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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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두 달 열흘만에 별세하신지 반 년이 가까워 지는 5월의 끝날 -
저만치 어머니가 다니셨던 교회앞에 주차해두고
마스크에 가려진 어머니의 교우들을
한참동안 멍청하게 바라보다 돌아왔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요양병원 신세를 피하지 못할 듯..
그래서 미리 예습하듯 관련기사를 찾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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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할머니가 침대에 앉아서 힘겹게 죽을 들고 계셨습니다.
입 주변과 목 밑에 죽이 묻어 있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기력이 많이 없어 보이 셨습니다.
곱상한 얼굴에 자글 자글한 주름들, 인자한 눈가에 빨갛게 염증이
있어서 눈 뜨기 조차 힘들어 하시는 할머니,할머니 다리는 90도
꺾여서 굳어 있었고 한 눈 에 봐도 할머니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 보였습니다.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외에 3명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이면 할아버지께서 미국으로 영구 이민 간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홀로 한국에 두고..그래서 미국에 살던 딸이 집에 왔고
미국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어가기 전에 할머니를 잘 돌봐 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영영 떠나가신 다음날부터 1일 4시간 케어와
주1회 방문 목욕 스케줄에 맞춰서 할머니를 돌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건강도 안 좋지만 치매초기 증상 이 있으셔서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위한
각별한 보호가 필요했고 특히 다리는 이미 굳어 있는 상태지만 팔은
아직 굳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운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죽 밖에 못 드시는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야채 죽, 고기 죽, 곡물 죽을 골고루 끊여 드려야 했고
방문목욕은 요양보호사 두 분과 사회복지사인 제가 동행 하여
세 명이 씻겨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목욕 시작 할 때 항상 눈을 꼭 감으시고 목욕을 다 마치고
침대에 올려 드리면 눈을 뜨셨습니다.
아마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나 봅니다.
수건으로 몸을 감춰 가면서 씻겨 드려도 좀처럼 눈을 뜨지 않으셨구요.
항상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계셨습니다.
마치 수줍은 새색시 얼굴 같았습니다.
치매증상이 심해 지지 않게 하려고 매일 매일 가족이름 말하고 쓰기,
노래 함께 부르기, 화투놀이 그리고 박자에 맞춰 팔운동 하기 등을
꾸준히 해 드렸습니다. 이러한 요양보호사님의 노력으로 할머니의
건강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표정부터 밝게 바뀌 었구요.
못쓰던 팔을 머리 위 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아무 말씀 없이 계시고 무슨 말을 건네면 고개만 끄덕이던
할머님이 어느 날 목욕을 마쳤을 때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라고 인사 할 때는 감동의 도가니 였습니다.
........ 중략 .............
그런데 다음날 요양보호사님이 전화가 왔네요. 어제 출근 했더니
식탁위에 아래와 같은 가족의 메모가 적혀 있더랍니다.
“내일 올 때 계란 한판 사오세요. 어제 싱크대위에 철 수세미 있었는데
반 잘라져서 반 만 있고 나머지는 없네요.
거실이 왜 이렇게 더럽죠 청소 했나요?”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노인 장기요양보험 법에 보면 계란은 가족이
먹을 거니까 가족 동으로 가족이 직접 사야 하구요.
철 수세미는 할머니 죽 끊일 때 자주 넘쳐서 가스렌지를 닦느라
닳아서 버린 거구요. 거실은 요양보호사가 청소하는게 아니라
가족이 청소해야합니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방만 청소하는
거거든요-
그 메모는 요양보호사님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 하나를
더 해 주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요양보호사님은 더 이상 그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어서 몇 일 동안 전화도 못 드렸구요.
혹시 다른 일을 하면 일찍 마음의 상처를 잊을까 해서 몇 일 후
휴대폰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 후 답장 문자가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치료를 받기 위하여 좀 쉬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요. 잠시만 쉬고 다시 힘내세요.
가족에게 조차 외면당하는 또 다른 어르신이 너무도 많기에
선생님의 손길을 멈출 수가 없답니다.
저는 오전 어린이집일을 마치고 오후엔 요양보호사로
재가(가정방문요양)방문을 해요.
