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의원 빼가기에 시작됐다…“상상도 못했다” DJP 공조 (95)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관심
1995년 2월 9일 나는 YS와 결별하고 민주자유당(민자당)을 탈당했다. 90년 1월 3당 합당을 한 지 5년 만에 내가 합친 당을 떠나는 나의 심사는 복잡했지만 ‘더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매야 했다.
나는 그해 초 ‘종용유상(從容有常)’이란 휘호를 쓰면서 나의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었다. “무슨 일에도 의연하게 법도를 지킨다”는 자세로 나의 길을 차근차근 다시 정비했다.
1996년 5월 26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4·11 총선 민의수호 결의대회’에 참석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왼쪽)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가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여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빼가기에 항의하는 장외집회로 양당 간 공조의 시작이었다. JP는 “김대중 총재는 지난 30년간 나와서 있는 자리는 달랐지만 나름대로 오늘이 있게 한 거목”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나와 함께 민자당을 떠난 의원은 이종근·구자춘·정석모·조부영·이긍규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전국구 의원이라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는데 그 손해를 감수하면서 흔쾌히 나의 길에 합류했다. JP와 그 측근들이 정치적 황야(荒野)에 내몰렸다는 비관적 시선이 정치권에 있었지만 나는 젊을 때부터 좋아했던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읊조렸다.
“…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 한다.”
🔎 인물 소사전: 정석모(1929~2009)
충남 공주 출신으로 김종필(JP) 전 총리가 나온 공주중학을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경찰에 투신해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에 올랐다. 이후 강원·충남도지사를 거쳐 78년 공화당에 입당, 10대 의원에 당선됐다. 전두환 정권 이래 민정·민자당에서 내무장관과 11·12·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95년 JP를 도와 자민련을 창당해 15대까지 6선을 기록했다. 정진석 전 국회의원의 부친.
나는 그들과 함께 신당 창당에 나섰다. 92년 대선 무대에서 나를 떠났던 김용환 의원도 합세했다. 탈당과 신당 창당 대열에 옛 공화계 출신만이 아니라 여러 정치 계파와 사람들이 동참했다. 그 대표적 사람이 박준규 전 국회의장으로 그는 93년 공직자 재산등록의 파란 속에 민자당을 떠나고 국회의장직도 그만뒀다. 대구·경북(TK)의 원로이면서 나의 정치 역정에서 여러 차례 충돌을 빚던 인물이기도 하다.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대회가 열렸고, 그 후에 정주영씨의 국민당 후신으로 김복동씨가 이끌던 신민당도 우리 당에 합쳤다. 92년 대선에서 반(反)YS를 표방했던 박철언씨도 입당했다.
자민련의 구성원은 출신, 성향, 정치이력이 다양했다. 민자당 내에서 김영삼(YS)씨 민주계의 푸대접을 받거나 속앓이를 하던 사람, YS 정권의 역사란 이름으로 정치적 입지에 상처를 받은 사람을 비롯해 그냥 정치권 주변에 떠돌면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까지 들어왔다.
‘왕자불추 내자불거(往者不追 來者不拒,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나의 오랜 인간관계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