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 찬미 예수님
오늘은 2024년 새해 첫날이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또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천주의 성모’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인데요, 과연 인간에게 이런 파격적인 칭호를 쓸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호칭은 성모님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을 지닌 두 개의 위격(hypostasis)이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하여 하나의 위격(hypostasis)을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431년에 에페소 공의회가 개최되었고, 공의회는 두 번째 주장이 맞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머무신 참된 성전이셨고, 인간이신 예수님만의 어머니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리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입니다.
1600년 전의 공의회가 그렇게 결정한 것이 우리와 큰 상관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모송을 바치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드리는데요, 마리아께서 ‘천주의 성모’이시기에 그렇게 기도드립니다.
에페소 공의회가 끝난 후 식스토 3세 교황님은 로마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지어 성모님께 봉헌하였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당신이 돌아가신 후 성 베드로 대 성당이 아니라, 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묻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냅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 1,3)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님은 구유에 뉘어지셨습니다. 이제 하느님 백성들이 주님의 구유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복음에는 구유를 둘러싼 세 가지 반응이 나오는데요, 첫째, 목자들은 와서 주님을 알아보고, 자기들이 들은 말을 알려 줍니다. 두 번째 반응은 그것을 들은 이들이 놀라워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성모님의 반응입니다.
신비에 대해, 들은 바를 전해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듣고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신앙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성모님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거룩한 독서’에서 말하는 ‘루미나시오’ 즉 말씀을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고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이며, 모든 인류는 한 형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인공 지능’에 대해 말씀하시는데요, 인공 지능에 대한 기대와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신 후, “인공 지능이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불의를 늘리지 않기를, 그리고 전쟁과 갈등을 끝내는 데에, 또한 인류 가족을 괴롭히는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은 또 평화가 “상대방을,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 안에서 인정하고 환영하는”, 그리고 “모든 개인과 민족의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는 협력과 약속의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은 이 세상에 예수님을 낳아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모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이 놀라운 선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새해에는 어떤 계획과 결심을 갖고 계신지요? 저는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요, 첫째, 새해의 결심을 잘 지키는 방법입니다. 우선 하느님께 약속을 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께 ‘새해에는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을 못 지켰을 때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약속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저는 이런 계획을 세워보았습니다. 하느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시면, 설령 그것을 못 지킨 날이 있더라도 하느님께 다시 도와달라고 기도드리시면 됩니다.
저는 작년 재의수요일에 금연을 했는데요, 아직도 후배 신부들이 “형, 아직까지 담배 안 피우세요?”라고 묻습니다. 신학생 때 담배를 끊으려고 ‘하느님, 담배 끊겠습니다.’라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래 놓고는 번번이 다시 피워서 고해성사 때마다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고해했는데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담배 안 피우면, 내가 좋은가? 하느님이 좋으신가?’ 결국 저를 위해서 끊는 건데, 왜 하느님께 약속을 드리나 싶었고, 하느님께 ‘저 끊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니 죄도 안 짓고 훨씬 잘되었습니다.
둘째, 제가 노은동 본당 공동체 교우들께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은 하루에 단 한 줄이라도 성경 말씀을 읽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되뇌는 말의 지배를 받고, 우리가 되뇌는 말은 어디선가 읽거나 들은 말입니다. 우리는 결국 내가 읽은 말, 내가 들은 말을 곱씹으며 살아갑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성경 말씀을 하루에 단 한 줄이라도 읽고,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는 길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https://youtu.be/tDQj7j-xogM?si=zcdnSoe8XuajUc67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 바바라 보니 (소프라노)
첫댓글 지난해를 돌아보면서 아쉬워 했고 또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꼭 지켜진다는 보장도 못하면서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 강론을 읽으면서 마태오복음의 말씀 중에 "맹세하지 마십시오."가 떠오릅니다.
정말 필요한 "주님 도와주십시오."를 모르고 살았을까요?~ ㅋㅋ 바보
해방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예전에 야곱의 우물을 영어로 읽었는데 ponder 라는 단어 (곰곰히 생각하다)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야곱의 우물" 월간지 말씀이셔요? 영어로도 나왔나봐요?
@김유정 네 "야곱의 우물"입니다. 아마 중간에 성경의 우리 말과 영문이 같이 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