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Memento].
'Memento'는 라틴어로서 remember 또는 memorize 등의 뜻이다.
명사적으로는 기억, 기억할 것.
관용적으로 memento mori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Remember that you must die' 가 그 직역이고
'언젠가는 죽을 테니 현재를 즐기고 열심히 살아라' 라는 좋은 뜻과
'내가 널 죽이고 말테다' 라는 협박용으로 동시에 쓰인다고 한다.
혹은, 살해 예고용 해골 등의 물건을 지칭하기도 한단다.
마치 여러 개의 퍼즐들을 모두 흩어놓고, 이제부터 하나씩 끼워 맞춰 보라는 심산인 듯,
영화 [메멘토]는 독특한 구조와 긴장감을 갖췄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각본’과 ‘편집’의 승리라고 할 만큼 잘 다듬어져 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관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니 말이다.
감독 Christopher Nolan은 영화의 라스트 씬을 가장 첫 장면에 보여준 후,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완전히 뒤집어 역 시간 순으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영화 [박하사탕]처럼 정해진 결론을 납득시키기 위해 원인을 밝혀 주는 친절한 형식은 전혀 아니다.
주인공 Leonard Shelby (Guy Pearce)는 전직 보험 수사관으로,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자신의 아내가 강간, 살해당했다는 것과 그 범인이 존G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레너드 셜비라는 것 뿐이다.
레너드는 아내가 살해된 날의 충격으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
그날 이후 그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중요한 단서까지도 쉽게 잊고 마는 레너드가 오직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이 남긴 메모와 폴라로이드 사진과 몸의 문신뿐이다.
그는 묵고 있던 호텔, 갔던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고, 항상 메모를 하고,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하지만 기록이 쌓일수록 기록들의 신빙성은 없어지고 오로지 육감과 본능과 해석만이 남는다.
호텔 주인마저도 볼 때마다 새로운 레너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기억마저 변조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레너드가 Teddy (John Pantoliano)를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이다.
그럼 아내를 죽인 범인은 존G가 아닌 테디인가?
이 영화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고 있지만,
영화의 말미에 가면 누가 범인인지 보다, 기억에 관한 메시지가 더욱 섬뜩하다.
그것을 위해 감독은 시간의 구조를 파괴해 사건의 처음과 끝을 뒤집어 놓고,
영화를 시퀸스 별로 나눠 첫 시퀸스의 첫장면이 다음 시퀸스의 마지막 장면이 되고,
두 번째 시퀸스의 첫장면은 다음 시퀸스에서 마지막 장면이 되도록 구조를 취했다.
관객이 '저건 왜 그렇지?'라고 물으면 곧이어 그 다음 상황이 풀어진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감독은,
10분 후면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레너드 셜비와 관객들을 동일한 입장이 되게 하고,
레너드 셜비가 의심하는 인물들과 음모 등을 관객들도 함께 의심하게 만들어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이 주인공의 시점과 기억을 유지하게 해 마치 사건을 직접 이끌어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또, 거꾸로 흘러가는 칼라 장면들 사이에 흑백으로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나오는 장면들을 삽입했는데,
관객들은 이를 통해 유일하게 레너드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들이 자아내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지막 반전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또한 강렬한 메시지까지 남긴다.
영화 [메멘토]의 공식사이트인 www.otnemem.com (memento를 거꾸로 씀)에 가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고
요즘 비디오로 출시된 [메멘토]를 다시 한번 보니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보다 사건 전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해석일 뿐이다.
------------------------------사건 전개 (시간순)-------------------------------
1. 주인공 레너드는 보험조사관으로,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2. 어느 날 밤, 집에 침입자가 들어와 레너드의 아내를 성폭행한다.
자다가 일어난 레너드는 침입자를 자기 총으로 쏴 죽이고,
또 한명의 범인에게 둔기로 머리를 심하게 가격당한 후 기절한다.
그 충격으로 레니는 short term memory loss를 겪게 된다.
(STML:15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킬 수없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없음,
실제로 발견되는 증상이라고 함.
