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256) 제5권 아시아에 전쟁을 일으킨 것이 우리 일본인인데, 어떻게..
제 22장 일본군으로서 요시다의 자존심
4절. 우리들의 일은 운명에 맡기자구.
미요코는 이미 벚꽃 무늬가 새겨진 무명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간호복이나 군속복을 입고 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주었다.
그녀는 향차를 두 잔 만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차를 만들어 탁자 위에 올려놓을 때는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무릎을 끓고 앉아 두 손으로 했다.
향차에서 김이 올라왔다.
"오늘 밤이 제731부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되는 셈이네요." 하고 미요코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제발 잡히지 말고 벗어 나야 할 텐데요."
"부대를 벗어나긴 쉬울 거야. 문제는 하얼빈에서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해."
"중국인 촌락으로 가서 살아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중국인 촌락? 글쎄 중국인들이 우리 일본 사람을 받아 줄까?"
"사실대로 얘기하고 구원을 요청하면 되잖아요?"
"우리는 중국 말도 모르잖아."
"한문으로 써서 뜻을 전할 수는 있어요."
"허긴, 그렇군. 중국인 촌락에 작전을 하면서 보였더니 알아듣더군."
"하얼빈으로 가면 먼저 은행에 들러 제가 저금한 돈을 모두 찾아요."
"많이 저금했나?"
"우리가 한두 해 먹고 살 정도는 돼요."
"나는 고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내드려서 약간의 현금밖에 없어."
"괜찮아요. 그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
"하얼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좋겠지만 기차를 타고 멀리 가기는 힘들어. 나를 찾으라는 수배령이 떨어지면 다닐 수 없어. 더구나 외출증이 없이 사병 신분으로 다니기는 더욱 힘들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산속으로 들어가요."
"산속 깊숙히? 그보다 강기슭으로 가서 살까?"
"어부가 되실래요?"
"어부? 좋지. 어부가 되어 살지 뭐."
"도망가는 처지에 낭만을 찾는 것은 아니시죠?"
"어부가 된다고 낭만인가? 실제 고기를 잡아 팔면 되잖아."
"고기는 잡아 보셨어요?"
"한 번도 잡아 본 일이 없어."
"어머, 그러면서 어떻게 어부가 된다는 것이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 배우면 되는 것이지."
"그럼 저는 어부의 아내가 되겠네요?"
"대위의 아내보다 좋잖아?"
"그래도 대위의 아내가 더 좋아요."
"그렇다면 야단인데."
"난 대위가 될 수 없으니까."
"전직 대위면 되잖아요."
"현직 대위여야지. 그렇다면 현직 대위를 찾아 시집가지. 이 부대에도 대위들이 많이 있지."
찻잔을 내려놓고 요시다는 벽에 몸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미요코가 이불을 집어들더니 그것을 요시다의 얼굴에 씌우고, 미요코는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렸다.
요시다는 이불 속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빼면서 옆으로 굴렀다.
미요코가 그의 몸과 함께 쓰러지며 이불 위에서 짓눌렀다.
이불 속에서 요시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취소하세요. 방금 하신 말씀은요."
"취소하지. 그러나 당신도 대위의 아내라는 말은 취소 해 주었으면 해.
대위니 장교니 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과 인연이 없어."
"그래도 전 당신을 대위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당신이 대위일 때 만났고 대위일 때 사랑했으니까요."
"당신이 만난 것은 대위이지, 요시다 다카부미가 아니군. 당신이 사랑한 것도 대위이지, 요시다가 아닌가?"
“또 그러기예요?"
미요코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요시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불과 몸이 얽히면서 방바닥을 딩굴었다.
조그만 탁자가 발길에 차여 옆으로 쓰러졌다.
탁자 위에 있는 찻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탁자라든지 찻잔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하였다.
"불을 꺼줘요."
미요코가 말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벗기자 몸을 웅크리며 말했던 것이다.
