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17
어제도 산에 갔고 오늘도 산에 갔다. 오늘은 두 시간 가까이 연습하다가 왔다. 그제도 갔던가. 산에 못 가더라도 주차장에서 날마다 연습한다. 23일 국악방송에 나가는 것 때문에 신경이 자꾸 쓰인다. 나가서 창피나 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극복은 연습밖에 달리 없다. 목이 예전과 다르다. 그동안에는 연습을 시작하면 목이 쉬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연습을 해야 쉰 목이 풀어지고 고음이 난다. 오히려 자꾸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야 뭐 아직 멀긴 했지만 그래도 깜냥에 짐작하기로, 소리꾼들 말이 소리 시작하고 삼십 분쯤 지나야 목이 풀어지고 소리가 제대로 나온다는 말이 이런 건가 한다.
연습하다가 오줌을 눴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날 푸근해서 동네나 길에는 내린 날 이미 다 녹아버렸지만 산에는 아직 그대로 쌓여있다. 하얀 눈 위에 오줌을 누니 노르스름한 오줌이 눈에 젖어 꼭 탱화 그릴 때 살 치는 분황색 닮아 곱더라. 온 천지사방 하얀 데다 분황색이 꼭 봄 온 것 같더라.
눈이 녹지 않아 산에 오를 때도 미끄러웠는데 내려올 때는 저녁때가 다 되어 더 얼었는지 무척 미끄러워졌다. 내리막길 내려오는데 미끈미끈한 데서 미끄러질 뻔 하다가 겨우 중심 잡을 찰라 또 휘청 미끄러져 퉁퉁퉁퉁 종종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오기를 몇 번, 약수터 다 내려와서 마지막 내리막길에서 기어이 쿵! 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졌다. 손에 보온병과 적벽가 사설집을 들고 있었는데 사설집을 놓쳤더니 이십여 미터나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 저만치 가서 멈춘다. 잘못했다가는 내가 사설집 꼴 될 뻔했다. 몇 번 휘청거리고 종종종 걸어서 그런지 집에 돌아오니 오금이 당긴다.
2010.2.18
국악방송 나가는 거 주변인 인터뷰가 있어서 학원에 3시에 만나 인터뷰를 했다. 함께 배우는 동료, 전공자 동무들 그렇게 세 명이 인터뷰를 해주었다. 나는 인터뷰 하지 않지만 함께 있어달라고 해서 갔다. 첫인상을 묻자, '몸 말라 소리가 날카로웠는데 물론 지금도 몸 마른 건 여전하지만 소리에는 살이 쪘다', '처음 올 때 늘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고 있어서 전공자인 줄 알았다.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 전공자로서 부끄럽다', '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개 좋은 이야기만 해주기 십상인데 물론 칭찬도 해주시지만 문제점을 지적해줘서 많은 도움이 된다' 등등, 돌아가며 나에 대해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서 낯이 간지럽고 몸 배배 꼬여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왔더니 끝나있다.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는데 다들 일 있고 바쁘고 약속 있다고 한다. 수업 총무와 함께 복칼국수를 먹었다. 저녁 먹고 학원에 돌아와 소리연습을 더 했다. 고수를 구하지 못해 고민했는데 학원 총무가 박회장님한테 전화해서 부탁을 했다. 말끔히 해결했다. 옆에서 듣는데 말도 참 잘한다.
2010.2.19
어제 늦게 소영이 추가합격 연락이 와서 정신이 없었다. 소영이는 이미 낸 등록금을 되돌려 받고 새로운 데로 가고 싶어 했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소영이 의견을 따르자 했더니 아이 엄마와 연락해 보니 조목조목 따져 반대다. 딱히 할 말 없이 조리 있게 이야기하니 다 수긍이 간다. 내가 소영이와 이야기하고 다시 소영이와 엄마가 이야기해서 그냥 중국어과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오늘 아침에 서류 만들고 학교 찾아가 환불신청해서 받고 다시 송금하려고 불화반 수업에 못 간다고 연락했다가 아침에 다시 연락하고 수업 갔다. 새로운 초를 받았다. 보살도. 조선불화 형식이고 채색도 조선불화 방식으로 할 거라고 한다. 고려불화가 더 우아하고 격이 있다 생각되지만 조선불화를 배워놓는 것도 필요하다 싶다. 오늘은 지난주에 배접한 위에 묽은 풀로 포수를 하고 새로 준비한 큰 화판에 배접을 새로 했다. 새로운 초를 받았으니 또 새로운 초 연습을 바삐 해야 채색에 적응을 할 것이다.
목이 많이 쉬었다. 목이 부었는지 묵직하고 뻑뻑하다. 염증이 심해져 목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좀 쉬어야 할 것이다.
2010.2.20
저녁에 아이들과 이마트 갔다. 지난번에 산 탱화 안료 담아놓을 반찬통 10개가 작아서 바꿔야 하는데 오늘로 일주일 꽉 찬 날이라 오늘 아니면 못 바꾼다. 아이들 새로 쓸 공책과 스케줄러를 사고 잡채, 샐러드, 장어구이를 샀다. 잡채 참 맛없다. 얼마 전부터 자꾸 잡채 생각이 났는데 설 때 보니 너무 비싸 안 샀다. 오늘은 저녁 세일이라 샀더니 입에 안 감긴다. 만들어 먹었으면 딱 좋겠는데 이제 자꾸 꾀가 나서 음식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어구이는 건희가 장어초밥 하나에 450원 한다고 그거 사겠다고 갔는데 다 떨어져 못 사고 양념된 장어구이 두 마리 꼭 사고 싶다고 해서 샀다. 내내 좋아하더니 돌아오며 '집에 밥 없다' 했는데도 '밥 있다고 해서 뜨거운 밥에 장어구이 먹으려고 했는데 왜 없느냐'고 삐친다. 툴툴거리다 제 방 들어가 이불 둘러쓰고 누웠다. 밥을 지어 살살 달래 밥과 함께 먹였다. 쓸개 또 빼놓고 아양을 떨며 얼러 겨우 먹였다. 한 입 먹더니 좋아한다. 그 모습 보니 나도 좋고.
2010.2.23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이라는 프로그램 ‘내일路’ 코너에 나갔다.
적벽가 중 새타령을 불렀다.
양청養淸 / 청광淸曠
맑음을 기르다/ 청백하고 공허하다, 또는 맑고 밝다
향나무, 알마시카, 은행나무, 밤나무 12조각
양각 음양각
가로51cm 세로77cm 두께20cm(받침 제외)
가로100cm 세로77cm 두께20cm(받침 포함)
느티나무 갤러리
http://mog.cafe24.com/
첫댓글 온고지신의 전형을 보는 듯 좋은 작품 즐감했습니다.
제 서각 선생님이 두 분인데 한 분은 전통서각하시는 분이고 한 분은 현대서각하시는 분이라 그 영향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점도 그렇고요. 옛 것을 익혀 새로이 드러낸다, 그거 좀 어렵긴 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