저희들이 배우기로 노인 분들을 어르신이라고 불러드리죠...
그런데 저는 아버님이라고 불러요
첫째날 아버님은 저를 반가워하고 발음은 정확하지 않으셨지만
계속 말씀을 하셨어요
요도 갈아드리고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소변보시는 것도
미음도 잘드시고 모두 순조로와 보였어요.
집으로 돌아올 무렵엔 손도 잡아주셨어요.
그런데 왠지 기운이 약해져 보이셔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두번째 방문을 했을땐 거의 말씀을 하지 못하셨어요.
가볍게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등에 생긴 욕창에 약도
발라드리고 발바닥 지압도 해드리고 전날밤에 적셔놓은
이불도 빨고 욕실 청소도 해드렸어요.
그동안 보호자이신 어머님(아버님 아내)은 잠깐 바람 쐬고
돌아오시고..
그리고 늦은 오후 미음도 몇수저 드시고 물도 드시고..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
숨소리도 어제보다 좀 조용조용 해졌고 눈은 천정을 응시하시고,
그저 저의말에 고개만 좌우로 움직이실뿐...
저는 집에가야 했지만 그럴 수없어 계속 곁에 있었고 어머니와
여러 사람들을 불러 구급차를 부르라했어요..
갑자기 숨소리가 잣아드는 것이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내눈에만
띄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후레쉬를 달라 했지만 바라만 보고들 있어서 급한 나머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꺼내 후레쉬장치를 해 눈에 비추어보았어요.
동공은 열려 있었고 맥은 아주 미세하게 뛰었고 숨소리는 없었어요.
저는 심폐술을 계속했어요.
펌푸 한번할 때마다 거품이 조금씩 올라오더니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어요 .
그런데 어머님은 "죽었으니 그만해"라고 하십니다.
전 그럴 수 없었어요..그때 작년에 돌아가신 울 엄마가 생각났어요.
이렇게도 한번 못해드렸다는 생각에 내가하면 다시 살아나실것
같았어요...그리고 구급대원들이 왔어요.....돌아가셨다고..
전 눈물을 참았어요... 가족 그들은 울지 않았어요...
그리고 구급대원들은 가족들이 이송을 원치않아 그냥 돌아갔어요.
저는 그곳을 나와야했어요..두번의 만남이였지만 ...
저는 가만히 돌아가신분 옆에 앉아 가족이 들을수 있게 인사를
했어요.
"아버님 좋은 곳에가셔요 제 얼굴 기억하셨다가 다음 인연으로
또 만나요.. 잘가세요.. 가시는 모습보고싶은데 가족이 아니라
여기서 인사드릴께요 ..".
그리고 파랗게 변해진 손톱도 만져보고 발도 만져보고 아직까지도
젖혀져 있는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까지 덮고손을 넣어드렸어요.
얼굴도 한번 감싸안아 다독여 드리고...
아무도 인사가 없는 그곳을 나와 골목을 돌아서는데 눈물이 났어요.
무릎에 힘이 빠져 걸을 수 없어 가까이 사는 친구를 불러 함께 집에
왔어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을 요양원에 맡기고
죄책감을 느끼는 자녀들이 많다. 가족은 어떤가.
“의사도, 구청장도 잘나가는 자식은 얼굴 보기 힘들다.
노동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들이 퇴근길에 쭈쭈바
한 봉지 사 들고 와서, 판소리도 하면서 다른 노인들도 웃겨주고
가더라. 며느님들은 남의 엄마인데도 계절별로 옷 싸서 오고,
남자들은 자기 엄마인데도 엄마 얼굴을 못 본다.”
죽음에 가까웠어도 사는 건 다 비슷하다는 게 안도가 됐다.
한편 함께 웃고 떠들던 존재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지면
그 분위기가 무거워질까도 싶었다.
“간식을 주러 갔는데 그사이에 숨이 멎는 분도 있다.
요양원은 어르신들이 동요할까 봐 바로 침대를 치운다.
없었던 사람처럼. 그리고 바로 새 사람이 들어온다.
