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과 친구들"
2011년 5월 7일(토요일),오후 7시-10시
홍재동 힐튼 호텔 컨벤션 센터

<어느 날 우연히 집 사람이 켜 논 TV에서 낯 익은 얼굴들이
기타를 치며 귀에 익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노래를 따라부르며 오전 내내 4시간여를 눈깜짝할 사이 보냈다.
이익균씨와 이장희씨까지 나와 무대를 풍성하게 옛날로 돌려 놓았었다.
이 방송이 통기타의 열풍을 몰고 온 MBC의 "놀러와" 프로그램 재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히트를 하자 '세시봉친구들'타이틀을 붙여
43년의 우정을 기리는 아름다운 무대로 전국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클릭!>
<난 이 컨서트를 아이들 덕분에 운 좋게 어버이날 전인 7일(토요일)에
홍제동 힐튼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정중앙 제일 앞 자리 VIP석에서 선배 부부와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사회로 나온 이상벽씨가 쎄시봉의 어원,
세시봉[ C’est Si Bon ]은 ‘그것은 멋지다’'아주 멋짐, 매우 훌륭함'이 라는 뜻의 불어라고 소개하며
여기 있는 여러분도 그렇다고 했다.>

<홍재동 힐튼 호텔의 쎄시봉 무대>
송창식;1947년 2월 21일 (만64세)
윤형주;1947년11월 19일 (만64세)
김세환;1948년 7월 15일 (만63세)

<홀에서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이상벽씨가 박수를 받으여 사회로 나왔다.
무교동(명동)에 쎄시봉이란 음악 다방을 통해 등장한 조영남,
윤형주(윤동주 시인의 육촌동생), 송창식, 김세완, 이장희씨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시 입장 티켓을 사서 음료수를 마시고 거기에 신청곡을 써 내면 들려주고 했다던.,..
김세환을 먼저 소개한다.>

<동안의 김세환이 노래하고 이어 윤형주가 나오고 송창식이 같이 앉아
옛날의 튄 폴리오 때의 웨딩케잌을 비롯한 노래를 한다.
윤형주씨는 1967년도 twin polio를 만들었는데
첫 번째 노래가 송창식이 작사한“하얀 손수건”이라고 한다
전화 한 번이면 빠이빠이인데 손수건을 흔들고, 편지를 쓰고 헤어지자 한다며 좀 촌스럽다고하자
송창식이 "웨딩 케익"은 안 촌스럽냐고 대꾸한다.
그 때는 앞만 보고 달릴 때라고 하자 또 송창식이 달릴 때는 앞만 보는 거라고 시비(?)건다.
방송에서 나왔던 송창식의 고구려 옷에 대한 얘기와
송창식은 윤형주에게 꼭 고구려 옷을 입히고 말 것이라고 결의에 차 있는 멘트를 했지만,
상상을 해보니 글쎄다.>

<윤형주는 쎄시봉 열풍 이후 젊은이들로부터
"같은 세대에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세대와 소통하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탈렌트나 개그맨들은 계속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가수는 한 곡만 히트 곡이 있어도 먹고 산다며 그 분이 바로 이정구 선생님이란다.
개그맨이 했던 걸 또 하면 그 거 밖에 없냐고 하는데,
가수가 새 노래를 하면 그거 말고 옛날의 그 것으로 하란단다.>

<아, 그러나 나에게 감동적이고 오늘의 하이 라이트는 이 때였다.
윤형주가 이 곳에서 처음 들려드리는 것이라며 오케스트라를 거느리지 않고,
단 2대의 통기타로 부르는 정지용 시인님의 "향수"를 들어보시라는 것이었다.
과연 이 둘에게서 어떤 화음이 어울려 나올까,
어떻게 벌써 익히 알려지고 불려온 노래를 불러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대 또한 마구 부풀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을 몰래라도 했을 것인데.....
그래도 간신히 걸리는 창피를 무릅쓰고 도촬한 것이 위의 사진이다.
도촬한 티가 난다.
그러나 우려와는 반대로결과는 대만족이었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용의 서정적 향수를, 현대적 이미지의 시어와 시적 표현을
통기타와 포크의 멋진 하모니로 향수어리게 그려내고 있었다.
박인수 교수와 이동원씨가 부른 향수와 다른 맛이 나는 서정적인 포크가 참 잘 어울렸다.
정말 가창력 있고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한 가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무대였다.
지용제 때 초청하여 꼭 그 노래를 청해 듣고 싶다.>

