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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하려면 참신하게 하고, 사과하려면 확실하게 숙여라
"립싱크할 거면 때려치워"라는 악플에… "저희끼리도 입 못맞춰 립싱크 못해요"
남성밴드 '노라조' 유머로 역발상 대처… 골치아픈 악플들이 성공의 밑거름 돼
결혼·스캔들·외모 등 어쩔 수 없는 경우… 침묵하면서 대응않는 것이 상책일수도
연예인에게 인터넷은 애증(愛憎)의 대상이다. 인기몰이의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몰락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트위터와 유사한 NHN의 모바일 커뮤니티서비스 미투데이는 2007년 서비스 시작 이후 2년 동안 가입자가 6만명에 그쳤지만, 지난달 아이돌 그룹 빅뱅과 2NE1 멤버들이 참여한 뒤 가입자가 40만명으로 폭증했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네티즌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네티즌이 연예인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8월 둘째 주 네이버 연예뉴스의 최다 댓글 뉴스 순위 1위는 빅뱅 멤버인 지드래곤의 신곡 표절 논란 소식이다. 300여개의 댓글 중 대부분이 악플(인터넷상의 비판적인 댓글)이다. 이럴 때 연예인에게 인터넷만큼 싫은 것도 없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늘 인터넷에서 연예인 기사를 찾아다니며 악플을 다는 악성 네티즌이 500명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예계가 창의적인 악플 대응을 위해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머리를 싸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상황은 네티즌의 반응에 노심초사하는 기업의 고민과 닮아 있다. 기업들은 연예인의 인터넷 대응에서 한 수 배울 게 있을지 모른다.
2005년 데뷔한 2인조 30대 남성 밴드 노라조는 악플 공세를 오히려 기회로 바꾼 케이스이다.
노라조의 콘셉트는 '엽기'다. 노래 가사는 반말투에 자극적으로 만들었고, 무대에서는 일부러 '싼티' 나는 원색 계열 의상과 과장되고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선보인다.
이들의 콘셉트 전략은 예쁘고 잘생긴 10대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악플도 늘어났다. 이들은 악플 대처법을 고민하다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노라조의 창의적 대응법은 유머였다. 그들은 악플에 배꼽 잡게 웃기는 대답을 달기로 했다. 디시인사이드 등 악플이 많이 달린 사이트에서 대표적인 악플 50여개를 '수집'한 뒤 공손하면서도 재미있는 대답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올렸다. 이런 식이었다.
"립싱크할 거면 때려치워." → "저희끼리도 입을 못 맞춰 립싱크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수 맞나?" → "한 넘은 하도 까불어서 사람들이 개그맨으로 더 많이 알고 있고요, 한 넘은 말 없이 폼만 잡아 외국인으로 알고 계십니다! 가수라고 인정해주실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토 나온다."→ "맞습니다. 저희도 서로 보면 토할 것 같습니다."
결과는 시쳇말로 '대박'이었다. '노라조의 악플 대처법'이라는 제목으로 배포된 이 동영상은 각 동영상 포털에서 1만여회가 넘는 조회 건수를 기록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노라조의 멤버 조빈(왼쪽)씨와 이혁씨.
구글에서 '노라조 악플 대처'로 검색하면 8월 중순 현재 1만6000개가 넘는 검색결과가 나온다. 유머 있으면서도 공손한 답글 때문에 노라조의 이미지에 호감을 갖게 됐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근 Weekly BIZ와 통화한 노라조의 조빈씨는 "고민거리였던 악플들이 오히려 성공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물론 노라조의 사례가 인터넷 악플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최근 연예인들이 인터넷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①적극 대응 ②확실한 인정과 사과(꼬리 내리기) ③무대응이다. 이 중 어떤 것이 적절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해당 연예인이 내세우는 콘셉트와 악플이 붙은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한다. 유형별로 연예인들의 악플 대응 사례를 살펴본다.
①적극 대응
여성 4인조 그룹 '쥬얼리'에서 활동하는 가수 서인영씨는 평소 거침없는 언사에 명품 쇼핑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솔직히 밝혀 악플이 적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방송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패션 제품에 목숨을 거는 캐릭터로 출연했다. 당연히 악플이 잇달았다. 그러나 서씨는 꼬리를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치고 나갔다. 사과하기는커녕 '신상녀(신상품에 마니아처럼 몰입하는 여자)'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들고 나와 "명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제가) 싸가지 없어 보이죠?"라며 직설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기존 연예인에게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반응에 네티즌들의 반응도 점차 바뀌었다. 서씨를 '속물이기는 하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캐릭터'로 받아들이게 된 것. '솔직하고 유행에 민감한 여자'로 자리매김한 서씨는 오히려 섭외가 잇달았다. 이후 서씨는 각종 쇼핑 관련 프로그램을 맡는 것은 물론 그의 이름을 딴 바지나 신발 등 패션 제품까지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서씨 이전까지 국내 방송 프로그램에서 물적인 욕심을 밝히는 것은 연예인에게 금기였다. 속물 성향에 적대적인 네티즌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6년 영화배우 김옥빈씨를 둘러싸고 벌어진 '된장녀' 논란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당시 TV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해 "고급 차에서 내려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같이 먹은 남자가 계산할 때 할인카드를 내밀면 분위기를 깬다"고 말했다가 네티즌들에게 '된장녀(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게 부만 좇는 여자)'로 비난을 받았다. 당시 김씨는 악플에 대해 해명이나 사과 등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앞에 언급한 노라조의 경우 역시 적극 대응하되 유머라는 소품을 동원한 케이스이다.