이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다들 마지막을, 죽음을 너무
서툴게 보낸다고 그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식사를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노인이 돌아가시면
요양보호사 또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다고.
시간당 1만원 남짓의 노동으론 환산할 수 없는 ‘섬기는’ 인생,
변기 물을 휘젓던 손으로 얼굴을 할퀴는 치매 어르신들을
어르고 달래는 그의 우아한 율동을 읽고 있으면, 그곳이 천국은
못 돼도 제법 살 만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말년에 어떤 요양보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노년의 질’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TV에서 노인 학대하는 요양원 보고 기겁을 하잖나.
그런데 내가 일하면서 만난 요양보호사들은 다들 돌봄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였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닌다.”
무엇보다 요양보호사에게 좋은 돌봄을 받고 싶으면, 제도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겪을 미래가 달려있다”고.
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화내면 안 된다. 보호사가 화내면 상태가 무조건 악화된다.
그리고 탈의하고 씻는 것. 성별이 다르면 싫어한다.
충분히 관계가 형성되고도 항상 노크하고 ‘저 왔어요’ 하고
예의를 갖춘다.”
얼마 전엔 기품 넘치던 여배우 윤정희님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웠다.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느낀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치매노인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좋아진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요양원에도 쓸쓸한 공기가 퍼진다.
해질무렵증후군이다. “아파도 석양이 지면 마음이 스산해지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 꼭 누군가가 부르는 것 같다.”
어르신들을 대할 땐 말 한마디가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뭐 하실게요’ 같은 이상한 존대가 아니라
친밀한 환대의 언어를 쓰는 게 인상적이었다.
“호텔 서비스처럼 한다(웃음). ‘저랑 춤 한번 추실래요?’
‘이렇게 해드리면 좋으시겠어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애쓴다.그분들도 ‘화이팅’ ‘고마워요’ 하면서 가장 좋은 모습을
준다. 먹고 배설하고 옷 갈아입고···.
이런 일이 사실 서로에게 얼마나 지치고 소모적이겠나.
어쩌면 그래서 멋과 인격의 욕구도 커진다.
오줌도 새고 죽도 흘리지만···.
어리나 늙으나 ‘나 이렇게 존엄한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 줘요’라는 간절함이 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뭔가.
“음식이다. 네모난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게 먹는 거니까.
미각만큼은 마지막까지 남아 금방 입속으로 삼킨 홍시도
아쉬워서 입맛을 다신다. 그리고 사랑받는다는 느낌, 터치가
중요하다. 입술에 바셀린 발라드리고
여윈 뺨을 쓸어드리면, 환히 웃으신다.
꾸미는 것도 좋아한다. 무기력한 사람은 씻지 않는다.
청결은 삶의 의지와 연관 있다.
요양원에 찾아오는 자녀분들에게 꼭 부모님 손톱 발톱 직접
깎아 드리라고 한다.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른다.
정서적 지지가 참 중요하겠다.
“그렇다. 몸져누워 계셔도 ‘힘내서 걸어 나가셔야죠’
‘나가시면, 저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며 미래를 나누면
희망이 생기고 관계가 생긴다. 퇴근할 때 ‘저 다녀올게요’ 하면
‘빨리 다녀와’ 하고 기다린다.
식사도 못 하던 독거노인도 다정한 말을 들으면 리듬을
회복해서 싱싱해진다.
늘 얘기하지만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낫다(웃음).”
늙어 가는 부모님을 둔 자녀분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부모님 상태에 따라, 자녀분들의 사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크지 않아도 마을 안 요양원이 가장 좋다.
그래야 주말에 교회도 가고 딸네 집도 간다.
요양원 보내는 게 버리는 게 아니니 죄책감 느낄 것 없다.
죄책감이 없어야 잘 찾아간다. 찾아뵈면 옷도 직접 갈아 입혀
드리고 스킨십하고 드라이브로 콧바람도 쐬 드려라.”
-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
출처:아트힐https://m.cafe.daum.net/arthill/8Mkb/184?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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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모 살려낸 65세 아들...9년간의 밥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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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blog.daum.net/cozygarden/11776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