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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이사야-14 악한 에돔은 망한다(이사야 34장 1-7절)
성경 말씀은 이사야서 34장 1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이사야 34장]
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2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케 하셨은즉
3 그 살륙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5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심이라
7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오늘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 34장 한 장은, 한 장 전체가 에돔 자손의 멸망을 예언한 그런 말씀인데요, 에돔자손 혹은 에서자손이라고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야곱자손과 쌍둥이 자손이죠.
야곱의 자손들은 훗날 이스라엘이 되고, 에서자손들은 에돔족속이 되었는데, 우리가 잘 아시는 대로 이란성 쌍둥이로 자란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쌍둥이가 늘 끊어지지 않고, 가는 곳 마다 교회마다 쌍둥이가 한 둘씩 있었는데, 여기도 있죠?
그런데 대부분 일란성 쌍둥이인데, 제가 접한 사람들은 가끔 이란성 쌍둥이가 있어요.
이란성 쌍둥이는 보면 어떤 경우는 잘 못 지내는 수가 있어요.
성격도 차이가 많이 나고 형제간이라도 그렇고, 자매간도 그렇고, 혹은 쌍둥이인데 하나는 딸이고 하나는 아들 이렇게 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도 잘 못 지내거나 아니면 둘 중에 하나가 일찍 죽거나 그런 수도 있고..
하여튼 쌍둥이라면 이왕이면 일란성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란성은 잘 못 지내는 수가 있고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제가 본 쌍둥이 중에 제일 못 지내는 쌍둥이가 야곱과 에서예요.
왜 그렇게 못 지내는지 잘 모르겠는데,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한 형제간이면 잘 지내야 되는데, 형제 사이가 남보다 더 못 지내는 사람이 가끔 있어요.
부끄러운 얘기인데 저의 집안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데, 한번 다투고 싸우더니 영원히 만나지 않아요.
명절에도 안 만나고 집안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도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그냥 완전히 남이 되는 사람이 있어요.
참 심하다.. 그런 생각이 되는데 그럴 수가 있습니다.
남과는 잘 지내면서 친형제간인데 바로 위에 형이고 바로 밑에 동생인데 못 지내는 거예요.
여기 쌍둥이인데, 아마도 야곱과 에서가 태어난 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BC2000년경에 BC2000년에서 BC2005년 그 어간에 태어났는데,
이 에서족속이 완전히 땅에서 자취를 감춘것은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에서자손도 다시 말하면 헤롯왕이라는 사람이 왕조가 무너지면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에돔족속이 치명타를 입은 것은 BC135년부터 BC105년까지 하스모니아 왕가,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하스몬 왕가의 요한히르카누스라는 사람이 에돔족속으로 쳐들어가서 남자란 남자는 다 벗겨서 강제로 할례를 행했어요. 억지로..
다 유대인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혈통으로는 야곱자손과 에서자손으로 갈라져있지만 유대 법으로 하면 할례와 결례를 통해서 유대인이 되는 절차는 밟으면 유대인이예요.
그래서 헤롯이 유대인 행세를 할 수 있어요.
할례를 받고 결례를 받았으니까 강제로 억지로 유대인이 되었으니까 헤롯이 유대왕이 될 수 있는 거죠.
어떻든 그 헤롯왕조가 무너지면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돌이켜 보면 이렇게 잘 못 지내고 또 에서자손은 좀 악했어요.
제가 볼 때는 에서자손들이 악하게 된 것은, 지리 풍토와 어떤 일련의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살 때 살만한 곳에 살아야지, 살아서는 안 될 곳에 살거나 어린 시절을 지정학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화 풍토적으로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면 성격이 못 되어질 수 있습니다. 충분히.. 삶의 환경 바탕에 따라서..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은 착하냐? 그렇지도 않아요.
야곱족속인데 오죽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항상 목이 곧고 패역한 사람들이예요.
목이 곧고 패역한데도 그래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좀 있는 거야.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씨가 끊어지지 않은 거야.
엘리야 눈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남았다 싶을 때도 하나님은 7000명 남겨 놨다 그러고 말이죠.
