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는 인생
이동민
우리가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두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배우처럼 연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문학에서 많이 나타났다. 보기로서 인생을 연극무대로 비유한 대문호는 세익스피어, 라신 등등, 많다. 인생을 꾸려가는 우리는 인생무대의 배우이다. 배우라면 인생 드라마에서 내가 맡은 배역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상을 관객에게, 타인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정상적이란 전형적이란 말과 같다. 사회에서 비난받지 않은 삶을 산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극 대본을 외우듯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공식적인 가치(도덕, 관습, 법률 등등)를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배역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고트만은 ‘이상화’라고 했다. 정리하면 우리 인간은 마치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배우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있다. 연기는 사회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이상화 하여서 한다. 세상살이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삶이라는 뜻이다. 장사치는 장사로서,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역할을,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타고 갈 때는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까를 생각하면서 행동한다. 우리가 외우고, 몸으로 익혀서 하는 행동지침 즉 시나리오는 사회가치이다. 도덕이랄까. 관습 같은 것이다. 시나리오대로 살아가는 삶을 이상화라고 한 것이다.
하이데커는 자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자아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인간의 삶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본래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이 사회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자아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자아란 ‘나’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말한다. 겉으로는 도덕군자라도 속으로는 비도덕적 심성이 가득 하다면 겉에 나타나는 모습만으로 나라고 할 수 없다.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마음가짐도 포함한 ‘나’를 자아라고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삶의 대부분이 배우의 역할처럼 구성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삶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관객에게 보이는 배우로서 행위가 아니고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행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배우로서 역할이 주류적 가치관이나, 이상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라면, 이에 위배 되는 것은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가치관과 어긋나서 숨겨야 하는 부분도 내 안에 분명히 있다고 했다. 숨겨야 할 부분도 우리는 어디에서는(자기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낸다.
오늘의 사회는 너무 빠르게 변화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하는 연기와 현대사회라는 드라마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는 연기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과거의 전통사회에서는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어떤 연기를 하라는 전형적인 행동 규범이 합의되어 있었다.(나이 많은 어른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라. 또는 길을 비켜드려라는 등의 지침서(윤리의식)가 있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 놓이면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비슷하다. 왜냐면 각본의 대사(규범)를 배우가 거부하기 어렵듯이 사회를 살아가려면(사회란른 무대에서 나의 인생이라는 배우 역할을 하려면)규범을 거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숙명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사람들의 사고는 숙명적이고, 귀속적이다.
현대인은 어떤 특정 상황에 놓였을 때의 전형적인 행동의 합의가 점점 없어져 간다. 행동의 선택은 규범이 아니고 개인에게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하는 행동(쇼-연극)이 다르다.(노인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은 규범이 아니고,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하는 연극은 자신의 성취를 추구하고, 성취를 향한 노력(행동)을 중요시 한다.
전통 사회는 귀속을 강조함으로 사회가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았다. 대신에 사회의 안정성이 보장되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이 노력해서 결과를 일구어 내야 함으로 그 만큼 불안정했다. 노력한다고 성취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취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연기한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양 보여주기를 위한 연기 즉 쇼를 많이 한다.
연극 무대는 관객을 향한 전면이 있고, 연기가 끝나면 퇴장하는 후면이 있다. 연기를 끝내고 무대 뒤로 나가면 배우는 화도 내고, 옷을 거칠게 벗어서 내던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화장실에 가서 속이 상한 일에 욕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한다. 무대의 전면과 후면에서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사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대의 전면이 있고, 후면이 있다. 남에게 체면치레를 하고,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쇼를 하는 것은 무대 전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때의 연기는 거짓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무대 공연의 성공은 전면에서 배우를 신비화하고, 이미지화 한다.
인생의 무대도 전면과 후면이 있다. 인생의 전면에서는 자신을 신비화하므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허위와 거짓을 눈치 채지 못하게 연기하여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전면과 후면을 무 자르듯이 분리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는 연극배우가 무대의 전면과 후면을 분리시키듯이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의 전면에서도 후면에서나 해야 하는 행동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래서 서로 혼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펼치는 전면의 공연(쇼)은 허위성이 발각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부지불식간에 후면에서나 해야 할 행동이 전면에서도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후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즉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행동은 순도 100% 진실일까? 아니라고 한다. 왜냐면 우리 모두가 진짜의 진실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진실을 숨긴다고 해도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거짓투성이인 인생을 두고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된다. 수필의 정의에서 말하는 자아의 표출, 또는 진정성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글은 (드라마로서 사회, 연기자로서의 자아. 김광기. 문화사회학. 한국문화사회학회. p179-208. 살림. 2015.)에서 주로 인용했다.
지금부터 수필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수필이론에는 진정성부터 자아의 표출 등등 자기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자고 말한다. 인생무대에서 자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운 부분은 전면일까? 아니면 후면일까? 전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라고 하였으므로 당연히 후면이 더 가깝다. 수필에서 후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후면도 100% 진실인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자신을 속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진실이 아닌 수가 많다.
우리는 자아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보자.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이 수필쓰기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내 인생에서 만들어 진다. 내 인생의 한 조각을 떼어내어서 이야기를 만들면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수필쓰기이다. 이야기의 재료로 사용하는 내 인생의 한 조각은 인생무대에서 전면일수도 있고 후면일수도 있다. 전면만으로, 후면만으로 자아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불완전하다. 전면과 후면을 적당하게 조합해야 한다. 수필에서 담아내는 진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허구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허위도 적당히 섞여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수필쓰기의 폭은 훨씬 더 넓어진다. 수필쓰기로서 이야기를 만든다면 재료로 인생의 전, 후면을 적당하게 사용하여 허구도 조금은 섞여있는 진실을 담아내면 된다. 어쩌면 진실은 이야기에서 만들어 내는 이미지일 것이다.
이 글과 부합 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문예이론의 부(賦), 비(比), 흥(興)으로 생각해보자. 부는 사실적 표현이다. 사실적 표현은 현장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표현이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실이 많다.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다. 비(比)이다. 마지막으로 흥은 감성적 표현이다. 글에 자신의 감정을 풀어낸다. 이런 글은 일인칭 글에서, 자기를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감정이 너무 투여되면 허구로 흐를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한다. 수필에서 부비흥을 응용하면 약간의 허구는 감성적인 글에 수렴되어버리므로 수필 글에서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복잡, 복잡한 언어 이론을 감안하면, 수필에서 허구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