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경전
----이옥의 시세계
반경환
현실을 쥐고 있는 접지선 펴면
어린시절이 뛰어놀고 있는 손바닥
조그만 손안에
금도 있고
바닥도 있고
버릇도
불끈하는 주먹도 있어
5백 명 손을 모은 부처는
천수경이라 이름 짓고
천수경 외면 못 할 것이 없다고 한다
잡으려 하면 달아나버리는 계절
초록경전 읽으며
손바닥 안 운명을 들여다본다
손바닥 안엔 소리도 살아
손바닥을 두드리면 소리가 날아 나와
공중으로 날아간다
손바닥 안에서 항해하는 낮과 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할 때
꼭 잡아주던 아버지
투박한 손바닥엔 이정표가 있었다
방황하는 눈빛
환기시켜 주던 아버지 손바닥엔
바닥을 밟고 일어나는 힘이 있었다
층층나무 층층 밟고 오르면
아버지의 손바닥 힘을
정기구독 할 수 있을까?
----[손바닥] 전문
인간이 태어날 때는 두 주먹은 불끈 쥐고 태어나고, 인간이 죽을 때는 두 손을 활짝 펴고 죽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그 무엇을 움켜쥐는 것이고, 두 손으로 움켜쥐는 것은 먹이활동 이외에도 자기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의 임무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먹이활동 이외에도 모든 욕망을 다 내려놓고 간다는 것이다. 두 손으로 움켜쥔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고, 두 손을 활짝 편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이옥 시인의 [손바닥]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금도 있고/ 바닥도 있고”, “버릇도” 있고 “불끈하는 주먹도” 있다. 손바닥 안에는 “천수경”도 있고, “사계절도” 있고, 손바닥 안에는 “초록경전”도 있고, “낮과 밤”도 있다. 손바닥은 나무이고 풀이고, 손바닥은 부처이고 아버지이다. 손바닥은 천수경이고 초록경전이고, 손바닥은 대지이고 우주이다. 부처는 “5백 명의 손을” 모아 “천수경”이라 이름을 짓고 대자대비의 은혜를 베풀고 있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할 때”나 “방황하는 눈빛”을 잡아주던 아버지의 “투명한 손바닥”에는 우리들의 삶의 “이정표”가 들어 있다. 천수경을 읽으면 부처처럼 못할 것이 없고, 초록경전을 읽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고, 손바닥 경전, 즉, “아버지의 손바닥 힘을/ 정기구독”하면 우리들의 모든 소망을 다 이루어낼 수가 있다.
이옥 시인의 “아버지의 손바닥 힘을/ 정기구독 할 수 있을까?”라는 시구에는 그의 ‘손바닥 경전’의 꿈이 들어 있고, 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누가 부처인가? 네가 곧 부처이다.” “누가 시인인가? 네가 곧 시인이다.” 운명에 대한 사랑은 그 모든 고통을 다 받아들이고, 너무나도 분명한 목표와 그 자부심으로 경전의 꽃을 피우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경전들이고, 이 경전들 속에는 우리 인간들의 피와 땀과 노력과 수많은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다.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과 그 필연의 쳇바퀴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그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신성화시킨 것이다. 천수경의 꽃, 초록경전의 꽃, 손바닥 경전의 꽃들은 다만 언어의 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붉디 붉은 피와 생명력을 부여한 창조의 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천수경의 꽃, 초록경전의 꽃, 손바닥 경전의 꽃----. 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향연을 펼쳐 보이려면 좋은 습관과 좋은 학습의 태도를 지녀야 하고, 이 ‘황금의 도덕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욕망과 그 모든 나쁜 것들을 다 제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 이전에, 법 이전에, 자기 스스로 자기 도덕과 법률의 주인공이 되어 그 모든 반대파나 너무나도 사악하고 나쁜 악마의 마음마저도 감동시킬 수 있는 ‘부처--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옥 시인은 “공수래공수거 잊고 욕심이 새파랗게 돋아난다”([감시망]), “사냥꾼 대열에 합류해/ 겉핥기 한탕 해볼까요”([책장을 넘기며])라는 시구에서처럼 자기 자신의 욕망과 그 모든 나쁜 습관들을 베어버리고, “창작물은 하얘지고 번역물은 파래지며/ 여기저기서 에이아이(AI)가 태어나 복제인간이 판을 친다”([판]), “온난화에 쫓기는 엉뚱한 답변은/ 타협과 핑계가/ 한통속이 된다네”([질문의 온도])라고, 그 ‘성불 감시망’을 통해서 우리인간들의 문명과 그 세태풍조를 비판하게 된다.
모든 것은 책숲속에 감춰져 있어요
두꺼운 숲
우두커니 바라보다
휘리릭, 책장을 넘기는 바람
숲을 마주할 때마다 생기는 신뢰감 경외감
진득하지 않은 몸부림은
남은 숲 두께 확인에 열중해요
행간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구름 만지면
밑줄 친 형광펜 사이로 비치는 개울물
졸졸 흐르는 소리는
하품을 불러들여요
잠들기 전에 도란도란 읽어주던
할머니 목소리는 어디 갔나요
사냥꾼 대열에 합류해
겉핥기 한탕 해볼까요
잡념을 나무라는 나무 경고에
몸 비틀며 한 장 한 장 걷다 보면
숲의 끝이 오고 숲은 닫히지요
벌써 마지막 장,
어느새 책장에 올라가 꽂혀있는 한 권의 나무
----[책장을 넘기며] 전문
앎에의 의지, 즉, 학문의 즐거움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생각하지 않는 즐거움이며, 그 즐거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천년, 만년을 한 순간처럼 살아가게 된다. 때때로 “숲의 행간을 겅중겅중 건너뛰며” 진득하지 못할 때도 있고, “행간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구름 만지면/ 밑줄 친 형광펜 사이로 비치는 개울물”처럼 하품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잠들기 전에 도란도란 읽어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겉핥기”와 “잡념”을 나무라고 꾸짖다 보면 어느덧 그 책을 다 읽게 된다. “몸 비틀며 한 장 한 장 걷다 보면/ 숲의 끝이 오고 숲이” 닫힌다는 ‘책읽기의 성자’같은 모습은 어느덧 ”책장에 올라가 꽂혀있는 한 권의 나무”로 우뚝서게 된다.
이옥 시인의 [손바닥]은 대지이고 우주이고, ‘손바닥 경전의 숲’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목재가 좋으며, 가장 맛 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지혜의 열매들’을 우리들은 천년, 만년 수확할 수가 있다.
이옥 시인의 ‘손박닥 경전’은 그가 그의 ‘황금의 도덕률’로 쓴 경전이며, ‘부처--시인’의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연꽃위에 결가부좌하고/ 매일 세상을 여닫던 연꽃은 성불 감시망이다.”([감시망])
부처--시인의 ‘황금의 도덕률’은 연꽃이고, 성불 감시망이다. 앎은 황금의 도덕률이고, 황금의 도덕률은 연꽃이고, 대학교수, 성직자, 자본가, 사기꾼, 이 세상의 모든 어중이 떠중이들은 이 ‘성불 감시망’을 벗어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