②확실한 인정과 사과
그러나 연예인들이 악플에 적극 전법을 쓰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이다. 확실히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더 많다. 다만 고개를 숙일 때도 어떻게 숙이느냐에 따라 네티즌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영화배우 정우성씨는 최근 '기무치 논란'을 겪고 악플에 고개를 '확실하게' 숙임으로써 성과를 본 사례다. 그는 지난 6일 일본 후지 TV의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치(kimchi)'라고 써야 할 답을 김치의 일본식 표현인 '기무치(kimuchi)'라고 적었다. 답안에는 자신의 서명까지 곁들여 있었다.
국내 일부 인터넷 언론과 네티즌이 이 사실을 발견했고, 해당 장면을 이미지로 캡처해 올렸다. 반일(反日) 정서가 강한 인터넷에서는 급속도로 악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소속사는 '본인이 작성하지 않은 것'이라는 황당한 변명까지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인터넷은 정씨의 행동을 비난하는 기사와 악플들로 넘쳐났다.
그러자 정씨는 방송 5일 만인 11일에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대부분 연예인이 비난을 받으면 사건이 터진 뒤 수 주 뒤에야 사적인 미니 홈피 등을 통해 마지못한 듯 짧은 사과 문구를 남긴다. 그것이 파장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씨처럼 며칠 만에 사과문을 자기 명의로 발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사과문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문제의 방송에서 답안을 자신이 직접 썼으며, 소속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과문은 시종일관 '깊이 반성한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 자신조차 어이가 없다'는 표현을 담았다. 그러면서 숨돌릴 새 없는 일정 속에서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나게 됐는지 이야기체로 쉽게 설명했다.
정씨의 조치와 함께 악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정씨에 대한 비난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정씨는 일본 방송에서 일본식 음식 표기를 보기로 제시한 것을 옮겨 적은 것뿐"이라며 정씨를 동정하는 글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다. 교훈은 간단하다. 사과를 할 바에는 누구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는 사과를 하지 말고, 누구나 놀랄 만하고 그 자체로 뉴스가 되는 '확실한' 사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계 홍보 전문가인 강태규 뮤직팜 이사는 "온라인 연예코너는 끊임없이 '뉴스'를 생산하는 공간"이라며 "악플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거꾸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문제를 덮을 만한 파격적인 대응이나 새 뉴스거리를 통해 국면을 바꾸는 것이다.
③무대응 전법
물론 때로는 무대응이 상책일 때도 있다. 결혼이나 스캔들, 연기력, 외모 등 연예인이 당장 어찌하기 힘든 일에 대한 악플이 쇄도하는 경우다. 악플이 많다고 이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럴 때 많은 연예인이 침묵을 택한다. 영화배우 설경구씨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지난 5월 배우 송윤아씨와 결혼한 뒤 악플에 시달렸다. 영화 '해운대'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큰 악재였다. 해운대 공동 제작 및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설씨가 주변의 조언을 구하며 악플 대응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설씨의 선택은 악플에 침묵하고, 연기로 대답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응은 결과적으로 통했다. 영화 개봉 초기만 해도 악플이 많이 달렸지만 작품이 괜찮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악플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가 출연한 영화 '해운대'는 관객 900만명을 넘기는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올 초 종영한 '너는 내 운명'이라는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었던 탤런트 박재정씨도 그랬다. 극 중에서 주인공인 '강호세'역을 맡은 그는 연기자로서 발성이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다. 그는 악플과 함께 '발호세(발로 연기하는 것처럼 호세 역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담은 별명)'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러나 박씨와 기획사는 인터넷 대응을 삼가고, '열의가 넘친다'는 새로운 콘셉트를 하나 더 얹었다. 박씨의 소속사인 이야기 엔터테인먼트의 황복용 대표는 "재정씨에 대한 비난에 정면 대응하는 대신 언론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비난을 받아들이며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발호세'라는 별명은 오히려 열의는 넘치지만 서툰 실수를 연발하는 인간적인 연기자에 대한 '애칭'으로 변모했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악플에 '실력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려 한다'는 콘셉트를 하나 얹자 같은 캐릭터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기본에 충실한 연예인 또는 적어도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때나 먹힐 수 있다.
개그맨 윤형빈씨는 유명 인사에 대한 비난을 개그 소재로 삼는 '왕비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역시 설정상 어쩔 수 없이 악플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이에 대해 윤씨의 소속사 역시 '기본'을 중시하는 대응으로 극복하고 있다. 윤씨의 소속사인 라인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어설픈 인터넷 대응보다는 진지한 내용과 매체 수단을 통해 윤씨가 개그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전달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주의할 점: 상황을 판단하는 통찰력이 핵심이다
기업이나 정치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도미노피자는 올 초 '파격적인 사과' 전법으로 대응한 사례다. 미국 도미노피자의 한 직원이 피자에 이물질을 넣는 동영상이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퍼지자 전격적으로 사장이 직접 사과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
오프라인 세상의 일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파격적인 사과'로 온라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하버드대 흑인 교수를 뚜렷한 증거 없이 체포한 경찰을 비난했지만 경찰의 반발이 일자 즉각 공식 사과에 나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예인이든 기업이든 악플에 대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어서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전략을 택하는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온라인시장 조사·컨설팅업체인 메트릭스의 조일상 사장은 "일부 인터넷 컨설팅업체들은 기업에 '악플에 유머 있게 대응하라' '시차를 두고 악플에 대응하라'는 등의 지침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해답은 다양하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스스로의 장·단점을 먼저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인터넷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첫댓글 조선일보 2009년 8월 22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