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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악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나사)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지고(나사)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수감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1. 텍스트 주해 및 원어적 깊이 : 나사(Nasa)의 사법적 대속성과 무게의 이동
구약 성경 전체에서 '용서하다' 혹은 '죄를 사하다'라는 맥락으로 가장 깊이 있게 쓰이는 핵심 히브리어 동사가 바로 ‘나사(Nasa)’입니다. 모세가 시내산 바위 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여호와)의 선포를 들을 때 마주했던 용서의 본질은 감정의 호의를 훨씬 초월합니다.
어원적 유래와 본질: 히브리어 동사 ‘나사(נָשָׂא)’는 본래 '무거운 짐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리다(To lift up)', '짊어지다(To bear/carry)', '다른 곳으로 완전히 옮기다(To take away)'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죄를 그냥 눈감아주거나 없는 셈 치는 무책임한 방임이 아닙니다. 죄인이 지고 있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죽음과 형벌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내밀어 '위로 들어 올려(Lift up) 제3자인 대속자에게 짊어지우시고, 죄인의 법정 장부에서 멀리 치워버리시는 사법적 무게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벌을 면제하지 아니하고: 출애굽기 34장 7절은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되(나사)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라는 신학적 모순처럼 보이는 문장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를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용서(나사)가 성립합니까? 죄인이 받아야 할 그 형벌의 무게를 대속 제물이 대신 짊어지고(나사)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완벽하게 성립되는 법정적 신비입니다.
성경 관주를 통한 연결: 이사야 53장 4절은 이 '나사'의 주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밝힙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나사)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구약의 절기에서 아사셀 염소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머리에 안수받아 지고(나사) 광야로 떠나가듯,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당신의 어깨에 친히 들어 올려 짊어지심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나사(용서)'가 완성되었음을 입증합니다.
2. 신학적 주해 : 공의와 자비의 완벽한 충돌과 십자가에서의 성취
성경이 선포하는 '나사'의 용서는 두 가지 위대한 구속론적 질서를 증명합니다.
첫째, 죄의 치명적인 무게와 인간의 영적 파산
죄는 가벼운 실수가 아닙니다. 창조주의 거룩함을 침해한 죄의 무게는 온 우주보다 무겁고, 인간의 그 어떤 도덕적 선행이나 눈물로도 단 1밀리미터조차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죄의 짐을 지려 하는 모든 시도는 영원한 지옥의 압착을 부를 뿐입니다. 용서는 인간이 내 죄의 무게 앞에 완벽한 파산(지옥) 선언을 하고, 내 짐을 들어 올리실 수 있는 유일한 대속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 일어나는 은혜입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법적 대속(Substitutionary Atonement)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율법과 공의를 훼손하면서까지 죄인을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공의가 무너진 용서는 불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가 져야 할 모든 저주와 진노의 짐을 그분의 어깨 위에 사정없이 내던져 짊어지게 하셨습니다(담당시키셨도다). 갈보리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의 칼날과, 죄인을 향한 한없는 자비의 손길이 만나 '나사(대속적 용서)'를 완성한 우주적 지성소입니다.
3. 최고 설교가들의 언어적 레퍼런스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는 참된 용서(나사)에 대해, 강단의 거장들은 그 엄중함을 다음과 같이 담백하고도 사자후로 선포했습니다.
찰스 스펄전 (C.H. Spurgeon):
"당신의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십니까? 그것은 온 세상을 지옥 깊은 곳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한 무게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을 들어 갈보리 언덕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무시무시한 죄의 짐을 당신의 어깨에서 들어 올려(Nasa) 당신 대신 당신의 모든 형벌을 짊어지고 십자가로 올라가셨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짐을 지려 하지 마십시오. 이미 주님께서 그 짐을 지고 흘리신 피의 공로를 믿고 바라보는 자마다, 영원한 무죄 사면을 얻게 될 것입니다!"
존 칼빈 (John Calvin):
"하나님의 용서(Nasa)는 죄를 대충 눈감아주시는 가벼운 동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법정에서 일어나는 완벽한 대속 사건입니다. 죄의 형벌은 단 1센트도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형벌의 전 액수가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의 장부에 부과되었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당신의 피로 그 모든 빚을 완전하게 상환하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선포하는 절대적 사죄의 권능입니다."
4. 오늘날 신앙생활에 대한 현대적 적용
정죄감과 죄책감의 복음적 파산: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과거의 죄와 허물에 사로잡혀 자책하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을까"라는 깊은 정죄감에 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성적 성도는 이 정죄감을 단칼에 기각합니다. 내 죄의 짐은 이미 2천 년 전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어깨로 완벽하게 이동하여 옮겨졌기(Nasa) 때문입니다. 내 느낀과 감정에 속지 않고, 내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완벽한 대속 텍스트(Text)를 붙들고 정죄의 사슬을 짓밟아야 합니다.
타인을 향한 묵직한 용서의 시작: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심을 품는 이유는, 상대방의 죄의 짐을 내가 내 가슴에 직접 지고 그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사'의 진리를 깨달은 성도는 내게 상처 준 자의 죄의 짐마저도 내 손에서 들어 올려 재판장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던져 맡깁니다(Nasa). 내가 짐꾼이 되려 하지 않고, 원수 갚는 것과 심판을 주님께 온전히 이양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을 짓누르던 미움과 억울함의 착고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성적 성찰]
참된 용서(Nasa)는 당신이 스스로 죄의 짐을 덜어내는 도덕적 수양이 아니라, 당신이 감당할 수 없던 그 무서운 죄의 무게를 하나님께서 들어 올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짊어지우신 우주적 대속 사건입니다. 내 힘으로 죄의 짐을 지려 하던 헛된 노력을 멈추고, 오늘도 내 짐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완벽한 자유와 사면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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