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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east912/206
크게는 중국티벹어족으로 분류 (티벹미얀마어족을 제와하고 중국어족으로 다룸).
중국어 방언 들은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 방언으로 취급하느냐, 다른 언어로 취급하느냐, 하는 데에 논란이 있다.
01. 북방화 (北方話) - 관화(官話): 중국 북부와 서부 - 약 8억명
1) 베이찡어 北京語: 중국, 대만 (타이완), 싱가포르의 표준 공용어. 북경어
2) 진어 晉語: 싼시성 山西省 에서 사용
3) 둥베이어 東北話 / 东北话: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 지역에서 사용. 동북화
02. 훼이어 (徽語 휘어): 우어 계열로 보기도 함 / 안후이성 安徽省 - 320만명
03. 우어 (吳語 오어): 중국화한 알타이계 언어 설 / 강서성 소주, 상하이 및 항저우 등 - 약 9000 만명
04. 간어 (贛語): 장시성 江西省에 약 2000만명
05. 하카어 (客家語 객가어): 당송시대의 중국어 계승설, 묘족과의 혼혈설 / 광둥성 북부와 해외의 중국인 - 약 3500 만명
06. 샹어 (湘語 상어): 후난성 湖南省 - 약 3500만 명
07. 민어 (閩語): 중국화한 고대 월나라 (민월) 계통의 언어설 / 푸젠성 福建省 과 대만 - 약 5000 만명
1) 민둥어(閩東語), 푸톈어(莆仙語), 민중어(閩中語), 민베이어(閩北語), 민난어(閩南語) 등으로 분류
2) 민난어는 다시 조주어(潮州語), 해남어(海南語), 복건어 (福建話 푸젠화)로 나뉘고
3) 복건어 는 다시 장저우어(漳州語), 대만어(臺灣語), 샤먼어(廈門語), 천주어(泉州語)로 나뉜다.
08. 광둥어 (粵語 월어): 중국화한 고대 월나라 (남월) 계통설 / 홍콩, 마카오, 광둥성, 화교 - 약 8000 만명
09. 핑어 (平語 평어): 중국 남서부에 거주하는 중국화한 좡족 들이 사용 (약 200만명). 광둥어 계열
10. 둥간어 (東干語 동간어):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등지에서 둥간족 들이 사용
중국어 분포도
하카어 (客家語)
하카어 = 客家語 = 객가어 = Kèjiāhuà
당송시대의 중국어 계승설, 묘족과의 혼혈설 / 광둥성 북부와 해외의 중국인 - 약 3500 만명
1. 삶터
- 중국의 광둥성 동부, 장시성 남부, 푸젠성 서부, 광서성 동부
- 타이완 섬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뻬이 지하철에서 사용되는 네 가지 방송 언어 중의 하나임.)
- 해외의 화교에게도 많이 쓰임.
- 객가어 사용지역 中國 大陸 分布: 廣東(2100万) 江西(900万)福建(500万)广西(500万)台灣(200万)
- "민"은 복건성 "월"은 광동성 "감"은 강서성을 의미. 강서성의 감주는 객가인의 고향이라 부른다.
2. 역사
- 당나라 및 송나라 시대에, 북방 유목민의 침입을 피해, 많은 중국인들이 남하. (당시 중국어의 특징 보전)
- 청나라 초기에 대만으로 일부 이주 시작
- 1971년 홍콩에서 세계 객가인 단체들의 모임인 "세계 객가친속근친대회" 개최 (이후 격년 개최)
- 최근 이등휘 총통 시절에, 대만의 공용어에 포함하자는 법안이 제출된 적이 있다.
3. 특징
- 객가족 의 원류는 난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한 한족과 현지 묘족 간의 혼혈일 것으로 추정된다 (음운, 고유어휘, 풍습 등)
- 당나라 및 송나라 시대의 중국어의 특징이 아직까지 보전되어 있다.