감독 Christopher Nolan의 동생은 실제로 미국 Georgetown대학에서
정신과 기억에 관련된 의학공부를 하고 있고 많은 고증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레너드의 아내는 강간 당한 후에도 살아 있었다.
(아내가 강간당할 때 샤워커튼에 덮혀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눈을 깜빡이고 있다.)
3. 그러나 레너드는 그 사건 이후 새로운 기억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레너드가 마지막으로 본 아내의 모습은
샤워 커튼에 쌓인 채 눈은 감은 모습, 즉 사망한 모습 이었기 때문이다.
4.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레너드 아내의 강간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바로 테디이다.
레너드는 자신이 죽인 한명 이외에
자신의 머리를 때려서 기억력을 앗아간 제2의 범인이 있다고 경찰에 증언한다.
그러나 레너드가 STML증세를 보이기 때문에 경찰은 그 말을 믿지않고 수사를 종결한다.
그러나 테디는 레너드의 증언이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레너드의 차가 도둑맞아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일이 사건 당일 발생했는데,
그건 다른 하나의 침입자가 도주하면서 한 짓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소 부패하기도 하고 엄정한 법 집행보다는 사적구제에 대해 반발심도 없는 테디는,
레너드가 그 침입자들 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죽고 자신의 기억력을 상실했다고 믿으며
복수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내비치자,
레너드가 직접 복수를 할 수 있게끔 공식적으로는 사건을 종결하고
자기 혼자 범인을 찾아 레너드에게 알려주고 복수할 수 있게 도와주려한다.
그러나 레너드는 경찰이 더 이상 수사할 의지가 없어서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오해한다.
5. 레너드는 테디에게서 비공식적인 수사결과를 듣고
기억력을 잃어버린 자신이 직접 복수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새긴다.
(사건 후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레너드의 몸에 문신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6. 레너드는 당뇨병 증세가 있는 아내에게 STML 증세때문에 인슐린을 과다 투약하게 되고
아내는 그 원인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레너드는 아내가 강간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기억 하고 있을 뿐이다.
7. 아내가 레너드 때문에 죽은 후,
레너드의 증세가 다른 사람들에 피해를 줄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당국에 의해
레너드는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그 때부터 자신의 STML 증세를 보완하기 위해 노트에 메모를 하기 시작한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레너드는 테디에게서 계속적인 수사결과를 듣게 되고
다음과 같은 단서를 수집한다.
(1) Male (2) White (3) First Name: John or James (4) Family Name: G.
이 단서들은 실제 레너드를 둔기로 가격하고 도주한 제2의 침입자에 대한 것이다.
테디는 아주 면밀히 수사를 진행해 위와 같은 단서를 레너드에게 전달한 것이다.
8. 얼마 후 침입자를 찾아 복수하기 위해 정신 병원을 탈출한다.
(이 내용은 공식사이트에 가서 그간 경찰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때쯤 테디가 레너드에게 지금까지의 경찰수사문서를 건네준 듯하다.)
9. 레너드와 테디는 그 침입자를 찾아서 복수를 한다.
이때 테디는 레너드가 복수를 하고 아주 기뻐하며 환히 웃는 장면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는다.
(이 사진이, 테디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레너드의 여관문틈으로 넣어주고,
나중에 레너드가 차안에서 불태우는 그 사진이다.)
테디는 이제 레너드가 복수를 했으니
마음 편히 남은 레너드의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레너드에게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기억력상실에 대한 복수이외에는
세상을 살아갈 목적이 없다.
'자신이 믿고 싶은 기억만 한다'라는 모토아래
방금전에 살해한 진짜 범인에 대한 경찰수사기록중 12쪽을 찢어버리고
다른 범인(그가 믿는, 아니 믿고 싶어하는) 즉, 복수대상자를 찾으려한다.
10. 경찰들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레너드를 찾기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담당수사관인 테디가 의도적으로 레너드를 숨겨주고 있기때문에
경찰의 탐색에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한편 테디는 부패한 경찰관으로서 마약업자와 관련되어 있었는데,
레너드를 이용해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마약업자를 제거하려 한다.
