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만남이 있는 교회
33: 7-11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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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과거를 답습하는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믿음의 원금을 잠식하는 마이너스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폭포수를 맞아들이는 플러스 인생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이고 간증이 더 많은 창조적인 만남을 통해 계속하여 믿음의 전진과 발전이 있어야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원리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의 두 돌비를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미숙한 백성들은 두려움이 생겨 금송아지우상을 만드는 영적 반란을 일으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두 돌비를 던져버립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통해 가문을 새로 세우고, 다른 백성들은 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때에 지도자 모세는 눈물의 기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앞에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2). 이렇게 모세가 주님앞에 눈물의 기도로 호소했을 때 주님은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아픔의 배경을 가진 모세의 사건은 우리의 삶에도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단장품을 제거(회개)해야 합니다(출애굽기 33:4-6).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불길하고, 실망되는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출애굽기 33:4).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丹粧品)을 제하니라”(출애굽기 33:6).
여기 구약적 표현인 “단장품을 제거한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신구약 전체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한다는 의미로 재를 뒤집어쓰거나, 베옷을 입었습니다(참고, 욥기2:8, 시편30:11). 이런 행위는 자기 애통에 대한 외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자의 모습으로 있을 때 창조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사람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입니다. 단장품처럼 스스로를 꾸미고 있던 자신의 과거 죄들을 다 제거하고 주님 앞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기다리시며 죄인에게 용서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심령을 가리고 왜곡시킨 가면을 벗어야 우리는 하나님과의 영적이고 은혜로운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신약에도 보면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에베소서 4:22). 하나님의 의(義)의 세마포(細麻布)를 입기 위해서는 과거 옛사람의 흔적과 누더기는 벗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나의 왜곡된 체면, 허위허식, 가면, 부정적인 생각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정말로 자신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죄인인지를 깨닫는 만큼 하나님은 변화의 역사를 우리에게 일으켜 주십니다. 장식품을 제거할 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진리로, 하나님의 의의 옷으로 덧입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만남의 장소를 확보해야합니다(7절).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會幕, meeting tent)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7절).
영적 지도자된 모세는 백성들에게 바른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 하나님과의 만남장소인 회막을 세웠습니다. 우리들도 새벽부흥회가 있는 교회든 골방이든 직장이든 하나님을 만나는 구체적인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새벽 미명(未明)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마가복음 1:35). 나와 주님사이에서 가면 쓰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를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우리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전인격적으로 주님 앞에 회복의 은혜를 누리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른 죄악에 빠지지 않고 영적인 성숙과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키게 하기 위해 회막을 세웠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고 영적인 간증을 회복하고 영적인 재충전을 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진작시키고 스스로가 주님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면 장소는 은총의 현장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만남의 지성소는 어디입니까?
셋째,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살리는 생명의 대화(기도)가 있어야합니다(11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陣)으로 돌아오나”(11절a).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은 관계”라 함은 허물이 없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친구와 대화함같이 우리 주님은 모세뿐 아니라 우리와도 동일하게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살아있는 대화가 창조적인 만남의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를 할 때 대화의 수준을 조정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과거의 뻔한(stereotype) 이야기가 아닌 뭔가 깊이 있고, 새롭고 마음 담긴 대화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에서 주목할 것은 모세의 기도가 일상생활과 연결되는 기도였다는 점입니다. 산위의 기도와 산 아래의 삶이 연장선상에 서 있어야합니다. 예배드리는 행위와 현재 삶의 모습이 연결선상에 있어야합니다. 교회생활은 직장생활로, 지상생활은 천상생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변혁은 기도의 변혁과 맞닿아 있습니다. 살리는 대화를 시도하십시오. 우리자신과 타인을 살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의식을 바탕한 어떠한 대화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면을 벗고,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확보하고, 살리는 대화가 있을 때 우리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삶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① 이웃에게 희망과 기대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회막에서 주님을 만나러 나아갈 때 백성이 다 일어났습니다(8절). 모세는 백성의 지도자답게 하나님 앞에 말씀을 받으러 기도하러 들어가고 온 백성들은 그 일에 마음을 모읍니다. 비록 죄지은 백성이지만,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갖기 시작합니다. 성도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 소망과 빛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오염되어도 성도된 우리가 올바로 살려고 하는 그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망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희망의 공급원이 되지 못하면 사회는 갈길을 잃어버립니다.
② 예배의 확산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10절).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영광의 구름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그럴때 모든 백성이 일어나서 모세가 섬기고 경배하는 주님 앞에 일어나 각기 장막문 앞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서 경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이 경배가 나 혼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경배할 수 있도록 경배의 근원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③ 한사람을 세웁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믿음을 세울 뿐 아니라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는 사명자들입니다.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隨從者)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11절b). 일정기간동안에 머무르다가 모세는 진(陣) 즉, 삶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한 그 모습들을 청년 여호수아가 살폈습니다. 후일에 모세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영적 지도력을 철저하게 준비된 여호수아에게 맡겼습니다. 기성세대인 우리는 다음세대를 말씀의 세대로 세워야합니다. 다음세대를 말씀으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무너지는 세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지도자로 성장했듯이 우리의 다음세대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디딤돌로 삼아 믿음의 세대로 우뚝 서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단장품처럼 달고 있던 체면, 허위허식, 가면, 부정적인 생각과 죄들을 주님앞에서 다 제거하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함으로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뜨거운 만남을 회복합시다. 주님과의 영적 사이클이 맞는 곳을 확보하여 전인격적으로 영적인 재충전과 치유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립시다. 삶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기도를 통해 예배와 삶을, 지상생활과 천상생활을 연결시키는 창조적인 삶을 삽시다. 우리의 가면을 벗고,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확보하고, 살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고 예배함으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교회가 하나님과의 창조적인 만남이 있는 교회로 자리매김합시다. 이웃이 우리를 주목할 때 희망의 불꽃을 일으키는 이 시대의 영적지성소로 인지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