- 여러 군데 산포해 있기 때문에 주위 언어의 차용어가 많아 지역별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4. 명사
- 홍수전 洪秀全: 태평천국의 창시자
- 손문 孫文 쑨원:
- 등소평 鄧小平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 이등휘 李登輝 리덩후이: 전 타이완 총통
- 아키노 Corazon Aquino: 전 필리핀 대통령
- 이광요 李光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5. 가설
- 객가인은 고대 중원어를 구사하는 진짜 한족으로 여겨지는데 SOV의 언어구조를 가졌다고 함.
- 진나라의 후손들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라(진한)가 진나라의 후손이고 이들이 고조선 유민(한)과 합쳐지면서 진나라와 비슷한 언어를 가졌다고 사서에서도 나와있습니다. 부여계와는 언어가 약간 다르다고 나와있죠. 그후로 중원의 나라와 진한이 소통할 때 백제의 통역이 필요했다는 말로 미루어 진나라 말은 우리와 비슷한 알타이 계통이었고 그 후의 시노-티벳계열 나라들과는 언어가 같지 않았을거라 상상해봅니다.
- 전진의 황제 "부견"이 4c이전의 신라와 지금이 틀린데 왜 그러냐고 신라 사신에게 물어보니 중국 왕조가 바뀌듯 신라도 상황이 변해가기에 그렇다고 답하는데....전진황제가 신라 내부사정을 궁금해 하는 것도 서로 비슷한 혈통의 나라들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진은 감숙성 저족이 세운 나라로 진나라도 동이족이 감숙성으로 이동해 그곳 유목민들과 합쳐지면서 세워진 나라잖아요? 그들간에는 같은 조상을 둔 후손이라는 연대감이 있었던게 아닐까요....
- 참고로 객가인들에게도 Y염색체 O2b가 많이 나온다니, 우리와의 연관성을 생각해봐야한다고 여겨집니다. 4c 전의 신라는 저족이나 월지족등의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세력이 강력했던거 같고...4c이후에는 김일제들의 "신"나라 세력이 중원의 문화를 가지고 신라의 지배세력이 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일제세력도 원래 진의 유민이고 흉노(한)과 섞여 진한이 되었다가, 한나라에 투항한거였기에...다시 그들 세력으로 복귀하는건 크게 어려운일이 아니였지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우어 (吴语, 吳語, Wú yǔ)
중국화한 알타이계 언어 설 / 강서성 소주, 상하이 및 항저우 등 - 약 9000 만명
1. 삶터
중국 장쑤 성, 푸젠 성, 저장 성에서 쓰이는 중국어의 방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인구의 10% 이상이 우어를 사용한다.
우어가 쓰이는 대표적인 대도시로는 소주, 항조우, 상하이가 있다.
2. 특징
우어에도 다른 중국어 방언과 마찬가지로 성조가 존재한다.
중국에서 약 7700만명이 사용
3. 가설
강소성 소주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과 같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다른 지방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한다.
소주인이 말하는 속도와 성조는 마치 외국어와 같아서, 근본적으로 알아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2000년 초 소주의 한 대학생 조우천 周晨은 몇 개의 논증과 추론을 거쳐 "오-방언은 알타이어에 속하며, 한어에 속하지 않는다" 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부터 쌓아 온 하나 하나의 증거들은 그에게 "오-방언은 한장어계의 한어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위구르어, 몽고어, 만주어, 한국어와 같이 알타이어계로부터 나왔다" 고 알려 주었다.
조우천은 소주인으로서 소주대학 외국어학부 일본어 전공의 대학생이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수업을 이미 받았고, 위구르어, 현재 알타이어계 언어에 대해 모두 섭렵한 언어학 애호가이다.
그가 '오방언이 한어에 속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내세운 것은 결코 아무렇게나 내린 결론이 아니라, 그가 4년 동안 공부한 결과이다. http://blog.ohmynews.com/yayul/126249?isPC=1
민어 (闽语, 閩語, Mǐn yǔ)
중국화한 고대 월나라 (민월) 계통의 언어설 / 푸젠성 福建省 과 대만 - 약 5000 만명
1. 명칭
- 복건어(福建語) 라고도 함. (일본 등의 국가에서 부르는 명칭)
- 민 閩은 복건성 지방을 말함. 복건성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이 민강 閩江이다.
