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도심 한 복판에서 문득 깊은 산 속의 선사 주거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요?
목요일 김종완 선생님과 몇몇 회원들은 점심을 먹고 지헌 도예전시회를 하고 있는 샘터 갤러리로 갔어요.
샘터 갤러리 아시지요?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옆 샘터사 뒤쪽 문으로 나가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지요.
하얀 회칠 벽과 좁다란 입구가 조금은 남루하기까지 했어요.
여덟 명의 일행들을 앞서서 제가 두어 계단 쯤 내려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깊은 숲의 향기가 부드러운 실크처럼 제 살갗을 감싸는 거예요.
음. 이게 뭐지? 점심을 너무 잘 먹었나? 기분이 좋으니까 환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그리고는 무심히 계단 밑을 보니까 김기철 선생님 사모님이 우리 일행을 올려다보며 반가운 몸짓으로 다가오더군요.
인사를 나누느라고 냄새에 대해선 까맣게 잊었었지요.
뒤이어 일행들이 내려와 왁자하게 김기철 선생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동안 전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아!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역시 지헌 선생님이십니다. 지헌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분입니다.
그곳에, 그 지하의 작은 공간에 곤지암의 보원요 뒷산을 옴쓰라니 옮겨 놓으셨어요. 마술을 부리듯이.
아름드리 소나무를 반 절 툭 잘라 양 끝에 통나무를 괸 진열대는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뽀얗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악시 볼빛이었고,
그 통나무 진열대 밑에는 무성한 생솔가지가 잎눈을 반짝이며 숨을 쉬고 있었어요.
키 작은 소나무 숲을 생생하게 재현하셨지요.
얼마 전 곤지암에 갔을 때 남자 두어 분이 톱과 대패로 목재를 다듬고 있는 걸 봤어요.
이번에 쓸 진열대를 직접 만든 거지요. 반가워서 쓰다듬어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살빛 송판 위에 깔린 곱디고운 모시를 보고 말았습니다.
여인의 둥근어깨를 감싼 세모시에서 비쳐나오는 살빛처럼 투명하도록 고운 모시천,
그 위에 신화처럼 숨을 쉬는 적송빛 물고기 연적 연꽃 모양의 항아리, 빗살 무뇌 접시,
무르익어 막 터지는 석류 모양을 한 연적, 연꽃 문양의 백자 연적,
넓은 연잎을 제치고 살짝 기어오르는 개구리, 등등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일 년 여, 우리가 보원요를 드나들며 보았던
수많은 작품들을 다 두고 깊이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 같은 작품들을 드문드문 올려놓으셨더군요.
살빛 송판 위에 하얀 세모시가 깔리고
그 위에 적송 빛 맑고 고운 도자기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며 진열되어 있는 거예요.
그 드문드문 놓인 도자기들이 지헌 선생님의 절제미를 느끼게 했어요.
허리가 풍요한 항아리에는 줄기가 굵은 진달래 한 그루를 통째로 꽂아 두었더군요.
분홍빛 수줍은 꽃잎이만개했구요.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갑자기 전 아득한 이 세상 밖의 어느 공간으로 떠밀린 듯 혼미해지고 말았지요.
황홀한 멀미! 아 이거 최민자 선생님 수필에 나오는 표현이지요.
그
래요 전 그 순간 황홀한 멀미로 어지러웠습니다.
황홀한 멀미 한번 맛보고 싶지 않으셔요?
만약에 그러고 싶으시면 내일 점심을 굶고
동숭동으로 가셔요.
밥이야 날마다 먹는 것 한끼 굶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그러나 진정한 예술품을 관람하며 황홀한 멀미를 한번 해본다면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진열대 밑에서 낮은 자세로 고요히 숨쉬고 있는 솔잎이 마르기 전에 한번 꼭 가보셔요.
시간이 지나면 그 신비한 공간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김기철 선생님이 누구냐구요? 위 사진에서 보듯이 저렇게 세련된 멋쟁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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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소개 地軒 金基哲 님의 ‘봄’ 도예전에 부쳐
옛사람들은 이 우주를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우리들의 몸 또한 이 네 가지, 즉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매만지고 소용에 따라 쓰고 있는 도자기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네 가지가 서로 어울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그릇은 작은 우주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그릇을 빚는 사람의 혼과 솜씨가 곁들어 생명력을 지닌 작품이 탄생된다.