그러니까 신앙의 씨앗 어떤 믿음의 등불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고, 그런 씨앗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백성들은 보통 악한게 아니고 아주 못되었지만 그래도 긍휼을 입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하다보니까 항상 약한 민족이다보니까 우리나라처럼 뭐 어디가서 주변나라를 침략하거나 누구를 괴롭히거나 그렇게는 못 했어요.
침략 안한게 아니고 침략 못한거죠. 사실은.. 힘이 있어야 하지..
맨날 못된짓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늘 징계와 징벌을 받아가지고 힘이 없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을 악하게 침략하거나 이런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혹시 침략한게 있다면 여호수아때 가나안 땅 전체를 침략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뜻에 의해 한 것이고, 다윗 시대에 에서자손들을 쳐서 거기 수비대를 두기도 하고, 한때는 요압이라고 하는 다윗의 군대장관이 에서자손들에게 쳐들어가서 남자란 남자는 모조리 다 죽여버렸는데 그런 일을 했죠.
그 이외에는 항상 에서자손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못된 것은 아까 얘기한대로 못될 수밖에 없는 곳에 살았어요.
사람이 살아도 그런 데에 살면 안돼요.
‘왕의 대로’라는 대로는 무역로에요. 옛날에..
실크로드가 쭉 서쪽으로 나가다가 한갈래는 끝까지 가서 터어키를 가로질러서 차나칼레 해협을 건너가는 그런 길이 있는가 하면, 중간에서 안디옥이라든지 이런 데서 서남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비아마리스라는 하는 해변길로 가서 애굽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무역로 중의 하나이고,
그 다음에 왕의 대로라고 하는 이것은 에시온게벨로 해가지고 에돔땅을 지나가서 왕의 대로라는게 에일랏 지금 현재 알아카바와 에일랏 그 항구로 내려가서 홍해로 가서 구스, 옛날에 이디오피아는 큰 나라였는데, 구스쪽으로 내려가는 그런 길이 있는데 그 무역로는 꽤 유명한 무역로예요.
아주 오래된 길이죠.
그 길목에 딱 살다보니까 일단 통행료를 받아요.
길을 지나가는데..
통행료는 요즈음도 톨게이트에서 받기도 하죠.
그때 그 길을 자기가 닦은 것도 아니야.
오면서 가면서 하는 사람 대상들이 사람들이 자꾸 다니면서 저절로 길이 난건데, 그게 자기 땅이라고 길 통행료를 받는데, 보통 물건 같으면 통행료만 받고 귀중품 갖고 있으면 싹다 빼앗아버리거나 죽여버리고 끝장내버리는 거죠.
이런 짓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삶의 터전 자체가 꼭 그런 것을 하니까 악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우리가 살다보면 도둑질 말고는 다 하라. 그런 말이 있는데 직업도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돼요.
나는 늘 비가 오고 이번에 이렇게 홍수가 나고 할 때, 길가다가 운전하다 보면 견인하는 차 있잖아요. 사고난 차 견인하는 레카차. 그 사람들 심리는 어떠할까 늘 걱정이 돼요.
어떨 것 같아요? 사고 한건도 없으면 ‘젠장 오늘 사고 한건도 안 났다..’
직업이 그것도 필요한 건데, 그것 없어봐요. 필요하긴 필요한데, 그것을 전업으로 하고 있으면 제발 사고 좀 놔라. 그러고 앉았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늘 걱정이야.
하는 일 자체가 선한 일이어야 하는데, 사는 곳도 보통 옛날부터 그런 말 있죠.
우리도 혹시 역 근방에 사는 분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역전 근방에 보면 사람들이 거칠어요.
역전의 용팔이..
그리고 동네가 역촌. 옛날에 역마차가 지나간다든지 그런 곳에 살면 참 그래요.
저도 묘하게 제가 살았던 데가 원지교회라는 곳인데, 전에 14년간 있던 곳인데, 거기는 장성도 세워놓으면 3년만 있으면 걸어가고 말을 한다는 그런 곳이고..
그 위에 올라가면 생초라는 곳이 있는데, 지난번에 우리 축구코치 박항서씨 고향이 거기예요.
전에 월드컵 코치하던 사람인데,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고 키가 자그마한 사람인데 생초 사람입니다.
생초 사람도 싸움을 잘 해요.
