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형 인클로저
밀폐형(Sealed Type) 스피커는 유닛의 뒷 공간을 통으로 막아서 뒤로 나오는 소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유닛 전후의 소리가 간섭할 우려는 완전히 사라진다. 만일 밀폐형 인클로저가 매우 커서 유닛이 운동할 때 인클로저 내부의 공기의 압축이나 팽창이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이른바 무한 배플(Infinite Baffle) 스피커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클로저의 크기를 그렇게 크게 할 수는 없는 일. 밀폐형 인클로저의 음색 또는 구동 특성은 주로 인클로저의 크기에 의해 좌우된다.
밀폐형은 사방이 막혀 있는 통이다. 우리가 수박을 고를 때 톡톡 쳐보는 것처럼, 속이 빈 통은 울림이 크다. 그래서 인클로저는 견고하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래도 음악을 들을 때 통의 공명이 섞여 특정 대역에서 피크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유닛 뒷면에서 나온 소리는 통 안에서 계속 반사되면서 진동판의 뒷면을 치기도 하고 정재파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럴 경우 한 가지 방법은 통 안에 흠음재를 채우는 것이다. 그것도 꽉 채우는 것이 좋다. 보통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는 두께가 2~3m의 흡음재를 내벽에 붙이는 정도지만, 밀폐형 스피커들은 스펀지 같은 것으로 인클로저 내부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많다(특히 북셀프). 이를 통해 유닛 뒤편에서 나오는 음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음을 맑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인클로저도 떨림이 없도록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구조적으로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며 진동을 댐핑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만 부풀림이 없는 맑은 음, 단단한 저역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밀폐형은 유닛이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팽창시키며 운동해야 하므로 울리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스피커가 작아도 대형 앰프로 구동해야 훌륭한 소리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압은 보통 85dB 이하가 많다. 또한 풍성한 저역을 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보통의 저음 반사형 스피커들은 유닛 뒷면으로 나오는 음을 덕트나 백로드 혼을 통해 돌아나오게 하던가 해서 유닛 앞면으로 나오는 저음과 합하여 저음을 보강시키고 있는데, 밀폐형은 유닛 뒷면의 음을 버리므로 풍성한 저역을 내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잘 만들었을 경우에는, 반사시킨 소리를 더하지 않고 유닛 전면의 직접음만을 재생하므로 군더더기 없이 가장 깔끔하고 탄력있는 저역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는 무척이나 불리한 밀폐형 인클로저지만, 많은 애호가들그런 음의 매력 때문에 밀폐형을 선호하는 듯 하다.
에드가 빌처의 어쿠스틱 서스펜션
앰프의 출력이 작고 대형 스피커들이 주류였던 1950년대 중반까지는, 사람들은 작은 스피커로 깊은 저역을 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스피커와 우퍼의 크기가 커야만 낮은 저역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이 통념을 최초로 깨뜨린 사람이 바로 AR의 에드가 빌처다. 에드가 빌처는 (당시로서는) 작은 스피커를 만들면서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누구나 음압에 목을 매던 시절에, 높은 음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정확한’ 음을 추구했던 진정한 선구자였다. 그는 밀폐형 스피커를 만들면서 통 안의 공기가 압축되고 팽창하는 것이 마치 진짜 스프링처럼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프링에 우퍼의 진동판이 매달려 있는 셈이므로, 스피커는 스프링에 질량이 달린 간단한 진동 시스템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스프링’에 공진을 일으켜보면 어떨까 궁금해진 에드가 빌처. 이 궁금증은 우리의 스피커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졌다.
진동할 수 있는 모든 물체나 시스템은 고유 진동수라는 것을 갖고 있다. 왜 갖고 있냐고 묻지는 말자. 우리가 몸무게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얘기니까. 그런데 그 물체나 시스템에 진동이 가해질 경우, 그 진동수가 만일 고유진동수와 같다면 그 시스템은 극심하게 진동하게 된다. 이 경우 댐핑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진폭은 무한대가 된다. 실생활에서 예를 들어보자. 세탁기도 시스템이므로 고유진동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세탁기 속에서 통이 돌아가는 것은 통속의 무게가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쏠리게 마련이므로 좌우로 진동이 가해지는 것과 같다. 우리가 탈수할 때 세탁기는 빨리 돌아간다. 이 때 세탁기가 흔들리는데 그 진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탈수가 끝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회전 속도가 점차 줄어들며 꺼지게 되는데, 그 때 세탁기가 갑자기 크게 흔들릴 때가 있다. 바로 이 때의 회전 속도가 세탁기라는 시스템의 고유 진동수와 비슷한 지점이다. 만일 그 속도로 계속 회전하게 되면 세탁기가 부숴지거나 쓰러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스템에 가해지는 진동수가 시스템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해서 진폭이 커지는 때를 ‘공진’이라고 한다.
즉 에드가 빌처는 적절한 저역 주파수에서 진동판과 공기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공진시킴으로써 – 즉 진동판의 진폭을 크게 함으로써 저역을 보강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공기 스프링과 진동판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고유 진동수를 증강시키고자 하는 저역에 맞춰보니 필요한 공기의 체적이 그리 크지 않았다. 실험을 위해 웨스턴 일렉트릭의 유닛으로 만든 작은 스피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에드가 빌처의 이름과 함께 역사속에 남게 되었다.
사족을 좀 달아볼까. 에드가 빌처의 위대한 발명은 초기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모노 시절이었기 때문에 ‘왜 스피커를 작게 만들어야 돼?’ 하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이나, 효율이 너무 나빠서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지적들만 많았다. 에드가 빌처는 몇 군데 대형 스피커 회사에 기술을 팔려고 다니다가 결국엔 포기했다. 하지만 에드가의 발명이 굉장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에드가 빌처의 제자였던 헨리 크로스다. 둘은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서 AR(Acoustic Research)이라는 작은 회사를 차리고 스피커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레오 시대가 되면서 스피커가 두 개가 필요했고, 이에 따른 공간의 부족이나 스테레오 이미지 재생 등을 이유로 AR의 작은 스피커들은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이후 소형 스피커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오늘 날의 밀폐형 스피커들은 음으로 양으로 에드가 빌처에게 직간접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음압이 낮아서 좋을 수도 있다
밀폐형은 음압이 낮다. 따라서 스피커의 가격보다 훨씬 비싼 앰프로 구동해야 훌륭한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요즘엔 스피커들이 더욱 작아지면서 웬만한 앰프로는 울리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하지만 음압이 나쁜 것이 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앰프에는 볼륨의 크기와 상관없이 잡음이 깔려 있기 쉽다. 음압이 높은 스피커에서는 이런 잡음이 무척 민감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음압이 낮은 스피커라면 이런 잡음은 아예 의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음색은 훌륭하지만 잔류 잡음이 깔려 있는 기기, 또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는 분들은 음압이 낮은 스피커를 통해 맑고 깨끗한 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앗!!! 내 하베스!!!
그거 젤로 나쁜 스피커예요. 빨리 바꾸셔야 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