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말씀
오늘부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거룩한 한 주간을 보냅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십자가를 진 여정,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실제 사건들을 기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장엄함과 절대적인 적막감이 함께 존재합니다. 마치 우리 삶의 여정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개선장군처럼 맞이했습니다. 이제 무언가 그들 삶에 숨통이 트일 줄 기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로마 제국에 편입된 이후, 자신들도 로마 시민들처럼 영광된 날들이 펼쳐지리라던 기대가 한풀 꺾여 있을 때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 자신의 삶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실망감이 꽤 들어차 있을 때 입니다. 그러던 차에 그 말로만 듣던 ‘그분’이 이렇게 수도 한복판에 나타나시니, 새로운 세상이 그들 앞에 선물로 펼쳐지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에겐 희망 가득한 설레임의 순간이었지만, 당시 기득권에 있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일촉즉발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는 그 군중들의 표정과 소리가 그들에게 예사롭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저버리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완전히 뒤집든가 직접 맞짱을 뜨든가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 분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그 분의 방법이었습니다. 세상을 이길 뿐만 아니라 구원으로 초대하는 절대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심으로써 세상의 죄를 대신하고, 또한 세상을 당신부활의 영광에로 초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방법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주님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종종 그 분의 길보다는 우리의 방법을, 진리 자체이신 그 분 보다는 내 삶의 편의를 더 우선으로 여깁니다.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는 그 분의 발자취를 벗어나 죽음의 문화들에 더 쉽고 또 완강하게 집착하곤 합니다. 아무리 옳고 또 명분도 확실한 진리라 하더라도 당장 나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없으면 진리 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른바 ‘불편한 진리’라서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우리 신앙인 본분에 맞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 무릎이 깨어지고 피가 난다면 피해 가야 하는 것으로 합리화하곤 합니다. 나는 벗어나려고 하는데 세상이 다 함께 그런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면서 생명이 아닌 죽음의 그림자에 머물고 있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선 오늘도 당신 길을 걸어가십니다. 은전 몇 닢에 흔들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군중들의 외침 한가운데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그 영광의 길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십니다.(의정부교구주보)
묵상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시간과 힘을 우리를 위해 쓰셨습니다. 당신의 목숨마저 우리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빵이 되시어 당신 생명을 우리와 나누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 또한 삶을 온전히 봉헌합시다.
오늘의 말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
알아봅시다
1. 성주간
‘성주간’이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한 주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하여 지상생활의 마지막 한 주 동안에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경축합니다.
파스카 성삼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파스카 신비를 기리는 3일간의 기간, 즉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부터 시작하여 ‘예수 부활 대축일’ 제2저녁기도 때까지의 시기입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3월28일(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는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저녁,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말씀 전례 후에 발씻김 예식을 거행하며, 영성체 후에 성체를 수난감실에 모시고 교우들은 성체조배를 합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3월29일(금)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은 교회 전통에 따라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고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예식만을 거행합니다. 예절 중에 예루살렘 성지를 위한 특별헌금이 있습니다. 또한 이날은 금식(만 18세~60세)과 금육(만 14세 이상)을 지키는 날입니다.
성토요일: 3월30일(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쉬시고 저승에까지 복음을 선포하신 것을 묵상하며 부활의 실현을 희망하는 날입니다.
부활 성야: 3월30일(토)
교회는 가장 장엄한 전례를 통하여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며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합니다.(서울교구 주보)
2. 종려나무가지(Rami Palmae)란?
전례적으로 성지주일은 종려나무나 올리브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던 유다인들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왜 다른 나무가 아닌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환호를 했을까? 고대부터 종려나무에서 채취한 종려잎은 승리의 상징이다. 군인들이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종려잎을 흔들었고, 운동 경기가 끝나면 승리자들에게도 종려잎을 건넸다. 종려잎은 뛰어난 공적을 영원히 후대에 전해준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그 같은 전통을 받아들여 종려나무를 죽음에 대한 승리, 부활과 불멸성의 상징으로 보았다. 따라서 종려나무는 새로운 생명의 나무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길 위에 던진 종려나무 가지는 그분의 순교와 죽음에 따른 승리를 예표한다(요한 12,13). 이후부터 종려잎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표상으로 사용되었다.
성지주일에 대한 최초의 서술은 4세기 말의 『에제리아여행기』에서 나온다.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제자들의 행렬을 재현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엘레오나(Eleona) 대성당에 있는 올리브 동산에 주교를 중심으로 오후에 모여서 임보몬(Imbomon)으로 올라갔다. 오후 5시경 복음을 읽고 나서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언덕에서 내려갔다. 아나스타시스(Anastasis)로 행렬지어 간 다음에 거기서 저녁기도를 바쳤다. 이것이 동방으로 가서 성지주일이 되었다. 서방에서 종려가지를 들고 행렬하는 예식에 대해서는 9세기 초에 발견된다. 오를레앙의 주교 테오돌프(+821)가 지은 “영광 찬미”(Gloria, laus) 찬미가와 호산나를 부르며 나뭇가지를 들고 교회로 가는 예식이 행해졌다. 성지가지를 흔드는 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죽음을 이기고 돌아오시는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의정부교구주보)
3. 교황 프란치스코
성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Jorge Mario Bergoglio, S.J.)
