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선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나 자신 과의 약속 ‘자연 속으로 나를 찾아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청송 주왕산, 통고산 자연휴양림, 문경새재, 오도산 자연휴양림, 소백산 철죽제를 찾아 1박 2일의 ‘나 홀로 캠핑’을 해왔다.
이번에는 오토캠핑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원형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의 캠핑에 도전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오지 캠핑장’이라는 책자를 뒤적이다가 ‘여기다’하고 손뼉을 친 곳이 다름 아닌 한려수도의 연화도와 욕지도이다.

<통영 연화도의 연화봉 정상에서 본 용머리>
용감하기로는 나보다 저만큼 앞서는 멋진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2박 3일의 연화도와 욕지도 캠핑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연화도행 마지막 여객선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의외의 팁이었다. 연화도에 내려 짐을 챙겨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텐트, 코펠, 침낭, 3일분의 양식과 반찬 그리고 카페라, 삼각대........둘이서 나누어 한 짐씩 가득 짊어지고도 손에 무거운 가방을 들어야했다.
장비를 챙겨 연화도의 정상 연화봉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친구는 금방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연신 헉헉 거린다. 과욕이란 이런 걸까? 우리 나이가 지금 몇인가? 2박 3일 캠핑이라니......과욕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루는가 보다.

<연화봉 오르는 등산길>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른 연화봉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면이 청청 바다요, 사면이 아름다운 섬들이다. 정상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렇구나, 여기가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구나! 정상에 자리잡은 정자 망해정에서 짐을 풀고 앉으니 싱그러운 바닷바람, 아름다운 새소리, 그림처럼 펼쳐진 한려수도가 오감을 가득 채운다.
다도해로 떨어지는 그림 같은 일몰을 기대하며 카메라를 챙겼다. 그러나 하늘은 늘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두꺼운 구름이 태양을 가리니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과 섬들이 만들어내는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이 아름다운 밤바다를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만나겠는가?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어지면서 한려수도의 야경은 점입가경이다. 늦은 밤까지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친구는 바다의 섬을 보면서 ‘외로움’을 생각한다는데, 오히려 나는 마주 보고 있는 섬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다정한 친구 사이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대상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대상에 투영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외로움은 그 근원이 어디일까?



<연화봉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야경>
어둑 어둑한 새벽 연화사의 목탁소리 그리고 투명한 새소리 들으며 잠을 깼다. 아침의 한려수도는 또 다른 세상이다. 여명 속에 드러나는 용머리 절벽은 신비롭기까지하다. 코펠에서 밥을 짓고 밥상을 펼쳐놓으니, 반찬이 무려 7가지나 된다. 친구는 반찬을 7가지나 넣어서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오느라 죽을 고생했다고 불평을 해댔지만, 난 넉넉하게 챙겨준 친구 부인이 속으로 고맙기만 했다.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고, 소주 한 병을 반주로 너끈히 비우고 향기로운 커피로 마무리 하니, 대장부 살림살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한려수도의 아침 바다>
하산 길에 만난 낯선 등산객 일행이 건내는 얼음 막걸리 한잔은 목마른 자에게 그저 꿀맛이다. 이런 작은 나눔들이 세상 살맛 나게 하는구나! 그렇구나! 나눔은 행복이구나!
연화도 일주길 도보에 나섰다. 천천히 천천히 걸으면서 섬의 구비 구비 절벽과 바다와 파도가 연출하는 섬의 절경을 즐긴다. 절벽 바위틈에서 피어오른 야생화 그리고 꽃을 찾아든 나비의 나풀거리는 모습에 내 마음은 이미 동심이다. 무거운 짐을 식당에 맡겨두고 카메라 하나 달랑 매고 콧노래 부르는 친구의 모습도 어제의 끙끙거리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악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 갈래 깊은 산속을 헤메나..........’ 나도 친구 따라 흥얼 흥얼 불러본다.

<연화봉 하산길에 만난 좋은 사람들>



<연화도 일주도로 풍경>
연화도 일주를 마무리하고 욕지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욕지도(欲知道)는 ‘알고자하는 열정이 가득한 섬’이라는 뜻이라니 섬 이름 치고는 가히 학문적이다.
목적한 야영지에 가려면 배에서 내리자 말자 일주버스를 타야헸기에 야영에 필요한 계획했던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서 영 찜찜했다. 거기다가 목적지로 삼았던 파라다이스 야영장이 아직 개장을 하지 않고 있어서 야영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엎친데 덥친 격이랄까? 하는 수 없이 방파제 아래 텐트를 치니 주변 환경이 이건 말이 아니다. 친구는 투덜거리며, 어제 연화봉의 밤이 최고급 호텔의 왕족의 밤이였다면, 오늘 밤은 노숙자의 밤이란다. 연화도에 더 머물고 싶어하는 친구의 뜻을 들어주지 않고 욕지도를 고집한 것이 슬며시 미안하기도 하다.
그것도 잠시일 뿐! 갈매기, 낙조 그리고 고깃배가 연출하는 일몰의 장관은 금방 우리를 환희의 세계로 인도한다.




<욕지도 일몰>
다음날 일출을 제대로 찍어야겠다는 욕심에 새벽 4시에 일어나 방파제에서 철수하여, 이웃한 유동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채촉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일출은 운수에 없는듯 했다. 하늘은 끝내 화려한 일출을 보여주지 않는다. 포기하고 아침밥 먹고 나니,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린다. 텐트 안에 들어가 누워 파도소리, 빗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들으며 버스시간을 기다린다.
텐트 속에서 이리 저리 뒹굴면서, ‘봄비’, ‘사람들 사이에 꽃이 피어날 때’.........스마트폰에서 선곡한 오래된 애창곡들 느긋하게 듣는 것도 오랜만에 누려보는 낭만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한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