생초 위에 가면 수동 사람인데, 수동 사람들은 싸움을 더 잘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보면 동네가 고성을 말하면 고성읍 사람보다는 배둔 사람이 훨씬 싸움을 잘해요.
배둔읍 사람은 물컹한데, 배둔이 지나가는 길목 면소재지인데, 마산과 고성사이에 있거든요. 길가에 역촌에..
그래서 항상 배둔 사람이 이기는 거야.
함양 사람과 수동 사람이 싸우면 수동 사람이 이겨요.
수동은 면소재지이고 함양은 군청소재지인데 항상 2등짜리가 악바리야. 2등이..
한문글자로 쓰면 악(惡)이란 말을 할 때 악, 악이란 악(惡)자를 보면 ‘버금 아(亞)’자 밑에 ‘마음 심(心)’자예요. 그렇죠?
'버금'이란게 둘째 예요. 둘째. 둘째 심보가 도전정신이 강하고..
그래서 거창 사람 보다는 항상 가조 사람이 싸움을 잘하고..
의령 사람보다는 신반 사람이 싸움을 잘해요.
밀양 사람보다는 삼랑진 사람의 주먹이 훨씬 세죠.
부산 사람보다는 구포가 더 세고..
이상하게 2등 정신이라는게 악바리야. 악바리.
야곱도 2등이죠.
에서가 큰 아들이고 야곱이 둘째인데, 그 버금 정신. 버군다 해요 경상도 말로. 딱 버구네 그러면서..
2등이란게 1등에게 도전을 해서 저것만 꺾으면 내가 정상이다 싶어서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버금 정신이 있는데,
이 버금 심보가 악이란거예요. 한문으로 쓸 때..
그런데 우리나라 풍토를 볼 때 산청 사람보다 원지 사람이 싸움을 잘 하거든요. 항상..
진주 사람보다 반성 사람이 싸움을 잘해요. 반성..
앞으로 여러분이 이런 안목을 가지고 그 지리와 인성 품성을 가만히 보세요.
보면 확실히 그렇구나. 그런 걸 느낄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사람이 사는 어떤 지역 풍토 문화와도 상당히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에서 자손들이 길목에 살다 보니까 항상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뜯어먹어요.
그리고 로마군인들은 자기 나라 평화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군인들은 전쟁을 해야 수지가 맞으니까..
전쟁 안하면 그렇게 무료할 수 없어요.
전쟁을 해야 얻을 것도 있고 탈취할 것도 있고 이렇게 수지가 맞으니까..
장의사는 자기 처가집 오래사는게 마음에 안든다고 하죠.
직업도 생각을 해봐야 돼요.
그 하는 일과 사는 장소와 그런것에 따라서 사람 심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에서 자손은 길목에 살다보니까 완전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벗겨먹고 뜯어먹고 날치고 들치기 훌치기 소매치기 이런 것..
항상 그저 약탈 겁탈 강탈 수탈.. 그렇게 다하는 거야.
내가 전부다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에서가 지어낸거야.
에서 자손이 이렇게 못됐다고..
여러분 그렇게 못됐는데도 하나님은 얼마나 오래 참느냐? 2000년을 참은 거예요.
에서를 낳아서부터 에서족속이 완전히 지구상에서 전멸될 때까지 한 2000년 걸린 거예요.
제가 어제도 일부러 시간 내어서 이 에서자손이 얼마나 오래 버티었는가 하고 온갖 조사를 다 해봤는데, 근 2000년간 버틴 거예요.
그래서 악한 사람이라고 해서 망하기를 기도해봤자 거의 응답이 잘 안 됩니다.
여러분 김정일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잘 안 죽어요.
김일성이 망하기를 대개 바라고 있는데 죽어도 그 뒤에 김정일이 나오고..
악한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오래 살아요.
하나님께 물어봤어요. 왜 악한 사람이 오래사느냐고 물어보니까 빨리 회개해야 데려갈텐데 회개를 하지 않아서 데려가지도 못한다는 거예요.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은 55년 동안 왕위에 있죠.
남북 왕국을 통틀어서 제일 장기집권 한게 므낫세예요. 제일 악독한 사람..
의외로 의로운 사람은 빨리 가는 수가 있어요.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30살 33살에 세상을 떠났죠.