이탈리아어 발음으로는 ‘베르골료’,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베르고글리오’로 적습니다.
교황명(papal name): 프란치스코 (Franciscus)
새 교황의 교황명은 그냥 ‘프란치스코’이며, ‘프란치스코 1세’가 아닙니다. 이 이름을 사용하는 첫 교황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다른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사용한 후에야 지금의 교황의 ‘프란치스코 1세’가 될 것입니다.
교황 이름은 라틴어로 표기하며, 한글로 옮길 때에는 어미 –s를 관행에 따라 “-오”로 표기합니다.(주교회의 용어위원회 <천주교 용어집> 외국 성인명 등의 한글 표기 규정 참조)
S.J.는 Society of Jesus의 약자로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를 가리킵니다.
교황약력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대주교이며 아르헨티나 동방 예법 신자들의 직권자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예수회)은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으나, 사제직을 선택하여 비야 데보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1958년 3월 11일 그는 예수회의 수련소로 옮겨 가 칠레에서 인문학 과정을 마쳤다. 1963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산미겔 시에 있는 성 요셉 대신학교에서 철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4부터 1965년까지 산타페 시에 있는 임마쿨라타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고 1966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엘살바도르 대학교에서 같은 과목들을 가르쳤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산미겔 시에 있는 성 요셉 대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9년 12월 13일 사제품을 받았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에스파냐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3차 수련을 마치고, 1973년 4월 22일 종신 서원을 하였다.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산미겔 시에 있는 비야 바릴라리에서 수련장으로 일하며 신학도 가르쳤다. 1973년 7월 31일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 뽑혀 6년 동안 봉사하였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산미겔 철학 신학 대학의 학장으로 일하면서 산미겔 교구의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의 주임 사제를 겸임하였다. 그는 1986년 3월 독일로건너가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리고 수도회 장상들은 그를 엘살바도르 대학교와 코르도바 대학교의 고해사제와 영성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 5월 20일 그를 아우카 명의 주교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1992년 6월 2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교좌성당에서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 우발도 칼라브레시 교황 대사, 메르세데스 루얀 교구의 에밀리오 오그네노비치 주교에게 주교품을 받았다.
1997년 6월 3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부교구장 주교가 되었고, 1998년 2월28일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의 후임으로 대교구장이 되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0차 정기 총회에서 보고 책임자를 보좌하였다. 2005년 11월 8일부터 2011년 11월 8일까지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하였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1년 2월 21일 추기경회의에서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하였다. 그의 추기경 명의 본당은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본당이다.
그는 교황청에서 경신성사성, 성직자성, 수도회성, 가정평의회, 라틴아메리카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4. 교황의 복장
수단(cassock, soutane): 성직자 신분을 표시하는 의복. 제의 밑에 받쳐 입거나 평상시에 입는다. 세속과 육신과 쾌락을 끊고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려고 세속에서는 죽었다는 뜻이 있다. 교황은 흰색 수단을 입는다.
패용 십자가(pectoral cross): 목걸이 형태로 착용하는 십자가.
주케토(zuccetto, pileolus, skull cap): 주교가 착용하는 둥근 모자. 이탈리아어 ‘주케토’를 그대로 사용한다. 주케토의 색상은 수단 색상과 같다.
제의(祭衣, chasuble, sacred vestments): 미사를 집전할 때 입는 반(半)원추형의 옷.
주교관(主敎冠, mitra): 주교가 미사와 예식을 거행할 때 쓰는 앞뒤가 높이 솟은 모자. 주교의 품위를 드러낸다. 전례력(가톨릭 교회 달력) 시기나 미사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장식된 주교관을 쓴다.
어부의 반지(Fisherman's Ring): 교황의 반지. ‘어부의 반지’라는 이름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관련이 있다. 예수님께서 어부였던 그를 제자로 삼으실 때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목장(牧杖, Pastoral Staff): 주교의 품위와 관할권을 상징하는 지팡이. 목자가 양을 칠 때 쓰는 지팡이에서 유래. 주교들은 윗부분이 원형으로 구부러진 지팡이를, 교황은 십자가 모양을 머리로 한 지팡이를 쓴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는 뜻이다.
팔리움: 교황과 대주교(경우에 따라 다른 주교)가 제의(祭衣) 위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고리 모양의 양털 띠. 착한 목자가 지친 어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오듯이 죄인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사명을 드러낸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손석준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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