-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에 지금의 복건성 지역에 민중군 闽中郡을 설치하고 월족 越族의 우두머리를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 기원전 202년에 한 고조는 한 왕실을 도와준 민월의 수령 무제 無諸의 공적을 인정하여 그를 민월왕 闽越王에 봉하였다.
- 민월의 거주 지역은 지금의 복건 민강 闽江 유역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민강은 민월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함.
2. 삶터
- 복건성 福建城 (푸젠성), 대만, 홍콩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 국가의 화교들 사이에서도 사용된다.
1) 민둥어 閩東語: 푸젠성 동북쪽과 저장성 浙江省 남쪽
2) 푸톈어 莆仙語: 푸젠성 중앙의 푸톈시 莆田市 와 셴유시 仙遊市
3) 민중어 閩中語): 푸젠성 중앙
4) 민베이어 閩北語: 푸젠성 북부
5) 민난어 閩南語: 푸젠성 남부, 광둥성(廣東省) 동부, 하이난성(海南省) 및 타이완
A. 조저우어 潮州語: 조주에서 사용
B. 하이난어 海南語: 하이난 섬에서 사용
C. 푸젠어 福建話: 푸젠성 남부, 동남아시아 및 타이완 등지에서 사용
a) 장저우어 漳州語:
b) 타이완어 臺灣語: 타이완 섬 (대만) 에서 사용
c) 샤먼어 廈門語: 샤먼 시에서 사용
d) 천저우어 泉州語:
3. 특징
- 남월(낙월)의 후손으로 알려진 베트남족의 언어와 민어는 음운이 많이 닮음. (선조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됨.)
- 조선 초 명나라 때 남경/복건어 의 한자 독음을 기준 삼아 훈민정음을 표기한 것이 동국정훈 식 한자음이다.
광둥어 (Cantonese 월어)
중국화한 고대 월나라 (남월) 계통설 / 홍콩, 마카오, 광둥성, 화교 - 약 8000 만명
越語(粤語, 웨에, 월어)라고도 함.
광동 지방에서 쓰는 말은 주로 월어, 객가어, 민어 등이며 그 중 월어가 가장 많이 쓰임. 일반적으로 광둥어라함은 월어를 말함.
조주와 산두(汕頭)방언은 민어의 일종이며, 광동 연해지역의 조주와 산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들은 고대의 민월( 越, 즉 東越: 복건성에 가까운 광동지역)의 피를 받은 사람들이다.
광동어는 베트남어와도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베트남어는 단음절이 한 단어인 경우가 많은 언어로, 한자 하나에 하나의 음가를 대응시켜 뚝뚝 끊어지게 발음하는 광동어와 상당히 닮아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어가 6성의 성조인 것처럼 광동어 역시 9개의 상당히 많은 수의 성조를 갖고 있다. 물론 문법이라든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두 언어는 다르지만, 적어도 듣기에 광동어는 보통어[북경어]보다 분명 베트남어와 말의 억양이나 느낌이 더 비슷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베트남어가 월어[越語]이듯 광동어도 월어[粤語]라고 불린다.
베트남은 월족 중 남월 및 낙월과 연관된다.
현재 베트남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고, 북쪽의 월족(越族)과 남쪽의 크메르족이 결합된 나라다.
현재의 베트남 월족은 중국 화남(華南) 지방에 거주했던 월족(越族)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양자강 근처에서 살던 월족(越族)은 전쟁을 잘 못하다보니 동네북이 돼서 자꾸 남하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다 보니, 복건성 광동성을 지나 지금의 인도차이나 반도 북부까지 오게 됐고, 이 월족(越族)이 바로 중국고사 '오월동주(吳越同舟)' 에 나오는 바로 그 월나라이다. '남쪽의 월나라' 라는 뜻의 남국(越南國)의 유래는 이러하다. 남쪽으로 온 월나라는 남쪽의 송나라를 '남송(南宋)'이라 썼던것과 마찬가지로 '남월'이라고 해야겠지만, 베트남어는 형용사가 뒤로 가는 언어라서, 남월(南越)이라고 안 쓰고, 월남(越南)이라고 표기하게 됐다. 어쨌거나 얘네들이 인도차이나 북부에 자리잡고 살다가, 18세기에는 중부지방인 '후에'에 까지 남하해서 여기에 도읍을 정했다. 그게 현재 남아있는 훼 왕궁유적이다. 그러다가 프랑스에 점령되고, 독립전쟁하고 울라불라...하다가 미국과 맞짱떠서 베트남 전쟁을 했고, 1980년 전후해서는 중국과 전쟁해서 이기는 엄청난 전과를 거뒀다. 세계 3개 강대국과 맞짱떠서 이긴 나라는 베트남 밖에 없다고 한다.
