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교를 입학하면서 교련문제가 닥쳤을 때가 나의 신념에 대한 첫 번째 시험이었던 것 같다. 자퇴라는 강수를 두고 압박하는
선생님과 운동장에 가만히 서있는 우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는 동급생들의 시선들을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한번도 학교에 찾아와 설명하진 않으셨지만 내가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많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란 신념 때문이었고 나약한 줄만 알았던 나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중립 지킬 때였는데 그 때에도 연병장에 1,000여명의 신병들 사이에서 맨 앞에 홀로 서 있으면서 모든 이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서 있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뛰노는 심장 박동수 만큼 흥분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이건 내 신념의 표현이고 시험이기에 그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육군교도소, 소년교도소를 거쳐 일반교도소에서 안정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특히 소년교도소에서는 초기에 체벌과 기합이 늘 다반사여서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신념이란 모든 두려움도 극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 과거 2차 대전 당시나 현대 아프리카 등에서 충절문제에 직면했던 형제자매들, 수혈문제로 죽음에 직면했던 형제자매들의 입장도 똑같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커다란 신념의 시험이었으리라 …
예전에는 신념에는 올바른 신념과 잘못된 신념이 있고 내가 가졌던 신념이야말로 올바른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경우들을 통해서 올바른 신념이란 것을 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신념을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으로
구분 짓기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수가 올바르다고 인정하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살인마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잔인하게 여러 명을 살인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열에 아홉은 반드시 사형을 시키는 것이 사회를 위해 바른 일이라는 신념을 가질지 모르나 단 한 명이라도 어떤 경우라도 생명을 인간이 사형으로 심판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아무리 다수라 하더라도 다른 한 사람에게 틀렸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람의 양심에 떳떳한 것이 올바른 신념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상대적 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사회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 등의 신념의 충돌을 목격했고 정치인들의 소위 양심적이라는 신념의 충돌을 늘
목격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들의 신념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가치관과 생활철학들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위의 모든 경우가 적절한 예라고 장담할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올바름을 규정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올바른 신념을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JW 정보카페에서도 여러 문제에서 각자가 주장하는 생각과 신념들이 다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두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비아냥거리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 올바른 생각과 신념이라고 감히 누가 결정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얄팍한 검색으로 살펴본 바로는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신념의 구분을 올바른 신념과 잘못된 신념으로 구분 짓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보는 각자의 주관적인 측면이 강해서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구분 지을까요? 엘리스의 성격이론에서는 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신념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합리적인 신념이란 무엇 입니까?
엘리스는 자신이 바라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생각이나 신념이라고 하였습니다. 합리적 신념을 가지면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먼저 자기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며 적절하고 바람직한 감정과 행동반응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목표를 위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목표가 어떤 것이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행동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타인의 생각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합리적인 생각이 아닙니까?.
그럼 비합리적인 신념이란 또 어떤 의미로 정의합니까?
역시 엘리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란 자신이 바라는 목표달성에 방해가 되는 생각이나 신념으로서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개인의 일반, 인생,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절대주의적이고 완벽주의적이고 융통성이 없는 비현실적인 신념들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비실제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단적인 경향이 강하여 타인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아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건전한 목표달성을 방해하는 역할을 초래하여서 결국 우울, 불안, 죄책감, 수치심, 분노와 같은 문제를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은 자신에게도 참으로 비합리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신념을 이해하기 쉽게 구분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상대방의 행동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비합리적신념) '∼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신념)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갈등의 원인인 오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비합리적신념) '그 친구는 비난받아 마땅해.' (합리적신념) '그 친구는 나와 다른가봐.
엘리스가 심리학적으로 성격이론을 연구하고 정립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의 신념에 의해 인간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스스로의 정신적인 압박을 가함으로 정서적, 행동적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과 타인의 생각과 신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강요했을 때(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합리적 신념을 합리적 신념으로 대치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에서든 굳이 누구의 생각이나 신념이 올바르냐 그렇지 못하냐 또는 누구의 행동이 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는 것은 지극히 의미 없는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합리적 신념을 갖도록 훈련하는 것이야 말로 합리적인 일이지 않을까요?
첫댓글 과연 세상에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신념이라는 것이 있을까에 대한 문제,,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