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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아무리 높아도 그 모든 것들을 함축시킬 수는 없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 들어갈 때, 경주 어디서든 눈에 밟히던 거대한 봉분들의 군락지. 꽤 오랜 시간을 감싸 앉은 채, 아직도 그 무덤의 주인을 알지 못하는 무덤들이 대다수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그 경계가 희미해 묘한 이질감을 가져다주었던 곳.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보내는 그 순간들이 많아지니,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더불어 대릉원에서 영면에 든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궁금해졌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기록된 자료가 부족해 자세히 알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조선왕릉과 더불어 이런 고분군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당대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왕릉군이 묶이기 이전 경주도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무덤가들 사이에 집들이 즐비해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와 당시 신라 시대의 사람들도 그 결에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즐비한 왕릉들이 이해가 가던 부분. 오늘날에 우리들은 그것을 보고 신비롭다 이야기하며, 밤에도 대릉원의 문은 닫히지 않았기에 그 순간을 향유하곤 한다. 당시, 그 순간들을 이곳에서 보내며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도 함께 풀어보려고 한다.
1. 대형 고분군
춘삼월의 기운이 땅에 스며들고, 한 바탕 절정의 시기가 지나가고 난 후 대릉원을 찾았다. 경주는 도심 주변에 이런 대왕 고분들이 자리해 있다. 신원 미상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주인이 밝혀진 경우도 있다. 그것들 중, 대릉원 정문에 자리한 내물왕릉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기록을 살펴보던 중, 내물왕을 '대릉'에 장사 지었다는 기록 덕분에 이 주변에 돌담을 두르고 '대릉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좁게는 돌담 주변을 크게는 그 외의 영역도 확장해 부르기도 하니 실로 당시 사람들의 그 관념에서 우러나온 결과물들이 너무나도 대단해 보였다.
대릉원 돌담길과 내물왕릉 주변은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항상 시기를 놓쳐 그 순간을 담을 수 없었지만,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고 있잖아 정말 황홀경을 자아낸다. 왕릉 주변과 더불어 돌담길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거나 오가는 차들을 담고 있노라면, 이곳이 현실인지 다른 세계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대릉원 한가운데 자리한 나무 포토스폿 또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자리해 있다. 죽은 자들의 공간에서 산 자들이 보내던 그 즐거운 순간들에는 고대 왕국의 문화와 신문물이 맞닿아 있었다.
오래전, 고분에 올라 대릉원의 전경을 담고자 했던 사람들의 기사를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는 되지만, 엄연히 문화재로 관리받고 있는 곳이라 결국 처벌받았다는 결과도 함께 들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대릉원이 아닌 다른 무덤들을 올라가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대신 대릉원 전경을 담고 싶다면 허가를 받아 드론을 띄울 수 있도록 하자. 고분의 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환상적인 전망을 담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벚꽃이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봄의 기운이 깃들어 갈 때, 노을빛이 걸치며 주변의 분위기를 더욱 기품있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사람들이 얼마 없던 그 공간에서 더욱 여유있는 순간들을 보낼 수 있었으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그 깊은 여유가 묻어 나왔다. 내가 만약 경주에서 장기 체류를 결정한다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주에서만 느껴볼 수 있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욕구를 강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특별법이 통과되고 예산이 편성되면서 서라벌에 대한 복원 사업이 발맞춰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계에서 서라벌의 구조에 대한 발표에 따르면, 서라벌 내 그 모든 길들이 신라의 왕성인 '월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좀. 더불어 고분들의 위치도 산 자들의 도심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당 계획이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복원될 곳으로 떠오르던 곳은 '동궁과 월지' 밤하늘의 달을 담아내던 그 신비한 기운에 이곳이 더해진다면, 그 매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법하다.
산책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는 만큼 연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이곳을 찾는다면 자연이 건네주던 그 다채로움과 고풍스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저 날씨 좋은 날,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도 이렇게나 만족스러웠는데 단풍이라면 정말 어마무시할 것 같다. 영화 '경주'라는 작품이 있다. 물론 문화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을 배경 삼아 각각의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던 작품이다. 조만간 또 하나의 그런 작품이 탄생될지도 자세히 지켜봐야겠다.
2. 유물 그리고 사진
게다가 대릉원은 무수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도 당시의 상황들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이곳에 대한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천마총의 경우 직접 안으로 들어가 출토된 유물들의 전시는 물론이며 당시 사람들의 생각들을 알 수 있는 벽화가 자리해 있었다. 본래 황남대총을 이렇게 만들고자 했지만, 이곳이 발견되며 현재의 모습이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
대릉원의 폐장시간과 결을 함께했던 천마총은 한동안 복원공사로 그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최근 개장소식이 들려 다시금 찾아가니 그 웅장한 자태를 고스란히 뽐냈다. 내부로 들어가면 스마트폰 신호가 끊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들에 집중하라는 뜻인가 싶었다.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박정희 시대에 천마총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때문에 지금 이 모습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었다. 무령왕릉의 내부 모습은 폐쇄가 됐지만, 그 고대왕국의 신비로움을 느끼기에는 이곳만큼 적합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황남대총의 그 언덕에는 노을빛이 깃들었고, 그 빛에 홀려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금방이라도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와 주변을 잠식할 기세였지만, 해가 저편으로 떠나간 흔적들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켜본다. 대권을 놓고 다투던 승자의 그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도 결국 체재의 한계와 시스템의 부패로 인해 몰락하는 것을 우리는 정말 많이 봐왔다. 그들이 남긴 유산들과 건축물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머릿속에서 생각의 결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져 아가고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조선왕릉들이 즐비해 있어 그 유구한 가치와 당대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경주의 경우에는 그 결을 약간 달리했다. 신원미상의 고분들과 더불어 선덕여왕릉을 비롯해 김유신 장군의 묘소 등등 정말 많은 인물들의 릉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간직한 숲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1월 일정이 마무리가 되면, 자연스레 경주로 내려가 그 못다 한 발걸음의 방점을 찍어보려 한다. 대릉원도 물론 그때 한번 더 찾아가고 싶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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