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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2009년 2월 1일에 서울 무학국민학교 동기생 친구들과 영남알프스를 올랐다. 원래 서울의 전종성과의 산행 계획이었는데 거기에 다른 친구들이 같이 참여한 것이다. 우리는 겨울 영남알프스 영축-신불산 구간을 제대로 종주하였기에 다소 힘은 들었지만 오래된 친구들과의 산행인 만큼 나름대로 가치와 성과가 있었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준비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부산을 떤 것부터 시작해서 친구들이 경주에 내려오고 우정의 일잔을 밤새 기울이고 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옛시절로 돌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 속에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들의 산행을 소개해 보겠다.
우리들의 산행 출발지인 통도사 경내 극락암이다. 극락암에 차를 세우고 영축산부터 오른다. 원래 통도환타지아 근처의 지산리에서 오를 계획이었으나 너무 가파른 코스인지라 친구들을 위하여 이 코스로 변경하여 배려를 했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길은 오히려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경주로 내려오면서 피곤한데다 어제밤 2시까지 술 퍼마시다가 겨우 2,3시간 정도 잤으니 내심 산행이 걱정도 좀 되었다.
우리들의 산행 들머리에 있는 극락암은 통도사에서도 유명한 암자이다. 고려 충혜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1953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 불교의 큰 스님인 경봉스님이 이곳에 조실로 계시는 동안 수많은 수행승들이 모여든 것으로 유명하다. 하기야 한국 최대의 사찰인 통도사의 주요 암자 중에 유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만은.
경봉스님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망모한 뒤에 어머니를 목메게 그리다 삶과 죽음의 의문을 풀고자 15세에 통도사로 출가했다고 전해진다. 공부를 위해 스승의 부름에도 돌아오지 않고 직지사, 금강산 마하연, 안성 석왕사로 도망 다니며 참선에 몰두하다가 30살이 넘어서야 다시 통도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정진을 쉬지 않던 스님은 36살 되던 해 겨울, 갑자기 벽이 무너지듯 시야가 툭 트이면서 오묘한 일원상 만이 드러나는 경지를 체험하면서 깨달음에 달했다고 한다.
극락암에서 백운암으로 난 산길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피곤하겠지만 씩씩하게 잘도 오른다. 어제 술이 과했던 이정, 문성호와 몸살이 나 있는 단미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가 않은 것 같다.
영축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산길 중반 쯤 되면 가파른 오르막에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씩씩하게 올라가지만 얼굴들을 보니 땀이 보송보송 맺히기 시작하는 게 여의치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저 웃으며 중간에 서서 앞뒤를 번갈아 쳐다보며 오른다. ㅋㅋㅋ
역시 술을 많이 마신 이정과 문성호가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다. 그러게 작작 마시라지.
영축산 주능선인 함박재를 목표로 7부능선쯤에 있는 백운암. 역시 이곳도 위대한 선승들이 계셨던 것은 분명하겠지. 나 어릴 때부터 이 암자의 이름을 들었으니............해발 800m쯤에 자리하고 있는 백운암(白雲庵)은 652년(신라 진덕여왕 6) 조일(早日)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시대가 되어 순조 10년인 1810년 침허(枕虛)가 중창하고, 1970년대에 극락암에 있던 경봉(鏡峰)스님이 후원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한다. 문제는 그런 내용 이외에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들이 여기에 한분 두분 모여들기 시작하여 중요한 수도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경허, 만공스님같은 큰 선승들이.............경허, 만공이 누군가? 한국 근대불교의 최고의 선승들이 아니신가?
백운암은 의식이 중요시되는 일반 절들과는 달리 스님들이 더 큰 깨우침을 얻기 위한 보림의 장소였을 거라고 말들 한다. 근대 불교계의 큰스님으로 꼽히는 경허, 만공, 경봉 스님 등의 수도처이기도 하지만, 특히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이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초견성 장소이기도 하단다. 백운암은 최근에 중건의 역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이렇다.
어느 여성 보살님이 우리를 보더니 감주(식혜)가 있으니 공양하라고 하신다. 부처님이 내리시는 음료라고 하면서..........우리는 마침 목 마르고 단맛이 고픈 김에 한그릇씩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불교계에서 흔히 우리를 즐겁게하는 말들이, 공양, 보시, 시주 등이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도 흐뭇한 인정이 묻어나는 풍습이다. 영축산의 날씨는 아예 봄날이다. 하지만 정상부에 가면 모른다. 산은 인간의 마음만큼 변화무상하기 때문이다.
백운암을 떠나 부리나케 산을 오르는 우리들. 갈길이 멀기에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진도를 내 놓고 여유를 부려도 부려야 한다. 지금은 무조건 오르고 볼 일이다. 채종호의 호흡은 조금 가빠지지만 쳐지지는 않는다. 장익진과 전종성은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늘 산을 타고 운동을 한다니 그들은 강한 편이다.
