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오스본은 1970년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를 통해 하드 록/헤비 메탈의 초석을 쌓았고, 이후 독립하여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1980년대 헤비 메탈의 원형을 제시한 보컬리스트였다. 그의 보컬은 하이 톤에 얇을 뿐만 아니라 음역대도 그리 넓지 않고 테크닉도 뛰어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일종의 핸디캡이 될 수도 있는 점들을 극복하고 그는 대표적인 메탈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카리스마와 쇼맨십 때문이었다. 그는 폭발적이고 현란한 보컬이 아니라 악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듯한 음산한 분위기의 보컬을 들려주었고, 동물을 물어뜯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극단적 찬사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오지 오스본(본명: John Osbourne)은 1948년 12월 3일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노동계급 출신의 자녀들이 그렇듯 그는 15살에 의무교육을 마친 후 학교를 떠나 사회에 뛰어들었는데, 여러 저임금 직업을 전전하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밴드에 가입하게 되면서 뮤지션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960년대 말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 기타),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 베이스), 빌 워드(Bill Ward: 드럼)의 밴드에 보컬리스트로 가입하였는데, 이 밴드가 훗날 헤비 메탈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블랙 사바스였다.
블랙 사바스는 1970년대에 어둡고 헤비한 사운드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과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며 하드 록/헤비 메탈의 파이오니아 역할을 했다. 이 시절부터 오지 오스본은 알콜과 마약에 탐닉하였고 호텔 방과 각종 기물을 부수는 등 말썽을 부렸으며(이런 일은 나중에 메탈 밴드들의 자연스런 행동거지가 되었다) 사타니즘 숭배자로 공격받았다.
1978년 8집 [Never Say Die]를 끝으로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된 오지 오스본은 콰이엇 라이엇(Quiet Riot)의 무명 시절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Randy Rhoads), 레인보우(Rainbow) 출신의 베이시스트 밥 데이즐리(Bob Daisley), 유라이어 힙(Uriah Heep) 출신의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Lee Kerslake)를 영입해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는 1980년 가을 영국에서, 그리고 1981년 초 미국에서 발매되었다.
싱글 커트되어 히트한 「Crazy Train」, 불후의 헤비 메탈 명곡으로 인정받는 「Mr. Crowley」, 낭만적인 발라드 「Goodbye To Romance」 등을 수록한 데뷔 앨범은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는 뛰어난 메탈 마스터피스 앨범이었다. 오지 오스본은 블랙 사바스 시절보다 더 자유롭게 표현력을 발산하였고, 신예나 다름없는 랜디 로즈는 리프와 솔로 모두를 빼어나게 연주함으로써 일약 기타리스트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강렬하고 거칠지만 의외로 깔끔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1980년대 메탈계에 하나의 전범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묵시록적인 「Revelation(Mother Earth)」과 짧은 클래식 기타 연주곡 「Dee」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듯 랜디 로즈의 클래시컬한 성향이 메탈에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1백만 장 이상 팔려나간 데뷔 앨범의 성공에 고무된 오지 오스본은 투어에 나서는 한편 재빨리 후속작 작업을 해나갔다. 녹음 과정에서 베이시스트 데이즐리와 드러머 커슬레이크가 탈퇴했고, 그 자리는 콰이엇 라이엇 출신의 베이시스트 루디 사조(Rudy Sarzo)와 블랙 오크 아칸사스(Black Oak Arkansas), 팻 트레버스 밴드(Pat Travers Band) 출신의 드러머 타미 앨드리지(Tommy Aldridge)로 대체되었다.
1981년 발매된 2집 [Diary Of A Madman]은 좀더 진보한 앨범이지만 크게 보아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리없는 작품이다. 첫 곡 「Over The Mountain」은 전작의 첫 곡 「I Don't Know」의 후속곡이라 할 수 있었고, 약물 찬가 「Flying High Again」은 「Crazy Train」의 싱글 히트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물론 이 앨범의 압권은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된 타이틀 곡 「Diary Of A Madman」이었다. 전작의 「Revelation(Mother Earth)」과 마찬가지로 6분이 넘는 러닝 타임에 서사적인 구성을 담고 있는 이 곡은 클래식과 메탈을 결합하려는 랜디 로즈의 의지가 만개한 곡이었고, 어둡고 음산하고 악마적인 오지 오스본의 이미지도 극대화한 트랙이었다.
[Diary Of A Madman] 역시 크게 히트했다. 차트 상위권 도약과 플래티넘 획득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오지 오스본의 1, 2집은 공교롭게도 새로운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를 영입한 블랙 사바스의 앨범들과 비슷한 시기에 나와 경쟁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오지 오스본이나 블랙 사바스 모두 성공을 거두었지만, 블랙 사바스에서가 아닌 솔로로서 오지 오스본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으므로, 오지로서는 절치부심 끝에 복수를 한 셈이었다.
블랙 사바스 시절부터 악마적인 이미지가 강하던 오지 오스본은 이 시기에도 변함없이 말썽과 논란을 불러왔다. 우선 랜디 로즈의 존재로 인해, 밴드 내에서 오지는 악마, 랜디는 천사의 이미지로 대비되었다. 그리고 투어를 다니면서 국가적인 기념비에 오줌을 눠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무대에 날아온 박쥐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물어뜯기도 하는 등 '건전한 성인 남녀들'(=부모들)이 싫어할만한 짓을 끊임없이 저지르고 다녔다. 매스 미디어에서는 이런 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대서특필했고, 즉시 논란으로 들끓곤 했다. 그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그리고 사탄을 숭배한다며 보수층에서 오지 오스본을 계속 공격했지만 그에 비례해 음반 판매량은 수직상승 하였다.