오랜 세월을 두고 오며 가며 가까이 지내고 있는 보원요의 지헌님은 무엇보다도 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흙과 더불어 몸소 농사를 짓고 그릇을 빚고 꽃과 나무 가꾸기를 즐긴다. 세상이 잘 알다시피, 영문학도인 그가 궤도를 바꾸어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도자기를 빚는 것도 오로지 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보원요에서 만들어 준 찻잔과 다기와 그릇들을 아끼면서 쓰고 있다. 물레를 돌려서 빚어낸 보통 그릇하고 달리, 손으로 빚고 전통적인 장작가마에서 구워 낸 그릇이기 때문에 때깔이 곱고 쓸수록 정이 간다.
샘터사의 주선으로 이 봄에 모처럼 전시회를 갖는다고 한다. 연적을 비롯해서 다기 등 최근에 빚어낸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조화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작은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거칠고 삭막한 세태에 아름다운 도자기로 새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몇 마디 늘어놓았 다.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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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소개
12x12x15cm 백자 1994
10x19x12cm 백자 2004
(좌) 30x50x27cm 자연색 2004 (우) 26x65x23cm 자연색 1999
(왼쪽부터) 37x37x41cm 백자 1987 39x39x54cm 백자 1988 43x41x34cm 백자 1987 18x18x13cm 백자 1983 33x33x41cm 백자 1987
10x10x5cm 자연색 2007
(좌) 12x12x16cm 자연색 2007 (우) 13x13x17cm 백자 1994
10x19x12cm 자연색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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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보기 - 봄春, -자연과 함께한 삶과 예술-
경기도 곤지암의 보원요寶元窯에서 30여 년째 한길을 걷고 있는 도예가 김기철의 일곱 번째 개인전은, <봄春>이라는 전시명이 말해주듯이, 자연을 모태로 창작한 30여 점의 백자 연적硯滴과 10여점의 백자 항아리, 수반水盤, 다기茶器 등으로 이루어진 도예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하여 1995년 개인전 이후에 10여 년간 제작한 수 백점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자연의 색과 모양을 닮은 30여점을 엄선하였다.
김기철 작가의 도자세계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조형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과의 합일合一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자연自然이 그 주제를 이루는데 주로 식물의 잎, 꽃, 열매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새, 물고기, 청개구리, 복 두꺼비 같은 동물들도 자주 등장을 한다. 김기철의 도자 성형 방법은 그 기법 면에서는 전통적인 조선조 백자의 맥을 잇고는 있지만 성형과 유약, 형태에 있어서는 그 전통을 답습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전통에 뿌리를 박은 수 백 년된 고목 줄기에 새로운 꽃과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대단히 자유로운 모습들로 다가오는데, 물레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빚어 올린 그 특유의 분방함은 보는 이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간다. 대부분의 작품이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 왔기 때문에, 식물의 잎과 줄기가 가지고 있는 바람에 날리는 것 같으면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 한 이미지를 가지고 이다. 즉, 자연의 형태인 불균형속의 균형이 조화를 이룬 형태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철의 도자기는 자연에 좀 더 접근하여 그것과 일체화 하는 과정에 다름 아닌 지도 모르겠다.
김기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잠시 그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그가 영문학을 전공한 영문학도였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하던 일을 일거에 그만두고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참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조화롭게 어울린 동산으로 돌아와 오랜 세월동안 흙과 함께한 세월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집념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그 곳에서 흙과 불과 함께 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계절의 흐름과 함께 구름 흐르듯이 그의 재래식 용가마의 불빛도 그렇게 빛났을 것이며, 불을 지피던 작가의 따뜻한 마음도 한줌의 재가 되어 훨훨 하늘로 날아갔으리라.
그의 작품이 자연과 닮아 있는 것은 그의 삶 그자체가 자연적인 이유에서 이다. 서구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공간속에서 상호 대립하는 관계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관심사는 상호 작용의 관계성에 있지 않고, 자연을 분석의 대상 혹은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동양철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자연철학自然哲學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도달하지 못할 열반涅槃의 세계로 가기위한 그만의 방법을 찾아 가는 기나긴 여행의 여정旅程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이룰 수 없기에 의미가 있는 길임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예부터 좋은 벼루 머리에 운치 있는 연적硯滴을 두어 선비의 고상한 한묵정취翰墨情趣를 돋구었는데, 문방사우文房四友 중에서도 연적에 그 예술적 가치를 가장 많이 두어 늘 곁에 두고 감상하기를 즐겨 하였다. 하지만 연적은 그 쓰임새의 기능적 역할을 벗어나 사대부들의 부를 상징하는 사치의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연적의 형태나 문양은 다분히 귀족들의 취향으로 흐르고, 문인화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권위적 전통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연적은 그 특유의 조그마함으로 많은 도예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작지만 절제된 미의 극치를 보이는데, 작은 연적 안에서 우주의 심오한 세계를 발견하기에는 좀처럼 그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철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이 그의 연적에서도 특유의 해학이 엿보인다.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고상한 백자 항아리에 어디에서 톡 튀어나왔는지 앙증맞은 개구리가 앉아 있는가 하면, 수반水盤들은 그 주둥아리를 헤벌림으로서 그 기능을 일거에 상실하기도 한다. 작가는 동물들이나 자연의 재미있는 소재를 차용하여 씀으로서, 그 대상물의 존재와 작가와의 교감을 통한 일체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적인 재미를 유도하는 해학諧謔의 미학美學에 닿아 있는 것이다.
