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떻게 세기 시작했을까 동물들과 숫자 이야기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돼지들의 소풍 이야기가 있다. 10마리의 돼 지가 소풍을 가다가 엄마 돼지가 몇마리가 있는가 검사를 하였는데 9마리였다. 자기는 세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돼지를 사람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면 동물들은 숫자를 셀수 잇을까? 조류들은 2와 1, 3과 1, 3과 2, 4와 1, 4와 2, 4와 3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동물들은 1에서 3 까지,드물면 4까지의 수를 이해한다. 원숭이는 1에서 3까지 정도이고 침팬지는 1에서 5까지 의 수를 이해한다. 인간은 다섯 자리 이상의 수는 기억을 잘 못한다. 그래서 자동차 표지판 이나 전화번호도 그렇게 되있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부족마다 쓰는 숫자가 다르다. 어떤 부족은 하나,둘,3이상은 많다이다. 어떤 원 주민은 나무에다 눈금을 그어서 자기의 염소와 비교를 하여 알았다. 또 족장이 자기의 부하 에게 돌멩이를 주고 다시 거두어 부하와 비교를 하여 알았다. 이렇게 일대일 대음은 두 집 합이 있을 때 한 집합의 모든 원소에 다른 집합의 모든 원소가 꼭 하나씩 대응하면 일대일 대음이다. 돌을 나누어 주거나 하면 불편하여 신체를 써서 숫자를 나타내었다. 예를 들어 11은 왼쪽 눈이고 17은 왼쪽 손목이다. 이밖에 손과 발을 사용하여 숫자를 세고 5로 단위로 숫자를 세 고 손가락으로 세었다. 이 모든 방법은 여간 불편하였다.
2.수의 표기법 바빌로니아는 삼각형으로 이집트인은 막대기로 마야는 막대기와 동그라미로 로마는 아주 발 달한 숫자이다. 12는 선사시대부터 사용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금,약의 단위로,영국의 화폐단위로도 쓰이고 있다. 물론 시계의 눈금도 쓰고 있다. 마야 문명이나 이집트 문자들은 어렵고 쉽게 외우지를 못한다. 마야 문자는 20을 단위로 하고 동그라미와 막대기를 이용하여 큰수를 나 타내고 이집트는 사물을 본따서 숫자를 만들어 큰수를 나타내었다. 예를 들어 말 뒤꿈치 모 양이 10이고 올챙이가 십만이었다. 어려운 문자이다. 오늘날처럼 10진법을 사용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셈이다. 이헤 비해 바빌로니아의 60진법을 사용하고표기법은 10을 으로 나 타내었다. 하지만 이 것도 정확하지가 않아서 결국 '0'을 사용하여 위치적 기수법의 시초가 된 것이다. 지금의 숫자와 바빌로니아의 숫자는 거의 비슷하다. 아라비아의 숫자가 10진법 을 완성하였고 드디어 오늘날의 숫자가 된 것이다.
3.수의 발전 인간이 가장 익숙해져 있는 숫자는 자연수이다. 소수는 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같는 것이다. 소수는 끝을 찾을려면 자기 평생을 해도 찾을 수가 없고 또 자기의 후손들도 해도 찾을 수 는 없다. 소수는 무한개로 많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형상수라는 특 이한 수를 연구했는데 이것은 기하학적인 도형을 이루는 점들의 개수를 말한다. 따라서 가 장 간단한 형상수는 정삼각형과 정사각형을 이루는 삼각수와 사각수이다. 이것은 바로 오늘 날의 곱셈 공식과 같은 것이다. 분수는 자연수만으로 나타낼수 없어서 나타난 숫자이다.4÷2=2라고 자연수로 표현하지만은 4÷3=?모르기 때문에 나타났다. 분수의 기초가 된 것은 '단위 분수'이다. 음수를 처음으로 설명한 사람은 인도의 승려 브라마굽타이다. 음수는 그늘속의 수라고한다. 유럽에는 필요가 없어서 인정을 하지않다가 온도계의 영,하와 남쪽과 서쪽을 나타나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 다.
2.대수이야기 1.대수의 시초 대수는 농사를 하거나 땅을 가르거나 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산수는 저절로 아는 것이 아 니고 많은 연습을 하여 알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을 배워서 응용문제는 잘 못풀었다. 그래서 '수학'이 싹튼 것이다. 미지수가 있는 문제를 중학생과 초등학생과 풀면 초등학생은 좀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이집트인들은 초등학생들처럼 미지수를 모른다. 하지만 '가정법'을 이용하여 풀었다. 이것은 문자가 들어가지 않고 푸는 문제이다. 답을 다른 숫자로 가정하여 푸는 문제인데 이 문제는 매우 힘든 문제이다. 복잡하고도 어렵다. 그리고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국의 수학책인 '손자 산경'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디오판토스는 죽은 후에도 수학을 자기 묘비에 새겨놓았다. 자기 나이를 문제로 내놓았다. 참으로 하루도 헛되지 않은 수학자이다.
2.문자 사용의 의의 디오판토스는 수학식에 처음으로 문자를 도입한 공로로 오늘날'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대수란 '숫자를 대신한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미지수가 문자로 되었다. 만일 기호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평소때에는 기호가 무척 짜증스럽울 것이다. 하지만 기호 가 없다면 음악 같은 것은 대부분 기호로 이루어졌다. 수학도 기호가 무척 많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기호가 없다면 매우 끔직한 일이다.