남월은 주로 광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기원전 207년에 진(秦)나라 장수 조타(趙佗, 한족)가 거기에 남월국(南越國)을 세웠다. 조타는 스스로 남월무왕(南越武王)이라 칭하고 월인 여가(呂嘉)를 재상에 등용하였다. 민월이 남월을 공격하자 한 무제는 대장 왕회(王恢)와 대사농(大司農) 한안국(韓安國)을 파견하여 예장(豫章)과 회계(會稽) 쪽에서 민월을 협공하게 하였다. 이에 민월왕 영(郢)의 아우 여선(余善)이 그의 가족과 함께 왕을 죽이고 투항하자, 한나라 군대는 공격을 중지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한 왕실에서는 여선을 동월왕(東越王)에 봉하고 요왕(搖王)과 함께 살게 하였다. 기원전 112년에 한 무제는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남월을 정벌하였다. (남월은 베트남의 기원으로 한무제에 망한 후 이후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 때는 안남도호부가 설치 되었고 안남이라고 불리웠다)
낙월(駱越)은 가장 남쪽에 위치한 백월의 한 갈래이다. ≪사기(史記) · 남월열전(南越列傳)≫에 의하면 낙월은 진 · 한 시기 교지군(交趾郡)의 토착민이었다. 그들의 활동 중심은 지금의 홍하(紅河) 삼각주 이북과 이동 지구였다. 남월과 인접하였지만 사회적 발전은 월족의 다른 갈래보다 낙후되어 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계급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낙월인들은 상투 머리에 맨발로 다니고 베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된 옷을 입었는데, 짧은 머리에 문신을 한 우월이나 몽치 모양의 상투를 하고 다리를 뻗고 앉는 남월 등과 다른 점이 많았다.
월족 (越族)
민어와 광동어는 고대 월족인 민월과 남월인들이 중국화하여 형성된 언어라는 설이 강함.
1. 고대 월족의 명칭
월족 越族은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그 분파가 많고 분포 지역도 매우 광대하여 백월 百越이라 통칭하게 되었다. 백월이라는 말은 여씨춘추呂氏春秋, 시군람恃君覽에 처음으로 보인다.
사서에 보이는 백월계;
- 춘추시대: 우월于越,
- 전국시대: 양월揚越,
- 한대: 구월瓯越 · 민월闽越 · 남월(南越) · 낙월(駱越),
- 삼국시대: 산월 山越 (민월의 유민)
2. 관련 민족
월족은 중국의 다른 고대민족과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과 끊임없는 융화 과정을 거쳤다. 동한 삼국 시기에 이르러 월족은 점점 소멸되었지만, 수 당대의 문헌에 보이는 이족 俚族, 요족 僚族 등은 모두 고대 백월과 밀접한 연원 관계를 가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대부분 한족에 섞여버렸으며, 그 나머지 일부는 주로 지금의 남방 좡동어족(壯侗語族)에 속하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지금의 좡족 壯族, 다이족 傣族, 리족 黎族, 둥족 侗族, 수이족 水族, 무로족 仫佬族 등의 소수민족과 연원 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黎족 (111만명, 당나라 이전에는 俚 僚 로 불림) 역시 월족 (경족, 킨족)의 일파로 현재 베트남인의 큰 줄기를 이룬다. 현재 베트남어는 몽크메르어 계에 속하지만 몽골계의 후예인 북쪽의 월족(越族)과 남쪽의 크메르족이 결합된 나라다.
