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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여행의 별책부록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무깡짜이였지만, 막상 가보니 무깡짜이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무깡짜이를 세상에 알린 아름다운 다랑논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타이족 마을에서의 훈훈했던 홈스테이와 천진무구한 흐몽족 어린이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9년 12월 19일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하고 사파 광장으로 나오니 어제밤에 보아 두었던 전기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어제 보았을 때는 무조건 7천동인 줄 알았는데 터미널 간다고 하니 1인당 만동을 달란다. 만동도 껌값이지. 이렇게 저렴한 대중교통편이 있는데 왜 몰랐을까? 오기 전에 읽어 본 수많은 사파 여행기 어디에도 전기차 얘기는 없었다. 생긴 지가 얼마 안 된 것일까?
터미널에 가서 (일단 근처에서 3만동짜리 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8시가 넘어 10분 20분이 지나가도 아무 소식이 없다. 우리가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눈길 한번 안 주고 태연하게 자기 일만 하는 터미널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오늘 늦네요. 기다리세요.'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투다. 9시가 거의 되어서야 허름한 미니버스가 왔다. '저 버스에요'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 버스가 멈추더니 시동을 끄고 운전수가 내린다. 뭐지? 지도를 보니 실버폭포 근처다, 폭포 구경하고 가라는 건가? 한 시간을 늦게 와서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네,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무깡짜이가지 가려나? 알고보니 아침 먹는 휴게소인가 보다. 그 다음부터는 꼬부랑 산길을 열심히 달려간다.)
버스 안에 붙여 놓은 운행허가증(?)에는 라오까이-응이아 17만동이라 적혀 있다. 오잉? 그렇다면 종점이 아닌 사파-무깡짜이는 잘해봐야 10-12만동 정도 받아야지, 왜 30만동을 받은 거야? 바가지 내지는 사기를 당했다는 심증이 어제보다 더 짙어 졌지만, 그렇다고 착해 보이는 젊은 차장에게 너희들 사기꾼이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에궁,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4시간을 앉아 갔다. 그러고 보니 버스 4시간 태워 주고 3만동이면 별로 비싼 것도 아닌 셈인가?
무깡짜이는 성 바로 아래 군 단위 행정구역이지만 작은 시골 마을이다. 터미널도 따로 없는지 어디서 내릴 거냐고 물어본다. 알아서 터미널에 내려 주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얼른 구글지도를 열며 우물거렸더니지도에 군청이 표시된 곳을 휙 지나서 한참 더 가서 세워준다.
일단 내려서 구글에 숙소를 물어보니 개울 건너편에 뭔 홈스테이가 있단다. 큰길 가에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지만 개울 건너는 완전 시골 동네다. 아무 것도 없는데? 10분쯤 시골길을 걸어가니 허름한 식당 하나가 보이고 조금 더 가니 간판 걸린 집들이 나온다. 구글에서 본 집이 여기던가? 뜨응우엣 홈스테이라고 써 있는 왠지 익숙해 보이는 2층 목조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니 싹싹한 아줌마가 나와서 반갑게 맞이한다.
1층은 식당인가? 두 면은 벽이 없이 트여 있고 건너편에는 주방이 왼쪽에는 방이나 창고같은 게 두세 칸 보인다. 2층에 올라가 보니 통마루 한편으로 작은 방 4개가 붙어 있다. 바깥쪽으로 공동화장실이 두 개. 단독 화장실이 없으므로 우리의 최저 기준에 미달하는 숙소지만, '이런 시골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되잖아? 그래도 방은 깔끔하니까' 이렇게 속으로 타협하며 가격을 물어보니 1인당 하루 10만동이란다. 엥? 정말요?
이렇게 가격이 착하다면야 이것저것 따질 수 없지. 믿어지지 않아서 한번 더 확인하고서 짐을 풀었다. 그런데 이틀 묵는 동안에 다른 손님이 없어서 화장실이고 방이고 마루고 다 우리꺼였으니, 하루 만원에 2층을 통째로 빌린 셈이다.
옆지기는 피곤하시다며 낮잠을 주무시고,
혼자 나와서 설렁설렁 마을 구경을 나섰다. 나와서 보니 우리 숙소 바로 옆에도 홈스테이가 두세 집 보고, 동네 안쪽에는 훨씬 많이 보인다. 대충 세어 보니 20집은 되는 듯하다. 아마도 어떤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서 마을 전체가 홈스테이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식당을 겸한다는 홈스테이 간판이 하나 있었는데 '민족'(전똑)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소수민족이란 먜긴가? 마침 근처를 지나가시던 할머니들을 만나 저 간판에 써 있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고 물어보았더니 타이족이라고 한다. 할머니도 타이족이에요? 그럼, 여기 다 타이족이야. 아하! 얘기를 듣고 나니 8년 전 타이족 마을인 마이쩌우를 다녀온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도 2층 목조 건물에서 홈스테이를 했었지! 그때는 진짜 전통 가옥이라 칸막이도 없는 넓은 2층 바닥에서 다같이 잤었는데. 화장실은 다른 건물에 있었고.
