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히 독서에 관한 소재로 너튜브하는 채널을 보게 되었다.
<통증의 비밀>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통증은 직관적으로 내가 느끼는 불편. 불쾌등등의 감긱이다. 통증을 둘러싼 변수는 생각보다 많다.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환경적인 요인들이 다양하게 관여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통증은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이다. 몸과 맘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신호다. 뜨겁다는 감각이 없으면 우리는 뜨거운 물에 그야말로 데버린다.
통증에 대한 조절은 어느 정도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100% 통증이 없게하는 것은 무리일 뿐더러, 할 수 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약 70~80%만 통증을 줄여도 된다. 나머지는 본인이 감각을 가지면서 섭생에 유의하면서 치유해 나가야 한다. 통증이 우리 몸과 맘을 깨우고 각성시키고 긴장시키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감기약에도 통증을 과하게 조절하지 않는 것으로 원칙으로 한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그리고 환자분에게 자기조절 권한을 많이 부여하는 편이다. 감각적으로 내 몸을 잘 아는 사람은 뭐니해도 본인이기 때문이다. 눈부신 고수분들은 통증을 즐기기도 한다. 어디가든 산봉우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 있다. 침대에 누워 등짝에서 리듬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을 즐긴단다.
통증에 대한 참는 정도는 사회적, 환경적, 상황적, 심리적인 면이 있다. 군인이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도 부상을 당해도 용감하게 참아내는 면이 있단다. 교통사고 났을 때의 책임소재가 놓여 있는 경우에는 당한 부상의 통증은 매우 참기 어렵다고들 한다. 내 개인 경험으로 좋아하는 축구를 하다가 뼈골절이 일어났을 때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팠는데 참을 만했다. 아니 참아야 하고 안 아프다고 너스레를 떨어야 했다.
그래도 통증은 싫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외과학의 발전이 아니다. 피부를 절개하고 뼈를 맞추는 동안 마취상태에서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현대 의학 발전의 핵심이었다. 중세 환자에게 술을 먹이고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해냐야 하는 외과의의 공포스런 당항스런 눈빛을 상상해보라. 외과의도 고문에 가까운 수술행위에서 환자의 고통을 보며 PTSD를 가졌을 것이다.
우리는 아픈 존재다. 지금 안 아픈 것은 미병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건강함은 정상이 아니다. 의철학자 강신욱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맞다. 아픔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잘 관리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도 아픔을 가지고 안아픔을 고민한다. 병을 가지고 미병을 소망한다. 존재의 순간적인 이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 애쓰면서 상황이 호전되는 과정을 지켜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