3. 월족의 분포
고고자료와 사서에 대한 고증을 거쳐 판단하면, 옛날의 월족은 어느 정도 다른 민족의 성분도 내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의 원시 토착민에 의해 형성되었다. 월족은 분포 지역이 국내외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였는데, 주로 중국 동남부와 남부 지역에 분포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소남(蘇南) · 상해(上海) · 절강(浙江) · 안휘(安徽) · 호북(湖北) · 호남(湖南) · 강서(江西) · 복건(福建) · 대만(臺灣) · 광동(廣東) · 광서(廣西) 등지는 모두 고대 백월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중국 외로는 베트남 북부의 광대한 지역까지 진출 하였다.
4. 역사
1) 춘추시대에 우월의 구천이 월나라 건국
동주(東周) 춘추 시기의 우월(于越)은 백월 중에 가장 먼저 출현한 종족이다.
우월은 초기에는 회계(會稽, 지금의 절강성 소흥 紹興)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구천(勾踐) 때에 이르러 구천이 스스로 월왕(越王)이라 칭하면서 월(越)나라를 세웠다.
2) 춘추시대 말기 吳越同舟 臥薪嘗膽
춘추 말기에 월나라는 오(吳)나라와 잦은 전쟁을 치렀다. 기원전 492년에 월왕 구천은 오왕(吳王)에게 패한 치욕을 씻기 위해 와신상담 臥薪嘗膽 하면서 부국강병을 결심하여 결국 기원전 473년에 오나라를 단번에 멸망시켰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월왕 구천은 군대를 거느리고 북으로 강회(江淮)를 건너 제(齊) · 진(晋)의 제후와 서주(徐州)에서 동맹을 체결하고 주왕실에 조공을 바쳤다. 그 뒤 도읍을 낭야(琅琊: 지금의 산동성 교남현 膠南縣 경내)로 옮기고 패주(覇主)라 일컬었다. 월나라는 구천으로부터 여이(與夷) · 자옹(子翁) · 불양(不揚) · 무강(無疆)을 거치면서 여러 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리다가, 전국시기에 이르러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3) 전국시대 월나라의 패망
대략 기원전 344년에 초(楚) 위왕(威王)이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월나라는 멸망하고 무강(無疆)은 피살되었다. 이에 월나라의 영토는 대부분 초나라의 남쪽 지역에 귀속되었으며, 월나라 백성 중 일부는 바다 건너 대만 팽호(澎湖) 등의 섬 지역으로 피신하였다. 무강의 아들 지후(之侯)와 지후의 아들 존(尊), 존의 아들 유(柔) 이후로 월족 부락의 우두머리는 모두 초나라를 신하의 예로써 섬겼다. 초 위왕이 월나라를 멸망시킨 후, 월인들은 주로 절강 남부와 복건 북부 및 복건과 절강 연해의 섬 지역에 모여살았다.
4) 진한시대 민월, 구월, 남월의 건국 및 각축
- 민월(闽越):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에 민중군(闽中郡: 지금의 복건 · 절강 일부 지역)을 설치하고 월인의 우두머리를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기원전 202년에 한 고조는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한 왕실을 도와준 민월의 수령 무제(無諸)의 공적을 인정하여 그를 민월왕(闽越王)에 봉하였다. 이에 민월왕 무제는 도읍을 동야(東冶: 지금의 복건성 복주시 福州市 내)에 세우고 옛날 민중(闽中) 지역을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민월의 거주 지역은 지금의 복건 민강(闽江) 유역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민강은 민월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 있다. 서한 초기에는 민월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져 기원전 138년에 군대를 일으켜 구월을 공격하였다. 구월은 식량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자 사신을 한왕실에 급히 파견하여 무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한 무제는 즉시 장조(莊助)에게 명하여 구원병을 거느리고 달려가 구월을 지원토록 하였으나, 원군이 이르기도 전에 민월은 그 소식을 접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 구월(瓯越): 기원전 192년에 한 효혜제(孝惠帝)는 또 요(搖)를 동해왕(東海王)에 봉하였다. 동해왕은 도읍을 동구(東瓯: 지금의 절강성 온주시 溫州市)에 세웠기 때문에 그 이름을 '구월' 또는 '동구'라고 한다. 구월의 거주 지역은 지금의 절강 남부의 구강(瓯江) 유역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구강도 구월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 있다. 구월은 한나라 무제 때 표면적으로는 수군을 파견하여 한나라 군대의 남월 공격을 지원하겠다고 응답 하였지만, 남월과 암암리에 친교를 맺고 있었다. 한 무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매우 분노하여 전략적으로 남월을 멸망시킨 후, 다시 기원전 110년 겨울에 군대를 동원하여 구월을 공격하였다. 구월의 요왕 등은 계략적으로 여선을 죽이고 한왕조에 귀순하였다. 한왕조는 다시 요왕을 동성후(東成侯)에 봉했다.
