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부터 '2025 성남 Run Festival'에 대비 달리기 연습을 해왔었다. 지난 금요일 연습 후 찾아온 왼쪽 무릎 관절 부분에 통증이 가시지 않고 지속되어 걱정이다. 다리 상태를 체크하러 길 건너 탄천공원으로 나섰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쌀쌀한 날씨에도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습관처럼 늘 걷던 대로 야탑교 부근에서 서울공항 남단까지 갔다가 원점 회귀하는 약 5km를 걷기로 했다.
삼삼오오 모여 자맥질을 하는 오리, 보(洑)나 여울 근처에서 긴 다리를 물속에 닮근 채 물 속을 응시하고 있는 해오라기, 천변 풀밭 위를 깡총깡총 뛰어 다니는 까치 부부, 산책로 위를 이리저리 선회하며 군무를 펼치는 비둘기 떼,... 곳곳에 남아있는 잔설이 계절의 흐름을 알릴 뿐, 가슴 깊이 변함이 없는 수위처럼 탄천 주변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
사송교에 못미쳐 탄천운동장 부근 탄천 위에 놓인 보도교 옆을 지나던 길에 보지 못했던 안내판이 눈에 뛰었다. 홍수 시 통행금지, 자전거 하차 후 통행, 추락위험 행위 금지 등 주의사항과 함께 '동방삭 보도교'라는 글귀에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안내판을 최근에 세웠나 보다. 집 앞 길 건너 탄천에서 뜻하지 않게 '동방삭'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대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그를 만나 듯 반갑기도 했다.
한강의 지류인 탄천(炭川)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발원해서 성남시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유입되는 총연장 35.6km의 하천이다. 탄천은 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등 지류를 끌어안으며 성남시를 지난다. 분당신도시 개발과 함께 탄천은 50.8㎞의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 10개의 보도교, 9개의 지하보도, 15개 보, 16개 징금다리, 24개 횡단교량, 23개 화장실, 10개 체육시설, 5개 물놀이장을 갖춘 시민의 휴식처로 새롭게 태어났다.
(참조: 향토문화전자대전)
'탄천(炭川)'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성남의 옛 지명 '탄리(炭里)'에서 유래했다는 설(說), 위례성 부근 창곡동(倉谷洞)에 주둔하던 백제 시조 온조(溫祚)의 태자 다루(多婁)의 병사들이 밥과 국을 끓일 때 나온 숯이 내를 이루었다고 하여 이름했다는 설(說)등은 일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설로 보인다.
그에 비해 '동방삭' 관련 설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로 시작되는 동화처럼 전설에 가까워 보인다.
기실 동방삭(东方朔, BC154-BC93)은 실재한 인물로 전한(前漢) 중기의 관료이자 문학가였다. 평원군 염차현(平原郡 厭次縣; 現 산동성 德州郡 陵縣) 출신인 그는 걸출한 외모에 학식이 풍부하고, 해학적이고 뛰어난 언변과 거침없이 국정 대사를 진술하여 한무제의 인정을 받아, 종 4품쯤에 해당하는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다고 한다.
그는 사기(史記)에서 '익살의 영웅(滑稽之雄)', 바이두 백과에서 '토크쇼 왕(脱口秀大王)'으로 각각 소개될만큼 빼어난 언변으로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중원 땅에서 멀고도 먼 땅인 우리나라, 이곳 탄천에 그의 이름을 빌린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전설이 전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국인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강릉 단오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때처럼 문화 약탈이니 뭐니 하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동방삭이 삼천갑자(18만 년 또는 3천 년)를 살게 된 것이 서왕모(西王母)의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仙桃; 선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라는 설, 저승차사를 잘 대접하여 명부의 수명 '삼십'을 '삼천'으로 고쳐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 출처에 따라 전설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서왕모는 진(秦)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 이전의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된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220~589)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인 <박물지(博物志)>와 <수신기(搜神記)> 등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이다. 도교 전설에 따르면, 서왕모는 선인들을 다스리는 최고위 지위에 있는 신으로 곤륜산 정상에 있는 궁전에 기거한다고 한다.
너무 오래 살아 귀신같이 똑똑해진 동방삭은 잡히지가 않아, 하늘 세계와 땅 세계 모두에서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저승사자는 옥황상제( 또는 염라대왕)가 일려준 대로, 탄천에서 숯을 씻는 꾀를 써서 동방삭을 잡게 된다.
동방삭: "왜 숯을 물에 씻고 있나요?"
저승차사: "아 예, 하얗게 만들려고요."
동방삭: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처럼 영리하다던 동방삭이 잠시 방심을 한 것일까, 동방삭임을 알아차린 저승차사가 그를 잡아 곧장 옥황상제에게 데려가니, 동방삭도 생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동방삭의 마지막 언행은 너무나 허수룩해 보이고, 전설의 결말은 개그처럼 허무하여 웃프기조차 하다.
전설은 대개 내용과 구성이 과장과 비약이 심하고 때론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곰곰히 곱씹어 보면 시사하는 교훈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전설이다.
삼월 하순이 가까와 오는데도 어제는 영동 산간지역으로부터 폭설 소식이 들려왔었다. 아침에 내리다가 멈춘 눈이 미련이 남았는지 진눈깨비가 되어 간간이 흩뿌린다.
'동방삭 인도교'의 아래위 쪽 다리 옆에도 각각 '인절미 보도교'와 '모시 보도교'라는 다리 이름과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판이 서있다. 기왕이면 다리 이름 유래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조심조심 걸음걸이에도 왼쪽 무릎 관절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다리 이름의 내력에 대한 궁금증에 다리의 통증이 잠잠해지는 듯하다. 25-03
#탄천#동방삭#전설#삼천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