그래서 오래 산다고 다 좋은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다 무병장수하고 또 좋은 일 한다면 오래살면 더 좋겠죠.
하여간 이 에서자손들이 2000년이나 버티고 있었는데, 지금 이사야가 앞으로 에서자손이 완전히 씨가 말라질려면 700년 후에나 지구상에서 사라질 텐데, 일단 에서자손이 망한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이사야 34장]
3 그 살륙당한 자는 내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에서 자손들이 살던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륙당하는지 피에 산이 녹을 것이라고 그런 말을 합니다.
마치,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이것은 여름에 청청 푸르다가 늦은 여름에 포도를 다 따고 이어서 가을이 되면서 포도나무 잎을 마르고 시들어 버리면 정말 앙상하죠.
그런 것처럼 번창하던 에서의 산들이 그렇게 마치 포도나무잎이 마른것처럼 무화과나무 잎이 마른것처럼 될 것이다.
5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어떤 나라는 멸망하기로 작정되었는데도 오래 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법조계에서 사형선고를 조심해서 하는 거죠.
사형구형도 조심하지만 사형선고는 몇번이나 선고유예 하다가 결정적으로 마지막 선고하는 공판을 하죠?
사형선고 내려지면 사형인데, 그래도 집행은 상당히 유예를 많이 합니다.
혹시라도 이것이 판결이 잘못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사람이 진범이 아니고 또 다른 진범이 잡히는 그런 예가 더러 있기 때문에 사형선고가 떨어져도 집행까지는 상당히 유예기간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유예가 계속 되다가 아예 그냥 무기로 감형되는 수가 있어요. 사형에서..
정치 판국이 혼란스러운 나라일수록 그런 일이 많죠.
그 동안에 정권이 바뀐다든지 그렇게 되면 사형에서 무기로, 무기에서 유기로 해가지고 나중에 무죄로 나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멸망으로 정한 백성들이지만 그래도 참 오래 참으시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 성경을 제가 꽤 여러 차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봤는데 에서족속 출신 중에 의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단 한 사람도 내가 못 만났어요.
에서의 자손중에 어떤 의인이 있었다 이런 게 없는 거예요.
지혜자가 있고 여기 뭐 아주 명석한 놈도 있고 똑똑한 사람도 있고 하는데, 의로운 사람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죄가 많기로 하면 일본도 죄가 많고 해도 그래도 의인이 얼마 있으면 그 의인들 때문에 악인들도 생명 부지를 하는 건데, 완전히 의인이 없으면 망해야 되는 거죠.
종자용도 없고 씨고 없으니까..
6절입니다.
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보스라’라는 곳은 사해 남쪽 30km되는 곳에 ‘브세이라’ 라는 곳인데, 브세이라는 곳은 양치는 곳, 그런 뜻입니다.
..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륙을 행하심이라
7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8절입니다.
8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
‘보수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캄’이라는 그런 말을 쓰는데, ‘원수에게 보복한다’는 뜻입니다.
보복하되 원수에게 처절하게 보복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복한다는 겁니다. 보수.
우리가 교회에서 보통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할 때, 항상 그저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이렇게 그런 면만 이야기하지 보수하신다는 말은 잘 안 쓰잖아요.
실제로 성경은 얼마나 많은 곳에서 ‘보수는 내 것이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을 테니까 너희는 갚지마.’
이런 말들이 끝없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수하는데 은사가 있어요. 원수 갚는데는 전문가입니다.
8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라
‘시온의 송사’라는 것은 에서자존이 항상 해마다 철마다 때로 몰려와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수탈하고 약탈하고 겁탈하고 강탈하고 빼앗아가고 하니까, 항상 그저 시온의 송사가 예루살렘에서 이 에서자손을 송사하는 송사가 끝없이 하늘에 사무쳤는데, 그래도 그게 응답이 잘 안 돼요.
그런데 어떤 양이 차고 때가 차고 뭐가 차야 돼요.
그래서 이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라.
신원하신다는 말도 지금 우리 회화체에서 잘 안쓰는 말이죠?
히브리어로 할 때는 ‘실림’이라고 합니다. 실림은 ‘살롬’에서 나온건데, 억울한 것이 보상되어서 화평을 이루었다는 겁니다.