그렇지만 승승장구하던 오지 오스본의 발목을 잡는 사고가 일어났다. 1982년 3월 19일, 전미 투어를 돌던 중 플로리다에서 경비행기 사고로 랜디 로즈가 사망한 것이다. [기타 플레이어]지의 최우수 신인 기타리스트에 선정되기도 했고, 1980년대 메탈계를 이끌 전도유망한 기타리스트로 꼽히던 그였기에, 또 막 개화한 재능을 맘껏 펼쳐보지도 못한 겨우 만 25살에 불과했기에 음악계의 충격과 아쉬움은 컸다. 특히 유능한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였던 그를 잃은 오지 오스본의 충격과 절망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충격 속에서도 남은 투어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던 오지 오스본은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의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를 잠시 세션으로 고용해 투어를 끝마쳤다(투어에서는 블랙 사바스 시절의 곡만 연주했다). 이 때의 투어를 두 장의 LP에 갈무리하여 라이브 앨범 [Speak of the Devil]을 발매한 후, CBS/에픽 레코드와 계약하고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는 CBS 레코드와의 계약 장소에서 다시 한번 난장판을 만들고 (이번에는)비둘기를 물어뜯어 매스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후, 오지 오스본의 곡 「Suicide Solution」을 듣고 자신의 자식이 자살했다면서 한 학부모가 그를 고발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물론 소송에서 오지 오스본이 승리하긴 했지만.
오지 오스본은 일본계 기타리스트 제이크 이 리(Jake E. Lee)를 랜디 로즈의 후임으로 영입하고, 콰이엇 라이엇으로 다시 돌아간 루디 사조의 빈 자리에 밥 데이즐리를 다시 불러서 1984년 정규 3집 [Bark At The Moon]을 내놓았다. 다분히 랜디 로즈 시절의 두 장의 음반을 의식한 이 앨범은 타이틀 곡 「Bark At The Moon」이 히트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이어나갔다. 구조상 「Mr. Crowley」를 재현하고자 했음에 틀림없는 타이틀 곡은 오지가 제이크 이 리에게 랜디처럼 연주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루머를 입증하는 것만 같은 트랙이었다. 그 외에 오케스트레이션이 달콤한(그래서 골수 팬들에게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발도 산) 발라드 「So Tired」도 담겨 있다.
1986년 발매한 4집 [Ultimate Sin]은 베이시스트를 필립 수잔(Philip Soussan), 드러머를 랜디 카스틸로(Randy Castillo)로 교체하여 만든 것이었다. 싱글 「Shot In The Dark」가 히트했지만,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전작들에 못 미쳤다. 1987년 랜드 로즈 사후 5주기를 맞아 헌정 라이브 앨범 [Tribute]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 담긴 실황은 랜디 로즈가 참여한 마지막 투어 연주들 가운데서 추린 것이었고, 1집 때 녹음하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는 「Dee」의 스튜디오 아웃테이크(본 앨범에 실리지 않고 삭제된 부분)가 실려 있어 랜디의 목소리와 녹음 과정을 들려주었다.
한편 제이크 이 리가 탈퇴하였고, 그 자리를 잭 와일드(Zakk Wylde)가 메웠다. 잭 와일드는 랜디 로즈를 연상시키는 외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8년 다시 밥 데이즐리를 베이시스트로 끌어들여 5집 [No Rest For The Wicked]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호평을 받으면서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Miracle Man」은 오랫동안 오지를 사탄의 자식이라고 비난하던 TV 전도사 지미 스와거트(Jimmy Swaggart)를 조롱하는 곡이었다. 이 앨범의 후속 투어를 EP에 담은 라이브 앨범 [Just Say Ozzy](1990)가 뒤를 이었다.
1991년에 나온 6집 [No More Tears]는 당시 오지 오스본의 은퇴작으로 간주되었다. 그가 직접 '이제는 나이도 많아서 힘에 부치기도 하고 가족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요지의 발언도 했기 때문이다.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 「Mama, I'm Coming Home」 「Time After Time」 등이 히트한 이 앨범은 랜디 로즈 시절 이후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았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I Don't Want To Change The World」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상을 받기도 했다. 뒤이어 이 앨범의 투어에서 음원을 가져온 라이브 앨범 [Live And Loud]가 발매되었다.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때마침 얼터너티브 열풍이 불어 메탈이 몰락하기도 해서, 그것으로 오지 오스본의 계속된 성공은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1995년 신작 [Ozzmosis]가 발매되었다. 비판적인 평가 속에서도 플래티넘 획득은 문제없었다. 이후 오지 오스본의 행보는 보컬리스트로서보다는 페스티벌 기획자(이자 주최자)로서였다. 얼터너티브 진영의 롤라팔루자 성공에 자극받았는지, 그는 1996년 메탈 페스티벌인 오즈페스트(Ozzfest)를 조직했다. 1996년에 2번의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오즈페스트는 1997년에는 더 규모가 커져서 판테라(Pantera),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재결성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등으로 이뤄져 전미 투어 형식으로 순회공연을 벌였다. 1997년의 공연은 여성 음악 페스티벌인 릴리스 페어(Lilith Fair)에 이어 두 번째로 성공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이후 현재까지 오즈페스트의 상업적 성공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오즈페스트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있다. 2001년 오지 오스본의 신보 [Down To Earth]가 발매되었고, 조만간 오리지날 블랙 사바스의 신보도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