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핵심 정리
[이 작품은]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북어’를 통해 현대인의 무기력한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시로,
마지막 부분에서 비판의 주체였던 화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바뀌는 참신한 반전이 나타나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상징적, 비판적, 반성적
*제재 : 북어
*주제 : 비판 정신과 삶의 지향성을 잃은 현대인에 대한 비판
*특징
① 비판의 주체가 비판의 대상으로 반전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나타남.
② 시적 대상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추상적 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함.
*출전 : “대설 주의보”(1983)
시어 풀이
*케케묵은 : 물건 따위가 아주 오래되어 낡은.
*분대 : 보병 부대 편성의 가장 작은 단위.
*쾌 : 북어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쾌는 북어 스무 마리.
*변비증 : 대변이 대장 속에 오래 맺혀 있고, 잘 누어지지 아니하는 병.
작품의 구성
[1 ~ 8행] 가게에 진열된 ‘북어’의 모습 묘사
[9 ~ 19행] ‘북어’를 통해 무기력한 현대인 비판
[20 ~ 23행] 비판의 대상이 된 화자 자신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밤에 식료품 가게에 놓인 말라 비틀어진 ‘북어’를 묘사하면서, 그 ‘북어’를 통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용기 있게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기력한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꼬챙이에 나란히 꿰어진 북어를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북어의 모습에서 현
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후반부에서는 북어들이 화자를 향해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라고 외치는 소리
를 듣고, 화자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상의 반전이 일어나 비판의 주체였던 화 자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시인
은 북어를 활용한 독특한 발상으로 현대인의 삶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 (주)천재교육 | BY-NC-ND
작품 연구실북어와 현대인의 공통점
이 시는 식료품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북어'를 통해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북어'가 갖
고 있는 특징을 통해 현대인들의 모습을 유추해 내고 있다.
우선 '북어'의 자갈처럼 딱딱한 혀는 현대인들의 침묵을 의미한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된것이다.
'북어'의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은 현대인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고정화되고 획일화된 사고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막대기처럼 하나로 고정화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어'의 빳빳한 지느러미는 자신의 목표를 상실한 채 어딘가로 헤엄쳐 갈 데 없는 현대
인들을 의미한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 힘차게 움직여야 할 지느러미가 빳빳하게 굳어 있다는 것은,
결국 현대인들이 생(生)의 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주)천재교육 | BY-NC-ND
표현상의 특징
① 의인법 : ‘북어’에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함으로써 시적 대상을 넘어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상
실하고 무비판적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함.
② 시각적 이미지 : 시적 대상인 ‘북어’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현대인의 무기력한 모습에 대한 비
판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함.
③ 상황적 아이러니 : 비판적 주체인 화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반전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의
무기력한 삶의 모습을 반성하고 비판함.
비판의 주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화자
이 시에서 화자는 '북어'를 통해 비판 정신과 삶의 목표를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의 삶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북어의 말소리가 화자에게 들린다. 그
동안 화자가 비판했던 현대인들의 모습이 화자 자신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비판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화자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다. 비판의 주체가 되어 현대인들을 날카롭게 비판
했던 화자가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최승호의 시 세계
최승호의 시는 진지한 명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시는 절제된 운율을 갖고 있다. 그의 시는 들여다
보는 것이며, 독자는 명상하는 시인의 곁에서 함께 명상하도록 권유받는다. 그가 첫 시집 "대설 주의
보"에서부터 일관되게 명상하는 대상은 죽음과 도시화 현상에서 겪는 일상적 경험들이다.
그는 그것에서 비정하고 절망적인 관찰자가 되어 현대인의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읽어낸다. 죽음에
관한 명상의 매개로 사용되는 소재들은 '지하철, 자동 판매기,자동차, 변기, 똥, 기계, 공해' 등 다양한
도시적 물상(物象)들로, 그가 가진 비판적 세계관이 문명화 또는 산업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시는 다른 '도시시(都市詩)'들처럼 경박하지도 유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타난다. 그의 시는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시 역
시 '북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시대적 현실에 입을 다물고 사는 '북어'와 같은 우리 자신들을 비
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 최승호(崔勝鎬, 1954 ~ )
시인. 강원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에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상의 모습을 죽음의 불
길한 상징으로 읽어 내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시집으로 “대설 주
의보”(1983), “세속 도시의 즐거움”(1990), “북극 얼굴이 녹을 때”(2010) 등이 있다.
함께 읽어보기‘멸치’, 김기택/일상의 소재를 통한 주제 의식 전달
‘멸치’와 ‘북어’는 모두 생선을 소재로 한 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멸치’는 반찬으로 접시에 담긴
멸치의 모습을 통해 바다의 생명력을 떠올리면서 생명력 회복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어’는 말라비틀어진 북어의 모습에서 생의 의지를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여 이를 비판하고
있다.
‘도다리를 먹으며’, 김광규/일상의 소재를 통한 현대인의 모습 비판
‘도다리를 먹으며’는 두 눈이 모두 한쪽으로 몰려 있는 '도다리'의 모습을 통해, 모든 존재를 왼쪽과 오
른쪽으로 나누어 대립시키는 사람들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풍자하고 있는 시이다. '도다리를 먹으며
'와 이 시의 공통점은 둘 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하여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다리를 먹으며'와 달리 이 시에서는 의인법을 통하여 '북어'가 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화자
의 성찰적 자세가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