억울한 것이 다 보상되어서 화평을 이루었을 때 샬롬이 되는거죠.
히브리어로 실림이라고 한 것은 억울한게 보상되는 날. 억울한 한이 풀어지는 날.
우리 말로 신원(伸寃)한다고 한문글자로 썼는데 너무 어려워서 뭐라 합니까?
‘원한이 풀어지는 해’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는 보복하시고 따라서 억울함을 당하던 시온성 사람들에게는 원한이 풀어지는 그런 해라는 겁니다.
그 때,
9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러니까 동물들이 한 군데 많이 죽어서 고이면 원유가 되는 거죠. 원유. 역청
..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 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11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당아’라는 새는 보통 우리가 지금 하는 조류명으로 ‘펠리컨’이라는 새입니다. 펠리컨.
먹이 주머니가 부리밑에 달려가지고 물고기 실컷 잡아서 다 집어넣는 거야.
입을 벌리면 새끼들이 꺼내어 먹어요.
그래서 옛날에 하얀 액을 가지고 지울 때 하얀액 화이트라고 해서 그 밑에 볼록하게 주머니가 나와있어요.
그래서 그 하얀잉크 그것의 이름을 펠리컨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당아.
에서의 땅을 완전히 사람이 전멸되고 나면, 거기에 사람들이 완전히 살지 않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어서,
11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 시골에서 자라오신 분들 까치집은 들어보죠?
까치집은 우리 집 인근에도 보이는데 까마귀 집 보신 분 손 들어보세요.
우리가 얼른 볼 때 까마귀와 까치는 사촌쯤 되는 것 같죠?
까마귀는 완전히 새까맣고 까치는 절반이 까맣고 하니까 사촌이 되는가 까막까치 그러는데 전혀 다른 종입니다.
까치는 겁이 없어요. 겁이 없어서 인가 근처에 동네 근처에 사람들이 다 보이는데 꼬쟁이로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저도 어지간히 새도 관심이 많고 자연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도 한번도 일평생 까마귀 집을 못 봤어요.
어디에 집을 짓는지 몰라.
그런데 물어보니까 에서의 땅에 가서 집 짓는다고 해요..
그만큼 까마귀가 인간과 친화성이 없는 새입니다.
아주 사람들에게 친화성이 없어서 늘 어디 한적한 곳에 집을 짓는 그런 새예요.
부엉이도 마찬가지죠.
부엉이 울음소리는 가끔 듣습니다. 부엉~ 하는데 집을 발견하기 어려워요.
아주 높은 곳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 거예요.
제 동생 목사는 어려서부터 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봄 내도록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새 새끼를 잡아오는 거예요.
집에 와서 자기가 새 어미가 되어서 키워요 새를..
새를 기르는데 어떤 새는 잘 기르면 동생이 어디 갔다오면 어깨에 와서 올라오고 그게 즐거운가봐..
그래가지고 새를 기르고 하는데 목회하면서도 그 습관을 못 버려가지고 김천 밑에 대덕에서 목회할 때 가니까 부엉이 새끼 두마리를 주워왔어요. 어디서..
그게 ‘부엉 부엉~’ 하면 교회가 부흥된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게 커요. 덩치가 아주 굉장히 큰 부엉이인데, 먹는게 엄청나게 많이 먹는데 그것을 개척교회 홀을 얻어서 한 켠을 막아서 기르는데 두마리를..
나중에 한참 가다가 한 마리 죽고 한 마리 키웠는데 그 한 마리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몇년을 먹여 길러도 주인에게 반갑다는 눈치도 없고 아주 싸가지가 없어. 부엉이가..
그렇게 먹여주고 맨날 그랬는데 항상 원수처럼 그렇게 하는 거야.
야 무슨 재미로 그러느냐? 내 보내라. 은혜도 모르는 새다..
그런데 그 부엉이 한 마리를 먹일려면 항상 통닭집과 여러 통닭집에 닭발 닭내장 이런 것 항상 다 계약을 해가지고 그리 먹이는 거예요.
