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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0-22 (내가 주께 감사하고 찬양하나이다)
성경본문 : 다니엘 2: 20-22
20.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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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이기석 목사
어느 날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땅에 보내어 한 천사에게는 기도라는 바구니를, 다른 한 천사에게는 감사라는 바구니를 주어 기도와 감사를 담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몇일 후 두 천사는 돌아왔습니다.
기도의 바구니에는 넘쳤으며 감사의 바구니는 몇 개만 담아 왔습니다.
여러분! 이 비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추수의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추수감사절이지만 보다 큰 의미로는 지난 1년 동안 함께 해주시고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오늘 이 감사예배를 통해서 종합적으로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 하는 동안 감사하지 못했던 분들, 또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감사해 본 기억이 없는 분들, 오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귀한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이 되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러한 면보다는 실제적인 우리의 신앙과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영광을 돌리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올한해도 어느덧 4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면으로는 40여일 이나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올 한해 동안 나에게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진정으로 감사하는 믿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1, 하나님은 성도가 감사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소원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소원이 있고 학생의 소원이 있고, 사업가의 소원이 있고 정치가로서의 소원이 있고 발명가의 소원이 있고 병자의 소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소원이 있습니다. 이를 믿음의 단어로 해석하면 소망이 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입니다. 자식이 안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도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어디 있느냐 악한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말씀의 원래적인 내용은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가 다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선생님은 제자들이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모두가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 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누가복음 17장의 문둥병치유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고침을 받은 문둥병 자들이 너무 좋아서 각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10명이 고침을 받았지 않느냐?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주님은 은근히 저들이 고침 받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들의 마음이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온 이 치료받은 문둥병자는 바로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달려 온 것입니다. 이 마음이 그를 치료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구원까지도 받는 역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엄청난 세계적인 부자가 어느 빈민촌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지금 당장 눈 앞에서 1000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이 1000만원을 다 거저 가지라는 겁니다. 유용하게 잘 쓰라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정말 사람이 없을 때는 한 푼이 없을 때 있습니다. 이 겨울에 연탄하나 사기 힘든 빈민촌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1000만원이라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한 겨울울 잘하면 날 수 있는 물질입니다. 아니, 리어카라도사서 정말 포장마차라도 할 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인생이 변할 수 있는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문둥병만 치료받으면 그들의 인생이 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문둥병 때문에 그들은 아무 것도할 수 없었던 눈물과 탄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이 앞에1000만원 가져간 사람 가운데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이 회장 앞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때 한사람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이런 감사한 경우가 어디 이있습니까? 이런 감사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나와서 "감사합니다."이 한 말에 회장이 약속합니다. 50억을 준다는 겁니다. 정말 믿기지 않지만 그런다는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떡하겠습니까? 50억이면 모르긴 몰라도 인생 끝난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감사한 자는 치료만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까지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감사하는 성도를 우리 주님은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비유를 각색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받은 모든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그 감사가 입술의 고백이 되어 감사하고 고백의 감사가 행함으로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한결같이 언제나 하나님을 감사했습니다.
다윗의 감사의 원천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은 자신을 택하여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 죄 사함 받은 것을 감사, 사는 날 동안 음으로 양으로 지키시고 도와주신 은혜를 감사, 심지어는 내가 사는 그 자체를 감사했습니다.
다윗의 감사찬양, 감사고백은 끝이 없습니다. 시;103:2 "너희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모든 파멸에서 구원하시며 ..."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2, 감사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독일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말할 수없이 궁핍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지방 여행을 갔다가 싸구려 여관에 투숙,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의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어떤 죽일 놈이 내 신발을 훔쳐갔냐.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도둑질해가게 그냥 놔두시다니…”라고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구두를 꺼내주며 그에게 “오늘은 주일인데 나와 같이 교회에 가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여관 주인을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헌데 그의 옆자리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아 눈물을 흘리며 찬송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더랍니다.“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 다리를 잃었구나. 신발이 있다고 해도 신을 수 없구나.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복된가?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는 것을….”
마르티 바덴의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삶의 상황에 따라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서 감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래도 하나님께 감사, 저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명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와 국민에게 크게 봉사하였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감사는 나의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축복을 많이 받았으니 감사하고 나는 축복을 받은 것이 없으니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것은 좋아서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물리적 감사라고 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감사입니다. 취직되서 감사합니다. 승진되서 감사합니다. 합격해서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들이 그러한 감사입니다.