<방송 때와 같이 부산 사람인 이익균씨가 나와
쎄시봉 트리오로 3달간 활약(?)했던 인연을 소개하며
(이익균씨가 바로 입대하는 바람에)
Saints go march'n in을 노래하는데,
그 가사 중에 I want to be the number라는 것이 있어 이익균씨의 심정 같았다.
트윈 폴리오의 마지막 노래는 "축제의 노래"였다고 한다.
그 노래를 들었다.>

<이상벽씨의 소개에 의하면
김세환은 윤형주와 나이 차이가 9개월임에도 불구하고 형으로 깎듯이 모시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김세환이 74,75년도 TBC대상을 받았는데 윤형주가 만들어 준 곡이라고 한다.
송창식씨가 만들어 준 곡도 있는데 김세환이 만들어 부른 노래는 없다고 한다.
그 당시 젊은 나이에 유감없이 발휘한 패기와 총기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준 등불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다만 윤형주만 개인 사업으로 돌아서 대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윤형주는 연세대 의대를 중퇴한 걸로 안다.
그 후 CM송을 제작하는 사업을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CM 송 가운데 1/3을 제작하였다고 하니
그 쪽에서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추측된다.>

<윤형주가 만든 CM 송은 하늘에서 달을 따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는 "오란 씨",
삼립 아이차 아이스크림, 써니텐, 농심 라면, 베지밀,롯데 월드, 새우깡들이고
송창식은 빙그레 투게더, 김세환은 롯데껌 등이 있다며
노래를 불러가며 영상과 같이 보여주었는데
그 영상이 벌써 옛날이 된 그 시절의 60-70-80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팦과 번안곡들을 들려주었는데
Be Bop A lula she"s my baby, what I'd say, Wolly Bully,
Let"s twist again등을 메들리로 불렀다.>

<마지막으로 앵콜 송으로 "그건 너" 등을 불렀다.
아직도 부르지 않은 노래들을 이상벽씨가 열거하는데
송창식의 노래가 가장 많았다.>

<음악은 추상적인 예술이지만 어둑한 시절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고,
옛 추억을 상기 시켜주는 거울이 되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우리들 곁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며 보낸 3시간이 훌쩍 넘기고 아쉬운 무대는 끝나가고...>

<아울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뒤에서 연주 했던
드러머,기타리스트,색소폰니스트,베이스기타리스트,키보더 등의
빛나는 연주 실력들이다.>

< 모두가 호흡이 척척 맞는 멋진 팀이었다.>

<로비에서 이들의 CD를 팔았다.
공연이 끝나고 아쉬워 하던 차에 이상벽씨와 기념 촬영도 하였다.
아마 화보로 쓸 사진 촬영을 기다리는듯했다.>

<송창식씨를 찾아온 팬인가. 지인 같았다.
송창식 曰"아이고, 제가 찾아뵈야하는데 감사합니다.">

<카메라를 들자 포즈를 취해주는 다정다감한 막내 김세환 씨,
감사!>

<호텔 로비의 아이스카빙>
=청바지와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장발과 미니가 최류탄과 유행하던 60-70년대.
그 아스라한 추억의 포크 송을 들으며 희미했던 그 시절,
애상의 계절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이 있어 즐겁게 회상할 수 있었던
봄날의 저녁 한 때였다.=
세시봉 친구들(윤형주,송창식,김세환,조영남) 콘서트
하이라이트 및 미방영 부분
*참고로 대전 공연은
2011년 6월 24일 충남대 정심화 홀에서 열린다.
< 可 人 >
첫댓글 ㅠㅠ 무지 부럽다 ~ ......
20여년전 내 근무하는 학교에 송창식씨가 와서 축제 분위기를 띄웠는데...
너무 떨려서 싸인도 못받고.... 송창식씨 동창이 한부서에 있었는데, 나의 그런 모습을 이해못하겠다며 갸웃뚱.....
멋진곡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성은 각각 독특해보이는데 음성의 하모니는 기가막히지요 정말 흠모했는데 ...부럽습니다 원장님!!흔치않은 기회 아주 행복해 보이십니다 홧팅~~~!!
음악이란 모든것을 초월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나 젊은이나 나이를 먹나 모든이들의공통의 언어 인것 같아서 좋아요.....
음악이란 인간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휴식을 갖게 하는 아주 중요한 정서의 한 분야지요.... 원장님 너무 좋은시간 이셨겠어요~ 대전에 온다니 함 생각해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