드디어 나타난 주능선. 가장 뒷편에 솟아오른 봉우리가 영축산 정상이다. 뭔지 하얀 느낌이 있어 자세히 보니 상고대가 잔뜩 낀 것 같다. 그렇다면 경치는 장관일 것이다. 최근에 가물어 오늘은 눈이 없는 대신 산의 습기로 인해 생긴 가스가 밤에 얼어붙은 상고대....이른바 서리이다.......가 잔뜩 끼어 있다. 그것도 겨울산의 멋진 한 경치를 연출해 내기도 한다.
영축산 정상부를 카메라로 클로즈업 시켜보니 역시 상고대가 많지는 않지만 끼어있다. 설화는 아니지만 상고대를 볼 수 있기는 하겠다.
자! 빨리 주능선에 붙어야 한다. 그래야 여유도 생기고 힘도 덜 들 것이다. 영차! 영차! 장익진이가 빨리 오르기 시작해서 나도 같이 속도를 낸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친구들은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영축산 주능선의 안부 함박재. 여기서 좌측으로 시살등 방향이고 오른쪽으로 정상인 영축산정이 있다. 정상까지도 약 2km이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뒤이어 송산과 단미까지 모두들 함박재에 도착한다. 서브리더를 부탁한 후배 송산은 맨 뒤에서 팀을 관리하며 올라오지만 그도 요즘의 과로때문인지 컨디션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자, 이제 능선으로 영축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멀리 영축산정이 보인다. 상고대 숲은 헤치고 지나가야 할 것같다. 날카로운 저 능선은 큰 산줄기 같지만 분수령의 본류는 아니다. 백두대간 빼고는 가장 거대한 산줄기인 낙동정맥이 남으로 내려오다가 크게 솟은 곳이 영남알프스인데 낙동정맥은 신불에서 영축까지 왔다가 바로 이리로 오지 않고 통도환타지아가 있는 통도사 방면으로 급하게 내려간다. 그리고 통도사 정문을 지나서 경부고속도로를 질러 천성산으로 나아가서 밑으로 부산 금정산으로 흐른다.
영축산 너머로 신불평전과 함께 신불산이 버티고 서 있다. 오늘 우리는 저 신불산에 올랐다가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주능선으로 나아가다 보니 주변 나무들에 상고대가 피어 있다. 날씨가 푸근하고 눈이 부족해도 겨울산은 겨울산이다. 나름대로 경치는 다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촬영하는 동안 장익진이와 채종호가 내려간다. 익진이는 산 경험이 다소 있는 것 같은데 종호는 경험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말하자면 경험주의자 범주에 속하는 것 같다. 그는 새로운 경험에 기뻐하고 진취적이며 매우 액티브한 친구인 것처럼 보인다.
지나온 길을 배경으로 한 커트하는 전종성과 후배 송산(松山은 그의 아호이고 본명은 오익승이다)
아래로 한국 최대의 사찰인 통도사가 보인다. 여기저기에 암자들이 흩어져 있다. 앞의 낮은 언덕위에 파진 곳에 위치한 암자가 바로 우리가 출발했던 극락암이다.
능선 중에도 안부 비슷한 곳이 있다. 고도가 낮기 때문이다. 능선에서는 힘이 덜 들어서인지 모두들 힘을 낸다. 영취산은 점점 가까워진다.
함박재에서도 엄청나게 왔다. 저 멀리 불룩 솟은 봉우리 넘어서 부터 왔으니 제법 왔다. 그러나 신불산까지는 아직 반도 못 왔다.
영축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난다. 산 정상부가 너른 평원지대인데 동쪽인 통도사 쪽으로는 기암괴석이 솟구친 절벽지대이다. 동해 북부쪽에 이런 곳이 많은데 여기도 경동지괴와 같은 지형인가?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천황산(지금은 재약산으로 바뀌었다. 일본식 이름이라고 해서.....)이다. 그 아래에 유명한 밀양 얼음골과 표충사가 있다. 천황산에도 신불평전과 비슷한 사자평이 있다.
드디어 영축산(1,081m) 정상에 도달했다.
영축산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자리잡고 있는데, 일반인에게는 취서산, 영취산, 축서산으로 알려져 지명과 관련하여 혼란스러웠으나 지금은 양산시에서 영축산으로 지명을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에 근거한 것으로는 양산을 대표하는 통도사의 사적기등에 영축산으로 기록되어있는 것과 석가모니의 법화경 설파장소가 영축산이란 점, 이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때 이를 참고했을 것이란 점 등이 영축산으로 확정짓게 되었다 한다.