"불룩한 배를 보면 나보고 날씬하지 않다고 할 것 같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불룩한 배가 더 아름다운 거야. 그건 생명을 지닌 아름다움이지 아름다움이란 시각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야."
"그래도 싫어요. 불 끄세요."
요시다가 일어나서 스위치를 내렸다.
방 안은 어둠에 덮였다.
그러나 커튼을 젖혀 놓은 창문을 통해 하늘의 별빛과 보안등의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요시다와 미요코는 온몸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었다.
요시다는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가슴 위에 얼굴을 올려 놓고 있었다.
미요코가 물었다.
"음, 들려."
"무슨 소리?"
"뭐라고 말하는데?"
"뭐라고 해요?"
"아빠, 사랑해요."
"하하하--."
미요코가 격하게 웃었다.
가슴이 출렁거려 요시다는 머리를 떼고 옆에 누웠다.
웃다가 그친 미요코는 잠자코 있었다.
어둠 속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미요코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탈출하지 않고 여기서 살았으면 불안하지 않았을 텐데."
"여기서 사는 게 좋겠소?"
"앞일이 불안해요."
"여기 있어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야. 여기는 세균을 만드는 곳이고, 마루타를 살육하는 곳이야.
어떻게 이러한 곳에서 아기를 탄생시킬 수 있겠어. 우리가 여길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내가 하수인이 되어 여기서 생명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위험하지만 떠나는 것이 좋아.
이번에 이토오 중위와의 사건이 없었더라도 나는 여기를 떠나려고 했을 거야."
"우리가 여길 떠나는 것은 나라에 반역하는 일 같아요."
"나는 이미 반역을 했던 몸이야. 그러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내 나라를 사랑한다고 자부해.
궁극적으로 조국을 생각할 때 전쟁은 바람직한 것이 못돼."
"아니예요."
"그럴테지. 그러나 우리가 떠나는 것을 단순한 탈출로만 생각하지 말자.
나는 내 의지대로, 전쟁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표출하고 싶어."
"저는 불안한 것은 싫어요. 이토오 헌병 중위와 싸움이 없었다면 탈출을 반대했을 거예요."
"이토오 때문에 떠나려는 것은 아니야. 그 일이 나의 결심을 굳어지게 했겠지만 사실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일이 표면에 나타나게 된 것이고, 그것을 인식하도록 해준 것이 오늘밤 이토오 중위와의 싸움일 뿐이야.
미요코, 너무 불안해 하지마. 우리들의 일을 운명에 맡기자구."
"운명에요?"
”결과도 운명에 맡겨야지."
"그렇긴 해요. 후미코라는 애인이 있는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사랑했던 저는, 평생 당신의 기억만을 가지고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물론 저에게는 그 반대였겠지만 후미코가 죽었어요.
그건 운명이 아니고는 억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요시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더니 미요코에게 물었다.
"미요코, 나하고 약속 하나 할까?"
"무슨 약속요?"
"이제 후미코 얘기는 하지 말도록 해줘 그녀의 이름은 언급 하지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의 기억을 그렇게 말하니까 또 생각하게 되잖아. 그녀를 생각하면, 어쨌든 나는 괴로워.
그렇게 나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어.
결혼하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그녀와 나 사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어."
"미안해요. 그녀의 이름을 꺼내 또 생각하게 했나 보죠. 저는 아무렇지 않게 꺼낸 말이었어요.
이제 이름을 말하지 않겠어요."
"나도 미안해. 당신과 결혼해야 되는 내가 딴 여자 일로 괴로워하고 있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모두 이해하고 있어요. 더구나 그녀는 죽었기 때문에 저에게 문제될 것은 없어요.
다만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당신이 입게 되는 상처가 얼마나 지속될지 그것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제가 도와 드릴께요.
극복할 수 있도록 해 드릴께요. 더구나 우리의 애기가 도와 줄거에요. 당신의 마음은 애기에게 쏠릴 거예요."
"애기보다 당신에게 쏠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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