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3: 27 믿음의 법 3: 28 의롭다하심을 얻음 3: 29 이방인의 하나님
롬 3: 27 믿음의 법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이와 같이 성도의 의가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하기 때문에, 성도는 자신을 자랑할 것이 없다.
율법과 별개로 나타난 의, 복음 안에 나타난 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는 받는 사람 편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의이다.
왜냐하면 이 의는 사람의 행위의 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1]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인간이 의롭게 되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 자신은 조금도 개입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존재이다.
특히 바울은 여기서 율법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2]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바울은 '믿음의 법'을 행위와 대조시킴으로써, 믿음이 결코 인간 편에서 취한 행위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 믿음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선물에 불과하다.
* 엡 2: 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다.
롬 3: 28 의롭다하심을 얻음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1]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어떤 사본에는 접속사 '가르'(*)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과 같이 본 절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사용되면 27절에 종속되어 부가적인 설명이 된다.
'믿음의 법'에 대한 변호를 위해서 본 절은 독립적으로 해석되기보다 종속적으로 해석되는 편이 타당하다.
2]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20절 주석 참조.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원어는 '율법의 행위와 별개이며 율법의 행위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인정한다'는 말은 옛날 영어성경에는 '결론을 내린다.'고 번역했다.
본 절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기본 원리를 다시 결론적으로 단언하였다.
3]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자'를(26절) 의미하고,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인정하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기조메다'(*)는 '생각하다'(롬 4: 3. 갈 3: 6. 약 2: 23) '추론하다' 또는 '결론을 맺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로기조마이'(*)의 현재 중간태이다.
'그러므로'가 지시하는 두 가지의 요소를 확고부동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성도들과 더불어 확실하게 결론을 맺은 두 가지는
(1)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며
(2)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누구든지'라는 사상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롬 3: 29 이방인의 하나님 -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 진리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에게나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 구원 진리는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에게나 동일하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효력 있는 진리이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1]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을 유대인에게만 국한시킨 종족 수호신의 개념을 공격하면서 범우주적 창조주, 섭리주,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을 역설(力說)하고 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근동 지방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자기들만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사장 나라로서 열국의 구속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를 무시했다.
* 출 19: 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더 나아가 그들은 율법의 준행과 할례 제도의 시행이 그러한 자신들의 신앙이 옳은 것임을 나타낸다고 확신했다.
바울은 이처럼 유대인의 잘못된 신앙관을 비판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섬겼던 하나님을 이방인들이 믿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4: 1-25에서 유대인의 자랑거리인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미리 정당화 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2]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했던 것을 고려하면 바울이 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감히 부르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이방 민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 모독과 같이 무거운 범죄에 해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히려 유대인의 교만을 책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 되심을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소신이 아니라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이방인들을 '고임'(*)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노동자들과 같은 '집단' 또는 '무리'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혈연관계의 결속(結束)보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족장 시대에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없다.
* 창 12: 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창 18: 18 -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시내산 계약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선별 의식과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는 민족의식에 의하여 배타 의식은 강화 되었다.
특히 헬라 시대에 들어와서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더욱 배타적이어서 '이방인' (*, 에드노스)이라는 말 자체가 경멸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예언서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참 이스라엘의 영광을 높이는 자로서 묘사되었다.
* 사 11: 10 -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사 60: 5-6 -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그들의 구원은 메시야가 오셔서 참된 빛이 되시고 세상을 구원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고() 그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고 기록되었다.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사 49: 6 -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말 1: 1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예수께서도 그의 사역 가운데서 이방인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셨다.
* 눅 17: 18 -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또한 제자들을 이방 가운데 파송하시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 마 28: 19-20 -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에 동참한 이방인()은 참된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또한 영적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된 것이다.
* 갈 3: 14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