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나의 아버지.
윤희경
“ 태어날 때부터 저는 너무 불행하게 태어났어요.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저는 날마다 불안한 시간을 보냈어요. 오히려 맞지 않는 날은 마음이 불안했어요. 군대도 아닌데 맞으면 편하고 아버지가 친절하면 더 두려운 거예요. 이러다가 언제 돌변 할지 모르니까요. 세상은 불공평하게 저를 왜 저런사람 자식으로 태어난 것인지 너무 원망스러워요.”
코나투스 (conatus)의 의미는 각자의 존재로 태어나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각각의 DNA 유전자를 통해 기본적인 생명 과정, 즉 생존기능이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보장받는다. 이러한 보장은 태어나면서 느끼는 감정의 출발인 동시에 태어나 경험하게 되는 사건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학습하게 되고 선택한다. 예로 울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울음을 활용하게 되고 울음보다 웃음이 더 좋은 이득을 경험한 아이들은 울음보다 웃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자동적으로 정형화되면서 각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감정 카드가 되어 상황에 맞추어 다르게 사용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학대와 이유없는 폭력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문제가 자신을 덮쳐 반응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정지된다. 곧 디폴트 모드로 전환되어 그저 폭력에 고통스러운 감정경험만 대응한다. " 너무 무섭고 힘든데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어 " 이런 대응의 결과로 더욱무서운 일은 고통에 대해 둔해짐과 동시에 자신을 소중히 다룰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학대의 결과는 자기비하와 연결되어 자신을 소중히 다루지 않을뿐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나는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연민으로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도전하거나 회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당한 채 살아간다. 늘 자주 죽음을 상상하고 일상에 즐거움이 없는 우울증을 담고 사는 사람처럼 삶이 어두운 그림자 숲 같다.
위의 사례에서도 늘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부모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로 살아있게 된다. 이러한 고통은 다루지 않으면 늘 마음속에 살아있어 역 사고를 만들어 낸다. 나는 아버지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식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려 노력한다. 하지만 깊은 마음속에는 부모 운이 없는 자신의 운세에 대한 암울함이 자리한다. 어린 시절의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다정한 다른 가족의 모습에 무너진다. 나도 저런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랐더라면 덜 힘들었을 텐데 마음에 한이 맺힌다.
삶의 본능인 코나투스 (Conatus)와 다른 뜻으로 타나토스( Thanatos) 는 죽음으로 향하는 본능으로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비슷한 의미다. 코나투수는 원래 가지고 있어 자신을 높이려는 열심히 살아가는 노력, 타나토스는 죽음을 향해가는 인간의 시간 한계를 알기에 죽음을 향해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본능이기에 결국 사는 동안에 인간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치 안에서 움직일 뿐이다.
같은 노랫말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다른 느낌으로 전달 되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도 불행도 출발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우는 법, 웃는 법을 학습을 통해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짐스러운 그늘에서 벗어나 바람 살랑이는 나무 그늘에 쉴 수 있다.
원하지 않는 부모, 원하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답을 잘 모르니 대부분 운명이라 부르며 받아들인다. 한편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타고난 운명까지도 바꾸려고 시도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장애아동의 유전자를 가위질하여 장애 출생을 막는 기술이 나왔지만, 아직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출생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혜택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기회를 접하지 못하고 있고 설령 좋은 유전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출생 이후 맞닥뜨릴 환경은 이를 예측 할 수 없다. 이제 예측 할 수 없는 피해를 줄이고 최선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는 학습이다. 경험을 통한 학습부터 이론을 통한 학습까지 현실 속 대처능력을 길러간다면 어떤 유전적 환경에서도 초월적 의식을 통해 자신을 재탄생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운명의 지배를 받고 살지 않기에 가슴을 열어 운명의 개척자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