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이 말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이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이 가는데"라고. '가을을 알리는 토종 꽃' 구절초가 만개했다.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시월 어느 날의 절집 풍경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런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 내린 듯, 꽃핀 듯, 마치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온 산이 하얗게 물들었다.
■'원조' 구절초 축제 구절초꽃으로 유명해진 절, 영평사(주지 환성 스님)를 다녀왔다. 지난 2012년 7월 세종시 출범과 함께 공주시에서 세종시로 편입된 대한불교 조계종 영평사 주변 장군산 자락에서는 요즘 구절초꽃이 절정이다. 일주문에 이르는 마을 신작로는 물론이고, 대웅보전 앞뒤로, 요사채 옆으로, 공양간과 해우소 출입구, 장군산 능선을 따라서 온 산이 '눈 꽃 축제'를 벌이고 있다. 구절초를 보러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9일까지 절집서 '구절초꽃축제'
소박한 아름다움 가을 만끽
템플스테이·국수 공양으로 힐링
베어트리파크·장류박물관도 볼 만 화려하진 않지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구절초였다. 구절초라는 이름을 내세운 축제도 점점 늘고 있다. '지리산 구절초 축제'는 지난주 막을 내렸고, '정읍 구절초 축제'(10월 3~12일)는 9회째를 맞았다. 또 축제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 구절초도 꽤 유명하다. 밀양에서도 지난해 가을 삼문 송림(구 수원지)내 식재한 구절초 8만여 본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구절초 축제의 '원조'는 영평사라고 해서 그곳까지 찾아갔다.
영평사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절이다. 특히 제15회 '구절초꽃 축제'가 열리는 오는 19일까지는 특별 휴식형 셀프 템플스테이도 시행하고 있다. 가을날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그 자체만으로도 속세에서 찌든 마음을 위로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여명과 황혼의 구절초 '일품' 공공 기관도 아닌, 절집에서 15년째 구절초꽃 축제를 열고 있는 사연이 궁금했다. 1986년 영평사를 세운 주지 환성 스님을 만났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구절초 차를 내왔다. 이른 봄 구절초의 어린순을 따서 만든 차라고 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맛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고 구수했다.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그러고 보니 구절초 꽃말도 '어머니의 사랑'이다.
"올해는 구절초꽃 개화 시기가 10일가량 빨라졌어요. 보통 9월 25일께 피기 시작하면 10월 초에 30% 정도 개화해서 20일 정도 좋은 꽃을 볼 수 있는데 올해는 9월 말에 이미 70%가 폈어요. 이미 한쪽에선 지기 시작했고요. 이상 기후가 맞긴 맞나 봐요."
환성 스님이 기상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지켜본 구절초인 만큼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처음 절을 만들고 어느 날 길가에 피어 있는 구절초 몇 뿌리를 사찰에 옮겨 심은 뒤 매년 뿌리를 나눠 심으며 10여 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혼자만 즐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보여주면 좋겠다고. 처음 3년은 완강하게 버텼어요. 대명천지에 안 그래도 축제가 많은데 절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었지요. 그러다 다같이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마음을 바꿔 먹고 2000년부터 축제를 시작했는데 벌써 15년째네요."
축제 첫해에만 1천여 명이 다녀갔다. 산사음악회도 함께 열었다. 4회 때부턴 판을 키웠다. 신도 몇몇과 북 치고 장구 치고 해서 될 게 아니다 싶어 전문 기획사에 도움을 청했다. 그해엔 정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경찰 추산으로 7천여 명이 찾았는데 무대가 내려앉는 줄 알았단다. 지금은 방문객이 예전 같지 않다. 구절초 축제도 많이 생겨났고, 산사음악회라는 형식도 더 이상 새롭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를 관둘 수도 없다. 환성 스님의 구절초 사랑과 그에 쏟는 정성이 남달라서다.
"영평사 구절초는 절집과 능선을 따라 피고 지기 때문에 자연미가 있어서 사진애호가들의 출사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지요. 저는 여명과 황혼에 보는 구절초가 가장 좋아요. 게다가 보름이라도 겹쳐서 하얀 달빛 아래 만나는 구절초는 또 얼마나 청초하고 아름답다고요."