상황 파악이 되었다. 이 동네는 마이쩌우와 같은 타이족 관광 마을이었던 것이다.
마을 한 쪽을 흐르는 개울가에 뭔가가 보이길래 논둑길을 따라 다가가 보니 앙증맞은 대나무 다리가 있고 (외나무 다리는 아니고 세 나무 다리다.) 건너편에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몇 개, 그네도 있고, 민족의상을 빌려준다는 글이 적힌 초가집 부쓰도 있는데 관광객도 관리인도 아무도 없다. 민족 의상도 안 보인다. 비수기인 걸까? 주말이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마을에 관광객이 하나도 없다. 관광 마을로 개발하다가 망한 걸까? 그렇다면 저 많은 홈스테이들은 개점 휴업?
(실제로 물을 퍼올리기는 하지만, 물론 농사용은 아니고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다.)
숙소로 돌아와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둘러보는데 메뉴같은 건 안 보인다. 음식은 안 하는가? 아까 2층에 올라갔을 때 마루에서 아기를 보고 있던 애엄마(20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애엄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 집 며느리란다.)가 주방 근처에 보이길래 먹을 거 없냐고 물어보니 라면 봉지를 보여주며 이것밖에 없다고 한다. 아무 때나 주문하면 음식이 나오는 일반적인 음식점은 아닌가 보다. 앉아서 기다리니 소고기와 수란이 들어간 (특별한) 라면이 나왔다. 일단은 먹고... 설마 하루 5천원 숙박비에 식사가 포함되었을리는 없을테고, 나중에 청구하겠지?
저녁 때가 되어서 식사가 되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동네 입구 쪽에 식당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으란다. 오이? 음식점이 아닌 건 확실하군. 말이 잘 안 통하니 궁금한 게 많아도 그냥 넘어가는 게 많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올 때 보아 두었던 동네 입구 식당,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볼 때보다 더 허름하다. 지붕은 겨우 걸쳤으나 사방에 제대로 된 벽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얼기설기 막아 놓은 건물(?)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우릴 반긴다. 조리 도구가 있고 큰 냉장고에 음식 재료도 있고 앉아서 먹을 테이블도 있으니 분명 음식점이 맞는데 벽에도 테이블에도 메뉴가 없다. 첨부터 메뉴같은 건 없는 식당? 말이 안 통해 답답해 하니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고르라는 손짓을 한다. 튀긴 두부와 돼지고기를 골라 놓고 기다렸더니 생각 이상으로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 값은 10만동.
(집주인인 뜨 응우엣. 군청 공무원이라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워 하면서 귀하게 모셔 두었던 인삼주를 들고 나왔다.)
#12월 20일
어제 저녁을 먹었던 그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불러준 택시(정식 택시가 아니고 자가용인데 기사는 약간 아마추어 분위기를 풍기는 착실한 화이트칼라 스타일이었다.)를 타고 무깡짜이 다랑논을 구경하러 나섰다. 주워들은 풍월로 멈쏘이 라판딴 제수핀을 읊어대니 4-5시간 걸린다면서 100만동을 달라고 한다. 싸다.
기사의 제안으로 어제 버스를 내렸던 곳 근처 노점에서 찰밥과 찹살떡을 만동 어치씩 샀다. 물 한 병 포함해서 두 사람 점심값으로 3만동=1500원. 시골의 로컬 물가는 너무 싸다.
멈쏘이 입구에 도착하니 큰길 가에서 쎄옴들이 기다리고 있다. 차는 못 올라가는 산길을 왕복하는 쎄옴 요금은 5만동. 전망대에 올라가니 사진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 보이는데, 흐몽족 여인이 나타나 옆지기에게 전통 모자를 씌운다. 민속 의상 입고 사진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흐몽족 아줌마게 당했다. ㅎㅎ 모자만 씌우는 줄 알았지! 나에게도 권하는 걸 쑥스러워서 사양했는데, 사진을 보니 같이 입고 찍었어도 괜찮았을 듯하다. 옷 빌리는 비용은 3만동, 무깡짜이에 바가지 요급은 없다!!
다음에 찾아간 라판딴이란 동네에서는 마침 학교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학생들과 부딪쳤다. 자주 볼 수 없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클 텐데도 호기심보다 수줍음이 더 큰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헬로~' 한번 따라한 아이도 얼른 고개를 돌려 도망친다. 이런 아이들을 일러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라고 하나 보다.
(하트?)
제수핀 마을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새로 놓은 콘크리트 다리는 아직 개통이 안 되었고, 물이 흘러 넘치는 콘크리트 보 위로 차가 건너 다닌다. 라판딴에서도 뭔가 불안한 티를 내던 우리 기사는 여기 와서는 더 자신이 없다. 처음 와 본 것일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뭔가를 물어보고서야 동네 뒷길을 따라가는데, 짐작컨대 도시락 먹을 만한 장소를 물어본 것 같다.