이런 새들이 전부 사람과 친화성이 없어서 완전히 한적하지 않으면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전부 에서 땅에서 둥지를 트는 거야. 너무 조용하니까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11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시랑’이란 것은 ‘재칼’을 말합니다. 재칼 들개.
역시 여우처럼 생겨가지고 입이 뾰족하고 못생겼는데 들개, 타조 이런 것들이 거기에 산다.
14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수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15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
‘거기’라는 것은 에돔 땅, 에서 땅이죠. 그만큼 여기 보면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인다’고 했는데 ‘짝’이 히브리어로 ‘레우타흐’라고 하는데, 레우타흐라는 말은 암컷 짝을 말합니다.
수컷들이 암컷 짝을 데리고 와서 거기에서 쌍쌍파티하고 거기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그런 온갖 동물들이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
아무도 사람이 안 오니까..
그 정도로 한적한 곳이 될 것이다.
그냥 에서가 쫄딱 망한다고 해도 될 텐데, 어지간히 에서자손에 대해서 한이 맺혔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16절은 우리가 일반 부흥강사들이 앞에도 뒤에도 문장 문맥도 안 보고, 이게 하나님 말씀이 짝이 없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래가지고 번역이 좀 애매합니다만.
저도 한참 많이 써먹었죠. 어른들에게 배워서.
하나님 말씀이 다 짝이 있다고 한참 써 먹다 보니까 그게 잘못된 거예요.
하나님 말씀이 짝이 있다는 말이 전혀 아니고,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이것들이’ 할 때, 이것들은 위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 당아 고슴도치 부엉이 까마귀 재칼 이리 수염소 올깨미 부엉이 솔개 이런 것들이 아까 짝꿍과 온다고 했는데, 이것들이,
..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여기 짝도 역이 히브리어로 ‘레우타흐’라는 암컷을 말합니다.
전부 다 어디가서 암컷을 데리고 와서 거기에서 둥지를 틀고 거기에서 새끼를 까고 한다는데,
..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것들’이란 것은 동물들을 모으셨는데,
17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그것들’은 동물들)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 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여기까지 해서 전체가 에서자손의 땅이 동물들의 쌍쌍파티하는 곳이 된다.
한줄로 하면 그래요.
완전히 망하고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희귀한 동물 친화성 없는 동물들이 전부 거기다가 둥지를 틀고 그것들이 다 짝을 데리고 와서 거기에서 놀게 될 것이다.
그런 얘긴데, 우리 어른들이 앞에도 안 보고 뒤에도 안 보고 써먹기 좋다고 이것을 요절이라고 하나님 말씀이 다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지금도 계속해서 그것을 요절이라고 암송하는 사람이 많아요.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가 보통 요절이라고 하는 것 대체로 요절이 아닌 수가 많습니다.
그 책에서 구절 자체가 요절이 아닌데, 그냥 써먹기 좋은 구절인 뿐이야.
반면에 35장한 맨날 빼앗기고 억울하게 당하고 눌리고 늘 이렇게 수탈당하고 늑탈당하고 당하기만 하던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오히려 훗날 때가 되면 그 업을 누린다는 얘기를 해요.
늘 떨어먹고 빼앗아먹고 이기고 억압하고 탈취하고 이런 에서는 이렇게 철저하게 망하는 반면에, 오히려 차라리 빼앗기기만 하고 실컷 농사 지어가지고 추수하고 거둬놓으면 또 와서 빼앗아 가고 이렇게 늘 빼앗기기만 하던 이스라엘은 때가 되면 업을 누린다는 거예요.
35장입니다.
[이사야 35장]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은 더러 잘못해가지고 징벌도 당하고 징계도 당하고 하지만 반드시 희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에서자손이라든지 모압자손이라든지 암몬자손이라든지 니느웨라든지 바벨론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항상 끝장이.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일어났지 않습니까?
제가 역사를 정리해볼 때 이스라엘 백성과 에돔자손과 한번, 딱 한번 공조를 이룬 적이 있었어요.
어디냐 하면 열왕기하서 3장에 보면 모압왕 메사라는 사람이 아합왕이 살아있을 때는 항상 양털 10만 마리 20만 마리 해마다 조공을 바쳐왔는데, 아합이 죽고 나니까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다는 거예요.