■'꽃보다 국수' 인기 만점 사실, 구절초는 산과 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야생화다. 하지만 구절초는 다년생 초본 식물로 상당히 신경을 써서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거의 3년마다 새로 심어야 하고, 햇볕을 좋아해서 활엽수 아래에선 자라기 어렵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4월 초부터 9월 말에 이르기까지 풀 뽑기도 장난이 아니란다. 축제까지 여는 마당에 아무렇게나 둘 수 없어 1년에 7번은 대대적인 풀 뽑기 작업을 하는데 그 예산도 만만찮다. 게다가 축제 기간 중에는 현장을 찾는 분들을 위해 융슝한 잔치국수 대접까지 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한다면 '꽃보다 국수'라고나 할까요! 그저 버섯 우려낸 물에 절에서 직접 만든 죽염간장을 써서 삶아냈을 뿐인데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10월 한 달 동안 국수(소면)만 200박스 이상 삶을 걸요. 구절초만 해도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전체를 달여 먹어도 되고, 효소도 만들고, 구절초엿이랑 꽃차도 만들어요. 예로부터 구절초는 월경 불순·자궁 냉증·불임증 등의 부인병에 약으로 쓰여왔다고 하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장군산 자락 한쪽에선 이미 꽃차를 만들기 위한 구절초 꽃잎 따기가 한창이었다. 그래도 축제 기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듬성듬성 꽃잎을 땄다. 환성 스님은 축제가 끝나고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10월 말까지는 구절초를 완전하게 베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군산(354.9m)은 그리 높지 않아서 구절초가 만개한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동물이 있는 수목원과 장류 테마공원도 세종시까지 가서 영평사만 돌아보고 오기에 서운하다면 동물이 있는 수목원 '베어트리파크'(대표 이선용)와 세종시 1호 사립박물관으로 등록된 '세종전통장류박물관'과 체험이 가능한 장류 테마공원 '뒤웅박고을'(대표 손유성)을 들러 봐도 좋겠다.
베어트리파크는 수목원 이름에도 나와 있듯 반달가슴곰, 불곰 등 150여 마리의 살아있는 곰은 물론 이야기가 있는 '야외 조각곰', '곰조각 전시회-고정수 작가 초대전:새총곰의 초대(10월 1일~11월 9일)'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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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트리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식물원 전경. |
수목원 내 산책로도 제법 아기자기하다. 한 개인(설립자 이재연)이 반세기 동안 가꾸어온 '비밀의 정원'을 지난 2009년 5월에야 일반 개방(만 19세 이상 1만 3천 원·소인 8천 원·만경비원 관람료 2천 원 별도)했다. 10만여 평의 대지에 사시사철 푸른 향나무 수백 그루가 수목원 전체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그 안에는 오색연못, 베어트리정원, 애완동물원, 야생화동산, 잔디광장, 열대식물원, 수련원, 분재원, 한국의 산수조경과 열대조경을 한 폭의 동양화처럼 표현한 '만경비원'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단풍 산책길'은 은행과 단풍이 물들 즈음에만 임시 개방돼 가을 나들이엔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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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있는 식물원 '베어트리파크'의 곰 조각 전시회 장면. |
'뒤웅박고을'의 장관은 야외에 전시된 뒤웅박장독대였다. 그곳에선 장가름이나 두부만들기 체험도 가능하고, 팔도의 장독대를 모아놓은 팔도장독대, 전통장의 제조 과정 등을 재구성한 세종전통장류박물관 등을 돌아볼 수 있다.
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TIP
■찾아가는 법
영평사(세종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044-857-1854)로 곧바로 갈 경우, 남세종IC에서 빠져나와서 세종로를 따라 천안·조치원 방면으로 가다 '첫마을'을 지나 한국지역난방공사 세종지사에서 우회전한 뒤 영평사길을 따라 이동하면 된다. 3시간 30분 걸림.
대중교통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세종시까지 하루 4회 고속버스를 운행(3시간 40분)하며 요금은 1만 6천800원. 터미널에서 영평사까지는 택시를 타거나 수시로 운행하는 사찰 승합차를 이용할 수 있다. 영평사에서 '베어트리파크'(044-866-7766)까지는 승용차로 40분 걸린다. 베어트리파크에서 '뒤웅박고을'(044-868-4892)은 15분.
■세종 시내 볼거리
세종시청(044-300-3114)까지 갔다면 축구장 62개를 붙여 놓은, 국내 최대 규모의 세종호수공원을 둘러봄 직하다. 수상무대섬을 비롯해 총 5개의 주제를 지닌 인공섬과 인근의 국립세종도서관이 볼거리다. 호수공원 야간 조명도 일품이며 평일 2회, 휴일 4회 가동되는 분수도 구경거리다. 또 어진4교 아래 방축천에서 매일 밤 오후 8시 30분부터 20분간 '방축천 음악분수쇼'도 펼쳐진다. 세종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밀마루 전망대(044-860-7911)는 낮에 오르면 좋겠다.
■잘 데와 먹을 곳
영평사에선 체험형(토·일요일 1박 2일·성인 기준 6만 원)과 휴식형(1박 2일 4만 원) 템플스테이와 당일형 템플라이프를 운영 중이다. 오는 19일까지 축제 기간엔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국수 만발공양'이 무료 제공된다. 베어트리파크에선 '웰컴레스토랑'이 상시 영업 중이고, 주말에는 '새총곰야외식당'과 '베어트리카페'도 문을 연다. '뒤웅박고을' 안에는 퓨전 한정식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장향관'이 영업 중이다. 김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