영축산이란 신령스런 독수리의 산이란 뜻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이 산을 쳐다보면 정상부가 꼭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영축산은 곳곳에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지고 무엇보다 영남 알프스의 중심 산으로 천년고찰 통도사를 품고있는 후덕한 산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이제 영축산을 내려서 신불평전을 지나 신불산으로 가야한다. 신불산은 신불평전도 그렇지만 동쪽으로 내려깎인 기암 절벽과 칼날릿지, 그리고 홍류폭포 등이 유명한다. 또 신불산 기슭에는 등억온천이 있어 부산, 울산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영축산을 지나는 길에 상고대가 우리를 반긴다.
왼쪽에 불룩 튀어나온 곳이 영축산인데 우리는 벌써 이까지 왔다. 평지에서의 발걸음은 이렇게 빠른 것이다. 지금 지나가는 평원이 이른바 신불평전이다.
오른쪽으로 내려다 보면 맨 뒤의 가장 긴 릿지가 영남지방에서는 유명한 아리랑릿지이다. 이 지역 암벽꾼들은 다 여기에서 바위를 배워 전국으로 나아가곤 한다. 나도 아리랑릿지를 4번이나 클라이밍했다. 아리랑릿지는 총 10봉까지 있어 각각 봉마다 다 달라 재미가 솔솔하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 수록 난이도가 높아서 심지어 5.13까지 되는 봉도 있다.
다시 뒤돌아보니 이제 서서히 신불평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른바 정상부가 너른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고 한다.
영남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유럽의 알프스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낙동정맥으로 갈라져 나와 백암산-통고산-명동산-주왕산-도덕산-단석산-백운산으로 나아와 낙동정맥에서는 가장 큰 산줄기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영남알프스이다. 계속하자면 백운산-고헌산-가지산-능동산-간월산-신불산-영축산.....그리고 통도사로 건너가 천성산으로 이어진다.
쉽게 말하면 낙동정맥이란 물을 가르는 산줄기로서 이 산줄기 서편으로는 낙동강이고 동편으로는 동해로 빼내는 수많은 강들을 품고 있는 산줄기이다. 경주 같으면 동으로 형산강, 울산 같으면 동으로 태화강이 된다. 영남알프스는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경남 밀양과 양산의 5개 시군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높은 봉우리들과 산줄기는 수려한 경관으로 인하여 인기있는 등산코스가 많으며, 일부는 가지산 도립공원(신불이 가장 중심이지만 높이는 가지산이 가장 높기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인근 계곡은 여름철 물놀이 명소로도 유명하여, 펜션이나 수련회장이 있으며, 또한 주변에 이름높은 사찰들이 분포하고 있다.
드디어 가까이 나타난 신불산. 정상부는 안개에 가려있다. 사실상 영남알프스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중심 산으로 높이도 1,208m로 가지산(1,240m)에 이어서 두번째로 높다.
다시 약간 내리막으로 안부에 내렸다가 신불산을 오른다.
신불산을 오르기 직전에 한 커트한다. 아직까지는 팔팔들하다. 이제 신불산을 오르는 중간에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가장 몸이 빠른 익진이가 먼저 내려가기 시작한다.
신불산 정상 직전의 어느 장소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꺼내 놓는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보온도시락통을 가져 왔고 단미가 새벽에 밥을 지어서 정성스레 담았다. 단미가 반찬도 여러가지 만들었는데 송산이 가져온 쇠고기양념구이에 가려서 표시가 없다.
친구들을 대접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특별히 가지고 온 경주의 술, 화랑...........화랑은 경주 주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데 순 찹쌀로 빚어낸 술로, 정종류로서는 고급 술이다. 가격도 비싸다. 마시면 술의 액이 입에 쪽쪽 달라붙는다. 역시나 어젯밤 몸을 추스리느라 금주했던 종호가 병 채로 나발을 분다. 물론 종호는 취했다.
잘도 익어가는 쇠고기양념구이. 원래는 쇠고기 샤브샤브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조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바쁜 일정을 감안하여 쇠고기양념구이로 대체했다.
이제 서서히 배들이 불러간다. 모두들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신불산 정상에 올랐다.
신불산은 높이 1,209m. 낙동정맥의(옛날 말로 치면 태백산맥 밑 꼬리)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주위에 간월산(肝月山:1,083m)·취서산(鷲棲山, 일명 영축산 1,081m) 등이 있다. 서쪽 사면은 완경사로 단양천·배내천이 각각 발원하고, 동·북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태화강의 지류와 작괘천이 각각 발원한다. 쉽게 말하면 낙동강과 태화강의 물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북서쪽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을 따라 산정평탄면이 나타난다. 협곡과 울창한 수림 등이 어우러진 경관이 빼어나며, 이 일대가 1983년에 신불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면적 11.7㎢). 작괘천은 신불산·간월산 사이에서 흐르는 태화강의 상류이며, 강물에 의해 침식된 기이한 모양의 넓은 반석들이 펼쳐져 있다.