이 배반한 모압을 징벌하기 위해서 나갈 때 북쪽왕 여호람이 남쪽왕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3개국이 연합군을 만들어가지고 모압을 징벌하러 갔는데 그 때 한번 공조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이외에는 한번도 이스라엘과 에서 자손이 잘 지낸적이 없어요.
늘 그저 앙숙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에서자손이 망할 것인데, 망한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데, 35장 3절,
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4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이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된 것을 징벌할 때 바벨론이라는 칼을 뽑아가지고 다 징벌하는데, 예루살렘의 목을 치던 날에 에서자손도 완전히 다 멸망을 당했을 겁니다.
그리고는 에서자손은 그렇게 망했지만 얼마간 흩어져서 붙여살죠.
이스라엘 백성은 나중에 바벨론 포로갔다와서 노래하면서 돌아오게 되거든요.
돌아온 후에 에서자손은 별로 맥을 추지 못하고, 결국은 나바티안 아랍사람들에게 쫓겨서 이두메라는 쪽으로, 세일산에서도 쫓겨나서 유대 땅 근방에 가서 살다가 나중에 흐지부지 되고 말아요.
그 사람들은 회복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물론 회복되어도 또 AD70년에 망하고 합니다만 항상 이스라엘은 그래도 그 뒤에 희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34장 여백 어디에다가 각주를 달기를 ‘예레미야 49장 7절에서 22절’, ‘에스겔서 35장 1절에서 15절’, 그리고 ‘오바댜서 전체’, 또 한곳을 더 쓰자면 ‘아모스 1장 11절 12절’.
이런 곳에 보면 꼭 같은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문자와 단어 이런것은 다르지만 문장은 다르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에서 자손은 처절하게 망한다는 얘기를 해요.
그런데 그 때 당시는 에서자손이 망할 것 같지가 않았어요. 너무 난공불락의 요새 안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에돔이 살던 페트라를 한번 감히 누가 넘어다 보리요. 이렇게 했지만 결국은 망하는 거예요.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망하게 되었는데,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오바댜서 할 때 보면 예레미야서라든지 에스겔서를 함께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확실하게 정리해 둘 것은, 이사야 34장 한장 전체가 에돔자손의 멸망을 확실히 예언한 것이고, 반면에 에돔자손에게 늘 수탈당하기만 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때가 되면 업을 누린다는 거예요.
이런 예언들은 애매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분명하게 문자대로 그대로 해석할 것도 없이..
이 예언서의 해석은 역사가 바로 해석이예요.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보면 해석은 저절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역사를 알면 예언서가 보이고, 예언서를 알면 역사서가 보이는 거죠.
우리 중에도 혹시 남에게 맨날 그저 이용당하기만 하고 빼앗기기만 하고 억울하게 당하고 그런 분이 혹 있겠죠.
없으면 다행이고 혹 있다할지라도 아직 우리가 살아있으면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는 때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작은 손으로 조금씩 하는 것 그것도 열심히 하면 조금 도움이 되죠.
옛날부터 어른들이 작은 부자는 부지런하면 된다고 했어요.
‘소부(小富)는 유근(由勤)이요.’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대부(大富)는 유천(由天)이라. 큰 부자 될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작은 것 빼앗겼다고 미워하지 말고 그저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하나님의 신원하실 해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좀 억울한게 있어야 하나님이 신원하실게 있잖아요.
우리가 남에게 빼앗아 먹은 것 보다는 차라리 빼앗기는게 나을 겁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인데, 빼앗아 먹었던 에서자손은 망하고, 빼앗겼던 이스라엘 역사는 회복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6장은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세일산 산록의 왕의 대로 곁에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벗겨먹고 빼앗아 먹고 약탈하던 에서자손이,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하실 날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망할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셨고, 우리가 역사를 돌아볼 때 그 말씀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고, 우리가 혹시 남에게 속거나 남에게 빼앗긴다 할지라도 누구를 빼앗거나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우리 손으로 정직하게 일한 것 중에서,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인해서 풍성하게 될지언정, 사람을 이용하거나 다른 잘못된 수단을 가지고 부를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그런 우를 범치 않게 하시고,
항상 목적과 목표가 선일 때 방법도 선한 길로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하사 헛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 손으로 수고한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