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2013. 5. 16.(목요일)
‘불초소생’은,‘제가 아버지의 큰 뜻을 따라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씁니다.
안녕하세요.어제 편지에서 소개했던 글은국민대학교 이의종 교수가 아니라 이의용 교수님이 쓰신 거라고 합니다.이름을 바로잡습니다. 오늘이 목요일이지만, 내일이 부처님오신날이라서 주말 기분이 나네요.저는 내일이 아버님 제사라서 고향에 갑니다.아버님이 떠나신 지 벌써 19년이 지났습니다.제가 대학교 다닐 때, 예순네 살 때 돌아가셨으니 좀 일찍 가신 거죠.저는 그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소양배양하고 다닐 때였습니다.(소양배양하다: 나이가 어려 함부로 날뛰기만 하고 분수나 철이 없다.)지금도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고 봅니다.아직도 서털구털 하지만, 그래도 함부로 지껄이지는 않으려 힘씁니다.(서털구털: 말이나 행동이 침착하고 단정하지 못하며 어설프고 서투른 모양)오늘은 예전에 보낸 편지 하나 붙이면서우리말 편지를 갈음합니다.고맙습니다.[불초소생]오늘은 ‘불초’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흔히 자기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불초소생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합니다.“불초소생인 저를 뽑아주셔서 어쩌고저쩌고...”“불초소생인 제가 막중한 임무를 맡아 어쩌고저쩌고...”보통 정치인이나 고관대작들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근데 이 ‘불초’라는 낱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자식과 임금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불초(不肖)는아니 불, 닮을 초 자를 써서,자기의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는 말로, 자식이 부모에게 자기를 낮추어 말하는 것입니다.또, 임금이 선왕을 닮지 못해 큰 뜻을 따르지 못한다는 겸손한 의미로만 씁니다.맹자(孟子) 만장(萬章)편 상권에 있는 말이죠.따라서,‘불초소생’은,‘제가 아버지의 큰 뜻을 따라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뜻으로 씁니다.부모님께 드리는 이런 겸손한 말을,시궁창에 처박혀 사는 정치인들이 세 치 혀로 언죽번죽 지껄이면 안 되죠.돌아오는 일요일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입니다.아버지는 생전에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도록 저를 가르치셨죠.오죽했으면,7대 독자인 제게,“남들이 진정으로 원하면 네 XX도 떼 줘라.”라고 하셨으니까요. 자신에게 소중한 것도 남들이 필요하다면 뭐든지 내주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저는 못 따르고 있습니다.남을 챙겨주고 배려하기는커녕,작은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부질없는 욕심에 마음 아파하고...이런 ‘불초소생’이앞으로는 남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려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드리러아버지를 뵈러 갑니다.
앞에서 예전에 보낸 편지를 붙였기에... 오늘은 더 붙이지 않습니다. ^^*
글 성제훈
출처: 문학과 빛의 산책 원문보기 글쓴이: 신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