봄에는 숲에 벚꽃이 울창하며, 계곡을 따라 4㎞를 가면 홍류폭포가 있다. 홍류폭포는 35m의 물기둥 아래 자욱한 물안개는 심산계곡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작천정은 예로부터 선비들이 풍류를 읊던 곳이며, 계곡의 맑은 물, 기묘한 형태의 암반,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한층 더 조화를 이룬다.
등억리 간월사지에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제370호)이 있으며, 현재 등억온천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산록의 산남면 교동리에서 남쪽의 방기리에 이르는 일대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농경지대이며, 가천·신천 등 소규모의 저수지들이 많이 있다. 동쪽의 저지대를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경주-양산 간 국도가 지나고 있다.
정상에 있는 적석탑. 단미가 오랜만에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몸살중인 상태로 등반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불산 정상에서 바로 동북쪽으로 바위능선이 이어지는데 이른바 칼날릿지이다. 우회로가 있지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위 릿지로, 즉 칼날같은 바위 첨단을 밟고 지나가려 한다. 가끔 사망 사고가 있어 조심스럽지만 신불 등반에서 이 칼날릿지를 빼면 앙코 없는 찐빵이 되기에 기어코 가려한다. 술을 많이 먹은 채종호가 걱정이 된다. 이 칼날릿지는 신불릿지, 신불공룡능선, 칼바위라고도 불리우는데 바위꾼들에게는 칼날릿지로 통한다.
칼날릿지로 내려서기 전의 전종성. 내 친구 종성이는 산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이다. 나보다는 늦게 산에 입문했는데 요즘은 예전의 나와 비슷한 산에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운동 삼아 산에 오는 하이커가 아니라 산의 맛을 아는 친구이다. 오늘 등반지인 영남알프스도 그가 정한 것이다. 이곳은 서울에 사는 이들이 오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칼날릿지로 내려가는 사람들.
설화같이 보이지만 설화가 아니다. 나무에 핀 상고대이다. 상고대, 즉 서리이다. 날씨가 풀려 산에서 습기가 증발해 가스가 되자 밤에 그 가스가 얼어 나무에 붙은 것이다. 신불은 올 때마다 모습이 다르다. 어떤 때에는 설화, 또 어떤 때에는 빙화, 이번에는 상고대이다.
뒤 돌아보니 벌써 신불산 정상이 저렇게 멀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칼날릿지 등반에 나서는 단미. 그녀는 나의 등반 파트너이다.
자! 우리 친구들도 한 커트. 좌로부터 채종호, 장익진, 전종성...........이제 50대 중반이다.
한 구간 지나 안부 밟고 다시 새 구간으로 오르는 우리 팀.
오늘은 눈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는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다. 좌측이 천길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측 사면으로 타라고 지시한다. 가장 잘 따르는 친구가 채종호이다. 산만한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집중을 잘 하는 친구이다.
칼날릿지 한 가운데에서 취하는 채종호의 퍼포먼스. 우측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정말로 위험한 구간. 한발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간간이 이 구간에서 추락해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너무나 위험한 구간은 우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라고 지시한다. 왼쪽은 낭떠러지지만 우측은 비교적 완만하기 때문이다.
이제 칼날릿지가 끝이 나고 릿지 끝 부분의 갈림길에서 우측 자수정동굴 방면을 버리고 좌측 홍류폭포 방면으로 내려간다. 이 구간은 너무나 가팔라 평소에는 피하는 구간이지만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내려오는 길에 클라이밍 코스가 여러군데 있다. 하지만 관계 없다. 우리 팀에는 채종호라는 유격대장이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는 빨간 모자를 꺼내어 쓴다. 위에 보이는 것이 첫번째 하강 구간.
세번째 하강 구간을 내려서는 단미.
홍류폭에 가까워질 수록 길은 완만해 지고..........
마지막으로 홍류폭포로 내려서는 채종호와 서브리더 송산
홍류폭포에서 기념촬영하는 무학동 친구들. 모두들 수고했다. 그런데 검은 안경을 낀 빨치산도 하나 끼어있네. ㅋㅋㅋ
한달에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 탓에 아름다운 홍류폭포에 낙수가 없다. 홍류는 비가 오면 바로 주변을 신천지로 만드는 멋들어진 폭포인데 지금은 개코다.
이제 여유있는 표정으로 홍류폭포에서 간월산장으로 내려가고 있는 팀
라스팅은 경주에서 한다. 명태, 낙지 등의 해물과 생선 곤(내장)을 넣어 끓인 특이한 해물탕으로 밥과 술을 취하며 곧 있을 우리들의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