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融通)이냐 관통(貫通)이냐?
2015.12.9. (※12.7) 분당 차병원 입원실에서
(갈2:11-21)
11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 12 Before certain men came from James,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 But when they arrived, he began to draw back and separate himself from the Gentiles because he was afraid of those who belonged to the circumcision group. 13 The other Jews joined him in his hypocrisy, so that by their hypocrisy even Barnabas was led astray. 14 When I saw that they were not acting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I said to Peter in front of them all, "You are a Jew, yet you live like a Gentile and not like a Jew. How is it, then, that you force Gentiles to follow Jewish customs? 15 "We who are Jews by birth and not 'Gentile sinners' 16 know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observing the law, but by faith in Jesus Christ. So we, too, have put our faith in Christ Jesus that we may be justified by faith in Christ and not by observing the law, because by observing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 17 "If, while we seek to be justified in Christ, it becomes evident that we ourselves are sinners, does that mean that Christ promotes sin? Absolutely not! 18 If I rebuild what I destroyed, I prove that I am a lawbreaker. 19 For through the law I died to the law so that I might live for God. 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21 I do not set aside the grace of God, for if righteousness could be gained through the law, Christ died for nothing!"
바울이 베드로를 반목했다
왜?
그것은
베드로의 나약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의 뜻이 반석인 것처럼
주님의 첫 부름을 받을 때 즉시로(immediately) 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감람산 유다가 동반한 말고의 귀를 단칼에 잘라버렸던 것처럼
변함없고 절도있고 다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것만 같은 베드로...
하지만
자신이 주님의 제자인 것을 들킬까봐 회중 가운데 몸을 숨겨야 했던 베드로
수 없이 듣고 들었던 주님의 가르침을 잊고 갈릴리 어부로 회귀했던 베드로
그랬던 그가 오늘 그 유약성을 또 노출한다
평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함을 주저하지 않았던 베드로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어떤 사람들이 도착했을 시
마치 언제 이방인들과 식사를 했었더냐는 듯 위선 떠는 것이 아닌가
그의 그런 변화는 바울을 비롯 동반했던 이방인들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소위 사도중에 제일 이라는 위인이...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축복함이 하나님의 인도였다는 꿈 이야기를 하던 위인이...
한동안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며 복음을 이야기하던 위인이...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에 식사하던 자리를 피하며 외식적인 행위를 노출하다니...
물론
베드로가 염려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의 필요성도 안다
하지만 용납은 할 수 없다
베드로의 생각은 융통성이다
그러나
바울의 생각은 관통이요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상처받을 이방인들...어쩌면 저들의 실망이 불신앙으로 귀결되고 나아가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지방 복음화의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한 까닭일 것이다
융통(融通) ?
관통(貫通) ?
이 문제는 오늘날도
기독인으로서의 마땅한 처세에 충분한 논쟁의 요소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융통 보다는
관통을 제1순위에 둬 왔다
감사하고 .... 후회가 없다
베드로처럼
약해질 때가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나는 바울의 뚝심을 존경하며
이 일이 있은 후 일관된 베드로의 삶을 통해 융통이 아닌 관통이 기독인의 가야할 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