- 남월 (南越): 남월은 주로 광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기원전 207년에 진秦나라 장수 조타 趙佗 (한족)가 남월국(南越國)을 세웠다. 조타는 스스로 남월무왕(南越武王)이라 칭하고 월인 여가(呂嘉)를 재상에 등용하였다. 기원전 135년 민월이 남월을 공격하자 한 무제는 대장 왕회(王恢)와 대사농(大司農) 한안국(韓安國)을 파견하여 예장(豫章)과 회계(會稽) 쪽에서 민월을 협공하게 하였다. 이에 민월왕 영(郢)의 아우 여선(余善)이 그의 가족과 함께 왕을 죽이고 투항하자, 한나라 군대는 공격을 중지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갔다. 한 왕실에서는 여선을 동월왕(東越王)에 봉하고 요왕(搖王)과 함께 살게 하였다. 기원전 112년에 한 무제는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남월을 정벌하였다. (남월은 베트남의 기원으로 한무제에 망한 후 이후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 때는 안남도호부가 설치 되었고 안남이라고 불리웠다)
- 낙월(駱越)은 가장 남쪽에 위치한 백월의 한 갈래이다. 사기史記 남월열전 南越列傳)에 의하면 낙월은 진한 시기 교지군(交趾郡)의 토착민이었다. 그들의 활동 중심은 지금의 홍하(紅河) 삼각주 이북과 이동 지구였다. 남월과 인접하였지만 사회적 발전은 월족의 다른 갈래보다 낙후되어 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계급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낙월인들은 상투 머리에 맨발로 다니고 베에 구멍을 뚫어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된 옷을 입었는데, 짧은 머리에 문신을 한 우월이나 몽치 모양의 상투를 하고 다리를 뻗고 앉는 남월 등과 다른 점이 많았다.
5) 진한시대 민월, 구월, 남월의 패망
- 한 무제는 민월, 구월을 멸망 시킨 후, 차후의 재침략에 대비하여 일부의 월인들을 강회(江淮)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한나라 무제 즉위 후에 구월과 민월은 강회(江淮) 지역으로 이주해 한족과 같이 살면서 한족과 융합되었다.
- 남월은 베트남의 기원으로 한무제에 망한 후 이후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 때는 안남도호부가 설치 되었고 안남이라고 불리웠다
6) 삼국시대에서 당대까지 활동한 산월족
한나라 무제 즉위 후에, 민월인들은 고향을 떠나 강회(江淮) 일대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산속으로 숨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삼국시기에 나타난 산월(山越)이다. 산월은 삼국시기부터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복건 · 절강 · 안휘 · 강서의 경계 지역에 출현하였으며, 그들의 활동 중심은 안휘성 양자강 이남의 단양(丹陽)이었다. 삼국시기에 산월의 활동은 대단히 빈번하였다. 비록 할거하여 군림할 정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 세력은 삼국의 형성 구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 후 산월은 오나라에 의해 평정되면서 대부분 한족에 동화되었다. 따라서 동한 이후부터 산월은 후세 사람들에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수 · 당 · 송 세 왕조의 문헌 속에 보이다가, 남송 이후에 이르러 완전히 소멸되었다.
5. 월족의 문화
중국 최초로 벼를 재배한 민족이자 돼지를 사육한 민족 (절강성 여요余姚 하모도河姆渡 유적을 고증한 결과).
