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학 집사님이 오늘 소천하셨다. 어제 맏손자의 첫 생일이었다. 형제들과 친척들, 자손들을 다 보시고 간 밤에 조용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 장병학 집사님이 우리교회 나오신 것은 언제부터인지 까마득하다. 10년은 안되었고 5년은 훨씬 넘었다. 처음에 만난 것은 병원에서였다. 장정희 집사님의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돌아가시기 직전이라는 말을 듣고 영광 병원으로 갔었다. 그 때 의사들도, 가족들도 다들 돌아가실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가서 급하게 세례를 드리고 기도를 해 드렸다. 그 때 눈물을 흘리시더라. 그런데 점점 병세가 호전되더니 병원에 계시지 않고 집으로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집으로 모셨다. 그 때부터 집사님과의 인연이 깊어졌다. 집사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한 것이 몇 번인지 기억이 잘 안나고 바람을 쐬어 드린다고 드라이브를 시켜 드린다고 돌아다닌 적이 몇 번인지 기억이 잘 안나다. 일어서지 못하시기에 등에 업고 드라이브를 다녔고, 교회를 나오시고 싶으시다고 해서 3층까지(당시 교회가 3층에 있었다.) 업고 교회를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놀랍게 뼈만 앙상하게 남으셨던 집사님이 걸어다니시게 되었다.
그러면서 장병학 집사님의 집에 함께 사시던 장병학 집사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 장례를 기독교 장례로 내가 인도했었다. 자식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어른신도 내가 함께 기도해 줄 때 거부하지 않으셨고 우리가 심방을 가면 좋아하셨다.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내 목회 생활에서 가장 순진했던 때였던 것 같다. 아무런 조건 없이 어른신을 보살펴 드렸으니. 교회를 다니시면서 서로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고 성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셨다.
집사님은 옛날 분이라 나를 양자로 삼으시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우리 나라의 관계는 가족 관계가 아닌가.
그러다가 지난 일년 넘게 얼마 동안 교회를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 내막을 잘 모르겠지만, 표면상으로는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이고 뭔가 심적인 갈등이 있으셨던 것같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인연이 거기서 끝나는 것 같았다. 나는 예전 같이 자주 들러 문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철순 집사님이 계속해서 교회를 나오셨고, 장병학 집사님은 최철순 집사님에게 교회를 잘 다니게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자신은 못 나와도 주일이 되면 집사님은 교회에 나가게끔 잘 챙겨 주셨다. 역시 부부는 함께 하는가.
최철순 집사님은 요 몇 달 전에 드디어 장병학 집사님을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데 성공했다. 장병학 집사님은 침묵의 시간을 깨고 다시 교회에 나오시기 시작했다.
항상 교회 계셨던 것 처럼 매우 안정되게 다시 신앙 생활을 시작하셨다. 최근에 집사님을 병원으로 옮겨드린 것이 몇 번 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건강을 되찾으셨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신력으로 병을 이기신 것 같았다. 오늘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을 똑 바로 차리시고 사신 것 같다. 그리고 첫 째 아들과 둘 째 아들이 있는 날에 맞추어서 소천되신 것이다.
최근 집사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주일에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신 것은 물로 수요 예배까지 나오셨고, 심지어 금요일 기도회나 나오신다는 것을 거리가 멀어 모시기 힘들다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말렸다.
열흘 전에 심방을 갔었는데 날씨가 너무나 좋은 봄날이었다. 벗꽃이 이제 피려고 준비하는 때였다. 집에 갔을 때 마루에 나와 앉아 계시는데 외출을 하고 싶으시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일정이 있어서 다음 주에 와서 꼭 드라이브를 하자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준비를 해서 집사님을 모시고 벗꽃 놀이를 하였다. 청안을 지나 초정으로 갔고 초정에서 구 주성대학 쪽으로 차를 몰아 많은 벗꽃 길을 걸었다. 그 때 집사님이 대변을 잘 못 보셨다. 듣기로는 대변을 잘 가리지 못하시면 오래 사시지 못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이 도와 주어서 잘 마무리 하고 다시 태우고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아래 있는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다.)
이번에 맏손자의 생일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셨는데, 사실 이 모임이 가족의 모임이라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집사님 내외분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보여서 동참을 했다.
어제 식당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았을 때 오리죽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먼저 일어서면서 집사님께 "식사 맛있게 하시고 내일 주일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집사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누구나 다 앞 일은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앞 일을 모르는 것이다. 미래를 예상해도 이리 뒤집어 지고 저리 뒤집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첫댓글 참 사람의 일은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