또한 생각사로 감사합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루어지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에디슨은 신문 배달하다가 얻어맞고 귀가 멀었지만은 그는 감사의 삶을 살면서 나중에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게 하시려고 귀를 멀게 해서 한쪽 분야에만 전심 전력해서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다. 이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성숙한 감사가 있습니다.
욥은 칠흙같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다니엘은 처참한 시련 속에서도 감사드렸습니다. 축복 받은 일이 없었는데, 이루어진 일이 없었는데, 잘 된 일이 없었는데, 더 어려워지고 더 망가졌는데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열 자식을 잃어버렸고 모든 물질을 잃어버렸는데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서도 감사합니다. 감사가 됩니다. 내 생명 있는 것도 감사하구요... 없어져도 하늘나라 가니까 감사하구요...
저들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감사에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축복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것도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3, 감사는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가져다주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은 시 50:23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님 그 행위를 옳게하는 자에게는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하는 자를 하나님을 도우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도 맡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적법칙이듯이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자에게 큰 복을, 크게 감사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유명한 스펄전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별빛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
우리 역시 아래의 삶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보다는 언제나 말 한마디에 감사를 담는 말이 더 듣기도 좋고 분위기를 좋게 이끌고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열심히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4,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신앙이 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은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감사 신앙을 막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더욱 풍성한 감사를 드리는 아름다운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미련한 마음이 감사를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어두어지게 된 까닭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지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되"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마음이 미련한 마음입니다. 말씀드리기에는 사실 거북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미련하다고 하는 것은 깨닫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하는 것은 말씀이 나에게 부딫쳤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미련한 마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부딫쳐 미련이 깨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이후로 찬460장은 어려울 때 일수록 언제나 제 심령을 붙잡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부딫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에 부딫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깨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으로는 깨지는 것은 저주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내가 깨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모세가 깨지는 순간 이스라엘이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깨지는 순간 자녀축복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데 비둘기를 중간에 깨서 드린 제물에는 하나님의 불이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을 가르지 않고 드린 제물, 더 이상 제물이 아니라 비둘기 시체에는 솔개가 앉음으로 아브라함이 쫓느라고 고생만 했다고 했습니다.
깨진 심령, 상한 심령,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령이 되셔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교만한 마음이 감사를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봅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천년만년 잘먹고 잘 살 줄 알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이 불러가시면 그날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지옥의 문이냐 천국의 문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모두가 내가 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so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찬송- 주님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223장)
천한이몸 내것이라고 주의일을 멀리했네
주님사랑 받기만하고 감사할줄 몰랐었네
주님말씀 듣기만하고 실행할줄 몰랐었네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사명 맡긴재물을 주를 위해 쓰럽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내 노력 덕택으로, 내 잘남으로 돌리는 교만이 감사를 막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우리들의 노력이나 최선을 다하는 열심도 있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측복하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측복하심과 은혜를 무시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버릴 때 우리는 더욱 감사하는 신앙이 될 줄 믿습니다.
3) 인색한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다윗이 어렵고 힘들 때에 피난길에서 다윗이 평소 잘 돌봐 주었던 나발을 찾아가서 음식을 요청했습니다. 나발은 이제 더 이상 별 볼일 없는 다윗을 무시하면서 이런지하에 거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니 나발의 아내이었던 아비가일이 이 일을 알고 속히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가져와서 사죄를 하였습니다. 인색한 나발은 하나님이 쳐서 얼마 후 죽고, 다윗이 다시 왕이 되었을 때 아비가일이 고마워 왕비로 삼게 됩니다.
인색한자, 넉넉한자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잠언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과도히 아껴도 하나님이 빼가버리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 긍휼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일 받고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왕비가 된 것은 한가지였습니다. 긍휼이 넘치는 마음, 인색하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다. 다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30,60,100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험금을 할 때에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비가일의 풍성한 마음이 그를 왕비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더욱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4)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에서 아침에 일하러 간 사람과 오후에 일하려 간 사람들이 한달란트씩 받았습니다.
나중 온 사람이 한달란트 받는 것보고 아침에 일찍온 사람은 생각하기를 더 주리라 생각하였던지 주인에게 불평하였습니다.
주인은 내가 너와 약속한 돈을 주었는데 무엇이 잘못이냐? 일꾼은 주인에게 원망하고 감사 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하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범사에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감사가 넘칠수록 축복도 넘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