간란식(干欄式) 건물도 세계 최초
정밀하고 뛰어난 칼 주조 기술
물에 능숙하여 배를 만들고 부리는 데 뛰어났으며, 수군을 창시하고 항해 경험이 풍부
7. 서남공정
대규모의 월족을 세분화하여 소수 민족화하였다.
- 백월 百越 : 모든 월족의 통칭
- 우월 于越 : 춘추시대, 월나라를 세움
- 민월 閩越 : 진한시대, 복건성 연해,
- 구월 甌越 : 동구東甌, 절강 남부 연해
- 남월 南越 : 진한시대, 광동-광서 일대. 남월은 지금의 베트남의 선조가 되었지요. 나라명은 주로 '월' 이라 했구요. 군주와 장수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오나라 시기에는 군주는 알 수 없으나 '두령'으로 알려진 장수이자 두목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반림, 황난, 비잔 등이 있습니다. 육손과 종리매 등에 의해 토벌되었습니다.
- 산월 山越 :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가 토벌한 종족. 그냥 월족이라고도 하죠. 이 월족은 시대를 변화하며 백월, 산월, 적월, 남월 등 다양한 종족명으로 불렀는데 오나라의 맨 동쪽 영토인 동쪽 해안가를 기점으로 거처했습니다.
현대 중국어에서 사라진 고대 중국어의 입성을 한국어가 보존
고대중국어의 4성
고대중국어에서 말하는 사성은 "평성" "상성" "거성" "입성" 이고, 평성은 다시 음평과 양평으로 나뉩니다. 상성, 거성, 입성은 측성이라고 합니다. 한시를 지을 때 평측에 맞추어 짓는다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사성에 대한 개념이 명확했지요.
현대중국어의 4성
1,2,3,4성으로 사성을 구분합니다. 음평-1성, 양평-2성, 상성-3성, 거성-4성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대중국어의 입성은 어디로 갔지요? 바로 그겁니다.학생이 질문하신 "어떤 것"은 바로 "입성"입니다.
입성은 우리 발음으로 받침(종성)이 K(ㄱ),T(ㄹ),P(ㅂ)로 끝나는 한자입니다. 國, 日, 葉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금 중국인은 한자에서 입성의 글자를 찾아 낼 수 없습니다. 현대중국어에는 종성이 n과 ng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자는 삼국시대 이전에 수입되었다고 봅니다. 그 때 중국은 선진시대(BC221년 진나라 통일이전)인데 이때 쓰던 한자음을 上古音이라고 합니다. 상고음에는 입성이 있었습니다. 이 상고음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에서 온 귀한 글자라고 그 발음도 중시하여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중국은 발음이 계속 변하여 버렸습니다.
중고음을 거쳐 현대음으로 바뀌면서 입성이 현대중국어에 1,2,3,4성에 고루 섞여 버렸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특성상, 발원지에서는 계속 변하는데 주변국이나 변두리에서는 유지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의 원래의 음가가 중원에서는 계속 변했는데 한국, 중국의 광동성, 복건성, 홍콩 등에는 그대로여서 모두 입성이 살아 있습니다.
재밌는 예를 들면, 중국어로 맥도날드를 '마이땅라오'라고 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네---, '맥'과 '날'이라는 발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맥도날드는 홍콩을 거쳐 들어 왔습니다. 홍콩발음으로 읽으면 입성이 살아 있으니까 대충 가깝습니다.
저는 북경대학에서 문자학을 공부했는데, 고음에 대해서는 교수보다 낫습니다. 우린 따로 사전 찾아보지 않아도 입성을 찾아내고 고음을 척척 말해 냅니다. 그 고음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읽는 한자음이기 때문에...
중국의 소수 민족
서남부: 티벹미얀마 계통, 타이카다이 계통, 몬크메르 계통, 흐몽미엔 계통 (먀오-야오족) 등
서부: 투르크 계통, 이란 계통 등
북부 및 북동부: 몽골 계통, 투르크 계통
야오족의 뉘수문자, 베트남의 쯔놈, 장족의 방괴장자 등 각 민족의 고유 문자가 존재했었으나, 대부분 한자 문화에 동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