사실 처음부터 레너드를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 동안의 경찰수사일지를 레너드에게 건네주며
그의 복수를 도와주었고 이제 복수는 끝났다고 했지만,
레너드는 그 중 자신의 기억 또는 목적에 맞지 않는 12장의 수사일지를 찢어버리고
자신만의 수사일지를 만들어 또 다른 복수대상자를 찾기시작한다.
이때부터 테디는 레너드가 어차피 기억도 못할테니,
이 복수심에 가득찬 레너드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11. 테디는 레너드에게 범인이 마약업자라는 새로운 단서를 거짓으로 준다.
물론 테디 자신이 처치하고 싶어하는 인물, Jimmy Grantz(나탈리의 남자 친구)를
레너드를 이용해 처치하기 위한 작업이다.
12. 레너드는 테디와 만나기로 한 지미를 살해하고 그의 옷과 차를 뺏는다.
테디는 지미가 가져온 돈을 가로채려 했으나 레너드가 차 트렁크에 싣고 가버린다.
13. 그런데 레너드에게는 복수이외에는 세상을 살아갈 목적이 없다.
따라서 지금 지미를 죽여 복수아닌 복수를 했지만
또 다른 John G.를 찾아 추적해 또 복수를 해야만 그의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복수는 끝날 수 가 없다.
14. 레너드는 자신이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테디를
거짓말장이라고 기억해버리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복수 대상자로 레너드는 본명이 John Edward Gemmo인 테디를 지목하고
그의 차 번호를 단서로 삼아 문신을 새긴다.
15. 레너드는 결국 테디를 찾아 복수아닌 복수를 또 한다.
16. 레너드를 테디를 살해한 후 자신이 머물고 있던 Discount Inn에
지금까지의 단서, 증거들을 모두 두고 떠난다.
새로운 복수 대상자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단서를 잊어버릴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7. 그리고 아마 그 다음에는 또 다른 John/James G.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의 유일한 인생 목표인 복수를 위해....
앞뒤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갈게 있는 것 같다.
레너드는 10분밖에 기억을 지속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다.
자신이 쫓기거나 누구를 기다리더라도
10분이 지나면 왜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마지막 씬에서는
문신 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고서도 왜 이리로 왔는지 기억을 되새기지 못한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 차를 모는 씬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게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10분 거리에 있는 곳만 주인공은 운전을 했다고 말이다.
이 영화의 독특한 구성이 납득 되려면
차로 갈 수 있는 거리는 모두 10분 이내의 장소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이 영화의 큰 오류가 아닐까?
굳이 또 하나를 짚어보자면,
레너드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꺼내서 그가 누구인지 확인해 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과 특징 같은 것을 손수 적어놓은 것을 말이다.
레너드가 다드의 여관방에서 다드를 때려눕혔을 때 테디가 방문하게 된다.
너무나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져서 테디를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주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자신의 주머니 속에 사람들의 사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그가 과연 항상 기억할 수 있을까?
레너드가 옷을 벗을 때마다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글자들은 항상 낯설게 쳐다보면서
주머니 속에 사진이 있다는 사실은 어찌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까?
이렇게 소소한 것까지 따지지만 않는다면 [메멘토]는 역시나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 [메멘토]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세미 젠키스를 기억하라'라는 문신 혹은 문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수수께끼이다.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은 세미 젠키스라는 인물이
레너드가 만든 위대한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곳곳에서 암시한다.
레너드가 새미의 일을 말하는 부분, 즉 흑백의 정신병원 장면에서
새미는 어느순간 레너드의 얼굴로 바뀐다.
이 장면이, 레너드가 새미에게 일어났다고 말하는 그 일이 사실은
레너드 자신에게 일어났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킨트처럼 레너드는
또 하나의 악마를 기억 속에서 창조한 것이다.
이 악마적 존재의 기억은 반복을 통해 이야기 속에서 실존을 부여받는다.
기억, 반복, 환상은 한데 뒤섞여 진실과 거짓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에서 레너드는 이 점을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레너드의 생각은 불안하지만 영화 속에서 레너드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기억하지 않으면, 해석도 실존도 불필요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억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