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휼마를 바라보자 휼마는 안심하라는 듯, 애써 웃음 지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남쪽으로 계속 갈 거야. 수줍게 반짝이는 별들과 밤을 노래하는 반월(半月)을 벗삼아."
"……."
밤하늘과 맞닿아 있는 황막(荒漠)은 암흑으로 가득 찬 무저갱(無底坑)을 연상시키듯, 매우
고요하였다.
"……."
불현듯, 나타난 실바람이… 아니, 바람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서늘한 기운이 강혁의 콧등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코끝에 아찔하게 맺혀있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더니 온
몸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 저렇게 밝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
"너무나도 뿌듯해."
휼마는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은 감청색
비단 위에 수정을 촘촘하게 박은 것처럼 순결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은 그렇게 외모에 어울리지도 않는 잡담으로 발을 딛는 여로(旅路)에 깔린 침묵을 매우
천천히, 매우 조심스럽게 깨가고 있었다.
"욱!"
말 위에 누워 끙끙 앓고 있던 휼마가 갑자기 짧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더니 오른쪽 어깨를 안
쪽으로 추스렸다.
"휼마! 괜찮아?"
"으, 응……."
강혁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으, 응……."
음의 높낮이가 없는 건성적인 대답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
로써는 성의가 없는 대답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환자의 양면성을 시
험한다는 것은 환자에게는 더 없는 결례(缺禮)이기에.
"힘들면 말 해. 힘들면 쉬었다 가자."
"……."
휼마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였다.
"……."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유혹하는 싱그러운 초향(草香)을 따라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벽류풍(擘柳風)도 만나고 거칠은 모래바람도 헤쳐가면서
꿋꿋이 나흘을 버텨 내었다. 이윽고, 그들은 향기의 진원지에 이르렀으나 그 곳에는 아득히
펼쳐진 지평선과 생명의 호흡마저 전혀 느낄 수 없는 허허벌판만 있을 뿐이었다.
"분명, 분명… 이 곳이었는데."
크게 낙담한 강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산발한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미안해, 휼마. 정말 이 곳에서 향기가 났단 말이야."
'상심하지마, 강혁. 지신(地神)의 저주였을지도 모르니까.'
거의 흐느끼다 시피 한 강혁은 가까스로 허무감을 억제하고 다시 말에 올랐다. 하필이면, 때
가 가장 더운 미시(未時)라. 밉살스러운 태양 광선의 눈부심은 극에 달했고 초열지옥(焦熱地
獄- 팔열지옥 중, 하나로 뜨거운 불길에 둘러싸여서 그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운 지옥을 일
컬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열기는 신기루를 연방 아른거리게 하였다.
타박. 타박.
진이 빠진 말의 걸음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사지(死地)를 벗어나고픈 본능이 누구보다
앞서는 말이었지만 이미 녹슬어 버린 몸이 본능에 따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
"창황, 해가 지기 전에 이 사막을 벗어 나야해. 사막의 밤은 생각 밖으로 춥단 말이야."
강혁은 낮은 목소리로 창황을 다그치며 사막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였다.
"후아……."
숨 돌릴 틈도 없이 사막을 횡단하였으나,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삼경(三更)에 이르렀
을 때까지도.
"히, 힘들어… 더 이상, 못 갈 것 같아……."
휼마는 강혁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휼마의 말을 들은 강혁은
한동안 밤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쉬었다, 가자." 라는 말과 함께 말에서 내려왔다. 먼
저 말에서 내려 온 강혁은 어깨에 걸치고 있는 이리 가죽을 땅바닥 위에 깔아 놓고 말 위에
넙죽 엎드려 있는 휼마를 들어다가 가죽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헉… 헉… 헉……."
휼마는 여정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생전 흘리지 않던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깐 서광(曙光)이 비추면 여기를 떠나자, 알았지?"
"으, 응……."
정적이 흐르던 지평선 위로 쟁반 만한 태양이 찬란한 광채를 뿜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
다. 한 차례, 기지개를 켠 태양은 새로이 시작되는 하루를 알리기 위해 눈부신 빛줄기를 사
방으로 퍼뜨리며 엷은 보라 빛이 남아있는 하늘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
감긴 눈꺼풀 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강혁은 햇살을 피하고자 여기저기로 몸을
뒤척였으나 태양은 작정이라도 한 듯, 강혁을 따라다니며 빛줄기를 쏘아댔다.
"제길."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한 강혁의 눈동자에 바늘처럼 따가운 햇살이 한가득 들어왔
다. 강혁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뻗어 태양을 가렸다. 아침햇살과의 실랑이로 잠에서 깬 강혁
은 아직도 꿈속을 헤매이고 있는 휼마를 돌아보았다. 아무 근심이 없어 보이는 편안한 표정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자게 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서둘러 그를 깨우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혁은 제법 큰 목소리로 휼마의 이름을 불렀다.
"휼마!!"
"……."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못한 거라 생각한 강혁은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휼마!!"
"……."
이번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작았다고 힐책하며 휼마의 귀에 입을 바짝대고 버럭 소리질렀다.
"휼마!!!"
"……."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강혁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휼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
았다. 아주 자세히.
"……!"
흠칫 놀란 강혁은 황급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본 것은 분명, 어둠의 그림자가 드
리운 죽은 자의 침묵이었다. 죽은 자의 침묵……. 그 것은 오로지 죽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안식이 아닌가? 강혁은 휼마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고개
를 흔들 때마다 눈 위를 아찔하게 스쳐 가는 건 창백하게 질리고 있는 그의 얼굴이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강혁은 창백하게 질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까악-. 까악-.
황무지와 다름없는 사막을 무심코 지나치던 까마귀 한 마리가 싸늘하게 식어 가는 휼마의
시체를 보더니 목청 높여 요란하게 울어댔다. 죽은 자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먹는다는 악
마같은 까마귀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절규하는 강혁의 귓속을 날카롭게 후벼팠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지평선 끝까지 비명을 내지르는 강혁의 모습은 광적이기까지 하였다.
주룩주룩 눈물을 흘러내리던 강혁은 눈물로 젖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박동이 없는 휼마의
가슴을 마구마구 내려쳤다. 반동에 의해 약간씩 움찔거리긴 했지만 그 외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첫댓글 와아... 제 소설을 본 뒤 바로 초주님 소설을 보니까, 차이점이 확 드러나는군요. 小喬도 분발해야겠어요 ^^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 바라구요~ 개인적으로 -_-+ 초주님도 릴레이에 참여해보심이...? (은근슬쩍 권유)
휼마가... 휼마가... 그래서 전에 나한테 자상에 관해서 말했었구나. 너 미워!!(휼마도 죽이고, 우리 엄마한테 칭찬까지 듣고!!) 죽어라~ 탕탕!
휼마라... 이름이 독특하군요.
아, 휼마는 북방 유목민(선비족) 장수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