멀리 멈쏘이가 바라보이는 산길 옆에서 점심을 먹고 (진수성찬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경치를 발아래 두고 먹는 점심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사가 어딘가를 더 가자고 제안하는데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는 영어가 짧고 나는 베트남어가 짧고, 겨우겨우 물과 관련된 얘기인 줄은 알아들었는데, 폭포일까? 혹시 동굴인가? 확실친 않으나 여기서 40킬로 떨어진 선라 어딘가를 갔다오자고 하길래 50만동을 더 주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개울을 건너면서 일이 터졌다. 개울을 건너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미끄러진 것이다. 내려올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언덕길이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 두어번 언덕에서 미끄러지면서 빵꾸까지 나버렸다. 오토바이나 대형 트럭은 잘 올라가는데 우리 차 말고도 트럭 하나와 승합차 하나가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타이어를 갈고 나서 야심차게 도전했으나 또 실패. 발이 묶인 세 차량의 운전수와 조수들이 흙과 돌을 주워 나르고 널판지와 왕겨 가마니도 갖다 놓고 세 차량이 교대로 올라가 보지만 계속 실패, 그렇게 열심히들 하더니 결국은 성공을 했다. 1시간 반 정도를 고생한 기사의 입장을 생각하면 우리가 시간을 낭비했다고 불평할 상황은 아니다. 물론 이런 동네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왜 4륜구동 차를 안 샀을까? 하는 (비판적인)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이것도 구경이고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미얀마에서 기차가 탈선했던 일도 있었고, 버스가 빵꾸나서 고생고생 바퀴를 갈아끼우기도 했잖아? 아, 트라브존에서 수멜라 수도원을 가려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돌아섰던 택시는 예외다. 눈길을 다니는 택시라면 당연히 스노우타이어나 체인을 준비했어야지. 더군다니 사과는 커녕 자기가 손해 본 게 많다며 바가지를 씌우려 했으니.
선라 방향으로 달리다가 예쁜 마을이 보이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마을도 타이족 마을이란다.
우리의 목적지는 폭포나 동굴이 아니라 온천이었다. (이 아저씨 영어 실력이 내 베트남어 실력보다 낫지 않군. 핫스프링을 모르다니.) 무료 탕도 있고 (무료 탕은 남탕과 여탕이 분리되어 있는데, 입구에 문짝이 없어 밖에서 들여다 보인다. 지붕이 없고 담도 높지 않은데 다들 벌거벗고 목욕을 한다. 오호?) 개인 공간이 있는 유료 탕도 입장료가 쌌지만(천원?), 온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구경만 하고 (온천 옆에 있는 연못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기사 혼자 온천욕을 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 포인트라며 세워 준 아름다운 곳, 언덕 꼭대기에 큰 호텔을 짓고 있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단다. (주문 안 해도 맘내키면 알아서 준비하나?)
소고기 볶음과 넴잔, 채소 볶음을 내왔는데
소고기는 좀 질겼지만, 넴잔은 아주 맛있었다.
우리 식사만 따로 차렸다가 옆 테이블에 가족들 식사도 차리고 같이 어울려 먹었는데,
뜨 아저씨는 어제 내왔던 인삼주를 또 내온 걸로 모자랐는지, 귀한 거라면서 처음 보는 걸 권한다. 무슨 식물의 꽃 같은데 번역기를 동원해서 열심히 물어보고도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한 거 특별한 거를 대접하려는 마음만은 잘 느껴졌다.
#12월 21일
이틀 숙박비 40만동에 식사 두 번 한 거 20만동, 합이 60만동이라고 하길래
10만동을 더 꺼내 아기 손에 쥐어 주고
아쉬운 작별.
하노이를 향해 떠났다.
운이 좋으면 (혹은 정보가 많으면?) 무깡짜이에서 하노이까지 직접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어제 기사가 알려준 8시 버스는 옌바이까지 가는 미니버스였다. 버스라기보다는 택배 차량에 사람이 얹혀 간다고나 할까? 가는 내내 물건을 싣고 내리고 바쁘더니 1시반이 되어서야 옌바이에 도착했다. 요금은 12만동. (운행허가증?에도 12만동이라 써 있다.)
옌바이 어디에서 내려 무슨 차를 타야 할지 아무 정보도 없어 터미널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길 가에 서 있는 큰 버스 뒤에 멈추더니 저걸 타면 된다고 알려준다. 아, 너무너무 친절한 택배 차 기사님.
무작정 짐을 싣고 차에 올라가 보니 8년 전에 타 본 적이 있는 슬리핑 버스다. 대낮에 슬리핑 버스? 목적지가 미딩이라 다시 차를 타야 한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하노이까지 편하게 가게 되었으니 잘 된 거지. 요금은 14만동.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