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배움터 절기행, 두번 째로 경주 황룡사지,괘릉, 선덕여왕릉을 찾았습니다. 경주는 천년의 신라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박물관 도시입니다. 경주의 많은 유적지 중에 형태가 남아 있는 절 모습 못지않게, 흔적만 남아 있는 폐사지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절공부가 되겠지요. 공부는 머리로 느끼는 것 못지 않게 가슴으로 와 닿는 감성 공부도 중요하겠지요.
황룡사는 진흥왕이 왕궁을 짓기 위해 터파기 작업을 하다가 황룡이 나타나 왕궁을 절로 바꿔 지었다고 합니다. 절을 짓기 위해 귀족들의 반대가 심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절을 짓기위해 왕궁을 짓는다고 했는지? 옛 이야기를 지금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황룡사 금당 주춧돌에서 내가 왕이다 라는 놀이도 했습니다.
▶금당 장륙존상 크기를 가름해 보는 심초석에 올라 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심초석 위에도 올라가기 힘든 날이 오겠지요.
▶황룡사지 주차장에 앞에 있는 능수버들이 멋있습니다.
▶황룡사지에 있는 풀꽃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민들레, 씀바귀, 보리뱅이, 꽃다지, 냉이, 꽃마리 따위를 봤습니다.
문화관 옆에 심어진 병아리꽃도 만났습니다.
▶발굴 작업중입니다.
▶황룡사지 문화관에 있는 경주시가지 그림입니다.
▶황룡사 모습을 복원한 그림입니다.
▶황룡사 문화관에 있는 구층 목탑 모형.
경주 남산을 가서 바위에 새겨진 구층목탑을 봐야 하는데, 선덕여왕릉을 가다보니 경주 남산을 가지 못했습니다.
절 공부 기본 일정에 경주 남산이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합니다.
▶구층 목탑 크기를 알 수 있는 기둥입니다.
황룡사지와 문화관에서 영상도 보고 나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구층 목탑에 올라 갈 수 있는 있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이 있었는데 복원한 곳에는 계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구층복탑 심초석에는 사리함이 있었다. 몽골군이 이렇게 멋진
구층 목탑을 불을 질렀을까?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 보다 이렇게 놓아 두는 것이 더 좋다. 황룡사는 누구를 위한 절인가?
구층목탑상륜부와 장륙존상은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닌데 왜 남아 있지 않을까? 이러저런 의문들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다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괘릉에 묻힌 왕은 원성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성왕은 독실한 불교신자와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후에서 화장을 했는데
시신을 묻을때 무덤에서 물이 나와 관을 걸어 두었다고해서 괘릉이라고 했다는데, 화장을 했는데 관을 걸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안된다. 경주에 있는 왕릉은 대부분 도굴이 되었다는데, 원성왕릉에는 어떤 부장품들이 있었을까? 원성왕 때는 불교가 생활속에서 자리잡고 있었서 능에는 부장품들이 적었을것이다. 괘릉 무인석은 서역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불교이야기에 나오는 사천왕과 금강역사가 그 모델이다. 원성왕이 철저한 불교도인기 때문에 서역인보다 금강역사 모습을 한 사람을 는 보호석을 세웠을 것이다. 능이 둘레에 있는 호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혼유석은 어떤 쓰임새였는가? 괘릉을 지키는 사자는 무서움 모습 보다는 익살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괘릉과 산소에 있는 망주석을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산소에 있는 망주석 다람쥐는 도룡뇽에서 나왔다는데, 왜 망주석에서 다람쥐가 새겨져 있는가? 괘릉 소나무 아름다움을 무엇일까? 괘릉 앞 문인석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칼일까?
▶괘릉 사자석상입니다.
▶괘릉 문인석.
3월에 양산통도사를 소나무 밭을 다녀오고 나서 경주에 있는 선덕여왕 능을 찾아서 솔밭을 서로 견줘보기를 하고 선덕여왕
능을 찾았습니다. 솥밭 사이에 작은 나무들이 자라, 솥밭이 주는 아름다운 느낌은 적었습니다.
▶선덕여왕 능 소나무는 사진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굽은 소나무와 안개가 사진 주인공으로 많이 나옵니다.
세 곳을 다니면서 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돌아갈 시간입니다. 다음달 5월은 남해에 있는 노거수 어른들은 만나러
갑니다.(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