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출장과 개천절로 인해 3주 만에 시 수업을 하게 되었다.
10월은 초우 축제 한마당이 있어서 할 일이 많다. 시화전에 쓸 시를 전옥희샘이 1차 작업을 해서 확인하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출력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하다 보니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가천대역에 내려서 계단과 언덕을 마라톤 하던 실력으로 뛰어 올라가 가천관 앞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교수님께서 무거운 책(시조집)을 들고 나오셨다. 무척 반가워하셨다. 내가 늦은 것이 하늘의 뜻이었나? 책이 든 가방을 받아들고 강의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니 시간은 59분이라 너무 늦어서 커피도구를 들고 올 수가 없었다. 커피 없이 수업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강의실에 도착해서 바로 수업 자료를 나눠드리고, 교수님께서 주신 책(시조집-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번역된 시조집으로 일일이 이름을 써서 주셨다)을 나눠주고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2학기 첫 강의날 시를 잘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에 대한 프린트를 나눠주고 그 중 3가지만 하시고 한 동안 안 하셔서, 그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시 4번째부터 하시기 시작하셨다.
먼저 공부한 3가지는
1. 시는 우리말의 보물 창고이다.
2. 시는 특이한 체험의 산물이다.
3. 시는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오늘은 4~6번까지 공부를 했다.
4. 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아야 한다.
즉 약하고, 어리고,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든 것이 한준수 시인의 <눈썹달이 된 아내>라는 시이다.
눈썹달이 된 아내
한준수
깊은 잠에 빠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하늘에는 눈썹달이 혼자 걸어가고
술 취한 내 그림자도 흔들흔들 걸어갔다
외등 불빛들이 멀고 가까움에 따라
그림자들도 길어졌다 짧아졌다 했다
(중략)
거실 바닥 매트 위에는 아내가 혼자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그믐달 같았다
오랜 세월을 두고 앓아온 심장병으로
반듯하게 눕지 못하는 아내,
다시는 보름달이 될 수 없는 안타까운 눈썹달이었다
전반부의 서경과 후반부의 서정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연민의 정을 ‘사랑한다’, 좋아한다' 라고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암시를 통해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 읽고 났을 때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감동을 주는 시이다.
눈썹이라는 같은 소재를 갖고 시를 썼지만 서정주의 동천(冬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은 문교수님이 아주 좋아하시는 시이다)
5. 시는 유머 감각의 산물이다.
이때 유머는 직설적이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예는 안도현의 <봄똥>이란 시이다.
봄똥
안도현
봄똥, 생각하면
전라도에 눌러 앉아 살고 싶어진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봄똥, 봄똥 발음하다가 보면
입술도 동그랗게 만들어 주는
봄똥, 텃밭에 나가 잔설 헤치고
마른 비늘 같은 겨울을 툭툭 털어 내고
솎아 먹는
봄똥, 찬물에 흔들어 씻어서는 된장에 쌈 싸서 먹는
봄똥, 입안에 달싸하게 푸른 물이 고이는
봄똥, 봄똥으로 점심밥 푸지게 먹고 나서는
텃밭 가에 쭈그리고 앉아
정말로 거시기를 덜렁덜렁거리며
한 무더기 똥을 누고 싶어진다
봄똥에서 똥은 항문의 이미지이며 거시기는 건강한 생명력을 나타낸다. 똥이나 거시기를 유머 있게 쓴 수준작이다.
경상도 사람인 안도현은 전라도 아내를 얻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전라도의 농작물(봄똥-봄동이 표준어이나 발음되는 대로 봄똥이라고 불러야 제맛이 난다), 전라도 사람들이 쓰는 말(거시기)을 사용하여 시를 썼나보다.
봄동 : 노지(露地)에서 겨울을 보내어, 속이 들지 못한 배추, 잎이 옆으로 퍼진 모양이며, 달고 씹히는 맛이 있다.
(똥을 누려고 앉아 있는데 왜 거시기가 덜렁덜렁하느냐고 질문하는 어떤 줌마가 계셨고 거기에 친절하게 경험담을 얘기한 어떤 아재도 있었다. -시인은 19금도 무죄)
6. 시는 새로운 요소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도는 기초가 튼튼한 다음에 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해 볼수록 시가 풍요로워진다.