3.기호의 발전 16세기 르네상스를 맞이한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학문에 큰 발전이 있게 되었다. 수학의 여 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행해졌는데 수학사상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대수학의 기호화도 바로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비에트의 기호,해리어트의 기호,데카르트의 기호 등 그밖에 여 러 가지 기호들이 많이 있다.
4.방정식과 수학자들 미지수가 있는 식을 풀려면 이항을 알아야 하는데 이항이란 항을 등호를 중심으로 한 쪽에 서 다른 쪽으로 넘어갈 때 부호를 바꾸는 것이 이항이다. 예를 들어서 x+3=8이라는 것을 3 을 등호를 중심으로 넘겨 x=8-3으로 되어 x=5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수가 있다. ax=b(a,b:상수,a≠0)의 형태가 되는 것을 'x에 관한 일차 방정식' 이라고 한다. 일차 방정식을 풀려면 첫째,x항은 좌변으로 상수항은 우변으로 보내다. 둘째,x 의 계수로 양변을 나눈다.(이때 나누는 숫자가 0이 아니어야한다.) 이차방정식은 계수가 가장 큰 것이 이차인 것이 이차방정식이다.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 아에서도 퀴급하했으나 푸는 방법은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그리스였다. 여러 수학자들은 어려움과 위기등을 극복해가며 오늘날 편하게 수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기꾼 수학자들도 있었다.
3.기하학 1.기하학의 탄생 자연에서는 만은 기하학적 도형이 눈에 많이 띄이게 된다. 나무며 벌의 집 끝없는 바다의 수평선의 직선 등 많은 것이있다. 꿀벌의 집은 왜 육각형인가 그이유는 빠르고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목욕탕에 타일이나 나팔꽃과 개미 등 여러 가지의 기하학적 도형은 많이 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여 기름진 토양을 주고가서 농사가 잘 되지만 몇가지 문제점 이 있었다. 홍수가 시작될 시기를 정확하게 모르고 나일강을 다스리기 휘한 여러 가지 기술 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홍수가 지나간 다음 농토를 정리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토 지 측량술과 운화와 수문,달력 등을 만들었다. 이집트는 수학을 생활 속에서 계속 쓰고 있 는 샘이다. 그리스 기하학은 이전에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학문적 발전을 보지 못 하였다. 그러나 플라톤 철학이 대표하는 그리스의 기하학은 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스 시대의 기하학은 정의,공리,증명 등의 논리적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 고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그리스 기하학 탈레스는그리스 기하학 최초의 등장 인물이다. 이오니아의 밀레 토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 는데 일식을 예언을 하였는데 정확하게 들여 맞쳐졌다. 그리고 비례식을 사용하여 지팡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도 재었다. 피타고라스는 사모스 섬에서 출생했다. 피타코라스의 정리에서 는 맞꼭지각의 크기는 서로 같은 것을 알아내고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는 같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밖에 여러 가지를 알아내면서유명해졌다. 정다면체란 모든 면이 합동인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진 도형을 말한다. 정다면체를 같이 붙여서 입체적이게도 만들었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 사람으로 젊은 시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수학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손꼽힌다.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지렛 대와 지렛점만 준다면 달도 움직일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목 거울을 이용하여서 태양 열로 로마의 배를 태우기도 하고 돌을 던지는 기계도 이 사람이 만든 것이다. 제일 유명한 것은 부력을 이용하여 왕관에 은이 섞여있는 지도 알아내었다. 기하학은 4000년전에도 사용하였다. 구불구불한 땅을 바로 하는데 이 것을 사용한 것이다. 원뿔 곡선에 크게 발전 시킨 사람은 아폴로니우스이다. 타원이 두 초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합이 같다든가 쌍곡선은 두 초점으로부터의 거리의 차가 같다는 등을 발견하였다.
3.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 유클리드는 그리스의 기하학을 상징하는 대 수학자이다. 유쿨리드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서 이곳에서 연구하면서 마침네 그 유명한 원론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왕 이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없냐고 물어보았는데 기하학은 왕도가 없다고 하고 다른 제자 중 한 사람은 기하학이 무슨 소득이 있냐고 물어 보았는데 동전을 던져주고 배운 것을 본전을 찾으려고 한사람이라고 하였다. 이 일화들은 둘 다 유클리드의 강직한 성품과 학문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짐작하였다.
4.대수와 기하학의 만남 1.해석기하학의 탄생 기하학을 중요시했던 그리스에서는 확실히 인정된 것만을 사용하여 증명해 나가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걸작품이 바로 유클리드의 원론이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래 몸이 매우 약하여 늘 늦 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곤하였다. 그는 수학의 전개 방법은 빈틈이 없고 누구나 수긍하는 보 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카르트는 수학에서 얻은 지식을다른 것에 적용하기 위해 우선 수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2.해석기하학과 원뿔곡선 원뿔곡선은 그리스 수학자들이 단지 심심풀이로 연구해본 것들이다.그럿나 해석 기하학이 탄생하면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북가되었고 또한 여러방면으로 이용되게 된다.아폴로니우스는 직원뿔을 밑면에 평행하게 자른 단면을 원이라 하였다. 갈렐레이가 포물선을 알아내었다. 이밖에 많은 것을 알아내었다. 나는 이책을 읽고 많은 것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중학교정도 되는 수준이어서 몇몇부분만 알고 다른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이 들었다.