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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3. 지금여기 알아차림
휴가 엿새째다. 오늘은 처서(處暑)다. 여름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 시원함이 찾아온다는 날이다.
아직 빼꼼히 어딘가에 숨어있을 여름더위를 내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하루내 비가 내린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바야흐로 벌초의
시즌이 다가온다. 그리고 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돌아간다고 한다. 모기없는 세상에 살 것 같지만
우리집은 무등산 바로 옆이라서 10월까지 모기 입이 안돌아가고 먹이를 찾는다.
도심에서 생활하는지라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는 없다. 단지 시원한 바람, 높은 가을 하늘, 가을 풀벌레소리,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잠자리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가을이 왔음을 느낄 뿐이다. 이 즈음 시골은 벼가
익어가고 감과 밤이 토실토실 여물어 간다. 어쩌다 한 번 시골에 가서야 이런 가을향취를 맛볼 수 있다.
그래도 어릴적 산과 들에서 맘껏 뛰놀고 논밭에서 땀방울 흘리며 일했던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은 복받았다.
그 힘으로 이렇게 살아간다.
아침시간 딸래미를 데리고 내고향 화순을 다녀왔다. ‘이금호 치과’에서 딸래미의 교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치과 방문인데 직접 데리고 갔다. 지난번 치아 사진을 찍어놓은 것을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을 들려주신다. 상당히 힘든 교정작업이다. 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여러 치료과정을 거쳐야
한다. 치아도 고스란히 부모를 닮는다. 치아 복이 없는 유전자를 딸래미한테까지 전파했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이제와 어쩔 수가 없다.
선택해야 한다. 치아교정을 통해 치료를 받을 것인지, 그냥 그대로 둘 것인지. 딸래미한테 직접 선택하라고 했다.
이제 성인이니 본인이 판단하고 본인이 선택하라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다. 딸래미는 치료받는
것을 선택했다. 2년 동안 한달에 한번 정기방문해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2년간의 치아교정 기간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비뚤어진 치아를 강제적으로 고르게 하는데 어찌 쉬울 것인가. 그래도 잘
견뎌내리라 본다.
무엇보다 따뜻한 미소로 상담을 해주신 이금호 원장님 덕분에 딸래미를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치과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광주로 돌아왔다. 원래는 어머니 모시고 딸래미랑 셋이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어머니가 시골을
가버렸다. 92세 어머니가 시골 동네 어르신들 만나러 일찍도 길을 나섰다. 맘먹고 딸래미랑 점심 하려고 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오후엔 둘째형님 원고정리를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 원고지 140매 중 40매를 줄이는 작업을 했다.
원고를 자세히 들여다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이 눈에 띈다. 과감하게 40매를 들어내니 몸무게를 줄인 것처럼 훨씬
더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형님의 생애사 작업은 ‘해원’의 과정이다. 군인들에 의해 폭도로 내몰리고 범죄자 낙인이
찍히고 온갖 고문과 구타를 가하면서 한 인간이 지켜야 할 자존감을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육신은 짖이겨지고 정신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20대 청춘의 꿈과 희망은 단1%도 건져내기 힘들었다. 그 속에서 맨정신으로 어찌 살겠는가.
술을 마셔도 몸만 무너져내릴 뿐이다. 약을 먹어도 그때 잠시 잠깐 고통을 잊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분노와 억울함을
토로해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상무대 영창에 끌려가 폭도가 되고
범죄자가 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온갖 고문과 구타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 그렇게 20대 청춘은 국가폭력
으로 인해 모든게 무너져 내렸다. 그런 상황을 감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1980년 5월부터 형님이 돌아가신 1984년 12월 5일까지는 함부로 오월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오월은 금기어 였다. 철저히 고립된 현실 속에서 자유와 행복은 언감생심이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1980년 5월 이후 현재까지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대략 100여 명 내외다. 둘째형님도 전남
대병원 여인숙 차디찬 골방에서 스스로를 유폐하고 생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굿을 한다고 해원이 될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그 지점,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 그곳이 바로 해원의 출발점이다.
그것은 바로 ‘나는 폭도가 아니요, 범죄자가 아니요’라는 그 외침, 그 절규로부터 시작된다. 글쟁이가
아니면서도 형님의 생애사를 자청한 이유다. ‘이름 없이 죽어간 브로크공, 오월시민군 이정모’의 생애
사는 이렇게 형님의 해원을 위한 작업이다. 마지막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뿐이다. 오늘
하루, 과연 ‘지금여기 알아차림’ 하는 날이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