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떼를 부렸다. 헤어지면 당분간은 얼굴 보기 어려운데 선물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면 안 되냐고 언성을 높였다. 어린 연인은 며칠의 장고 끝에 마지못해, 반승낙을 했다. 조금 치사한 생각은 들었지만, 자존심을 내세우다 삐끗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만 손해날 일이기에 꾹 참았다. 남들처럼 둘만의 산책 테이트가 늘 소원이었는데 애걸복걸 매달린 끝에 이제야 이루어졌다.
초여름의 밤바다는 젊은이들의 웃음처럼 시원했다. 연인들로,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복잡한 틈새로 슬쩍 그의 팔짱을 꼈다. 왜 이러는 거냐며 살짝 뿌리치는 게 못내 서운하다. 그래도 이왕 자존심은 구긴 것 다시 팔을 끼면서 어려서도 안해보던 아양을 떤다.
“왜 좋찮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수줍게 웃으며 푸른 정맥이 불끈한 팔을 내주고 햇것처럼 보드라운 손도 내어준다. 처음부터 그러면 좋을 텐데 꼭 한 번은 튕기는 것이 밀당의 고수다.
그로 인해 항상 안달이 난다. 연락 없이 늦은 날은 나쁜 친구라도 만날까, 외박이라도 한 날은 여자 친구라도 사귀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밤을, 꼴딱 샌다. 하지만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환한 표정으로 남 여사의 안색을 살피는 척 연기를 한다. 부글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밥은 챙겨먹고 다니라며 다독이는 자신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사랑이란 놈이 참 고약하다. 그래도 좋은 것을 어떡하랴.
언제나 미운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우선 말이 살갑다. ‘내 귀에 캔디’하는 노래가사처럼 달콤하기가 꿀맛이다. 늙은 남편은 날마다 살 좀 빼라며 타박인데 어린 연인은 다이어트 한다며 금식이라도 할라치면 남 여사는 안 빼도 예쁘다. 안 아프면 된다고 입속의 혀처럼 군다. 조르고 졸라 따라나선 운동 길에 옆구리 살을 잡으며 ‘이건 뭔데’ 하고 말을 뱉어 금방 들통나고 말지라도 순간은 달달하다. 마음이 내키면 주방에 일하는데 얼쩡거리면서 엉덩이도 툭 치고 어깨도 살짝 흔들고 간다. 분리수거도 가끔 해주고 음식물 쓰레기는 버려달라는 부탁을 하면 못이기는 척 가져다 버린다. 혹 퇴근이라도 늦는 날은 압력솥에 쌀을 씻어 고슬하게 밥 한 솥을 해놓으니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싶은 걸 꾹 참는다.
그런 말랑한 녀석이 드디어 군대에 갔다. 7월 23일 포항 해병 교육대에 입교하는 날 잔뜩 긴장한 표정, 굳어있던 얼굴에 마음이 쿵 하고 무너졌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하필 오늘부터 시작이라니, 더워오는 눈시울만큼 덩달아 모두의 얼굴에 열꽃이 피었다.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세 번의 지원 끝에 이곳으로 왔지만, 쉽지 않은 길을 가는 것만 같아 가슴이 탔다. 연병장에서 큰절하고 돌아서던 녀석은 당당하려 애쓰던 조금 전의 모습과 달리 작은 키를 발돋움하고 이쪽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남편도 나도 울고 말았다.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우리 부부에게는 버릇이 생겼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온과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다. 올여름은 가을이 오지 않을 듯 무더웠다. 7월 23일 해병대 116X기의 입소가 시작된 후 바로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말라가는 초목을 바라보는 농민의 심정이 이럴까. 타들어가는 애간장만큼 하루하루 날짜는 더디게만 갔다. 그 사이 아들은 훈련소에서 마지막 주 편지를 했다. 극기 훈련 주를 무사히 마쳤다며 고공낙하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 신났다고 했다. 고지점령훈련으로 실시한 천자봉 행군은 아빠랑 7월 초에 간 지리산 종주에 비하면 무척이나 쉬웠다고 했다. 걱정하는 우리들을 안심시키려는 철든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한시름 놓았다.
7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배치받은 부대로 떠나기 전 훈련소에서의 면회 날, 까맣게 타버리고 살까지 쫙 빠져버린 녀석이 의젓해져 있었다. 날 선 머릿결만큼이나 바짝 선 군기는 독기마저 서려있었다. 아직도 후회 없는 선택이냐는 제 아빠의 물음에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아비는 그 소리에 그저 어깨를 두드릴 뿐 말이 없었다.
12월이 시작되었다. 연인들은 성탄과 연말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느라 분주하고 직장인들은 송년회로 바쁠 달이다. 어영부영 한 해를 보냈다고 허무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게 분명하다. 가는해를 잡고 싶은 아쉬운 마음인들 없겠는가, 하지만 내게 올 연말은 손꼽아 기다리는 하루하루다.
지금 어린 연인은 강화도에서 임진강을 마주하고 철책근무 중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불침번을 서다 둥근 달을 보며 오매불망 나를 그리워할지 모른다. 제대 후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중년 여인과의 산책 데이트도 열심히 해줘야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11월 말의 휴가가 연기되어 12월 중에나 온다고 하는 연인은 군의 사정에 따라 또 연기될 수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전화로 다독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본다. 아들은, 엄마가 해준 한 숟가락 뜨면 서너 점씩 고기가 달려오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고 피자에 치킨에 불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참 나열한다.
어제는 부대에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하루종일 눈을 치우느라 고생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눈이 반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들은 눈길을 밟으며 엄마를 보려 내려온단다.
“멋진 휴가복을 입고 제가 받은 월급으로 부모님께 드릴 고기를 사가지고 내려갈게요.”
보내온 편지 말미에 왜 하필 이런 말을 적어 부모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인가. 십만 원도 못 되는 월급으로 어떻게 적립을 해두었다가 사 오겠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올 연말에는 받고 싶은 선물을 꼭 받을 것 같다.
겨울 바다. 해병대 군인과의 데이트는 어떨지 벌써 잔뜩 기대가 된다.
첫댓글 남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부산에서 전라남도 완도까지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비상이 걸렸다며, 면회가 사절되어 그냥 돌아왔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바리바리 싸 들고갔든 간식들을 정문 앞 초소에 맞겨두고 돌아서는데 어찌나 서운하고 눈물이 나던지, 버스 안에서 소대장님께 편지를 쓰서 보냈던 일이 생각나네요. 얼마 후 소대장 님으로 부터 특별 면회가 주어졌다는 편지를 받고 다시 찾아가 만나고 왔던 때가 엊거제 같은데, 그 아들이 이제 50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되었답니다. 자식을 짝사랑 하는 어미의 마음은 세대를 불문하고 똑 같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