김기철의 도예는 실용적이거나 기능적인 예술의 기존 가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특별한 기법이나 전형이 없이 그만의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그의 작업세계는 그 자체로서 예술의 경계를 넘어 일상과 소통을 하는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김기철의 작업과정은 확실히 다른 과정을 거친다. 그의 광주 곤지암 보원요寶元窯에는 재래식 용가마가 산비탈에 어엿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작품 제작 과정은 수비水飛에서부터 소성燒成에 이르기까지 기계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예날 방식 그대로 몸을 사용하여 작업을 한다. 따라서 작업과정은 느리고 더디게 진행되는데 그 일체의 행위를 통하여 작가는 예술적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비로소 완성된 그의 작품들은 재래 가마인 용가마에 운명을 맡기게 된다. 조선시대의 전통 가마를 그대로 재현한 가마에는 우리의 소나무인 좋은 육송만을 지피게 되는데, 이 어려운 과정을 견딘 일부의 작품만이 맑고 윤기 있는 청아한 질감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김기철 도예의 색깔은 자연의 색이다. 그의 도자기에는 유약을 시유하지 않는 작품이 있는데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는 이른바 자연유自然釉의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하여 나온 도자기들은 옅은 적갈색을 띠는 오묘한 색을 만들어 낸다. 잘 기른 예쁜 딸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정성껏 가마에 작품을 넣은 후 모든 것을 가마에 맡긴다. 그 다음은 불의 몫으로 남겨두는 비움의 깨달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만든 자연의 색인 것이다.
다소 비능률 적이고 어려운 작업을 하는 이유를, 작가는 현대 과학 물질문명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원시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치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김기철의 도자기들은 흙을 닮은 그의 투박한 인상처럼 다정하고 친근감 있다. 세속의 잡다한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비로소 홀로된 소나무처럼 외로워 보이지만, 하늘에 구름 한 점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소나무 같아 보인다. 텅 비어 있어 더욱 충만한 그의 도자기들에서 봄의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희古稀를 넘긴 작가의 애장품에 따뜻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이종호 (LEE Jong-ho 샘터 갤러리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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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약력 知軒 金基哲 (지헌 김기철)
충북 괴산 출생 1959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9 동덕여자중고등학교 교사 및 고대영문학과 강사
l 개인전 1979 제1회 김기철 백자전 (선화랑) 1981 제2회 김기철 도예전 (공간미술관) 1983 제3회 김기철 도예전 (선화랑) 1986 제4회 지헌 김기철 도예전 (서울갤러리) 1990 제5회 지헌 김기철 도예전 (보원전시관) 1995 제6회 김기철 도예전 2004 제7회 김기철 도예전 자연의 숨결 (세오갤러리) 2009 제8회 ‘봄春’ 김기철 도예전 (샘터갤러리, 대학로)
l 단체전 1982 한국 현대 도예의 단면 - 한미수교100주년기념 미국 및 프랑스 순회전 (문화관광부) 1982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82 한국현대미술대전 초대 출품 (문예진흥미술관) 1983 한영, 한독 100주년기념 영국, 독일 순회전 (국제문화협회) 1984 서울종합경기장 준공기념 도예전 (KBS) 1986 백자 특별전(호암갤러리) 1993 서울 현대도예비엔날레 초대전 2001 광주 도자 엑스포 초대전 (광주조선관요미술관) 2002 동방의 숨결전 (영은미술관) 2003 현대 한․일 도예전 (금호미술관) 2003 한국 도예 전통과 변주 (샌디에이고)
l 수상 1979 제4회 공간대상 도예상
l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교황청 (이탈리아, 로마) 대영박물관 (영국) 시카고 박물관 (미국) 에벨링 박물관 (스웨덴) 버밍햄 미술관 (미국) 청와대 (한국)
l 저서 1993 수필집<꽃은 흙에서 핀다.> 2006 <고향이 있는 풍경>
엘리아 수필집, 포 단편집 등 번역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