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색감이 돋보이는 화각華角 공예는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공예 분야다. 예로부터 귀족이나 왕실의 애장품에 주로 이용된 궁중 가구 제작의 정수로 꼽힌다. 화각 공예는 그 이름처럼, 소의 뿔을 주재료로 삼는다. 뿔의 투명도가 높은 한국 황소, 그중에서도 2~3세의 수소 뿔만을 사용한다.
재료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만들기도 힘든 것이 화각이다. 무려 36단계의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 뒤따른다. 8시간 동안 푹 끓여 속을 비운 쇠뿔로 얇게 각지角紙를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단청 물감으로 채색해 민어 부레풀로 목물木物에 붙인다. 옻칠로 마감한 뒤에도 각지의 표면을 여러 차례 갈아서 투명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하나의 화각 작품이 완성된다. 화각장 전수조교는 이 과정이 얼마나 까다롭던지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공예"라고 말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아래 학이 쉬어가고, 우아한 자태 뽐내며 연꽃도 피었다. 용과 호랑이 사슴 같은 온갖 상서로운 짐승들이 거기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빨갛고 고운 상자, 화각 공예로 만든 서수문함瑞獸獸函의 아름다움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다. 이렇듯 귀한 재료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화각함에는 가장 소중한 애장품만 보관되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