일요일 행진곡
김기림
월
화
수
목
금
토
하낫 둘
하낫 둘
일요일로 가는 '엇둘' 소리 ......
자연의 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
영혼의 위생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우리들의
유쾌한
하늘과
하루
일요일
일요일
이 시는 글자의 시각화를 통해 보는 이에게 신선함과 생기를 준다.
시를 잘 쓰려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간식시간은 늘 즐겁다.
오늘도 늘 과일을 준비해 오시는 김영주샘, 김옥희샘이 사과와 메론, 키위를 깎아서 먹기 좋게 담아 오셨고, 류숙자샘은 제사떡을 가져오셨다. 커피가 없다고 최혜순샘이 커피 8잔을 가져다 주셨다.
2교시는 학생 작품 감상 시간이다.
오늘 학생 작품은 김옥희샘의 <가려진 고독>과 홍긍표샘의 <홉스굴 호수>, 김영주샘의<종이배> 3편이나 시간이 부족하여 김영주샘의 작품은 다음 시간에 보기로 했다.
학생의 원작품과 교수님의 수정작품을 비교해 보면, 교수님께서 손을 대 주시면 작품의 질이 확 높아짐을 실감나게 하는 시간이다.
홉스굴 호수는 교수님께서도 다녀오셔서 쓰신 작품과 비교하면서 공부를 했다.
교수님의 시조를 소개하면
별 17
흡수골 강마을에
별뜨는 밤이 오면
산과 물이 속살대며
마두금을 연주한다
게르속
익어가는 사랑
미풍에도 부끄럽다
별 18
흡수골 호숫가에
게르사랑 깊어갈 때
차가운 밤공기에
은빛 성좌 떨고 있다
오늘도
별나라 사람
푸른 말을 기다린다
오늘 점심은 초우 아카데미 야외 시낭송회를 위한 시집 제목에 당첨된 김옥희샘이 교직원식당에서 사셨다.
이런 영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식사 후에 바쁘다고 몇 분이 가시고 7명이 남아서 합평회를 하였다.
합평회는 이봄샘의 ‘세친구’, ‘가을 편지’, 류숙자샘의 ‘얼음 옷’, ‘고운 길에서’, 김옥희샘의 ‘가을날’, ‘사랑은 왜’, 홍긍표샘의 ‘가을 편지’, 채기병의 ‘가을 편지’ 순으로 진행했다. 오늘 가을 편지가 많은 이유는 교수님이 숙제를 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제가 있는 줄도 모르는 분도 있다는 사실. 회장에 제대로 못 챙겨서 그런 것 같다.
10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달려가고 있고, 우리들의 수업도 그렇게 그렇게 가고 있다.
첫댓글 가천시창작반 학생 여러분... 반가웠습니다.
홍긍표 선생님... 흡수골 사진 정말 멋집니다.
道如 채기병 선생님...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수업을 해서 좋았습니다.
나날이 늘어가는 과일들..마음은 늘 문우들 곁으로..
늘 정숙샘을 기다리는 우리들
탈북청소년학교 일로 못 갔네요 ~~
초우 문복희 교수님 시조 두 수가 압권입니다 ^^
숙제를 열심히 하는 우리 학급 모범생들!!!!!
다들 심샘을 보고 싶어했답니다.
인물 사진 가운데 배경 사진 눈 아주 즐겁습니다.
하늘인지 호수인지 파도인지 구름인지...... !!!!!
오늘 복습은 너무 늦어 못하고 갑나다 .
홍샘의 사진이 좋지요.
교수님의 시조 2편과 홍선생님의 몽골사진을 다시 감상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몽골초원으로 여행하고 싶어지네요~
항상 수업내용과 감동을 되새김하게 하여 주시는 채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몽골 초원 저도 마음에 두고 있는 곳입니다.
요즘 너무 바빠 시조도 못쓰고 좋아하는 이곳을 이제봅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바쁘셨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