음박질하고,
실로 꿰멘 주인 표식
나만 알고 싶었는데
고무신이 먼저 반겨주었었지.
사랑방 댓돌에
마실 와서
정겹게 모여
아이들 따라 누운 신발
자유로이 짝 맞춘 동심(童心).
호롱불 같이 흔들리던
어둡지만 훈훈했던 시절들을
언제 다시 만나랴
그 때 그 주인들.
*부저 : 화롯불의 불젓가락
우물가
새터 마을
우물가로 청춘이 다 모였었지.
한 두레박
두 두레박
물도 긷고
건넌말 영자, 정녀 이야기도
퍼 담았었다.
우물 속에 비친
얼굴 모습
웃자마자 일렁거리던 웃음,
고달펐지만
그 보다 더 순진했겠으랴.
머리 위에 또아리 놓고
얹은 물동이
발걸음이 흔들거릴 때마다
찰랑대는 물방울 연신 훔치며
여인들은 치마폭을 매만졌었지.
양 어깨에 걸친 물지게
기우뚱 할 때에도
남정네들 균형을 이내 잡듯
짐을 바르게 진다면
뭇사랑은 다시 싹 트겠지
그 시절이 가다말고 되돌아오겠지.
호무시새
동네 사람들이
느티나무 숲에 모여
호무시새를 해 먹는다.
젖 물렸던 아이를 내려놓듯
호미를 내려 놓세
굽은 허리 한 번 펴고
풍년을 기약하세.
지나가는 양반
어딜 바삐 가시오
괴기 한 절음 들고 가시오
쉬다 가시오.
손마디마다 굳은 살
덥석 잡고 춤을 추세
고달픈 인생길
괜히 왔다 가지 말고
새봄에 나물 나듯
내년에 또 호무시새 하세.
대장간
황톳굴 화로(火爐)에
숯을 넣고
아들은 풍구를 돌린다.
쇳덩이를 올려놓고
신이난 풍구질에
시뻘겋게 달구어진 철에서는
열기가 촌각을 다툰다.
내리 친다
아버지도 아들도
땀이 솟는다
불끈 쥔 망치가 열을 낸다
다듬는 소리.
호미, 낫, 보습, 문고리...
빠른 손놀림으로
모양을 잡는다
땀이 솟는다
물에 스치었다 꺼내어랏!
진흙 바닥에 꽂힌
아버지와 아들의 작품
담금질 솜씨가 빚어 낸 정경
녹아진 부정(父情).
호롱불
가물대며 어둡던 시절
등잔 밑도 따라 흔들렸었다
무덤덤하게 키운
작은 희망 하나.
한겨울 밤
바람소리에 놀란
문풍지가 울 때마다
호롱불은 불꼬리를 감추었지만
온기(溫氣)는 불씨로 남아 있었다.
꺼질새라
책갈피 속으로 감춘 그림자
다시 되돌아 와
밝은 세상
빛 보지만
어둠이 더하네.
호롱불 빛따라
가버린 그 때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곧추세워야 할
심(心).
멍석
멍석을 깔아라
멋대로 한 세상
쭈욱 펴라
기대되는 한 판.
신명나게 놀아보자
깨지든지 지치든지
어디 한 번 놀아보세
구슬땀 좀 닦아 주오
머슴 팔자 상팔잘세
살판 났네 살 맛 났네
하던 지랄 계속 하게.
작대기로 펑펑 털어라
문대기 날리지 말고
가마이 내삐래 두게
그래봤자 올 농사도 헛일일세
조상이 대물림해 준
논밭뙈기 다 뺏기네.
둘둘
빼곡하게 말그라
흐트러지지 않게 반듯하게
행랑에 잘 두어라
새색시 쪽두리 숙일 때
두루뭉실한
치마 속 좀 들여다 보게.
서낭당
고리고적 때부텀
마을 어귀 숲거리에
귀신들이 다 모여 놀았지요.
거참 희얀한 곳이었오
가만히 있으시오
히이잉 소리 들리시오?
괜히 당겨지는 기분
멈추라지만 그냥 갈래요.
겁내지 마시오
경배하고 가시오
세상이 주는 겁보단
내 말 듣고 가시오
주는 복 받으시오.
함부로 쳐다보지 마시오
그 때는 무서웠었지
받는 복보다도 더 질겨
오들 떨며 떠나보낸
서낭당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