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선물
이 진 숙
한겨울엔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어둠이 먹물처럼 내리더니, 여섯 시가 넘어도 밖은 여전히 빛을 머금고 있다.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국수를 삶아 저녁을 먹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잔잔한 일상이다.
해 질 녘 곧 어둠이 집 안을 들여다볼 것 같아 거실 커튼을 닫으려는 순간, 그만 발을 헛디뎠다. 악!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선 채로 거실 바닥으로 머리가 그대로 떨어졌다. 별이 내 눈에서 번뜩였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손은 머리를 감싸며 끝없는 비명을 질렀다. 화장실에 있던 남편이 놀라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머리엔 통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몸부림을 쳤다. 남편이 머리를 만지자 질겁하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힌 머리에는 어느새 탁구공처럼 동그란 혹이 생겼다. 너무나 아프고 놀라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다 잘 못 되는 건 아닐까? 겁이 덜컹 났다.
입원해야 할 것 같아 짐을 챙겨 며느리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넘어지면서 운동기구에 꼬리뼈도 부딪혔는지 통증이 온다. 그렇지 않아도 갱년기가 오면서부터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고 건망증도 심해져 걱정인데……. 온갖 불안한 마음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절차를 밟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전전긍긍하며 기다렸다. X-ray와 CT 촬영을 마친 후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께서 다행히 뇌출혈이나 두개골 골절 없이 타박상 정도로 나왔다며 꼬리뼈도 골절되지 않았다 한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면 좋아질 거라 한다. 뒤로 넘어지는 건 상당히 위험한 것인데,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라며 운이 좋은 것 같다 한다. 입원은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큰 충격에도 머리가 멀쩡하다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나이가 들면 집에서도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특히 어르신들은 고관절을 다치는 경우도 많은데, 그 부위가 상하면 생명과도 직결된다고 한다.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으면 신진대사가 떨어지고, 합병증으로 인해 생명에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는. 그 말에 내 나이를 되짚어 보게 된다.
응급실을 나오자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온 것만 같다. 병원 건물 위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오늘따라 별이 보석처럼 빛난다. 보름을 막 지난 달이 나를 향해 웃고 있다. 반짝이는 달과 별을 보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하늘을 향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과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올해 회갑을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긴 걸 보니 아마 천운이 따라준 것 같다.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일에 더 감사하며 살겠노라 다짐한다. 하늘을 향해 합장하는 순간,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것이 두 볼을 타고 흐른다. 지금껏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구나! 그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것이 내게 들어온다. 어쩌면 이 소중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찾아온 고통의 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번개가 치듯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진 태풍처럼,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지만, 나의 육십 평생 가장 아픈 기억,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밤이었다.
이른 아침 남편은 아픈 아내가 깰세라 살며시 일어나 아침밥을 손수 지어 먹고 출근한다. 그 뒷모습이 참 미쁘다. 어젯밤에 생긴 내 머리에 풍선은 어디로 갔을까? 주사와 약의 효과일까? 하룻밤 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픔을 누르며 사라진 혹의 흔적을 더듬다 삼십여 년 전 어린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친구와 밖에서 놀다 야구공에 이마를 맞아 탁구공만 한 혹을 달고 들어왔다. 그 혹의 모양과 크기가 똑같아서 입가에 미소가 벙글기도 한다. 그때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오래전 일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어루만져 본다.
부부 모임 단톡방에 박완서 작가의 ‘일상의 기적’ 이란 글이 올라온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 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 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 원, 간이식하는 데는 7천만 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두 발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기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웃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보니 이 글은 마치 나를 위해 쓴 것처럼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밤새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 매일 똑같은 하루가 오늘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오늘이란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알 것 같다. 운이 나빴다면 죽음의 문턱을 넘을 수도 있었을 일을 겪고 보니, 감사의 깊이가 달라진 것 같아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육십 고개란 말이 왜 있는지도 알 것 같다. 아픔 뒤에 찾아온 고귀한 선물, 평소에 좋아하는 시 나태주 시인의 ‘선물’이란 시가 오늘따라 더욱더 가슴에 와 닿아 읊어 본다.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아픔도 고귀한 선물이라고…….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